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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3장 용이 짐승에게 ~ 두 짐승 환상 666
26.08.15(토)
오늘 요한계시록 13장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깨닫는 지혜와 응답받는 기도의 은총이 우리에게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 오늘 요한계시록 13장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어제 12장을 보면서 이런 결론을 내렸었는데요.
자 12장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이냐 마지막 때에 예수님의 승리를 보여준다고 그랬어요.
용과 한 여인의 해산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여인이 아이를 낳았는데 용이 방해를 해요.
삼키려고 하는데 결국 아이는 아무런 싸움도 없이 털끝 하나 상하지 않고 하늘 보좌로 올라갑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온전히 구원을 이루시고 하늘에 오르신 것을 보여주는 거죠.
두 번째는 사탄은 메시아의 탄생을 막아볼려고 노력을 해요. 그래서 큰 용의 모습으로 나타나죠.
구원 계획을 방해하고자 하지만 반드시 실패한다.
여러분 사탄이 자꾸만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유가 있어요. 그걸 우리가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아 사탄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막아보려고 시도하는 거죠.
그런데 결코 성공할 수 없어요.
그러면 그 여인은 어떻게 되는가 아이를 놓친 용은 이제 여인을 괴롭히죠
드디어 여인이 광야로 도망쳐서 거기서 양육을 받잖아요. 교회는 마지막 때에 믿음 때문에 시련을 겪어요.
예 그러나 이는 심판이 아니죠. 믿지 않은 자들은 심판을 받지만 믿는 교회는 이 기관이 연단 받고 양육받는 기간이 돼요.
그래서 마침내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으로 마무리가 되는 거죠. 이것이 마지막 때 교회가 가야 할 길입니다.
이제 오늘은 이제 오늘과 내일 두 이틀에 걸쳐서 과연 그렇게 마지막에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의 모습을 좀 우리가 발견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자 요한계시록의 후반 구조를 우리가 봤는데요. 어제는 교회 박해 배후로 용이 나왔어요. 용 사탄 마귀라고도 하는 그 용 용과 여인의 해산을 어제 다뤘고
오늘은요 두 짐승에 대해서 볼 거예요.
이 용이 두 짐승을 내세워서 자신의 싸움을 싸우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제 666이라고 하는 이름이 나오는데 오늘 거기에 대해서도 알아보려고 합니다.
자 이 오늘 교회 박해의 배후 두 짐승 13장이 아마 가장 여러분이 유한계시록을 읽을 때 가장 암울한 장 중의 하나일 거예요.
왜냐하면, 여기는 그 두 짐승이 얼마나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짐승을 경배하는가가 나와요.
그러니까 신앙에 배교하는 모습도 나오고 또 세상 사람들이 그 두 짐승을 정말 하나님처럼 따르는 모습이 나오니까 우리 마음이 참 무거워요
그런데 여러분 오늘의 이 이야기는 13장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내일 14장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14만 4천 명의 성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으로 이어져요
중요한 건 오늘의 이 이야기가 완전히 바닥을 쳐야 돼요. 그래서 얼마나 하나님을 버리고 짐승을 따르는 것이 정말 악한 일이고 그것이 두려운 일인지를 오늘 13장이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자 이걸 보여주기 위해서 12장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끝납니다. 자 용이 여자에게서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이렇게 끝납니다.
여러분 이 서 있는 모습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는 모습을 우리는 10장에서 이미 본 적이 있습니다. 누구죠 그리스도가 서 계셨어요.
광채가 나는 그리스도가 한 발은 바다에 한 발은 땅에 딛고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서 계신 모습을 우리 10장에서 봤잖아요.
지금 사탄은 그걸 따라 하는 거예요. 용이 이번 13장에 나오는 용의 모습 가운데 제일 중요한 모습이 뭐냐 모방한다는 거예요. 누굴 모방하나 하나님을 모방해요.
그래서 용은 자꾸 이 사탄은 하나님을 모방하면서 사람들에게 헷갈리게 하는 거예요. 분별력을 흐려지게 하는 거예요.
어 누가 하나님이지 누가 용이지 이걸 헷갈리게 만들어요. 자 근데 용은 보세요. 여자에게 분노하면서 즉 교회에게 분노하죠.
돌아가서 이제 모래 위에 서서 준비를 하는데 이 여자 그건 누구냐 여자가 우리가 여자가 예수님을 낳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마리아인가 라고 오해할 수 있어요.
근데 그렇지 않은 것이 여자에게는 남은 자손이 있는데, 그 남은 자손이 누구냐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에요. 이들이 누구여요? 바로 성도들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를 낳은 성도의 성도들이 낳은 자손이라면 여자는 교회죠 그래서 우리가 여자는 교회를 나타낸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고 또 남은 자손은 당시 믿음을 지키려고 애쓰던 성도들을 가리킨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천주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뭐 이 여인이 마리아라서 마리아를 경배해야 되고 그게 아니라 이 여인은 바로 교회를 말하고 교회 교회가 마지막 때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시는 것을 기도함으로 이뤄내죠 그것이 구약교회죠
그러면서 예수님 태어나면서 신약 교회가 되고 우리 성도들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서게 되는 거죠.
