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
최명선
그와 나는 두 살 터울이다.
눈망울이 큰 그가 스멀스멀 눈꼬리를 밑으로 내리고 웃음을 띠면 그의 끼가 발동된다. 고무줄놀이하는 아이들을 찾아 고무줄 끊기, 머리를 맞대고 옷핀 따 먹기 놀이하는 곳에도 밀치고 머리를 쑥 들이민다. 괴성을 지르는 아이들 사이로 바닥에 모아놓은 핀을 쓸어 담아 호주머니를 불룩하게 채운다. 빼앗아 온 고무줄과 옷핀은 동생에게 선심 쓰듯 한 주먹씩 꺼내 주었다.
학교 가는 길에 잡초를 묶어 놓고 지나는 길목을 지킨다. 아이들이 지나갈 때쯤 버드나무껍질을 벗겨 ‘뱀이다’ 소리치며 던지면 놀라서 도망가는 아이들 발목이 묶어 놓은 잡초에 걸린다. 그 모습을 보며 깔깔웃는 장난꾸러기다. 동생인 나를 잘 데리고 놀다가도 가끔 귀찮아한다. 그가 친구들과 놀면 신기하고 재미난 일들이 많다. 풀 섶을 뛰어다니는 개구리를 잡아 바닥에 내동댕이치면 개구리는 허옇게 배를 드러냈다. 죽은 개구리를 살리는 마술사인 양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다 개구리 배에 침을 탁 뱉었다. 신기하게도 개구리는 눈을 껌뻑이며 살아났다.
늘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따라오면 죽어”
주먹을 휘두르며 큰 눈을 부릅뜬다. 잠시 집으로 되돌아가는 척 헛간 뒤에 숨었다 그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마을 패싸움에도 자주 등장하는 그는 체구는 작아도 타고난 끼와 깡이 있어 또래 남자아이들을 거느리는 골목대장이다.
어릴 적 잔병치레가 잦았던 그에게 마을 어르신들이 바윗돌 같이 잘 자라라며 아명을 ‘바우’로 지어주었다. 아랫동네 주 씨 아저씨네는 아들만 다섯이다. 그 집 넷째아들이 그에게 싸움 도전을 해왔다. 결투 장소는 집 뒤 모래 산 구릉지. 그는 윗옷을 나에게 던지며 ”가까이 오지 말고 멀리 떨어져 있어“
험악한 그의 모습에 지레 겁나 멀찌감치 떨어졌다. 싸움이 불리해지자 갑자기 구경하던 주 씨 형제들이 일시에 싸움판에 끼었다. 1:4로 한꺼번에 덤비는 그들은 무참히 주먹을 날렸다. 밑에 깔려있던 바우는 물에 빠진 생쥐 몰골로 피투성이가 되었다. 안절부절못하다 집으로 달려가 숨넘어가는 소리로 부모님을 찾았다. 들일 나가신 부모님 대신 내 울음소리에 놀란 넷째 언니가 맨발로 뛰어나왔다. 다급한 상황을 전달하고 창고에서 삽과 곡괭이를 끌고 싸움 장소로 달려갔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그들 형제는 보이지 않고 피투성이로 구릉지에 쓰러져 있는 그만 있었다. 언니랑 울며불며 밭으로 부모님을 찾으러 갔다. 싸움에는 패했어도 세상에서 가장 멋진 울 오빠 바우였다.
중학교에 들어간 바우는 밴드부 가입을 했다. 공부는 안 하고 양동이에 물을 가득 채우고 바가지를 엎어 나뭇가지 두 개로 딴다 또르르를 두드렸다. 연습을 핑계로 밤늦은 시간까지 불량소년들과 어울렸나 부모님은 책가방 조사를 수시로 했다. 그때마다 눈치 빠른 그는 슬쩍 내 손에 담배를 건네준다. 나는 얼른 내 책가방 속에 담배를 감추며 그를 지켜주었다. 어느 날 천변에서 술 취해 잠들어 있는 그를 부모님이 찾아냈다. 아버지는 나와 동생들을 방문 밖으로 모두 나가 있으라 했다. 방안에는 인기척이 없다. 잠시 후, 싸리나무 회초리 소리가 짝짝 들려왔다. 문풍지에 비친 아버지 그림자는 노여움으로 출렁거려 밖에 나와 있는 동생도 나도 덩달아 몸이 떨린다. 밖에서 두 손을 꼭 잡고 있어도 찔끔 눈물이 나온다. 방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밖으로 나가셨다. 술에 취해 방 한구석에 쪼그리고 잠들어 있는 그는 온몸에 회초리 자국이 벌겋게 부풀어 있었다. 부모님은 잠든 그의 몸에 안티푸라민을 발라주며 한숨으로 밤을 지새웠다. 며칠 남은 중학교 졸업식도 참석하지 못하고 그는 누나들이 있는 서울로 올려보냈다.
오빠가 생각날 때면 뒷동산에 올랐다. ‘오빠 생각’ 노래는 꼭 내 마음 같다.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슬피 울지에
서울 가신 오빠는 오지를 않고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하얀 윗옷과 까만 바지, 서울교복을 입은 그가 집에 오는 날이다. 얼마나 멋지게 변했을까 아침부터 신작로를 기웃거렸다. 드디어 그가 나타났다. 교복이 아니고 사복 차림이다. 목에 푸르스름한 스카프를 두른 그는 오늘따라 TV서 본 청춘스타 같다. 그가 온다는 소식에 마중 나온 아버지는 오빠의 멋진 스카프를 풀어 제치며 사내놈이 계집애처럼 하고 다닌다고 야단부터 친다. 모처럼 고향에 내려왔던 그는 눈물을 그렁대며 다시 서울로 되돌아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입술을 꽉 물며 뒤돌아섰고, 내 눈 속에는 가시가 들어간 듯 따끔거렸다.
딸 넷을 낳고 얻은 귀한 아들. 언니들은 남동생을 잘못 건사해 부모님께 불호령이 두려웠는지 서울서 일어난 일은 일체 비밀에 부쳤다. 계룡산에 친구들과 놀러 갔다 코뼈가 부러진 일, 남산 야바위꾼에 걸려 경찰서 신세를 진일, 숱한 에피소드는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나 들을 수 있었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오빠가 특전사를 다녀오더니 사람이 변했다. 원하던 대기업에 입사하고 승승장구 특허까지 획득, 상공부장관 상도 받았다. 임직원으로
30여 년을 근무하고 퇴직한 것은 그의 깡과 끼가 있어 가능했을 것이다.
작년에 지하철 경로 카드가 나온 그다. 부모님 강요로 탈퇴한 밴드부, 못다 이룬 꿈을 이루고 싶은가 가족밴드의 장이 되어 북을 두드린다. 딴 따 또르르 까 똑! 까 똑! 아침 인사를 보내온다. 서울, 수원, 부천, 각기 떨어져 사는 형제자매들의 소식을 카톡에 올리며 끈끈한 우애를 다지며 함께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