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어둠의 산하
오늘은 조정래 님의 <아리랑> 7권을 이야기해줄게.
7권부터 9권까지는 제3부인데,
3부의 제목은 <어둠의 산하>란다.
<아리랑>을 읽을 때마다 지은이 조정래 님이 대단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12권짜리 대하 소설을 쓴다는 것이 엄두도 나지 않을 것 같은데,
이야기의 흐름과 각 등장인물의 성격의 일관성을 놓치지 않고 전개되는 것을 보니
소설 속 세계를 만들어낸 신(神)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
소설 속 주인공의 운명은 지은이 조정래 님에게 달려 있으니 말이야.
뿐만 아니라 소설 곳곳에 들어 있는 역사 상식도
이야기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 있어서 참 좋았단다.
소설을 읽다 보면 역사 상식이 저절로...
기억력이 좋다면 오래 간직할 텐데, 그것이 조금 아쉽구나.
자, 그런 아리랑 7권의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
세키야의 첩이었던 보름이는 세키야의 아이를 낳았지만 세키야에게 버림을 받고
떡 장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단다.
그런데 우연히 외눈박이 백남일을 만나게 되었는데,
백남일은 보름이가 수국이의 언니인 것을 알고
홧김에 폭력을 휘둘렀단다.
이 소식을 들은 서무룡이 백남일 고소했단다.
서무룡이 깡패이긴 하지만 그래서 보름이를 대하는 마음은 진정인 것 같았고,
백남일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백남일이 보름이를 구타했으니 가만 있을 수 없었지.
서무룡은 백남일을 고소하였고, 경찰의 뒷줄이 있는 서무룡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서무룡의 뜻에 따라야 했단다.
그래서 백남일은 보름이의 치료비뿐만 아니라,
자신이 운영하는 정미소에 대한 월세를 서무룡에게 내야 했단다.
1. 점점 상황이 안 좋아지지만
송수익의 장남 송중원은 3.1운동 후 감옥에 갔다가
2년만에 출옥을 했단다.
장인이자 아버지 송수익의 친구 신세호는 중원에게 일본 유학을 제안했어.
중원은 일본에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사귄 친구 허탁과 함께 조선인 노동자들을 위해 힘썼단다.
중원이 동경에 머무르고 있을 때
그 유명한 동경 대지진이 발생했던다. 1923년 9월 1일이었어.
송중원과 허탁은 공부도 했지만
한편으로 과자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어.
과자공장도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고
그들은 피해 복구를 도와주기 위해 공장에 갔단다.
그곳에서 신문 호외를 보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그들을 당혹스럽게 했단다.
신문에 적힌 내용은 지진이 발생하여 혼란한 틈을 타서
불령선인(조선인)들이 동경 시내에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단다.
일본은 자경단을 조직하여 조선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였단다.
이 때 죽은 사람이 6000여 명이라고 했어.
송중원과 허탁도 일단 몸을 숨겨야 했는데,
다행히 그들을 좋게 본 일본인 과자공장 사장이 그의 집에 숨겨 주어 위험을 면할 수 있었단다.
...
자, 이번에는 만주 북간도의 상황을 이야기해줄게.
일본의 밀정인 양치성은 북간도에서 결국 자신의 뜻대로 수국과 살림을 차렸단다.
수국은 어쩔 수 없이 양치성과 함께 살고 있지만,
양치성에게 마음을 두지 못하고, 어디선가 고생하고 있는 동생 대근만 생각했단다.
그래서 양치성에게 동생이 있고 지인들이 살고 있는 서간도로 이사를 가자고 했지만,
양치성은 단칼에 안 된다고 했단다.
그런데 장사꾼인줄만 알았던 양치성이 밀정이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어.
수국은 두려워하면서 이번이 어머니와 동료들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
몇 달 동안 준비를 했고 만취한 양치성을 찌르고
서간도로 도망을 갔단다.
수국이 당황하여 칼을 한번밖에 안 찌르고, 양치성의 죽음을 확인하지 않고 도망을 간 점으로 보아,
양치성이 죽지 않았을 확률이 높을 것 같구나.
서간도에 도착한 수국은 지삼출과 필녀를 만나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그들도 알고 지내던 양치성이 밀정이었다는 것을 알려주었어.
수국이 서간도에 도착하기 열흘 전 동생 대근은 의열단에 가입하기 위해
북경으로 떠나서 동생은 만나지 못했단다.