자 교회를 없애는 데 실패한 용은 아이를 놓치고 교회까지 이제 없애는데 실패합니다.
12장 마지막 장면이 뭐냐하면 용이 이 여인을 없애려고 교회를 없애려고 자기 속에서 물을 뿜어요 물을 뿜어서 쓸려 내려가게 하려고 하는데 그때 갑자기 땅에서 땅이 갈라지면서 그 물이 다 빠져버리면서 그 여인을 놓쳐버리고 맙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성경에서 지진은 뭐냐하면 땅이 갈라지는 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마침내 교회를 보호하시고 그 용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면서 끝나요?
자 그런데 이제 포기하지 않죠 용은 포기하지 않고 13장에서 두 짐승을 동원하기 시작합니다.
자 그 내용이 오늘 13장인데 먼저 1절에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그래요. 자 오늘 바다에서 한 짐승 땅에서 한 짐승이 나와요.
왜 그럴까요? 바로 10장에서 그리스도가 밟고 계시던 두 곳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두 곳이 바로 바다와 땅이기 때문에 이 짐승은 그 바다와 땅이 그리스도의 통치 영역인 걸 거부하는 거예요.
거부하면서 하나님의 창조도 거부하고 예수님의 권세를 거부하면서 그 바다에서 짐승을 부르고 땅에서 짐승을 부르는 거죠.
자 부르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에요.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자 신성 모독은 이 목적어가 누구냐 블라스 뱀이라는 이 단어의 목적어는 항상 하나님이에요.
즉 하나님을 신성 모독하고 하나님을 도전하는 거예요. 즉 이 용 또는 이 짐승의 목적이 뭐냐 이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고 이유여요.
이들이 어떻게 생겼고 무엇을 하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들의 목적이 중요해요.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려고 그래서 성도들의 분별력을 흐리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라는 거죠.
자 이제 용 사탄의 대행자로 한 짐승이 등장을 하는데 여러분 보시면 10뿔이 있고 7머리가 있다. 그것은 용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그러니까 용과 이 짐승은 근본이 같아요.
근본이 같고 그 목적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바다 바다는 성경에서 죽음과 두려움을 상징한다고 그랬죠 또한 이 바다는 10장에서 그리스도가 밟으신 곳 바로 그리스도의 통치 영역이다.
그것을 지금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어요.
자 어떻게 생겼느냐하면 2절입니다.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랬어요.
여러분 여기서 보면 표범 같고 비슷하고 곰의 이빨 같고, 사자 입 같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니까 이것은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어서 이렇게 표현을 했어요. 무슨 말이에요.
여러분 이것을요 그대로 그림으로 옮기면 이렇게 엉뚱한 그림이 됩니다. 이게 뭐 동물도 아니고 이게 뭐 괴물도 아니고 이상한 그림이 자꾸 돼요.
여러분 이런 이렇게 검색을 하면 자꾸 이런 그림이 떠요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은 우리가 알 수 없어 몰라 무서워 이렇게 생각하게 되거든요.
또 곰의 발 그렇잖아요. 포범 같은 데 뭐 7머리가 있고 10개의 뿔이 있고 여러분 이걸 이건 모두 상징입니다. 그래서 이런 상징 언어를 그냥 국어처럼 바꿔서 그림을 자꾸 그리고 표시를 표현을 하고 이게 이제 상징 언어를 이해 못 하시는 분들이 자꾸 이렇게 이렇게 해요.
여러분 이건 뭐냐하면 표범 곰 사자란 이야기가 아니라 같다 비슷하다는 얘기는 그만큼 포악하고 그만큼 자기를 키워서 남에게 자꾸만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 과장된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리고 자꾸만 공포감을 조성하려는 그러니까 상대방을 무기력하게 만들려는 그런 사탄의 지금 획책을 말하는 것이지.
여기는 그런 짐승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 그 다음에 또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다고 그랬죠
여러분 이게 뭘 하는 걸까요?
이게 하나님을 모방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4장에서 보좌에 앉으시니까 하나님이시죠. 그런데 5장에 죽임당하신 어린 양이 나오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자기의 보좌를 어린양에게 내어주시죠.
그걸 통해서 하늘에 어마어마한 예배가 일어나잖아요. 그걸 지금 사탄이 따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용도 사탄도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이 짐승에게 주는 거죠.
그러면 내가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그래서 이걸 모방하는 거예요. 그래서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권세를 짐승에게 주는 것은 뭐라구요. 하나님을 모방하는 거라고요.
이게 오늘 가장 중요한 단어예요. 모방한다.
사탄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을 모방해요. 그래서 성도들에게 분별력을 잃게 만드는 게 사탄의 목적이에요.
하나님을 자꾸 모방합니다. 그래서요 무서운 외형은 이건 뭐냐하면 다니엘의 환상을 모방한 거예요. 여러분 사탄은요 창의성이라는 게 없어요.
자꾸만 비슷하게 만들고 자꾸만 모방해서 따라 할려고 하는 거죠. 그럼 어떤 환상이었을까? 볼까요?
