쉬우면서도 어렵다. 정대구의 시. / 남중(시인)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는 말을 누가 했던가요? 사전에는 ‘매우 공교한 솜씨는 서투른 것같이 보인다는 뜻으로, 진정으로 총명한 사람은 뽐내거나 과장하지 아니하므로 도리어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라고 설명하였군요. 그러나 저는 ‘대교大巧는커녕 약졸若拙’도 제대로 체험한 적이 없기에 그저 이 말뜻을 짐작이나 해볼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대직약굴大直若屈 대교약졸大巧若拙 대변약눌大辯若訥.’ 즉, ‘매우 곧음은 굽어보이고, 아주 공교한 기술은 서툴러 보이며, 아주 훌륭한 말솜씨는 어눌해 보인다.’는 가르침에 따라 다른 시인들이 쓴 시詩를 감상해볼 뿐입니다.
우선 정대구의 시는 어린이가 부르는 동요처럼 너무나 짧고 쉽습니다. 어떤 면으로는 유치해보이기도 할 정도입니다. 존경받는 대원로이신 정 시인께는 매우 죄송한 말씀이지만, ‘발가락으로 써도 이 정도는 하겠다.’고 할 정도입니다.
바람은 어디서 노래와 춤을 배운 것일까// 조용한 아침나절 풀잎 하나 간당 않다가// 오후에 일어나 짓궂게 치맛자락 찰랑찰랑// 처녀 궁둥이 스쳐가는 바람노래 아슬아슬
-정대구 ·「오후에 부는 바람둥이」 전문·『시인정신』 2022 봄호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을 별생각 없이 사생寫生한 듯한 느낌입니다. 말도 유치원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기만 합니다. 그래서 이런 정도의 글은 누구라도 긁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무생물인 ‘바람’이 ‘오후에 일어나 짖궂게’ 노래와 춤을 배우더니 ‘처녀 궁둥이 스쳐가는’ ‘바람둥이’로 의인화됩니다. 흔히 인생 차원에서 오후는 늙음을 상징합니다. 이 시에서 화자는 자기 모습을 직접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인화와 알레고리라는 매우 낯익은 수법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기 자신을 ‘오후에 자기를 일으켜 세우는 바람둥이’로 암시하고 있습니다. 즉, 이 시의 화자는 늙어갈수록 오히려 강력한 생성력을 일으키는 ‘자기’입니다.
『대학大學』에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가르침으로 진정한 군자의 자세를 설명하나 봅니다. ‘날로 싱싱해진다’는 뜻 아닌가요? 그렇다면, 날마다 싱싱해지는 시인이, 그 시인이 부르는 ‘노래’가 날로 싱싱해진다면? 그것도 일몰이 가까워지는 ‘오후’에 더욱 강력한 창조력을 발휘하고 있다면?
참새는 수백 번 날갯짓을 하여, 겨우 낮은 뽕나무 높이에 이를 뿐입니다. 그러나 대붕大鵬은 단 한 번 날갯짓으로 구만 리 장공으로 오릅니다. 누구나 구사할 수 있는 어휘로 되어 있는 불과 몇 줄 안 되는 정대구의 이 시에서는 실존實存을 한껏 발휘하는 초인超人의 의지도 훔쳐낼 수 있습니다. 『시경詩經』의 ‘은근한 남녀 사랑’을 읊은 시편에서 이런 함축을 표현하거나 찾아낸다면 그 경지는 어떨까요? 이 노래책을 편찬했다는 공자는 성인聖人으로 추앙받고 있지요. 그렇다면 「오후에 부는 바람둥이」에서 엿볼 수 있는 정대구의 경지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속에 들리는 소리//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 위이이잉 위이이잉// 나무들이 물 길어 올리는 소리 쭈욱쭈욱쭉// 젊은 엄마 뱃속에서 아기 노는 소리 쿵쾅쿵
-정대구 ·「캄캄한 한밤에 홀로 깨어 앉아 듣는 소리」 전문· 『시인정신』 2022 봄호
너스레는 다 빼고, 단도직입하겠습니다. 화자는 들리지 않는 소리도 듣고 있습니다. 현실계를 넘어, 이미 사실계에 도달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이 오후입니다. 이것은 현실이지요. 그러나 지구 반대편은 새벽입니다. 오후와 새벽이 공존함,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다수는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만 집착합니다. 그래서 소인小人입니다. 반대편을 함께 아우를 줄 안다면, 진실로 대인大人입니다.
‘젊은 엄마 뱃속에서 아기 노는 소리 쿵쾅쿵’은 마음을 두지 않기에 ‘들을 수 없음’과 관심이 깊기에 ‘들을 수 있음’이 함께 작동하는 생동성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생동성은 기쁨과 사랑, 기대감과 소망 등으로 확대되어 나가면서 삶의 중요한 가치를 생각하기에 화자는 이미 ‘진실계’까지도 포용하고 있습니다.
현실계, 사실계, 진실계를 함께 짧은 시로 함축한 정대구 시에 잠시 편승한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제 영혼은 매우 정화되고 고양된 느낌입니다.
-남중(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