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216) 유비의 결심 (하편)
유비가 혼례를 위해 강동으로 출발하기 전 날, 유비는 관우, 장비와 함께 군사들의 훈련상황을 살펴보고 장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유비가 두 사람에게 말한다.
"익덕, 운장, 내가 내일 강동으로 떠나더라도 힘들게 모은 병사들이니 잘 훈련시키도록 하게."
그러자 관우가 말한다.
"형님,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꼭 가셔야 하겠습니까?"
"운장, 날 걱정하는 것은 알지만 다른 방법이 없네. 지금까지 우리는 거저 얻은 것이 없네, 모두 우리 힘으로 쟁취한 것들이야. 형주도 그렇게 된 것이지. 이번만은 내 손에 들어온 것을 지난번 처럼 놓치지 않을 걸세."
"형님 결심이 확고하시니 더 이상 만류하지 않겠습니다. 허나, 한 가지 걸리는 것이..."
관우는 이렇게 말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유비가 발걸음을 멈추고 관우를 돌아 보며 말한다.
"우리 사이에 뭘 그리 망설이는가? 무슨 할 말인지 기탄없이 말해 보게."
"제갈양에 관해서입니다."
관우의 이 말을 듣자, 유비는 아연 긴장감을 갖고 되묻는다.
"말하게."
관우는 잠시 말문을 멈췄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그는 형님을 섬기기 전, 와룡이라 불렸습니다. 용은 제왕을 상징하지요. 지략이 뛰어나, 우린 그의 상대가 못 됩니다. 만약 형님께서 형양의 병권까지 그에게 넘긴고 떠나신다면, 저나 장비도 그의 명에 따라야 합니다. 혹시라도 그가 이 기회를 틈타서 주인 행세를 하면 어찌합니까? "
"맞는 말입니다. 공명은 잔 꾀에 능한 사람입니다. 조운, 황충, 위연은 공명의 말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지경입니다. 특히, 조운은 최근에 공명 선생이 중매를 해서 장가를 들지 않았습니까? 그 때문에 공명을 무슨 신이라도 된 듯이 떠받들고 있지요. 형님보다 공명을 더 따르는 눈치더라구요. "
장비가 한 마디 덛붙이고 나선다.
유비가 그 말을 듣고 아무런 말도 아니하자, 관우가 이어서 말한다.
"형님께서 사리에 밝으시니, 더는 말씀드리지 않겠으나, 가시면 언제 다시 올아오실 지 모릅니다. 시간이 길어지면 공명을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날 테니, 형주의 주인이 바뀔 수도 있다는 염려가 듭니다."
관우의 충격적인 말을 듣고, 유비가 놀라는 얼굴로 관우와 장비를 번갈아 쳐다본다.
그러다가 장비의 허리에서 그가 차고 있는 호신용 단도를 불쑥 뽑아들었다.
"어?"
"어, 어!"
"형님!"
두 사람은 난데 없는 유비의 행동에 놀라,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장비는 물론, 관우도 깜짝 놀라는 와중에, 유비는 두 사람으로 부터 서너 발자욱 앞으로 걸어가 돌아서며 단도를 빼어들고 말한다.
"잘 듣게, 앞으로 자네들이 지금과 같이 공명에 대해 의심스런 발언을 한다면, 나는 서슴치 않고, 내 귀를 잘라 버리겠네!"
유비는 이렇게 말하면서 단도를 눈 앞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관우와 장비가 유비에게 다가서며 소리쳤다.
"형님!"
"형님!"
"가만있게!"
유비는 두 사람의 접근을 제지하였다.
그리고 순간, 멈춰 선 두 아우를 향해 통탄어린 어조로 입을 연다.
"자네들이 어찌 공명 선생을 그리 말할 수가 있는가! 생각해 보게, 선생이 없었을 때 우리가 어떤 꼴이었는지.. 변방의 신야에서 이천도 안 되는 병사를 거느리고 있었잖은가! 허나 지금은 개인당 일만의 정예병을 거느리고 있어, 그게 다 누구 덕분인가! 여기까지만 말하겠네. 우리가 비록 형제이긴 하나, 공적으로는 군신 관계이지. 형양의 모든 권한을 공명에게 넘긴 이상, 자네들은 기꺼이 따라야 하네! 명을 어길 시에는, 강동에서도, 여기로 돌아와서도, 이 칼로 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야!"
유비는 단도를 더 높이 들어 보였다.
"엇!"
"으!"
유비의 말을 듣던 관우와 장비는 마지막 순간에 유비의 결심어린 말을 듣자, 그의 앞에 꿇어 앉았다.
"형님!"
"형님!"
"알겠습니다. 따르겠습니다."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관우와 장비는 유비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빔과 동시에 복종을 맹세하였다.
유비가 단도를 거두며 꿇어 앉은 두 아우 앞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두 아우의 팔을 각각 잡고 일으키며,
"일어들 나게. 그리고 익덕, 이 칼은 내가 가져 가겠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관우와 장비는 거의 동시에 유비를 향해 복종과 긍정의 소리를 내뱉었다.
"형님!..."
"형님!..."
...
얼마 뒤, 공명은 운수 점(点) 을 치고 있었는데 유비가 들어서며 공명을 불렀다.