다니엘 7장 2절부터 6절을 보시면
다니엘이 진술하여 이르되 내가 밤에 환상을 받는데 네 바람이 하늘에 네 바람이 큰 큰 바다로 몰려 불어요.
자 바다로 들어가요 거기서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어떻게 생겼나 보니까 첫 번째는 사자와 같고 두 번째는 곰은 곰과 같은데 세 번째는 또 표범과도 같아요.
이 사자와 곰과 표범이 오늘 사탄이 불러온 한 짐승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죠. 그러니까 다니엘의 환상이 이미 나왔던 그 환상을 지금 이 사탄이 따라 하는 거예요.
자 이것이 권세를 받았더라 그러니까 이 네 짐승도 권세를 받아요. 그거를 오늘 똑같이 따라 하는 거죠. 여러분 사탄은 정말 창의성이 없어요.
자 이 당시에 이 사자와 곰과 표범은 세상에 권세 잡은 나라들을 상징해서 보여줍니다.
나라들 그 당시에 바벨론 또는 매데 또는 바사 이렇게 하나님에게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나라들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쓰였는데
그러면 이 나라들이 그럼 마지막에 또 나온다는 거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다니엘과 겹치는 것 때문에 이 짐승이 과연 어떤 나라냐 어떤 러시아냐 뭐 유럽 연합이냐 어떤 데는 미국이다.
뭐 누군 또 오바마다 트럼프다 별 얘기를 다 해요.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다니엘에 나왔던 이 환상을 모방했다라 한 거에 불과해요.
그리고 이때는 여러 나라들을 가리키는 여러 여러 짐승이지만 이것이 하나의 짐승으로 지금 모아서 나오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역대 모든 나라들의 포악함을 또 그 비 진리를 지금 한데 모은 존재가 나타난다는 의미지 이게 어떤 나라를 가리키는 의미는 아니라는 걸 아시면 좋겠어요.
자 그런데 이 짐승이 뭘 하면요 보세요.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음에 온 땅에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지금 뭐 하는 거죠.
짐승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모방하고 있어요.
여러분 예수님이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로 정말 모든 사람들이 그분을 믿고 따르고 추앙합니까? 그게 바로 부활의 능력 아니에요.
부활의 능력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 살아났다는 게 아니에요. 그것은 사망 권세를 이긴 것이고. 그것은 완전히 죄가 없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확신할 수 있는 그 예수님의 이적 중에 이적은 부활이에요. 근데 이 어 용이 이 용이 보낸 짐승이 그걸 따라 해요.
근데 여러분 잘 보세요. 상하여 라고 하는 이 단어가 어 이 상하여라는 단어가 어떤 단어냐하면 죽임당하신이란 단어랑 똑같아요.
그런데 보시면 예수님은 죽임 당하셨죠. 죽었어요. 그런데 이 짐승은요,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랬어요. 죽은 게 아니에요.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아요.
이게 뭐냐하면 죽게 된 것 같은 것과 죽은 것은 완전히 다른 거예요. 즉 이건 모방이에요. 예수님의 부활을 지금 따라해 보려고 외형은 비슷하지만 본질은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 사탄에 하는 짓은 예수님과 완전히 다른 짓인데 그런데 누구는 속아요. 온 땅이 놀랍게 여겨 그 심승을 따라요. 온 땅은 속는단 말이에요.
온 땅이 누구여요? 사람들이에요. 이게 누구예요? 여기는 성도들도 들어가겠죠. 온 땅이라고 할 때는 믿지 않는 사람들만 따르는 게 아니에요.
믿는 사람들도 어 저 짐승이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님인가 라고 따라가게 된다는 거예요. 마지막 때에 이단이 창궐하게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그리스도다라고 나타나는 이유는 뭐냐면 이런 식의 사탄의 모방하는 모방 범죄가 많아지기 때문이에요.
누굴 따라 하는가? 예수님을 따라 해요.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뭐냐하면 따라 한다는 게 뭐예요? 그만큼 귀하고 가치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짐승은 부활을 따라 해서 모방해서 자신을 포장하려고 하는데 그렇게까지 하는데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그만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가 그만한 가치를 우리가 깨닫고 믿고 있는가 하는 것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죠.
자 4절입니다.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줍니다. 자 이것도 따라 하는 거죠.
하나님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에게 죽임당하신 어린 나이에게 권세를 주듯이 따라 합니다.
그랬더니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며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경배합니다.
이게 경배하는 게 누구죠 온 땅입니다. 온 땅이 용을 경배하고 짐승을 경배해요. 자 근데 이 모습도 따라 하는 거예요. 어떤 모습인가요?
바로 4장과 5장에서 24 장로와 네 생물과 하늘의 천사들이 죽임당하신 어린 양을 예배하죠. 보좌위에 앉으신 이를 예배해요. 그것을 지금 모방하는 거예요. 따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마지막 때 짐승과 용이 하는 짓을 보면 전부 하나님을 모방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따라 해요.
그래서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거예요.
그랬더니, 온 땅이 용을 경배하고 짐승을 경배하더라 왜 그래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세상이 왔기 때문이에요.
자 그래서 사람들의 본성은 뭐냐 하면 권세를 경배하는 것이 사람들의 본성입니다. 권세를 경배해요. 뭔가 강해 보이고 위대해 보이면 사람들이 거길 따라가요 우르르 우르르 몰려갑니다.
