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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예레미야가 한 말이다. 그는 베냐민 땅 아나돗 마을의 제사장 출신인 힐기야의 아들이다.
2. 아몬의 아들 요시야가 유다 왕이 되어 다스린 지 십삼 년이 되었을 때에, 주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3.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유다 왕으로 있을 때에도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고, 그 뒤에도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 제 십일년까지 주께서 그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다. 시드기야 왕 십일년, 그 해 다섯째 달에 예루살렘 주민이 포로로 잡혀 갔다.(렘1:1-3)
1 This book is the account of what was said by Jeremiah son of Hilkiah, one of the priests of the town of Anathoth in the territory of Benjamin. 2 The Lord spoke to Jeremiah in the thirteenth year that Josiah son of Amon was king of Judah, 3 and he spoke to him again when Josiah's son Jehoiakim was king. After that, the Lord spoke to him many times, until the eleventh year of the reign of Zedekiah son of Josiah. In the fifth month of that year the people of Jerusalem were taken into exile.
*왜 말씀의 역사가 없나?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 가셨습니다.
거기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녀의 남편이 다섯이었습니다.
그의 삶이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남들이야 물 길러서 머리에 이고 가면 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우물가부터 미리 살폈습니다.
저 사람은 집에 빨리 돌아가지 않고 우물가에 뭐 하고 서 있나?
날마다 물 길으려 우물가에 가야 했습니다.
갈 때마다 그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 녀는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대로 쏜살같이 집을 향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과 대화를 나누시려 했지만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말씀하시면 이 여인은 그 말씀을 수돗물 이야기로 알아들었습니다.
13.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
15. 여자가 말하였다. "선생님, 그 물을 나에게 주셔서, 내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나오지도 않게 해주십시오."(요4:13-15)
막힌 관이 터지고 대화가 통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그렇게 잠시 대화를 나눈 후 일어난 일입니다.
그 녀는 채워두었던 물항아리를 그대로 뒤로 두고 달렸습니다.
자신을 손가락질하던 마을 사람을 향했습니다.
그 때 그 녀는 자신이 남편 다섯을 둔 여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그 녀가 누구인지를 잊고 있었습니다.
그가 전하는 말을 그대로 믿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메시야를 보았냐면서 우물가로 달려왔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말씀을 나눈 후 일어난 일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입니다.
예측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일을 일으키시는 분이 말씀이십니다.
그런데 바로 그 말씀!
우물가에서 여인과 나누었던 그 말씀이 한국 교회 강대상에서 주일 열한 시마다 전해 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왜 그 우물가의 사건이 없을까?
30. "지금 이 나라에서는, 놀랍고도 끔찍스러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31. 예언자들은 거짓으로 예언을 하며, 제사장들은 거짓 예언자들이 시키는 대로 다스리며, 나의 백성은 이것을 좋아하니 마지막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렘5:30,31)
강대상의 메시지가 거짓으로 하는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그 거짓말로 시키는 대로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아주 삼박자로 교인들도 그 거짓말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교인을 공격한 것입니다.
“믿습니다. 빤쓰” 하면 좋아서 광화문에 모여든다는 것입니다.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제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레미야가 그 말씀을 했습니다.
*예언서의 배경들
이사야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1. 이것은,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다.(사1:1)
이사야 예언자는 유다와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예언했습니다.
당시 앗수르가 파죽지세로 근동 지방을 위협했습니다.
결국 그 앗수르에 의해 북왕국 이스라엘이 망하고 말았습니다.(BC721)
예레미야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1.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예레미야가 한 말이다. 그는 베냐민 땅 아나돗 마을의 제사장 출신인 힐기야의 아들이다.
2. 아몬의 아들 요시야가 유다 왕이 되어 다스린 지 십삼 년이 되었을 때에, 주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3.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유다 왕으로 있을 때에도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고, 그 뒤에도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 제 십일년까지 주께서 그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다. 시드기야 왕 십일년, 그 해 다섯째 달에 예루살렘 주민이 포로로 잡혀 갔다.(렘1:1-3)
1 This book is the account of what was said by Jeremiah son of Hilkiah, one of the priests of the town of Anathoth in the territory of Benjamin. 2 The Lord spoke to Jeremiah in the thirteenth year that Josiah son of Amon was king of Judah, 3 and he spoke to him again when Josiah's son Jehoiakim was king. After that, the Lord spoke to him many times, until the eleventh year of the reign of Zedekiah son of Josiah. In the fifth month of that year the people of Jerusalem were taken into exile.
