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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신춘문예 조선일보]
아름다운 눈사람 / 이수빈
선생님이 급하게 교무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신다 나는 두 손을 내민다 선생님이 장갑을 끼워주신다 목장갑 위에 비닐장갑을 끼우고 실핀으로 단단히 고정해주신다 나는 손을 쥐었다 편다 부스럭 소리가 난다 마음 편히 놀아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운동장 위로 얕게 쌓인 눈 새하얗고 둥글어야 해 아이들이 말한다 눈을 아무리 세게 쥐어도 뭉쳐지지 않고 흩어진다 작은 바람에 쉽게 날아간다 흙덩이 같은 눈덩이를 안고 있는 아이들 드러누워 눈을 감고 입을 벌리는 아이들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다룬다 개를 쓰다듬듯 품에 안은 채 몇 번이고 어루만진다 눈덩이가 매끈하고 단단해진다 아주 새하얗고 둥근 모양의 완벽한 눈덩이를 갖는다
눈덩이가 내 품속에 있어서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고 그 세상이 아름다운 것도 같고 서툴지 않은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한데
하고 있던 목도리를 푼다 모자를 벗는다 장갑은 잘 벗겨지지 않는다 내 눈사람은 너무 잘 챙겨입어서 더 이상 눈사람 같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이들은 교실로 돌아가고 없다 밟히고 파헤쳐져 더 이상 하얗지 않은 운동장을 본다
선생님 제 눈사람이 가장 새하얗고 둥글어요 그리고 또 커요 나는 말하고 선생님은 오랫동안 내 눈사람을 바라보신다 어찌할 수 없어서 울고 싶은 듯한 표정으로 선생님이 서 계신다 나는 선생님을 이해할 수 없지만 같이 울상이 된다 이 순간을 지워버리려는 듯이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린다
플라톤 미학과 현대 서양철학을 통한 분석
이 시는 감각적 세계에서 완전함(눈사람)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본질이 왜곡되고 이상적 형태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반영한다. 화자의 좌절은 감각적 세계의 한계와 이를 초월하지 못하는 인간 존재의 조건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눈이 다시 내리는 장면은 인간 존재의 노력과 대립적으로 묘사되며 하늘만이 새하얄고 둥근 눈사람을 만들 수 있음을 암시한다.
1. 플라톤 미학 -영원불변 이데아만이 미 그 자체
세계는 1)영원불변하고 완전무결한 이데아와 2)변하고 일시적인 감각적인 현상계로 나뉜다.완벽한 아름다움 자체는 이데아의 세계에서나 가능하다.
플라톤이 보기에 현실에서 사과는 이렇듯 항상 불완전하다. 오히려 완전무결한 사과를 나는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완벽한 사과를 머릿속에 떠올린 나라는 인간은 불완전하다. 불완전한 것이 완전한 것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리가 없다.
플라톤이 보기에 우리가 오감으로 느끼는 감각되는 개별적인 것들은 개성, 특수성에 오염되어있다. 특수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것,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추구해야 진리에 도달할 수 가능성이 높아진다.
2. 현대 서양철학-인간 인식한계로 진리 도달 불가
흄과 칸트의 18세기 서양철학이 지적하는 것은 인간 인식의 지평선 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직접 문제가 되는 것은 과학은 인간의 '감각적 경험'에 기반한다는 점이다. 완전한 진리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이미 확정 지어져 있다. 그런데도 절대적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인간의 망상스러운 욕심일 수 있다.
불확실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주변 세계의 이해를 구하려고 노력할 때 강렬한 생리적 기쁨을 느낀다
20세기 서양철학이 위와 이어서 지적한 문제는, 우리가 인간적인 편견에 오염된 전제들을 기반으로 연구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서양철학이 이 과정에서 거의 확신을 얻은 것은, 편견을 우리 스스로 깨닫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오로지 대척하는 반대 이항을 '마주칠 때'만 비로서 여태까지 당연하다 여겼던 확고한 전제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 미학을 통한 분석
<이데아가 되는 법-진짜 물자체가 되는 것>
진짜 눈사람을 어느 시인도 만들어본 적이 없다.이 시가 진짜 눈사람을 만들었다. 이데아 즉 하느님이 진짜 눈사람을 만들어버렸다. 소설적 구성도 좋고 선생님과 어린 화자의 대비도 좋고, 인간과 하늘의 대비도 잘 되어있다.