자 그런데 여러분 권세라고 하는 단어 엑수시아라고 하는 헬라어가 어 분명하게 우리는 그것을 분별해야 되는데 엑수시아가 뭐냐하면 에크 어디로부터 빠져나온다는 얘기고 우시아는 본질이에요.
에크 우시아 엑수시아 엑수시아라는 말은 뭐냐하면 본질로부터 나와야 돼요. 본질로부터 그런데 지금 이 용과 짐승의 권세는 대단해 보이지만 엑수시아가 아닌 거죠.
권세가 아니에요. 왜 본질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탄은 철저히 모방한다고 그랬죠 모방한다는 건 뭐예요? 껍데기만 있다는 거예요. 본질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참된 권세다 왜 그분은 에크우시아 그분의 본질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천지만물을 섭리하시고 완성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본질이 있어요.
그분의 본질은 사랑이여요. 그리고 우리가 사랑의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은 이렇게 중요한 일이에요.
여러분 사탄은 사랑이 없어요. 공의가 없어요. 그냥 무섭게 공포 정치로 사람들을 죽이고 자기 마음대로 힘을 휘둘러요
거기에는 본질이 없어요. 그것은 권세가 아닌 거예요. 에크우시아가 아닌 거예요. 자 그래서 우리가 종교개혁을 공부할 때 분명히 배웠습니다.
권위에 대한 믿음이냐 믿음에 대한 권위냐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카톨릭은 천주교는 권위에 대한 믿음이었어요.
야 그냥 권위를 믿어 믿으면 돼 니들이 뭘 알아 교회에서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교황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믿어 이 권위에 대한 믿음이었는데. 루터 이후로 종교 개혁은 뭐였어요. 믿음에 대한 권위를 부여하는 거였어요.
야 참 믿음 하나님을 바로 믿는 참 믿음이 중요한 거지 거기에 권위를 부여해야지 왜 권위에 대해서 믿으라고 그래 이게 교회의 탄생이죠.
여러분 이렇게 탄생한 교회는 마지막 때에도 참된 권위 참된 권세 엑수시아에 대한 분열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 사람들이 경배하며 노래하는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더불어 싸우겠느냐라고 한 이 말은 뭘 모방한 걸까요?
바로 출애굽기 15장 11절입니다.
홍해가 갈라진 다음에 큰 승리를 거두고 난 다음에 모세가 노래를 부릅니다.
여호와요. 신중에 주호 같은 자가 누구입니까? 주와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험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라고 하는 찬양을 가지고 와요.
그러니까 사탄은 참 모방을 잘해요. 따라하는 걸 잘해요.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참된 믿음이 없으면 헷갈리는 거예요. 분별력을 잃고 그 사탄을 따라갈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이죠.
자 그러면 5절입니다.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아요. 그러니까 이 진리가 하나도 없어요. 사랑도 없고 정의도 없어요.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하고
그러니까 여러분 마지막 때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리더 소위 이 인플루언서라고 하는 사람들이 보면 요즘 말로 어그로를 끈다고 그래요. 되게 과장됐어요.
그리고 되게 남들을 비방하는 말을 잘해요.
근데 그렇게 세게 말을 하고 뭔가 캐릭터가 강하면 사람들은 와 하고 그분을 따라가는 그러한 무지몽매한 모습들이 우리 참 군중들에게 너무너무 많이 있어요. 그런 모습이 바로 짐승이에요.
근데 이 짐승이 무서워 보이고 대단해 보이지만 뭐라 그래요. 42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았다. 그랬어요. 누구에게 하나님에게 하나님이 그 권세를 제한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 권세를 묶어두고 계시다는 거예요. 여러분 묶여진 권세는 참된 권세가 아닙니다.
그것은 모방하는 것에 불구하고, 그것은 자기를 과장하는 것에 불과하지 참된 권세가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5절 말씀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아 그들의 짐승이 대단해 보이지만 무서워 보이지만 끝없이 권세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묶여있구나 그게 42달이에요.
42달이 뭐였어요. 바로 교회가 핍박을 당하나 어려움을 당하나 반드시 그 끝이 있다. 그 정해진 기간이 있다는 거잖아요. 그게 42달이잖아요.
여러분 보시면 이 한계가 있다고 하는 게 중요해요. 악한 마귀의 획책은 우리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합니다. 교회를 위축되게 합니다. 영혼을 두렵게 합니다.
그러나 한계가 분명히 있어요. 이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죠. 성전 바깥 마당에 이방인에게 짓밟히는 42달이 있었죠.
그리고 두 증인이 베옷을 입고 예언하는 42달이 있었구요. 또 여인이 광야로 도망쳐 양육받은 42달이 있어요. 이게 다 뭘 말하나 전 3년 반을 말해요.
앞에 있는 3년 반 그리고 지금 이 13장 5절에 나오는 짐승이 자기의 권세를 행하는 이 마음대로 박해하고 죽이는 이 3년 반을 후 3년 반이라고 해요.
그래서 합치면 뭐예요? 이게 7년이에요.