예레미야는 유다왕 요시야가 다스리던 십삼 년에 이 말씀을 예언했습니다.
BC627년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의 어두움은 이 한 사실로도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제 나라의 왕을 애굽이 제 마음대로 세운 것입니다.
여호아하스 왕은 잡아가고 여호아김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4. 이집트의 느고 왕은 여호아하스의 동생 엘리아김을 세워 유다와 예루살렘의 왕으로 삼고, 엘리아김이라는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꾸게 하고, 왕이었던 그의 형 여호아하스는, 붙잡아서 이집트로 데려갔다.(대하36:4)
북왕국에 이어서 남왕국 역시 망하게 되었습니다.
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하게 된 시절입니다.(BC587)
유대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성전도 완전히 훼파되었습니다.
에스겔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2.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잡혀 온 지 오 년째가 되는 그 달 오일에,
3. 주께서 바빌로니아 땅의 그발 강 가에서 부시의 아들인 나 에스겔 제사장에게 특별히 말씀하셨으며, 거기에서 주의 권능이 나를 사로잡았다.(겔1:2,3)
유대 나라는 진짜로 망해버렸던 것입니다.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잡혀온지 오 년이란 BC593년을 이릅니다.
먼 타국에서 포로가 되었으니 그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었겠습니까?
그 상황에서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셨던 것입니다.
다니엘, 호세아....... 모든 예언서가 먼저 그 년대부터 밝히며 시작되는 것입니다.
무슨 잘난 사람이 쓴 책이 허구가 성경이 아닙니다.
성경은 역사 안에 하나님을 읽은 사람이 쓴 하나님의 역사책입니다.
그 중에 예언이란 이런 것입니다.
바다로 배 타고 나가는 사람은 구명복을 입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익사해서 죽을 수 있습니다.
산에 가서 암벽을 타는 사람을 든든한 자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아니면 절벽에서 떨어져 죽을 것입니다.
산에 가는 사람이 구명복을 입는 법은 없습니다.
배를 탔느냐 암벽을 타느냐가 중요합니다.
밑도 끝도 없이 산에 가면 살지만 배 타고 가면 죽는다는 그런 식의 예언은 무당이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예언은 이런 것입니다.
구명조끼를 입으라.
하나님께서 배를 타라신다.
든든한 자일을 준비하라.
하나님께서 암벽을 타라신다.
그 사람의 미래가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보존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먼저 이사야서의 역사적 배경입니다.
앗수르가 파죽지세로 밀려와 열국을 위협했습니다.
그 힘이 너무 막강하다 보니 어떤 나라도 앗수르에 대항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앗수르의 발 앞에 무릎을 꿇는 나라들이 있었습니다.
아니면 반앗수르 동맹을 결성했습니다.
앗수르를 저항하기 위한 것입니다.
당시 열국에게 이 문제는 시급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는 앗수르 뿐 아닙니다.
반앗수르 동맹의 위협을 동시에 받았던 것입니다.
야, 너도 우리와 함께 빨리 반앗수르 동맹에 가입하라는 말이야!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무력을 동원해서 그 일을 강요했습니다.
유대를 무력으로 위협하는 나라들 중에 북이스라엘(이스라엘 왕 베가)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 왕 아하스가 나라를 다스릴 때에, 시리아 왕 르신이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와 함께 예루살렘을 치려고 올라왔지만, 도성을 정복할 수 없었다.
2. 시리아 군대가 에브라임에 주둔하고 있다는 말이 다윗 왕실에 전해 지자, 왕의 마음과 백성의 마음이 마치 거센 바람 앞에서 요동하는 수풀처럼 흔들렸다.(사7:1,2)
이런 상황이다 보니 유대는 마치 바람 앞에 사시나무 떨듯 떨었습니다.