1연 - 완벽한 눈사람을 만들기 위한 준비
"선생님이 급하게 교무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신다 나는 두 손을 내민다 선생님이 장갑을 끼워주신다 목장갑 위에 비닐장갑을 끼우고 실핀으로 단단히 고정해주신다 나는 손을 쥐었다 편다 부스럭 소리가 난다 마음 편히 놀아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장갑을 끼워주고 단단히 고정하는 과정은 감각적 세계에서의 보완적 노력을 상징한다.
1. "선생님이 급하게 교무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신다"
플라톤 미학에서 "급하게 돌아다닌다"는 것은 감각적이고 불완전한 현실 세계를 암시합니다. 선생님의 행동은 혼란스럽고 체계적이지 않은, 즉 이데아 세계의 질서와는 대조적입니다. 이는 감각적 현실의 불완전함과 혼란을 상징합니다.
2. "나는 두 손을 내민다 선생님이 장갑을 끼워주신다"
화자가 두 손을 내밀고 장갑을 끼우는 행위는, 플라톤적 관점에서 '현실 세계(감각계)'와 이데아 세계 사이의 간극을 상징합니다. 장갑은 현실의 오염을 차단하려는 도구로, 완벽한 이데아적 상태를 모방하려는 노력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갑을 통해 느끼는 감각은 왜곡되므로, 진정한 이데아적 진리에 도달하기 어려운 현실을 암시합니다.손가락들이.개별이라면 장갑을 끼워 일반,보편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3. "목장갑 위에 비닐장갑을 끼우고 실핀으로 단단히 고정해주신다"
이중 장갑과 고정은 완벽함에 대한 강박을 나타냅니다. 플라톤 미학에서 이데아는 영원불변하고 완전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이 구절은 화자나 선생님이 현실의 불완전함을 보완하려는 과도한 시도를 상징하며, 이는 진정한 이데아적 완벽함에 접근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결국 감각적이고 제한적인 현실로 인해 좌절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4. "나는 손을 쥐었다 편다 부스럭 소리가 난다"
장갑을 낀 손의 움직임에서 나는 부스럭 소리는 감각적 경험의 왜곡을 상징합니다. 플라톤은 감각 세계에서 얻는 지식이 불완전하다고 보았으며, 이 장면은 인간이 감각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왜곡과 한계를 보여줍니다.
5. "마음 편히 놀아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선생님의 말은 이데아적 세계로 안내하려는 지혜자의 역할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데아적 완벽함에 도달하기 위한 보호(장갑)와 제한이 화자를 억압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플라톤이 주장한 교육자의 역할과 비슷하지만, 현실의 제약으로 인해 완전한 이데아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점을 암시합니다.그러므로 선생님이 "새하얗고 둥근 눈사람을 만들어"라고 말하지 않고 "마음껏 편히 놀아"라고 한 것이다.어차피 이 세계에서는 노력 자체가 중요하고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2연-완벽한 눈사람을 만들었다는 주관적 믿음
"운동장 위로 얕게 쌓인 눈 새하얗고 둥글어야 해 아이들이 말한다 눈을 아무리 세게 쥐어도 뭉쳐지지 않고 흩어진다 작은 바람에 쉽게 날아간다 흙덩이 같은 눈덩이를 안고 있는 아이들 드러누워 눈을 감고 입을 벌리는 아이들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다룬다 개를 쓰다듬듯 품에 안은 채 몇 번이고 어루만진다 눈덩이가 매끈하고 단단해진다 아주 새하얗고 둥근 모양의 완벽한 눈덩이를 갖는다"
1. "운동장 위로 얕게 쌓인 눈 새하얗고 둥글어야 해 아이들이 말한다"
아이들이 요구하는 '새하얗고 둥근 눈덩이'는 플라톤 미학에서 이데아적 '완벽한 형태'를 상징합니다. 그들은 감각 세계에서 눈을 통해 완벽한 형태를 재현하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항상 그 요구가 충족되지 않는 불완전성을 겪습니다. 이는 감각적 세계의 결핍을 드러냅니다.
2. "눈을 아무리 세게 쥐어도 뭉쳐지지 않고 흩어진다"
감각 세계에서 완전한 형태를 이루려는 노력은 실패로 끝납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감각적 실체는 이데아적 완전함에 접근하려는 과정에서 항상 불완전함을 드러냅니다. 눈은 본래 흩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완전한 '이데아적 눈덩이'를 만들 수 없습니다.