사람들이 7년 대환란이라고 부르는 게 바로 이거예요.
11장과 12장에 겹쳐서 나오는 전 3년 반과 13장에 나오는 3년 반을 가지고 7년 대환란이라고 부르는데
여러분 그런데 우리 7년이라고 말하면 이게 굉장히 무서워 보이잖아요. 7은 완전수니까 어우 7년 대환란 그러면 굉장히 완전하고 거긴 다 죽고 다 그럼 세상이 쓸려 내려가나 아니에요.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7년은 완전수 7이 아니라 3년 반을 두 번 더한 거에 불과해요. 근데 3년 반은 뭐예요? 끝이 있다는 거예요. 3년 반은 하나님이 통제하신다는 의미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7년 대환란을 두려워할 게 없어요.
7년 대화란은 우리가 다 죽고 괴로워하고 끝나는 대환란이 아니라 아 제한적이고 하나님이 통제하시는 3년 반이 두 번 반복될 뿐이다.
그러니까 이것이 우리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아닌 거죠.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분을 바로 믿고 그분을 따라가는 믿음의 분별력을 가지면 되는 거예요.
자 그런데 이 13장이 오늘 중요한 부분이 또 나오는데 바로 후반부에 16절부터 18절입니다. 왜 중요하냐면 바로 666 때문이에요.
여러분 16절에 보시면 그가 짐승입니다.
또 하나의 짐승이 나타나는데 바로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이에요.
이 짐승이 모든 자 고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합니다.
자 이제 이 표가 중요한데 여러분 이거 지금 표 받는 게 뭐 하는 거죠. 지금 이게 어린 양의 인침 받는 것을 모방하는 거예요.
십사만 사천명이 뭘 받았어요. 어린양의 인칭을 받았어요. 그것을 모방하는 거예요. 근데 여기서 말할 때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는다고 하는 건 무슨 말입니까? 진짜 표를 받는 거예요. 아니에요. 이것도 상징이에요.
실제 표를 받는 게 아니라 상징 뭐예요? 그 마음이 따라가는 거예요. 그 마음에 사탄의 자식 또는 짐승의 표를 마음에 받는 것이지 머리나 손에 받는 게 아니죠.
자 그래서 17절에 보시면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라 그 짐승의 수라고 했어요. 자 여기서 중요한 거 이 표를 가지지 않으면 매매를 못 한다고 하는 이 말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어 매매를 못 해 그럼 이게 바코드 아니야 라고 오해를 해요. 왜 요즘 우리는 바코드로 다 물건을 주고받으니까 그리고 이게 신용카드가 나왔을 때 또 신용카드 아니야. 이거 원래 사람들이 반대 많이 했어요.
교회에서 왜 신용카드를 사면 이걸로 거래하면 이게 바로 666이다. 또는 베리칩이라고 있죠. 여러분 666 아시잖아요. 이게 바코드잖아요.
바코드의 처음과 중간과 끝 바코드의 어떤 틀을 잡아주는 이게 모양이 마치 6처럼 생겼어요. 그래서 앞과 중간과 끝에 6이 있으니까 바코드가 666이다라고 하는 이야기가 한참 돌았었구요.
이 베리칩이 뭐냐하면 베리칩은 사람 몸속에 넣는 칩인데 이 칩을 한번 넣으면 이게 전자칩이 그 사람의 신원을 보증해요.
그러니까 이게 베리칩이 들어오면 우리가 장을 보고 계산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나오시면 돼요. 그럼 자동으로 우리 몸속에 있는 이 칩을 읽고 계산이 끝나는 거예요.
이게 이제 굉장히 편리한 시대가 되는 거죠.
마치 지금 여러분 하이패스 탈 때 차가 멈추지 않잖아요.
그냥 쓱 지나나오면 벌써 그 차에 있는 칩이 읽히잖아요. 뭐 그런 식이에요. 자 그런데 이것을 666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뭐냐면 바로 이것 때문이죠.
매매를 못 하게 한다는 이 말 때문이에요.
근데 여러분 이게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게 요한계시록이 쓰여지던 시대에 이 소아시아에 있는 이 7개 교회가 여러분 바코드를 알겠어요. 신용카드를 알겠어요. 베리칩을 알겠어요. 몰라요.
여러분 1차적인 수신자가 모르는 이야기를 지금 요한이 2천 년 후를 내다보고 아 그때 가면 바코드가 생기고 그 다음 베리칩이 생기고 이렇게 해서 666을 말하는 게 아니죠.
그 당시에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썼어요. 그걸 우리가 지금 해석할 뿐이지 지금의 이야기로 그때 이야기를 치환하면 안 되는 거예요.
이건 여러분 굉장히 무리한 거예요.
지금 우리가 이것을 바코드다 카드다 베리칩이다. 아니고 무슨 얘기냐 이 당시에 매매를 못 하게 한다는 말이 뭐냐하면 물건을 사지 못하게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생계를 막아버린다는 얘기예요.
그 사람이 공동체 안에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든다는 거예요.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생계 자체가 불가능하게 만들겠다. 생존을 못 한다는 말인데 뭐냐하면 이 당시에 헬라에는요 문화 뭐가 있냐면 동업조합이 문화가 있어요.