마귀는 가장 먼저 바로 이 생각으로 사람의 정신을 홀딱 빼놓는 것입니다.
사는 길은 오직 이 두 가지 중 하나뿐이라는 것입니다.
적군이냐 아군이냐?
그런데 이 자리에 이사야가 등장한 것입니다.
이사야는 완전히 다른 소리를 했습니다.
그 공포의 둘이 타다만 두 부저깽이에서 실실 피어오르고 있는 연기 같다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표현도 잘했습니다.
조금 있으면 꺼지고 말 헛것이라는 것입니다.
발로 뭉개버리면.......
이사야는 전혀 다른 선택을 제시했습니다.
4. 그를 만나서, 그에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침착하게 행동하라고 일러라. 시리아의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크게 분노한다 하여도, 타다가 만 두 부지깽이에서 나오는 연기에 지나지 않으니,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라고 일러라.(사7:4)
왜 아군과 적군이 다 헛것인가?
이사야는 그것들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완전히 배제하고 생각하게 하는 작자입니다.
물론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처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사야는 그 입의 고백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삶으로 그 믿음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유대인들의 불신의 증거물을 제시했습니다.
1. 도움을 청하러 이집트로 내려가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칠 것이다. 그들은 군마를 의지하고, 많은 병거를 믿고 기마병의 막강한 힘을 믿으면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바라보지도 않고, 주께 구하지도 않는다.
2. 그러나 주께서는 지혜로우셔서,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이미 하신 말씀은 취소하지 않으신다. 주께서 일어나셔서, 악을 일삼는 자의 집을 치시며, 악한 일을 돕는 자를 치실 것이다.
3. 이집트 사람은 사람일 뿐이요, 하나님이 아니며, 그들의 군마 또한 고기덩이일 뿐이요, 영이 아니다. 주께서 손을 들고 치시면, 돕던 자가 넘어지고, 도움을 받던 자도 쓰러져서, 모두 함께 멸망하고 말 것이다.(사31:1-3)
이사야는 애굽이 사람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멋진 군마는 고깃덩이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 사람들에게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 전쟁을 앞두고 주여 삼창부터 외친 다음에 철야를 했습니다.
금식하며 부흥회를 했습니다.
그들은 부흥회 때 소리쳐 기도했습니다.
“동맹이 굳건하게 하시옵소서! 믿쉽니다. 아멘”
하지만 이사야의 눈에 이것은 명백한 위선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그러면 진짜로 하나님을 믿어!
하지만 믿음을 현실의 삶에 그대로 적용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아무리 그래도 이사야에게는 여지가 없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동맹을 부인하라!
그렇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교로운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어쩌다보니 히스기야가 이사야의 요구를 따르게 되는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먼저 앗수르가 유대를 위협했을 때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궁정의 모든 은 금을 벗겨서 앗수르 왕에게 바쳤습니다.
14. 그래서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라기스에 와 있는 앗시리아 왕에게 전령을 보내어 말하였다. "우리가 잘못하였습니다. 철수만 해주시면,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앗시리아 왕은 유다의 히스기야 왕에게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요구하였다.
15. 그리하여 히스기야는 주의 성전과 왕궁의 보물 창고에 있는 은을 있는 대로 다 내주었다.
16. 그 때에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주의 성전 문과 기둥에 자신이 직접 입힌 금을 모두 벗겨서, 앗시리아 왕에게 주었다.(왕하18:14-16)
히스기야는 앗수르를 달래는 것이 살 길이라고 여겼습니다.
하나님 잠시만 참아 달라고 기도하면서 거룩한 성전의 은 금을 벗겨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성전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앗수르가 그 금으로 만족하며 물러갔겠습니까?
앗수르가 다시 히스기야를 위협했습니다.
이제는 앗수르의 비위를 맞출 금은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히스기야도 별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강대상 앞으로 가서 철야를 한 것입니다.
물론 히스기야의 공로도 있었습니다.
그가 급히 애급으로 국제 전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군사 요청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장군들을 모아두고 작전 회의를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강대상 앞에 엎어진 것이 그의 최고의 공로였습니다.
