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이야기
♣ 바람을 잠재우는 하얀 깃털_한국의 수초, 갈대
갈대밭에 서면 아무리 감정이 무딘 사람이라도 시인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예로부터 수많은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동양에서의 갈대를 노래한 시로는 시경(詩經)의 갈대(겸가)에서 찾을 수 있다. 강가의 갈대밭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서도 가까이 갈 수 없는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푸른 갈대는 빽빽하고 흰 이슬이 서리로 바뀌었네.
그리운 님이 물 건너 저쪽에 있지만
거슬러 오르는 험난한 물길 멀기도 해라
물길 따라 내려오는데 님은 아직 섬에 있네.
자하 신위(紫霞 申緯)는 갈꽃을 보고 가을이 오는 것을 알았다.
오두막은 작은 배처럼 초라하고
갈잎 갈꽃에 가을이 찾아 드네.
첫서리가 내리자 강가의 어부가 사는 작은 집은 더욱 초라하게 보이고 갈대는 람에 나부끼고 기러기는 북쪽의 찬바람을 몰고 온다. 갈꽃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함을 느끼게 하는 가을의 꽃이다.
수렵 시대에는 갈대밭이 중요한 사냥터였을 것이다. 《시경(詩經)》에는 "저 무성한 갈대밭에서 화살 하나로 암퇘지 5마리를 잡았네.
▲ 갈대 강이나 호수의 가장자리 뻘밭에서 자라는 다년초이다. 높이 2~3m에 이르고 곧추 자란다. 바닷물과 민물이 서로 교차되는 강 하구에서 대규모 군락을 이룬다. 이삭은 20~30㎝이며 희색을 띤 연한 갈색이다.
갈대 이삭은 솜털처럼 부드럽다. 새들이 집을 지을 때 부드러운 이삭을 따 둥지의 안쪽에 깔았다. 옛 글에서 부엉이의 말을 빌어 "내 발과 부리 다 닳도록 갈꽃(寄)을 물어 날랐건만 아직 둥지를 다 짓지 못했네"라고 했다. 박해받는 서민의 애환을 부엉이에게 비유하여 한탄 조로 읊조리고 있다.
갈대는 키가 크다. 초본 류이면서도 다른 어떤 풀보다 높이 자란다. 그 것은 갈대가 물이 풍부하고 비옥한 뻘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시경(詩經)》에는 "연못가에 키를 넘는 갈대가 무성하네"라고 노래했다. 갈대가 다른 어떤 풀보다 높이 자란다는 사실을 두고 '키를 넘는 갈대'라고 표현한 것 같다.
세익스피어는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고 썼다. 갈대가 바람에 나부끼는 현상을 두고 마음이 변덕스러운 여자에 비유한 것이리라. 갈대가 바람에 잘 흔들리기는 해도 절대로 쓰러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른 어떤 풀보다 강인한 면이 있다. 폭풍이 지나가도 부러지지 않는 점에서는 대나무와 너무나 닮았다.
갈대 줄기는 굵고 단단하다. 그래서 대나무 줄기로 만드는 것이라면 웬만한 것은 다 만든다. 피리를 만들어 음악을 연주하고 발을 엮거나 돗자리를 짠다. 통발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고 엮어서 세우면 닭을 치는 우리가 된다.
수천 년 전부터 갈대는 갖가지 생활 도구를 만드는 좋은 재료였다. 《예기(禮記)》 상권 월령(月令)편에, "호수를 관리하는 벼슬아치에게 갈대를 납품하도록 한다.(命澤人 納材葦)"고 적고 있다. 관청에서 1년 동안 쓸 갈대를 가을에 미리 비축해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갈대는 인삼밭을 덮어 주는 삼포발, 국수 사리를 얹어 놓는 국숫발, 김을 뜨는 김발, 삿갓인 노립(蘆笠)을 만들 때 없어서는 안될 자원이었다.
인도에서는 갈대만으로 집을 짓는다. 여러 대를 묶어 기둥으로 쓰고 벽도 갈대를 엮어 세운다. 지붕은 물론 바닥까지도 갈대로 엮어서 깔면 훌륭한 주택이 된다. 강 하구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목재를 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때문에 갈대로 엮은 큰배를 건조하여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았다. 지금도 갠지스 강 하류에는 갈대로 엮은 큰배가 짐을 싣고 다닌다. 갈대 배는 부력이 좋다. 많은 짐을 싣고도 힘들이지 않고 운반할 수 있어서 고대부터 조선 재료로 쓰였다.