동업조합 그러니까 같은 일을 하는 이 사람들끼리 업종끼리 종사자들이 한데 모여서 자기네끼리 똘똘 뭉쳐서 조합을 만들고요.
그 조합들마다 뭐가 있냐 특정 이방인을 모셔요 그 이방인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제물을 먹으면서 연합을 다지고 거래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조합에 들어가지 않으면 누구도 거래를 할 수 없는 거예요.
이 조합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러니까 만약에 축산업 조합이 있고 농업조합이 있고 수산업 조합이 있다. 근데 그 조합에 들어가서 함께 그 뭐 조합의 이방신을 섬기고 함께 그 제물을 먹고 마시지 않으면 존재할 수가 없는 거예요.
아무도 안 받아주니까 내가 거래를 아무도 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여러분 이 당시에 살아가는 게 얼마나 1차적입니까? 농업을 하든지 축산을 하든지 아니면 어업을 해야 되는 해야지 먹고 사는데 자기 동종 업계가 자기를 받아주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될까요? 굶어 죽는 거죠.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면 뭐예요? 아무도 나랑 거래하지 않는데 그러니까 뭘 해야 됩니까? 이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짐승에게 굴복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게 되는 것 그것이 이때에 마지막 때에 이 모습이라는 거죠.
근데 여러분 이것이 남 얘기입니까? 이게 정말 뭐 666에 관한 내용이 아니잖아요. 지금 여러분 얼마나 많은 분들이 얘기하세요.
목사님 교회 가면 직장에 짤립니다. 저 교회 간다고 그러면 저 사회생활 못 합니다. 이런 분들이 너무 많아요.
왜 그럽니까 여러분 이게 현재 666인 거예요.
현재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 믿음을 가지면 직장에서 위협을 받고 이게 압박을 받고 이게 주변 사람들이 나를 점점 더 이상한 사람으로 보고 여러분 이 모습이 바로 666인 거예요.
아 내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어린 양의 인침을 받으면 내가 사회생활을 할 수 없게 되는 것 직장 생활을 할 수 없고 내가 사업을 할 수 없게 되는 것 이런 모습이 지금 이 당시에 매매를 못 하게 한다는 그 말이 되는 거예요.
결정적으로 18절입니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환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랬어요.
자 그 짐승이 하는 짓을 봐라 저 짐승의 수를 한번 세어봐라 그것은 사람의 수다 사람의 수 그의 수는 666이니라 666이 여기서 나왔어요.
근데 이 666이 여러분 왜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냐 이게 여러분 오맨이라고 하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오맨 6월 6일 6시에 한 아이가 태어나요? 근데 그 아이 머리 위에는 666이라고 써 있어요.
근데 그 아이가 그때부터 부모를 죽이고 그때부터 온갖 세상을 엉망진창 만들어요. 그 공포영화 오맨 때문에 이 66이 대단한 어떤 뭐 적그리스도인 양 그렇게 알려졌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666은 숫자에 불과합니다. 그 숫자가 뭐냐 이 숫자가 바로 사람의 수라는 거예요. 지혜가 과연 있다면 총명하다면 그 수를 한번 세어봐라 즉 짐승이 하는 짓을 한번 봐라 과연 누구 같은가 정말 하나님 같은가 하나님을 따라 모방하는 그가 하나님 같은가 아니면 인간에 불과한지를 봐라 그는 666이다.
이 말이 뭐냐하면 요한계시록에 가장 많이 나오는 숫자가 7 아닙니까 7 교회가 나오고 7 나팔 7 인 7 대접 그렇죠. 뭐 다 일곱이에요.
일곱 머리 뭐 일곱 권세 다 일곱이에요. 왜요 이게 바로 하나님의 숫자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의 완전수 7이에요. 그런데 사탄은요 어떻게든 이 하나님의 완전수 7을 모방해 보려고 노력을 해요.
하나님이 되어 보려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모방하고 끊임없이 따라 하려고 애를 쓰지만 어떻게 됩니까?
결국 7에 미치지 못하는 666으로 끝나는 거예요.
이게 인간의 하여요. 하나님처럼 되어보고자 하지만 내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해 보려고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마는 인간의 수가 666이다.
그러니까 사탄은 결국 뭐예요?
인간의 수준에 불과하다 절대로 사탄은 창조주가 될 수 없고 섭리자가 될 수 없고 완성주가 될 수 없습니다.
사탄은 그 자리를 노릴 뿐이죠. 그럼 바꿔 말하면 인간도 하나님의 자리를 노리면 인간도 666이 될 수 있는 것이고. 인간도 사탄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있죠.
그러니까 여러분 이것은 피조 세계에 관한 일이지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탄은 아무리 노력하지만 피조물에 불과하고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해보려고 하지만 결국 대적이 될 수 없죠
왜 7에 이르지 못하는 666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666은 두려운 게 아니에요. 여러분 절대로 666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자 정리하면 마지막 때에 사탄은 하나님의 권세를 모방합니다. 그리고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도 모방합니다. 정말 중요한 건 다 모방을 합니다.