14. 히스기야는 사신들에게서 이 편지를 받아 읽었다. 그리고는 주의 성전으로 올라가서, 주 앞에 편지를 펴 놓은 뒤에,
15. 주께 기도하였다. "그룹들 위에 계시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님만이 이 세상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시는 오직 한 분뿐인 하나님이시며,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십니다.(왕하19:14,15)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인가!
35. 그 날 밤에 주의 천사가 나아가서, 앗시리아 군의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쳐죽였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을 때에, 그들은 모두 주검으로 발견되었다.(왕하19:35)
“나 죽었습니다. 하나님, 나 살려주세요” 하자 일어난 일입니다.
입에 붙어있던 하나님 고백을 진짜로 하나님 아니면 나 죽는다고 하자 일어났던 일입니다.
전쟁 준비 대신에 강대상으로 달려갔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마 지금쯤 천국에 있을 히스기야도 그 과거에 자신을 통해 일어났던 일을 잘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교회 강대상 앞에 엎어진 지 6시간 후에 성 밑에서 히스기야가 확인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적들이 다 죽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구했더니 하나님께서 그 하나님의 성을 지키셨다.!
유대 나라는 정말로 엄청난 신앙 경험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사야가 재안했던 그 믿음을 적용하는 일이 우리 죄인들에게는 여전히 아찔한 이야기입니다.
홍해가 길로 여겨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그런데 산을 넘으면 산이 있는 법입니다.
앗수르가 사라지자 바벨론이 나타났습니다.
전에는 앗수르가 배 타고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바벨론이 비행기 타고 나타난 것입니다.
그 바벨론 앞에서 유대인들의 주제는 “하나님을 믿기만 해라 하나님의 성은 하나님께서 지키신다!” 였습니다.
그 위대한 왕 히스기야가 그들에게 전해준 교훈이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를 바다라면 바벨론은 암벽이었습니다.
앗수르 때 구명조끼를 입었다면 바벨론 때는 자일을 들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구명조끼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예언자 예레미야였습니다.
알고 보니 구명조끼 입으라고 엉뚱한 설교를 하는 주체가 교회였던 것입니다.
교회 설교의 메시지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지로 몰고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암벽을 타는데 구명조끼 입고 오라고 부흥회를 해대는 것입니다.
물론 훗날 예수님께서도 꼭 이런 일을 당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신성모독으로 몰리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같은 이유로 성전을 두고 도둑들의 굴혈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성전을 모독했다면서 말입니다.
예레미야는 교회를 대고 너희의 메시지가 속이는 거짓말이라고 공격을 했던 것입니다.
성전을 찾는 백성들에게는 교회에게 속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목사의 설교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4. '이것이 주의 성전이다, 주의 성전이다, 주의 성전이다' 하고 속이는 말을, 너희는 의지하지 말아라.(렘7:4)
도대체 그 경건한 신앙고백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을 속이는 말이 되고 말았는가!
거룩한 교회다 거룩한 교회다 하나님의 집이다.
할렐루야 아멘!
우리 장로님 갑부됐습니다. 아멘!
여기에서 어떤 거짓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은 마치 주문 외우듯이 교회를 외쳐대며 거짓 평화를 보장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 이름만 가져다 붙이면 그 일이 하나님의 일이 되는 줄 압니다.
계엄으로 피바다를 계획했다가 옥에서 성경을 읽으면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 성경은 저명한 목사가 준 것입니다.
그 할아버지가 혹시 저 사람의 손바닥에 왕 자를 써주었을지 모릅니다.
예레미야는 종교 행위가 사기 수단이라고 외친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요구는 교회를 리모델링하지 말고 사람을 리모델링하라는 것입니다.
5. 너희가, 모든 생활과 행실을 참으로 바르게 고치고, 참으로 이웃끼리 서로 정직하게 살면서,
6.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억압하지 않고, 이 곳에서 죄 없는 사람을 살해하지 않고, 다른 신들을 섬겨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으면,
7. 내가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 하도록 준 이 땅, 바로 이 곳에서 너희가 머물러 살도록 하겠다.(렘7:5-7)
예레미야가 지적하는 내용은 진짜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000석 교회 성전을 세워두고 하나님께 영광 운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앞에서 당회원들이 흐믓해 하면서.......