3. "작은 바람에 쉽게 날아간다 흙덩이 같은 눈덩이를 안고 있는 아이들 드러누워 눈을 감고 입을 벌리는 아이들"
눈덩이는 바람에 흩어지는 불안정한 속성을 가집니다. 이는 감각적 세계의 불확실성과 일시성을 나타냅니다. 아이들이 흙덩이 같은 눈덩이를 안고 드러누워 눈을 감고 입을 벌리는 행동은, 감각적 세계에 대한 순응이나 수동적 태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는 진정한 이데아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를 암시합니다.
4.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다룬다 개를 쓰다듬듯 품에 안은 채 몇 번이고 어루만진다"
화자는 눈덩이를 조심스럽게 다루며 완벽한 형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과정은 이데아적 완전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열망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플라톤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형태는 감각 세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불완전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5. "눈덩이가 매끈하고 단단해진다 아주 새하얗고 둥근 모양의 완벽한 눈덩이를 갖는다"
화자가 '완벽한 눈덩이'를 만들었다고 느끼는 순간, 이는 주관적인 경험에 지나지 않습니다. 플라톤 미학에서는 감각적 세계에서 만들어진 '완벽함'은 이데아적 완전함의 모방일 뿐, 본질적인 완전함에는 도달할 수 없습니다. 화자가 만든 눈덩이는 진정한 이데아적 눈덩이가 아니라, 감각적 세계에서의 '불완전한 이상'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개를 쓰다듬 듯 품에 안은 채"라는 표현은 주관적 관념임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3연-무의식적으로는 완벽하지 않음을 인식
"눈덩이가 내 품속에 있어서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고 그 세상이 아름다운 것도 같고 서툴지 않은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한데"
1. "눈덩이가 내 품속에 있어서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고"
화자가 눈덩이를 품에 안으며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고 느끼는 것은 감각적 세계에서 완전함을 경험하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플라톤에 따르면, 이 감각적 세계에서의 완전함은 주관적인 환영일 뿐, 진정한 이데아적 완전함에는 도달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2. "그 세상이 아름다운 것도 같고"
화자가 느끼는 아름다움은 눈덩이의 외적 속성과 그 완성된 형태에 기인합니다. 그러나 플라톤 미학에서는 감각적 세계에서 경험하는 아름다움은 이데아적 아름다움의 '모방'에 불과합니다. 화자가 느끼는 아름다움은 본질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감각적 세계의 불완전한 반영입니다.
3. "서툴지 않은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한데"
눈덩이를 통해 느껴지는 완벽함과 아름다움은 화자에게 조화롭고 매끄러운 감정을 전달합니다. 이는 플라톤의 관점에서, 인간이 이데아적 완전함의 흔적을 감각적으로 경험할 때 느끼는 일시적인 조화와 안정감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이 역시 감각적 경험에 불과하며, 진정한 이데아적 아름다움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것 같고, ~것도 같고라는 자신 없는 표현이 연달아 나오는 것으로 보아 주관적 환영임을 암시합니다.
4연-완벽한 눈사람을 만들기 위한 추가조치가 오히려 더 멀어지게 함
"하고 있던 목도리를 푼다 모자를 벗는다 장갑은 잘 벗겨지지 않는다 내 눈사람은 너무 잘 챙겨입어서 더 이상 눈사람 같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이들은 교실로 돌아가고 없다 밟히고 파헤쳐져 더 이상 하얗지 않은 운동장을 본다"
1. "하고 있던 목도리를 푼다 모자를 벗는다 장갑은 잘 벗겨지지 않는다"
눈사람을 꾸미기 위해 추가된 요소들(목도리, 모자, 장갑)은 감각적 세계에서 화자가 완전함을 추구하며 가한 개별적인 장식들입니다. 플라톤의 관점에서 이는 이데아적 완전함과는 무관한 '겉치레'로, 오히려 본래의 눈사람이라는 순수한 본질을 가리고 왜곡합니다.
2. "내 눈사람은 너무 잘 챙겨입어서 더 이상 눈사람 같지 않다"
감각적 세계에서 완전함을 이루려는 시도가 오히려 눈사람이라는 본래의 본질을 손상시켰음을 화자가 자각하는 대목입니다. 플라톤의 미학에 따르면, 이러한 외적 치장은 본질적 아름다움과의 거리만 넓힐 뿐입니다. 결국 눈사람은 본래의 순수한 형태를 잃고, 진정한 이데아적 완전함에서 멀어집니다.