하늘의 경배도 모방하고요. 믿음의 표를 주는 것도 모방을 합니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앞에 나오는 하나님이 하시는 거 예수님이 하시는 거 다 따라합니다. 예 다 모방을 합니다.
그러나 뭐예요? 마귀는 아무리 애를 써도 도저히 하나님을 온전히 따라하지 못합니다. 왜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분 절대로 우리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하나님을 신성 모독하는 마귀를 따라가면 안 되는 이유가 뭐냐 마귀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 얘기는 권세가 없어요. 본질이 없기 때문이에요. 결국 그는 패망하고 말죠 이걸 보여주는 한마디 요약이 뭐냐 그게 666이에요.
아 사탄은 절대로 하나님이 될 수 없다.
사탄은 사탄은 절대로 우리가 믿어서는 안 된다. 사탄는 하나님의 그 경지를 따라갈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말이 666이에요.
아무리 노력해도 7이 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666이란 말을 들을 때 어 무서워 어우 두려워 어우 이렇게 할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감을 가지셔야 돼요.
그래 우리 하나님은 완전하신데, 사탄은 아무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대 그래 나는 그러니까 하나님만 믿고 따를 거야. 아무리 일상생활을 할 때 불편해도 여러분 예수님 있는 것 때문에 교회 다니는 것 때문에 직장과 사업과 주변에서 아무리 압박을 당하셔도 여러분 그것 때문에 우리가 마음을 바꾸면 안 된다는 거예요.
어떤 분들은 그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어요.
여러분 중요한 얘기인데 목사님 지금은 저 교회 못 나갈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어요.
지금 못 나간다는 말은 뭐죠 지금 못 나가면 나중에는 잘 나올게요 라는 말이 괄호 안에 들어있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저 좀 봐주세요.
그런데 여러분 지금 교회를 안 나오는 게 나중에 교회를 잘 나올 수 있는 길이 될까요? 많은 경우에 그렇지 않아요.
지금 내가 직장 때문에 지금 내가 주변 사람들 때문에 내가 지금 교회를 나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과연 나중에 교회를 잘 나가는 길이 되지 않는 건 여러분 제가 경험한 바가 있어요.
수많은 분들이 우리 아이 고3 때만 봐주세요. 그래요.
요즘은 또 바뀌었어요. 우리 아이 중학교만 들어가면 봐주세요. 6년만 봐주세요. 목사님 중고등학교 6년만 봐주시면 대학 들어가면 제가 정말 교회 잘 보낼게요 그애 반주도 시키고요. 차량도도 시키고요. 청년부 회장 시킬게요 6년만 봐주세요. 이런 분들 너무 많아요.
그런데 그렇게 6년 봐준 아이 교회에 돌아오는 것 한 번도 못 봤어요. 여러분 내가 나중에 잘 믿기 위해서 지금 내가 불신한 걸 선택한다. 그런 길은 없어요.
여러분 만약에 부부가 결혼을 하는데 여보 내가 나중에 사랑하려고 지금 내가 6년만 바람피고 올게 말이 됩니까?
이게 말이 안 되는 것처럼 여러분 신앙도 똑같아요. 신앙도 내가 나중에 올바른 신앙을 갖기 위해서 지금 내가 불신앙을 선택한다.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그걸 너무나 많은 분들이 타협해요. 너무나 많은 분들이 그 길을 가요
예 고등학교 3년만 양해해 주세요. 고3만 양해해 주세요. 또는 중고등학교 6년만 우리 아이 좀 내버려 두세요. 그런 아이들은 1명도 안 돌아왔어요. 1명도 그중에 돌아와서 정말 청년부 회장되는 애 아무도 없어요.
뭘 말해줍니까 내가 나중에 뭐만 되면 잘 되면 예수를 잘 믿겠다. 여러분 그런 날은 오지 않더라구요. 지금 불편하고 힘든 것을 이겨내지 못하는데 내가 나중에 어떻게 하나님을 따라요.
지금 불편하고 지금 힘든 걸 이겨내는 게 신앙이에요. 여러분 신앙은 피해 도망가는 게 아니에요. 이거 피하고 저거 피하고 이거 접고 저것 고려하고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
지금 특수한 상황이라 제가 성도분들께 아 그래도 오셔야죠 라는 얘기를 저도 못 하겠어요. 네 저도 그런 경우에 아 그래요. 할 수 없죠 라고 말씀드려요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너무너무 안타까운 건 아 이게 괜찮은 건가 라고 하는 마음이 있어요. 이게 정말 괜찮은 건가 안 괜찮은 거 아닌가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안 괜찮은데 마치 괜찮은 것처럼 제가 면죄부를 드리는 건 아닌가 라고 하는 갈등이 저는 항상 있어요.
여러분들 제발 담임 목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세요. 목사님 괜찮죠 괜찮죠 라고 묻지 마세요. 뭐가 괜찮아요. 안 괜찮아요.
지금 불편하다고 교회 안 나와 지금 내가 좀 귀찮다고 하나님 안 믿어 내가 지금 애들 공부시키겠다고 하나님께서 멀어지게 해 그걸 부모가 부모가 해요.
그리고는 나중에 때 되면 걔가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어요. 허황된 믿음이에요. 절대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아요.