사진 찍으면서.......
단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된 하나님 백성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말씀을 곧이듣지 않았습니다.
감히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을 고발하다니!
예레미야는 “성전=하나님 나라”라는 공식이 틀렸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말을 해도 사람들은 제 공식이 맞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결국 유대 나라는 예레미야의 말씀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가 맞고 그들의 공식이 틀렸다는 것이 확인된 셈입니다.
북으로부터 바벨론이 쳐들어왔습니다.
1. 시드기야 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 제사장을 예레미야에게 보냈을 때에, 주께서 그들에게 전할 말씀을 예레미야에게 주셨다.
2. 그 때에 그들이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제발 우리가 멸망하지 않도록 주께 간절히 기도하여 주십시오.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이 우리를 포위하여 공격하고 있습니다. 행여 주께서, 예전에 많은 기적을 베푸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기적을 베풀어 주시면, 느부갓네살이 우리에게서 물러갈 것입니다."(렘21:1,2)
그러면 내가 틀렸다고 고백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당해놓고도 보수 꼴통 짓을 하는 것입니다.
부흥회를 잘만 하면 하나님께서 성을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철야 특별 부흥회를 열면서 예레미야를 주 강사로 불렀던 것입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바벨론아 물러가라.
마귀야 물러가라.
할렐루야!” 예레미야를 불러 강대상에서 그 소리를 외쳐달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제 나라 국방부 장관쯤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들이 부르면 틀림없이 나와서 전쟁하시는 분!
예레미야는 어이없는 요구라고 일축했습니다.
4.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너희는, 지금 성벽을 에워싸고 공격하는 바빌로니아 왕과 갈대아 군대에게 맞서서 싸우려고 무장을 하고 있으나, 내가, 너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전쟁무기를 회수하여, 이 도성 한가운데 모아 놓겠다.
5. 내가 직접 너희를 공격하겠다. 이 분노, 이 노여움, 이 울화를 참을 수가 없어서, 내가 팔을 들고, 나의 손과 강한 팔로 너희를 치고,
6. 사람이나 짐승을 가리지 않고, 이 도성에 사는 모든 것을 칠 것이니, 그들이 무서운 염병에 걸려 몰살할 것이다.(렘21:4-6)
하나님께서는 시드기야 왕이 보낸 스가랴 제사장의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다”는 말을 들으시 울화통을 참지 못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벨론으로 부족하냐 그러면 내가 직접 너희를 공격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간구한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된 것입니다.
종교적 고정관념!
설마 성전이 하나님을 적대하는 강도들의 소굴일 줄이야!
하나님의 성전이 거짓의 중심이 될 줄이야!
그 목사들이.......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그 성을 스스로 지키신다고 믿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그 성을 무너뜨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성전을 무너뜨리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성전 돌덩이를 금으로 덧입히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그 성전은 완전히 무너뜨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변화를 위해서!
*예언
한국 교회에 전해지는 메시지는 이미 그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믿으면 십자가를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진짜로 믿느냐가 물론 문제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생명 사랑이 드러나느냐는 것입니다.
도대체가 예언이란 무엇인가?
밑도 끝도 없이 동쪽으로 가면 재앙이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예언은 무당이 하는 것입니다.
예언이란 미래를 말하는 것이 맞기는 합니다.
매 맞을 짓을 하고 있느냐 그러면 하나님의 매를 맞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미래에 바벨론의 매를 맞았던 것입니다.
이거 매 맞을 짓이네
미래의 재앙을 보장하는 현재를 지적하는 것이 예언입니다.
말씀을 순종하네
미래가 보장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 현재를 지적하는 일이 예언인 것입니다.
현재의 기독교 윤리적 태도가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술 퍼마셔? 마약을 해? 그 사람의 앞날은 깜깜하다는 것입니다.
술 퍼마시지 말아라.
마약하지 말아라.
그것이 예언입니다.
그러면 예레미야를 통해 들은 예언은 무엇인가?
성전이다 성전이다 성전이다 라고 하는 거짓 예언 대신 그들을 향한 예레미야의 예언은 무엇인가?