당시 만주는 경신참변 이루 독립운동이 와해된 상태여서
대근은 의열단에 가입하기로 마음 먹은 거란다.
대근이 의열단에 가기 전에 송수익이 조언을 해주었는데,
당시 만주의 독립군들의 상황을 잘 설명하는 것 같아서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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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그래, 자네의 판단이 정곡을 찌르고 있네. 여기 서간도가 북간도보다 다소 덜할지는 모르나 여기 동포들의 동향도 대동소이하네. 경신년 참변 때 이곳 서간도에서도 학살이 자행됐으니까 그런 생지옥을 겪은 동포들이 그리 서간도에서도 학살이 자행됐으니까 그런 생지옥을 겪은 동포들이 그리 생각하게 된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일세. 그런데 독립군들이 이동을 단행한 것은 무고한 동포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더욱 효과적인 전쟁을 수행하려는 작전계획으로, 이는 어느 나라 어느 군대에서나 취하는 군사행동이지. 그 작전에 왜병들은 당당한 작전으로 맞서지 않고 한다는 짓이 양민들을 대량학살한 것이네. 그건 세계 어느 나라 군대에서도 볼 수 없는 비열함이고 잔혹함일세. 그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이 있네. 그게 무언고 하니, 동포들이 품고 있는 그런 생각이 바로 왜놈들이 대량학살을 자행한 목적이고 노렸던 바란 사실이네. 우리 동포들을 낙담하게 만들고, 공포에 떨게 하고, 또한 독립군을 불신하게 하고, 협조를 못하게 만드는 술수, 그게 바로 왜놈들이 조작해 내는 이간책동술이네. 그러니까 지금 독립군들이 해야 할 일은 무장을 강화하기 위해 동포들에게 무작정 협조를 구하는 것이 아니고 왜놈들의 그런 이간책동을 바르게 알리고 이해시켜 가며 민심을 수습하는 것이 급선무일세. 동포들이 곧 조선이고, 동포들이 없고서는 그 어떤 독립투쟁 단체들도 존속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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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청산리 전투에서 승리했던 독립군들은
일제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연해주로 이동했어.
하지만 연해주에서는 자유시 참변이라는 사건으로
많은 독립군들이 죽고 말았단다.
자유시 참변을 간단히 이야기하면
조선공산당의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의 갈등이 있었는데,
이르쿠츠파가 적군의 힘을 이용하여
조선공산당 상해와 다른 독립군을 공격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 사건이었단다.
같은 민족으로 한 힘으로 일본에 저항해야 시기에
상당히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단다.
이 일 이후 남아 있는 독립군들은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어 만주로 돌아왔단다.
송중원의 친구로 함께 3.1운동에 참여했던 이중에 이광민이라는 사람이 있어.
이광민은 3.1운동 이후 만주로 와서 홍범도 부대에 참가해서 독립운동을 함께 했단다.
홍범도 장군이 나이가 드신 이후 독립운동 일선에 물러난 이후
이광민은 연해주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했단다.
빨치산들은 일본을 상대로 기습 작전을 벌여 치고 빠지는 전략으로 썼어.
이런 계속된 공격으로 일본군은 연해주와 시베리아에 철수를 하게 되었단다.(1922.10)
연해주에서 활약하던 빨치산 독립군들의 큰 성과였어.
이광민은 연해주에 머무르면서
윤철훈을 만나게 되어 함께 공산주의 사상을 공부하면서
향후를 도모하기로 했단다.
그리고 윤철훈의 여동생 윤선숙과 사랑을 하게 되지만,
이광민과 윤철훈은 독립운동을 위해 곧 떠나기로 했단다.
이광민와 윤선숙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확인하고 헤어져야 했어.
사랑을 해야 할 수많은 젊은이들이
독립운동에 투신했기에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맥이 오랫동안 끊기지 않고 이어져서
결국 해방까지 이어지는데 큰 힘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단다..
..
2. 국내 상황들
공허 스님은 국내에서 활동을 하던 중
기차 안에서 순사인 장칠문과 마주치게 되었고,
장칠문은 공허 스님을 알아보고 바로 체포했으나
장칠문이 방심하는 사이 공허 스님은 장칠문을 공격하고 도망을 갔단다.
여기저기 도망 다니다가 홍씨 집에 머무르게 되었단다.