3. "주위를 둘러보니 아이들은 교실로 돌아가고 없다"
화자는 자신이 추구했던 감각적 완전함이 일시적이며, 다른 이들에게도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이는 플라톤의 미학에서 감각적 세계의 유한성과 무상함을 보여주는 예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4. "밟히고 파헤쳐져 더 이상 하얗지 않은 운동장을 본다"
눈사람이 있었던 운동장은 이제 순수성을 잃고 손상되었습니다. 이는 감각적 세계가 가진 변질 가능성과 한계를 상징하며, 완전함을 이루려는 인간의 노력이 결국 불완전한 결과로 귀결된다는 플라톤적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5연- 완벽한 눈사람 만들기 실패와 하늘만이 완벽한 눈사람을 만들 수 있음을 암시
"선생님 제 눈사람이 가장 새하얗고 둥글어요 그리고 또 커요 나는 말하고 선생님은 오랫동안 내 눈사람을 바라보신다 어찌할 수 없어서 울고 싶은 듯한 표정으로 선생님이 서 계신다 나는 선생님을 이해할 수 없지만 같이 울상이 된다 이 순간을 지워버리려는 듯이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린다"
1. "선생님 제 눈사람이 가장 새하얗고 둥글어요 그리고 또 커요 나는 말하고"
화자는 자신이 만든 눈사람이 감각적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형태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플라톤의 미학에 따르면, 이 완벽함은 감각적 수준에서만 머무르며, 진정한 아름다움(이데아)에는 도달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화자가 자부심을 느끼는 이 순간은 감각적 세계의 일시적인 만족을 나타냅니다.
2. "선생님은 오랫동안 내 눈사람을 바라보신다 어찌할 수 없어서 울고 싶은 듯한 표정으로 선생님이 서 계신다"
선생님은 화자가 감각적 세계에서 완벽함을 찾으려 했지만, 진정한 이데아적 완전함에는 도달하지 못했음을 인식합니다. 플라톤의 미학에서, 이는 감각적 세계의 한계를 직시한 철학적 슬픔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느끼는 울고 싶은 감정은 감각적 완전함의 무상함을 깨달은 순간을 상징합니다.
3. "나는 선생님을 이해할 수 없지만 같이 울상이 된다"
화자는 선생님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감각적 세계에서의 완전함이 불완전함임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합니다. 이는 플라톤적 관점에서 인간이 감각적 세계의 덧없음을 깨닫는 데 시간이 필요함을 나타냅니다. 화자는 이데아적 진리를 아직 완전히 알지 못하지만, 감각적 세계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 상태입니다.
4. "이 순간을 지워버리려는 듯이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린다"
1)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장면은 감각적 세계의 덧없음을 다시 새롭게 덮어버리는, 자연의 순환을 상징합니다. 플라톤의 미학에서는 감각적 세계는 항상 변하고 흩어지며, 이러한 반복적인 자연의 흐름은 인간이 진정한 이데아적 완전함에 도달하기 위해 넘어야 할 관문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2) 또는 하늘을 신,이데아로 해석하여 개별이 입힌 모자와 못도리를 덮으며 이데아 혹은 신, 하늘만이 완벽하게 새하얗고 둥글고 눈사람을 만들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 해석해 볼 수도 있습니다.
추가자료
https://naver.me/xeAuBBjN
플라톤은 형이상학적 존재론을 바탕으로 미를 정의하며, 예술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견지한다. 플라톤은 이데아(idea)의 세계와 감각적인 현상들의 세계를 엄격하게 구분한다. 예술은 일상적인 감각적 현실 세계의 대상들을 모방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은 이데아의 모방인 현실 세계를 다시 모방하는 것이다. 결국 예술은 참된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이데아에 대한 모방의 모방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결코 참된 인식을 가져다 줄 수 없는 가상에 불과하다.
플라톤은 미 자체는 이데아에 속하는 것이며 감각적 경험의 세계를 초월한 미의 이데아는 어떤 것에도 구현되어 있지 않다고 믿는다.