5. 너희가, 모든 생활과 행실을 참으로 바르게 고치고, 참으로 이웃끼리 서로 정직하게 살면서,
6.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억압하지 않고, 이 곳에서 죄 없는 사람을 살해하지 않고, 다른 신들을 섬겨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으면,
7. 내가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 하도록 준 이 땅, 바로 이 곳에서 너희가 머물러 살도록 하겠다.(렘7:5-7)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정의로운 것입니다.
사회 약자를 돌보는 일입니다.
그들은 성전을 내세우면서 이런 윤리적 책임을 다 회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믿습니다 성전”으로 퉁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이릅니다.
정말로 십자가를 삶에 적용하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리는 길은 적에게 오히려 얻어터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온통 입만 충만한 사람으로 인해서 교회가 이런 불행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내 편이 열 명 죽고 상대를 천 명을 죽여놓은 일이 아닙니다.
그런 일을 저질러 놓고는 복 받았다고 감사 헌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상대를 살리기 위해 내가 죽는 일입니다.
12. 그래서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힘을 떨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힘을 떨칩니다.(고후4:12)
*에스겔
하지만 이 하나님의 뜻을 누가 따를 것인가?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요구는 사람들에게 말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도 소가 뒷걸음치다 쥐를 밟은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조차 그 십자가의 적용은 말도 안 된다고 할 것입니다.
정말 우리 영혼은 아골 골짜기의 말라붙은 뼈다귀들 같습니다.
우리들은 모조리 영적으로 죽고 말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결국 그들은 모조리 이방 나라로 흩어진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다시 하나님의 나라에 모으실 수 있으실까?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그 일이 가능하시다는 것입니다.
5. 나 주 하나님이 이 뼈들에게 말한다. 내가 너희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너희가 다시 살아나게 하겠다.
6. 내가 너희에게 힘줄이 뻗치게 하고, 또 너희에게 살을 입히고, 또 너희를 살갗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너희가 다시 살아나게 하겠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겔37:5,6)
다음 주일이 성령강림 주일입니다.
그 에스겔의 사건이 이 역사 안에 이미 일어났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어버린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셨습니다.
뼈다귀들에게 생명을 부여하셨던 것입니다.
*설교
신학을 공부하면서 경험한 일입니다.
AD69년 로마에 예루살렘이 공격을 당했을 때 일입니다.
이 험한 현실을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래서 마가복음이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이 교수님의 말이 저에게는 정말로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어떻게 시간을 미리 내다보는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식으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69년의 비참한 성전 파괴의 현실을 보고 나서 그 일을 설명하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을 창작했다는 식으로 들렸습니다.
내 귀가 이상했나?
마가가 그 비참한 상황을 예수님의 입을 빌어서 대충 설명하려 했다는 식입니다.
하지만 BC587 년 전 일입니다.
거기에 2026년이 지난 것입니다.
저는 옛적의 예레미야의 말씀을 지금 거창 달내 교회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587+2026=2613
저는 그 2613년 전의 그 예레미야의 예언이 거창의 꼭 나를 두고 말씀하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나를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알고 있었을까?
2613년 전에 예레미야가 꼭 나를 두고 그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아니면 구닥다리 책의 주인공 예레미야를 보면서 제가 이런 설교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결론
성경은 IQ200 짜리 천재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같이 좀 어리숙한 사람이 역사를 찬찬히 보니 하나님의 손이 그대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BC721년에 움직이신 하나님의 손!
이사야라는 사람이 그가 본 대로 하나님의 손을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이사야는 진정성을 외쳤습니다.
입으로 고백하지만 말고 삶으로 그 믿음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BC587년에 움직이신 하나님의 손!
예레미야는 유대인들이 거룩히 보이는 종교 행위로 무덤에 회칠하고 있다고 고발했습니다.
속에 시체가 썩어가면서.......
이 두 사람은 십자가로 사랑을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그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기준에 누가 도달할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생명의 기준 저 밑에 해골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셨고 또 성령님이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으로 회복되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구약은 가장 신뢰할 만한 예수님에 대한 주석이라고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