홍씨는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지만,
공허 스님이 파계하면서 알게 된 여자란다.
장칠문은 도망간 공허 스님을 찾으러 돌아다녔고,
공허 스님과 친분이 있는 송중원의 집에 찾아왔어.
고향에 돌아와 있던 송중원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서
다짜고짜 유치장에 집어 넣었단다.
...
농장조합의 회장이자, 오쿠라 농장의 지배인인 요시다는
간척사업을 통해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고 했단다.
많은 조선인들을 쥐꼬리만한 봉급으로 고용하여 노동력을 착취를 하면서
간척 사업을 진행하였어.
요시다 지배인과 조선인 노동자 사이에는
악랄한 이동만이라는 자가 있었단다.
요시다의 충실한 수하이지만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악마 같은 놈이었어.
요시다는 소작료까지 인상하려고 했단다.
소작인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집단 행동으로 반발했단다.
소작인들이 그렇게 집단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배후에 사회주의자들이 방법을 알려주었기 때문이야.
요시다의 농장 조합은
그런 소작인들을 군대처럼 편성을 하고 서로 감시하게 만들었단다.
소작인들 중에 공산주의자가 있다면 연대 책임을 묻겠다고 했어.
한편, 쥐꼬리만한 봉급을 받고 간척사업을 하던 노동자들은
임금까지 체불 당하고,
자신들이 일군 땅을 일본에서 온 일본인에게 공짜로 주고
소작인들에게 주기로 한 땅도 대폭으로 줄어들어 든 것에 불만이 쌓였단다.
이에 정씨 형제의 막내인 정도규와 그의 친구 고서완이
배후에서 조종하여 소작회를 결성하게 했단다.
정도규와 고서완은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는
공산주의를 받아들여 공부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단다.
고서완의 제자 중에 이경욱이라는 자가 있는데,
그도 철저한 공산주의자이며 항일 정신이 투철한 자였단다.
그런데 이경욱은 악랄한 친일파 이동만의 아들이었단다.
이경욱은 자신의 아버지를 부끄러워하고,
아버지의 죗값까지 자신이 받겠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소작인들과 노동자들을 도와주려고 했단다.
…
차득보 생각 나지?
잃어버린 동생 옥녀를 찾아 헤매다가 공허 스님을 만나 함께 했잖아.
공허 스님이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다 보니 함께 못 있어.
신세호의 집에 기거하면서 일을 도와주고 있었단다.
그런데 신세호의 둘째 딸 월엽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단다.
신세호가 아무리 신 지식인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딸을 차득보와 연을 맺어줄 수 없어 크게 반대했단다.
월엽은 신세호와 점지해준 집안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단다.
그런데 얼마 후 옥녀가 오빠를 찾아 신세호의 집에 찾아왔단다.
그렇게 십 수 년 만에 득보와 옥녀가 만나게 되었단다.
….
3. 우려했던…
우려했던 것처럼 양치성은 오른쪽 가슴을 칼에 찔렸지만 죽지 않고 살아났단다.
수국에 대해 복수를 다짐했어.
수국은 서간도에 와서야 자신이 양치성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애를 떼어보려고 이런 저런 시도를 했지만 결국 실패를 했단다.
결국 아들을 낳았고 낳자마자 버리려 했지만,
필녀가 막으면서 자신이 키우겠다면서 아이를 데려갔단다.
하지만 모정을 그리 쉽게 끊을 수 있겠는가.
100일이 지나고 수국은 아이를 자신이 키우기로 했단다.
…
여기까지가 아리랑 7권에 대한 이야기란다.
우리나라에도 가끔 조선족이라고 비하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일제 시대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건너간 이들의 후예란다.
친일파의 후예와는 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이란다.
그리고 조선족이라는 말은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면서 소수 민족들을 부를 때 부르는 말로,
너희들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들은 중국동포나 중국교포라고 이야기하면 될 것 같구나.
미국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미국교포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야.
자,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요시다 지배인님 드시느만이라우.”
책의 끝 문장: 바다 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긴 한숨을 쉬었다.
책제목 : 아리랑 7 (제3부 어둠의 산하)
지은이 : 조정래
펴낸곳 : 해냄
페이지 : 338 page
책무게 : 439 g
펴낸날 : 1994년 10월 05일
책정가 : 6,800원
읽은날 : 2024.02.17~2024.02.18
글쓴날 : 2024.03.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