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화도(江華島)와 석모도 -
강화도는 역사와 생명이 살아있는 땅이다. 섬 안에는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의 역사 유적들이 그득하다. 섬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고인돌을 비롯해 각 시대의 역사가 그대로 남아 있어 ‘살아있는 역사박물관’ 이라 불릴 만 하다. 강화도는 돈대의 보고(寶庫)다. 돈대는 외적의 침입이나 척후활동을 사전에 막고 관찰할 목적으로 흙 또는 돌로 방어시설을 쌓고 포를 설치했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관광명소가 바뀌었다. 돈대에 오르면 서해바다를 향해 펼쳐진 넉넉한 개펄과 맞닥뜨릴 수 있다. 섬을 두르고 있는 개펄은 수많은 바다생물들이 서식하고 도요새와 청둥오리떼가 쉬어가는 생명의 땅이다.
서울에서 김포를 지나면 강화 땅이 보인다. 섬이 얼마나 가까운지 육지와 경계를 가른 물은 바다라기보다는 강 같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닿은 곳이 갑곶이다. 갑곶은 강화 여행의 시작이며 끝이다. 이곳에는 강화 역사 박물관이 있다. 바빠서 그냥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많다. 여행이 꼭 ‘쉬고, 놀고, 마시고, 자빠지는’ 유희의 대상이 아니라면 한번쯤 들러볼 만 하다.
강화는 몽고의 침략에서부터 경술국치에 이르는 이 땅의 질긴 역사를 담고 있다. 시조 단군에 제사 지내는 참성단, 선사시대의 고인돌, 삼국시대의 전략적 쟁탈지로서의 유적, 고려시대 39년 동안 대몽 항쟁의 근거지, 숱한 호란 속에서 침탈 당하던 조선시대의 흔적,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에 맞서 싸우던 근대의 전적지 등등 강화도(한반도)의 역사와 유물들이 1층과 2층에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한맺힌 강화의 슬픔이 심장을 후벼판다. 무엇 때문에 이 땅을 지키려 애쓰는지, 말없이 쓰러져간 민초의 비탄이 허공을 맴돈다.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물관 앞의 메마른 탱자나무만이 우두커니 서 있다.
역사관 뜰은 갑곶돈대로 이어진다. 이 돈대는 고려가 강화가 도읍을 옮긴 뒤 몽골과 줄기차게 싸울 때의 외성으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였다. 갑곶을 뒤로하고 차를 달리면 해안순환도로가 눈을 시원하게 한다. 해안도로에는 철조망과 돈대가 어김없이 들어서 있다. 화도돈대, 오두돈대,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등이 차례차례 나타난다. 한반도에 눈독을 들이던 프랑스, 미국의 군대와 조선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역사유적지이기도 하다.
초지리에서 동막을 거쳐 장화리로 이어지는 해안도로 옆에는 한없이 펼쳐진 갯벌이 지평선을 이룬다. 썰물 때 이곳을 지나면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온통 뻘만 보인다. 갯벌 위로 배가 누워 있다. 몸을 깊숙이 박은 커다란 닻들이 비석 모양같다. 갯벌 위로 햇살이 번진다. 어느새 검은 갯벌은 은빛으로 부서진다. 동쪽 끝에 있는 분오리돈대에 오르면 갯벌의 장관이 한 눈에 들어온다. 모래등처럼 이리저리 휘어진 개펄의 능선이 아름답다. 새들은 꼬마들의 소리에 하늘을 연기처럼 흩어졌다 손짓이 사그라지면 살포시 갯벌 위에 내려앉았다.
장화리는 강화도에서 가장 낙조가 아름다운 곳이다. 자그마한 섬을 뒤덮을 만큼 크게 떨어지는 일몰이 온 바다를 태울 듯이 붉게 타오른다. 바다와 개펄을 가르고 가슴까지 다가와 얼굴과 마음을 물들인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몇년전부터 이 일대가 낙조감상 명소로 유명해지면서 횟집과 카페들이 도로변에 잇달아 들어서 운치가 감소됐다. 상업주의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지만 편하기는 하다. 이율배반적인가?
6월 강화도는 아카시아 꽃이 하얗게 피고 모내기가 거의 끝나 일손이 한가롭다. 그렇지만 부지런한 강화 사람들은 손놓고 놀지 않는다. 고기라도 잡아야 성이 풀린다. 그래서 지금 이맘때 강화는 일년 중 어느 때보다 활기차고 생기 넘친다. 논물이 흔건한 논에는 바람에 나부끼는 파란 벼포기가 가득하고 포구마다 연안에서 갓 건져온 꽃게와 병어, 숭어, 새우 등이 수북수북 쌓여 풍요롭기 이를 데 없다.
강화도는 정수사, 전등사, 보문사 등 사찰이 많다. 정수사는 작고 고요한 가람이다. 꽃병을 새긴 대웅보전의 문살과 약수가 유명하다. 작은 바가지로 한 모금 떠서 마시면 뼈 속까지 시원해진다.
전등사는 고구려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천년고찰. 삼랑성문을 지나 햇볕을 가려주는 솔숲을 지난면 종루와 대웅전이 나타난다. 전등사의 대웅전 지붕은 벌거벗은 여인 4명이 떠받들고 있다. 절을 짓던 목수와 사랑을 나누던 절 입구 주막집 여인이 목수의 돈을 들고 도망치자, 분통이 터진 목수가 벌거벗은 여인상을 처마 밑 귀퉁이마다 새겨 죽어서도 고통받게 하려 했다는 전설이 있다. 경내에는 많은 탱화와 병인양요 당시 양헌수장군의 승전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