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큐를 봤던 때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른다. 아마 박정희가 죽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류의 프로그램이 성시를 이룰 때가 아니었나싶다. 그것은 한국전쟁이 끝난 다음 이루어진 포로교환 과정에서 남과 북 어느 쪽도 아닌 제3국행을 선택한 이들의 행적을 좇는 다큐 프로그램이었다.
수 십년이 흘렀지만 그때 받은 인상은 지금까지도 내 의식 한 켠에 깊이 박혀 있다.1
제3국행을 선택해야 했던 그들의 상황과 그 선택의 결과로 걷게 된 그들의 삶은 이후의 내 삶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 개인적인 정체성의 문제에 빠져 번민을 거듭하던 내게 그 프로그램은 내가 속해 있는 사회와 국가의 문제를 던져주었다.
어제, 늦은 밤에 야식을 먹으러 나갔다가 KBS에서 방영한 <디어 평양>을 봤다.
영화의 초반부는 보질 못 했다. 내가 본 것은 주인공의 오빠들이 '귀국선'을 타는 장면부터였다. 영화를 보고나서 찾아보니, 전반부에서는 제주에서 태어난 주인공의 아버지가 일본으로 건너와 어머니와 결혼하기까지, 그리고 그 이전의 한일, 남북 관계에 대한 설명이 진행되는 모양이다.
무튼, 그렇게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그것도 중간부터 보게 된 영화를 끝까지 봤다. 흔하지 않은 일이다. 영화가 도대체 영화같지가 않아서였다. 더 정확히는 영화 속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야기들이 도무지 남의 일같지가 않아서였다.
평양. 그 이름만으로도 묘한 울림을 주는, 서울이나 부산, 광주와는 전혀 다른 울림을 주는 단어다. 엄연히 실재하는, 그것도 우리의 바로 지근 거리에 있는 지명이면서도 먼 이국의 뉴욕이나 파리 등보다 더 생경하게 느껴지는, 마치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기나 한 것처럼 다가오는 그런 이름.
그런데 이런 평양을 감독은 '디어 평양'이라는 이름으로, 더 접근하기 힘든 공간으로 만들어버린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평양은 현실적인 공간이었다. 세기말 세계를 휩쓸던 제국주의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은 일본이 그 학습효과를 바탕으로 동면하는 개구리마냥 깊은 잠에 빠져 지내던 조선 왕정을 집어삼키고 이후 36년간을 무단 통치하던 시대에도 평양은 여전히 우리가 함께 숨쉬며 살아가는 실재하는 공간이었다.
그곳은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수많은 이들의 몸짓이 살아 있는 곳이었다. 그랬던 곳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동서 냉전 체제의 희생물이 되고 그 결과 전혀 다른 세상, 범접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반 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고, 언젠가부터 그게 더 자연스로운 일이 되고 말았다.
<디어 평양>은 우리가 이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이 사실이 실은 전혀 부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영화다. 너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있는 우리와는 또다른 지점에서 우리로서는 볼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삶을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다.
<디어 평양>, 실재하는 혹은 실재하지 않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
영화는 조총련 간부인 아버지와 북한으로 '귀국'한 3명의 오빠를 둔 재일동포 2세 여성 감독이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10년에 걸쳐 카메라에 담은 다큐먼터리다. 영화는 이들 재일동포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남북 분단이 주는 아픔과 재일동포의 삶, 그리고 이들이 겪고 있는 정체성의 혼란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영화는 '평양'이라는 이름으로 표상되는 북한의 체제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다. 부모와 전화 통화조차도 할 수 없고, 부모 형제와 '면회'를 해야 하는 사회가 유지되는 이유를 묻고 있다. 사람을 꼼짝없이 옭아매어 자발적인 충성이 이루어지는, 사람을 그 아래 종속시키는 이데올로기의 정체에 대한 물음이고, 엊그제 백분토론에서 나왔던 바로 그 북한의 문제다.
영화를 보면서 자꾸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오버랩되었던 건 이 때문이다. 영화 내내 조총련 간부로서의 '충성심'과 '주체의식'을 견고하게 유지하던 아버지지만, 기력이 쇠해진 후반부 어딘가에서 세 아들을 '귀국선'에 태워보낸 데 대한 회한을 내비치며 이렇게 말한다.
"당시는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지. 사회주의 열기가 앙양해 있을 때였고, 금세 뭔가를 이루어내리라고들 믿었어. 그땐 그랬어. 지금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지만.."
왕정에서 곧장 일본 제국주의로 넘어간 민중들에게 있어 평등 이념의 사회주의는 단순한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신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해방 직후 사회주의가 전 조선 사회를 휩쓴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신드롬이었던 것이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조총련 활동에 매진하고 흔히 북송선이라 부르는 '귀국선'에 자신의 아들들을 기꺼이 태워 북으로 보냈던 것도 바로 이같은 신드롬이 그 동인이었던 셈이다.
평양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혹은 북한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우리 사회에 다시 사회주의 바람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바람을 넘어 신드롬의 징후까지가 읽히고 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해방직후의 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를 청산한 듯 보이지만, 그러나 아니다. 사회주의는 청산된 게 아니다. 종전 직후 이어진 냉전체제가 잠시 억눌러둔 상태일 뿐, 우리 사회의 저변에는 아직도 사회주의에 대한 민중의 뜨거운 욕구가 숨겨져 있다. 우리 힘으로 사회주의를 극복한 게 아니어서다.
동서냉전 체제가 종말을 고하면서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하던 냉전 의식과 반공 이데올로기의 양대 축 가운데 하나가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한국 전쟁을 통해 공고화되어 있던 반공 이데올로기 또한 냉천 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거의 형해화하고 있다. 억눌려 있던 예의 저 사회주의에 대한 요구가 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북한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읺으면 안 되는 시점이다. 왜냐면 평양은, 나아가 북한은 실재하지 않는 공간이 아니라 생생하게 현존하는 공간으로 지금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있기 때문이고, 이제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으로 직접 맞부닥쳐 극복해야 하는 문제인 때문이다.
사회주의가 바람직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엄존하는 현실을 외면해서 안 된다는 뜻이다. 이제부터 북한과의 문제는 '친북-반북' 혹은 '종북-반북'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서 접근해야 한다는, 엊그제 백분토론에서 노회찬이 말한 바로 그 이야기다. 특정 이해관계에 따라 고정, 왜곡된 이제까지의 시각을 접고 새로운 관점으로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자는 것이고,
우리 힘으로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제대로 고하자는 얘기다. 이제
첫댓글 언젠가 나도 본 프로그램 이었는데(가물가물) 다시 볼수 있다면 보고 싶군요
반공포로 석방( 용어 선택의 역사적 관점은 미룸,배제) 시
제3국행을 택한 사람들 현 언론에 나타나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요
어딘가 단 1명이 간 나라도 있던데,,, 국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정치집단의 이해관계에
인간이 말살되는 인간이 인간이 될수없는 그 메카니즘의 오랜 역사성을 거부할수있는
시대가 올까요. 최소한의 집단 방어권이 유지되는 사회?
최인훈의 '광장'이 생각나는군요.
제 3국. 인도행를 택했으나 결국은 도착하지 않은 주인공 이명준...
4.19직후 출간된 '광장'은
결코 세간의 풍문처럼 '정치적 허무주의'가 아니라...
정치.국가를 묻는 집요한 질문같다고 느낍니다.
윌가의 금융폭력을 거부하는 시민운동의 목소리가 전세계에서 공감을 사고 있는것을 볼때
이제 사회주의,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그 "정치적허무주의" 의 본디 근원을
이끌어 내야 할 시기가 왔단 생각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