"선생!"
"아, 오십니까?"
공명은 유비가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였다.
그러나 유비는 얼른 만류하면서,
"그냥 앉아 계시오. 내가 방해를 했구려..."
하고, 말하면서 공명의 앞에 마주 앉았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헌데 무슨 일로?..."
"별 일은 아니고, 내일 강동으로 떠나니 부탁드릴 일이 있어 왔소. 점 쾌를 뽑았소?"
"그렇습니다. 모두 세 개를 뽑았습니다. "
"그럼 세게 모두 흉괘(凶卦)요?"
그러나 공명은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아니하고, 심사숙고한 어조로 이렇게 묻는다.
"주공,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강동에 가신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으실 겁니까?"
"공명 선생,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소. 탁군에서 의병을 일으킨 지 벌써 이십년이 지났지만, 나는 이룬 것이 없소. 이미 쉰을 넘긴 나에게 하늘이 얼마나 더 시간을 줄 지 알 수가 없소. 이렇게 어렵게 얻은 형주를 목숨걸고 지키지 않으면, 한나라의 부흥에 대한 희망이 한 낮 꿈으로 끝나게 될 거요."
"주공,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말로는 주공이 강동에 가시는 것을 반대했지만, 속으로는 가시는 것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어찌 솔직히 말하지 않았소?"
"가시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주공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이었고, 가시길 바라는 것은 대국을 생각해섭니다. 용서하십시오. 저도 난처합니다. "
"음...다 이해하오. "
"주공, 저에게 형주의 모든 일을 맡기셨는데, 제가 능력이 부족하여 주공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
"선생이 뭘 걱정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내 아우들 때문일거요. 아우들과 도원결의를 맺은 후, 오랜 세월을 동거동락하며 지냈소. 선생께서 오신 후, 아우들은 선생의 재능에 탄복하기는 하나, 나와는 감정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소. 그래서 내가 떠나면, 내 이름으로 강동에서 어떤 명령이 오든, 따르지 말라 한거요. 허나, 내가 정말 위험에 처하게 되면, 아우들은 선생의 명에 따르지 않고 어리석은 짓을 할 지도 모르오. "
"그것까지 생각하셨군요. 사실 저도 그 점이 염려 됩니다. "
"걱정하지 마시오."
유비는 지필묵을 들어 한장의 글을 써 내려 갔다.
그리고 그것을 공명에게 건네니, 공명은 그 내용을 보고 크게 놀란다.
"주공, 이건 ..."
"그렇소, 이건 밀령장이오. 내가 떠나고 난 뒤에 혹시라도 내 형제가 선생의 명령에 따르지 않거든 이 밀령장을 조운에게 주도록 하시오. 반드시, 그대로 이행하도록 하시오."
"아! 주공, 이건 안 됩니다. 그동안 주공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 사람들인데, 죄를 지었다고 해서, 이리 할 수는 없습니다. "
공명은 밀령의 내용을 읽어 보고 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하였다.
그러자 유비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공명 앞으로 다가선다.
"선생, 난 그동안 좌절도 많이 겪었소. 선생을 만나고 나서 지금과 같은 성과를 거둔 거요. 난 잘 알고 있소. 선생이 있어야만, 한나라 부흥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걸 말이오. 이번에 내가 돌아오지 못하거든, 선생이 형주의 주인이 되어주시오. "
"주공!"
"선생, 내 두 명의 아우들은 필요하면 쓰고, 필요 없으면 버리시오. 절대 망설일 것 없소. 한 나라의 부흥이 달린 일이 아니오? 사사로운 감정에 매달릴 필요 없소. "
"주공!"
공명이 유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를 이리도 신임해 주시다니... 허나, 아무 걱정 마시고 가십시오. 저는 인간의 생사는 점 칠 수있어도, 하늘의 뜻 까지 점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주공께서는 무사히 돌아오실 겁니다. 허나, 만약 하늘이 무심하여 변고가 생기면, 관 장군, 장 장군과, 조운, 황충 장군과 더불어 소주공을 잘 모시고 주공의 뜻을 잇겠습니다."
유비가 공명을 잡아 일으키며 대답한다.
"선생, 전에는 선생의 뛰어난 재능만 알았는데, 오늘 비로서 선생의 깊은 충정을 알게 되었소. 됐소! 이젠 정말 안심이 되오. 마음 편히 떠날 수 있겠소. "
"강동으로 가는 길에 위험이 많을 터이니, 조 장군을 데리고 가십시오. 무예가 출중하고 용맹하며, 믿음직 하니, 조 장군이 주공 곁에 있으면 저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밀령은 제게는 필요 없습니다."
공명은 이렇게 말한 뒤에, 등잔불에 밀령장을 태우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비가 공명에게 말한다.
"선생, 한 곡 연주해 주시겠소? 선생의 가야금 소리를 들은 지가 오래 됐군요."
"그러지요... 적벽 대전이 끝난 뒤로 연주한 적이 없었는데, 주공을 배웅해 드리는 의미로 한 곡 연주해 드리겠습니다."
공명은 이렇게 말하면서 가야금 앞으로 가서 현을 잠시 고르더니, 이윽고 손가락으로 맑고 청아한 음을 연실 튕겨내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