그걸 오늘 보여주는 게 요한계시록 13장입니다. 결론입니다. 요한계시록 어떤 책입니까?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최후 승리를 보여줍니다.
왜 보여줍니까 왜요 왜 하나님은 그를 제한하고 짐승은 아무리 힘이 세도 제한된 3년 반에 권세밖에 받지 못하고 하나님이 그를 통제한다는 걸 왜 보여줍니까
마침내 하나님은 완전하게 승리하시고 사탄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걸 왜 보여줍니까 그를 따라가는 것 자체가 옳은 길이 아니라는 거예요.
지금 잠시만 지금 잠깐만 그럼 괜찮죠가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따르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어요. 신앙을 온전히 갖기 위해서 지금 불신앙의 길을 가겠다. 여러분 말이 안 되는 모순이에요. 그런 길은 없다는 거예요.
두 번째 사탄은 짐승을 동원해서 거짓 권세를 자랑합니다. 자기를 포장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굉장히 하나님처럼 모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한적인 권세일 뿐이에요. 3년 반으로 끝이에요.
그 뒤에 그 짐승은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여러분 무너질 것을 따라가면 안 돼요. 절대로 무너질 걸 따라가면 안 돼요.
세 번째 사탄은 세상을 속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방합니다. 끊임없이 모방합니다. 부활도 모방합니다. 예배도 모방합니다. 모든 권세도 모방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돼요.
본질상 하나님을 닮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을 담아낼 수도 없고 닮을 수도 없어요. 왜 본질이 없으니까 결국은 완전수인 7이 아닌 인간의 수 666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사탄의짐승의 한계이고 짐승의 한계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결정하셔야 돼요.
사탄은 하나님이 아니에요. 그 표를 받으면 안 돼요. 근데 그 표를 왜 받아요. 거래를 할려고 받는 거예요. 매매를 할려고 받는 거예요. 살아 볼려고 받는 거예요.
그럼 여러분 그걸로 신앙이 끝날 수 있어요.
나는 괜찮겠지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남의 얘기가 아니고 내 얘기예요.
유한계시록이 언젠가 찾아올 언젠가는 벌어질 미래가 아니라 지금이에요. 지금이 종말의 때고 지금이 마지막 날이고 지금이 말세예요.
그러니까 이 얘기가 아 그냥 뭐 판타지 소설처럼 언젠가는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댄다 뭐 2060 몇 년 뭐 3천 몇 년이 벌어질 일이 아니라 지금 인류 역사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고 지금 우리 가정에서 지금 우리 직장에서 지금 우리 사업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깨어서 분별력을 갖지 못하면 지금 신앙을 다 놓쳐버릴 수 있어요. 내 신앙만 놓쳐요 아니 내 자녀도 놓쳐요 다음 세대 없어요.
왜 우리 교회가 왜 성민 가족들이 다음 세대에 목숨을 거는가 여러분 이게 악세사리가 아니여요. 우리가 바로 신앙을 가지고 깨어 있어서 우리 자녀에게 다음 세대에게 이 신앙을 전수해 주지 못하면 교회는 죽어요.
짐승의 표를 받는 게 훨씬 편한데 훨씬 더 살기 좋은데 훨씬 사회생활하기 편한데 누가 예수를 믿어요. 우리 다음 대 가면 아무도 예수 안 믿을지도 몰라요.
불편한 것 싫고 귀찮은 것 싫고 민망한 것 싫고 부담되는 것 싫으면 다 때려치게 될 걸요 여러분 그날이 오면 어떻게 하실래요. 결단해야 됩니다.
여러분 신앙을 부담돼서 못 믿겠다는 분들은 정말 미치겠어요. 부담돼서 회사 안 나가요 부담돼서 학교 안 가요 그런데 부담되면 교회 안 와요.
왜 그게 편하니까 여러분 편한 길 가시겠습니까?
오늘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 될 진정한 길은 어디인가 본질을 따라가는 진정한 권세는 누구인가 지금 편하자고 여러분 본질이 없는 가짜 본질을 따라가선 안 됩니다.
지금 내가 편하자고 지금 내가 좀 살자고 엉뚱한 길 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만 바르게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 요한계시록 13장은 온통 짐승이 판을 칩니다.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하나님을 모방하고 따라하고 권세를 휘두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 짐승은 하나님처럼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하지만 하나님을 모방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아니고 그를 따르는 것은 당장은 편해 보이지만 당장은 매매할 수 있고 당장은 생존할 수 있는 것 같지만 결국 그 길은 죽는 길이 아닙니까
하나님 우리가 온전한 분별력을 갖게 하시고 온전히 깨어 있어 하나님의 본질 그 본질에서 나온 하나님의 권세를 바르게 믿고 따르며 하나님만 경배하며 하나님만 의지하는 올바른 신앙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타협하지 않는 믿음을 갖게 하시고 아무리 어렵고 불편해도 부담스러워도 하나님만 믿고 따르는 올바른 신앙을 갖는 부모들이 되게 하셔서 내가 살고 다음 세대를 살려내는 믿음이 전승되는 가정이 되게 하시고
이 마지막 대회에 온전한 분별력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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