이데아:영원불변하여 완전무결한 세계
-감각적 세계: 우리가 오감으로 느끼는 모든 것들
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이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불완전하며, 일시적입니다
-이데아 세계: 변하지 않고, 영원히 완전한 본질들이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이 세계는 감각으로 직접 경험할 수 없지만, 이성을 통해 인식할 수 있다고 플라톤은 주장했습니다
현대적 의미의 미학이라고 하는 명칭은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바움 가르텐에 의해 처음 쓰여졌지만 사실 철학사적으로 고찰할 때 그 기원은 플라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플라톤은 구체적으로 '미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미학에 관한 체계적인 이론을 전개하
진 않았지만 <향연>이나 <파이드로스>, <위대한 히파아스>, <소피스트>, <폴리테이아> 등의 글에서 미와 예술에 관하여 단편적으로 그의 의견을 서술하였다. 그의 글들에 파편적으로 나타나 있는 미에 관한 생각들을 보면 플라톤은 미를 궁극적으로 이데아의 세계와 연결되는 개념으로 보았다. 다시 말하면 플라톤은 그의 이데아론에 입각하여 미를 이해하였는데, 그에게서 최고의 미는 감각적 세계를 초월해 있는 궁극적이고 객관적 실재인 이데아 자체였다
이에 반해 감각적, 현상적 세계에 있는 것은 미의 이데아의 반영일 때 비로소 아름다운 것이지 그 자체로서는 아름다운 것일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플라톤은 우리가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사물이나 육체의 미는 미의 가장 저급한 형태로 보았다
미의 본질은 그에게서 정신으로 하여금 감각적 찌꺼기의 오염으로부터 스스로를 정화시키고 현상적 세계의 속박을 탈피하여 영원한 존재와의 완전한 조화, 근본적 통일을 달성하도록 하는 작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플라톤은 사물이 본질적인 이데아를 실천할 때 미가 드러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하면 사물이 스스로의 본질적 기능을 충분히 드러내고, 사물의 목적에 맞는 적절한 곳에 놓여있을 때 이것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보았다. 미에 대한 이러한 규정은 따라서 단순한 균형과
조화의 내적, 외적 감각과만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의 개념과도 결합되어 있고, 또한 실천적 성격과 유용성 및 합목적성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톤에게서 미는 물리적인 대상뿐만 아니라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대상을 포함하며, 감각기관을 즐겁게 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을 안정시켜주는 것도 포함한다. 그렇게 보았을 때, 그에게서 미'는 '진'과 '선'과도 일치하는 개념이 된다.
첫댓글 존경하는 스승 전문수 교수님,
경남 문예대학 2기 강선덕 인사드립니다.
제자들의 학문적, 문학적 향상을 위해 펼쳐주시는 교수님의 뜨거운 열정에 깊이 감명 받고 이렇게 무례한 댓글로 인사 드리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훌륭하신 교수님의 제자로서 부끄럽게도 지금껏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막연하게 무언가를 찾아보겠다고 무던히 노력을 하곤 있습니다 만
워낙 굼뜨고 둔감한지라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5년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솜다리 문학]의 카페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깊은 가르침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아닌가 생각하며 이번 당선 작품들의 소개와 해설, 찬찬히 읽고 새겨볼까 합니다.
교수님의 새해 안녕과 건필을 빌며 오늘은 이만 인사 올립니다. -강선덕배상
이 글은 전문수 교수님의 강의내용을 기초로 작성한 것이 맞습니다만 교수님은 여기 카페에 안 계십니다.
https://band.us/band/91956868/post/101 교수님과 인연이 있으시다면 이 밴드로 가셔서 밴드 초청 요청을 해보시죠
오신 김에 솜다리문예대학에서 전문수 교수님 강의도 들으시고 솜다리문학회도 가입하시길 권합니다.원하신다면 제가 다리를 놓아드리겠습니다.https://m.cafe.daum.net/somdaripoem/tB1J/23?svc=cafeapp
감사합니다. 시냇물님!
전문수 교수님의 논조와 흡사한 시의 분석에 제가 착각을 했던거네요. 다시 보니 신춘문예 당선작들의 분석 모두가 시냇물님의 탁견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문수 교수님의 학문과 문학적 식견을 존중하는 만큼 시냇물님의 논조에 삼가 존경의 심사를 밝힙니다. 님의 게시 글 읽고 공부하는 카페의 회원이길 원합니다. "세상은 넓고 상수는 많다" 실감하는 한사람, 좋은 인연이길 염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