▲ 갈대의 근경은 대나무처럼 굵고 마디가 있으며 속이 비었다. 이 근경을 캐 전분을 뽑아 여러 가지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다. 근경은 단맛이 있어서 날로 먹어도 좋다. 봄철에 돋아나는 어린 싹은 나물로 먹는다. ▲ 갈대 줄기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어린줄기를 베어 목초로 하면 양질의 가축 사료가 된다. 줄기는 발을 엮거나 돗자리, 방석을 짠다. 마른 줄기를 베어 종이를 떠낼 수도 있다
갈대를 엮어 둥우리를 만들고 여기에 닭과 오리를 가두어 길렀다. 갈대를 엮어 을타리를 치고, 갈대 통발로 고기를 잡았다. 갈대 줄기에 깃털을 꽂으면 붓이 되고, 구멍을 뚫어 불면 피리가 된다. 갈대는 인류의 예술 문화와도 분명 관련이 있다.
갈꽃은 맑고 부드럽다. 빛에 따라 흰색인 것 같으면서 갈색이 돌고 때로는 누런 빛깔로도 보인다. 하얗고 보송보송한 것이 갈대밭 전체가 가지고 있는 정취가 어떤 자연과도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다. 파스칼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로 비유하기도 했다. 갈대를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에 젖도록 하기 때문이리라.
'갈대의 순정' 이니 '갈대처럼 지조가 없다'느니 하지만 갈대는 바람에 몸을 맡길 뿐 함부로 움직이는 법이 없다. 갈대는 밀집해 자란다. 마른 갈잎이 서로 몸을 비벼 대는 소리가 멀리서 군중이 소곤거리는 것 같다. 임금님의 이발사가 갈대밭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자 수많은 갈대 사이에서 '당나귀 귀, 당나귀 귀' 라는 메아리가 들려 왔다. 그리하여 임금님의 비밀은 깨어지고 말았다는 설화이다.
대중가요 속에서도 갈대는 좋은 소재가 되고 있으니 갈대와 억새를 혼동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 "해 저문 소양강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라고 할 때 두견새는 저녁에 우는 새가 아니다. 더구나 봄에 우리 나라를 찾아와 오월에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기르는 여름철새이다. 새가 노래하는 것은 짝짓기를 위해 암컷을 부르는 신호라 할 수 있다. 번식철이 아닌 때는 애끓는 목소리로 노래를 하지 않는다. 더구나 산의 숲에 사는 두견이가 강가의 갈대밭을 서성거릴 이유가 없다. 새란 시적 대상을 그저 관념적으로만 본 때문이다.
옛 선비들은 갈대가 지조 있는 풀이라 하여 귀하게 여겼다. 들풀로 엮은 야초라에 갈꽃을 넣은 솜이불을 덮고 자는 검소한 생활로 절의를 지켰다. 중국의 문호 소동파는 갈대를 유난히 좋아했다. 특히 동정호의 갈대를 좋아하여 수반에서 맑은 물을 부어 기르면서 갈대의 성정을 사랑했다.
근경을 다듬고 수석과 함께 수반에 얹어 가꾸면 싹이 돋는다. 대나무를 연상시키는 아치가 있어 예로부터 시인묵객이 널리 재배했다. 돌에 이끼가 돋고 갈꽃이 피면 드넓은 동정호의 정취가 살아 있는 듯하여 그 속에 마음을 담아 자신이 거대한 자연 속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갈대는 자원으로서의 가치 또한 높다. 여름의 부드러운 싹은 훌륭한 목초이다. "갈대 먹은 소 살 안찌는 소 없다."할 정도로 가축이 좋아하고 영양가도 높다. 가을에 갈꽃이 피기 직전에 줄기 전체를 베어 잘 말려서 엔시레이지를 만들어 겨울 가축 사료로 쓴다.
싹은 나물로 먹는다. 갈대의 싹은 죽순 보다 부드럽고 맛도 좋아 중국 요리의 재료로 쓰인다. 중국의 강남 지방에서는 봄철이면 갈대 싹을 잘라 몇 개씩 묶어 시장에서 판다. 봄의 미각을 즐기기 위해 중국인들이 즐겨 찾는다.
가을에 뻘밭에서 캔 굵은 근경을 생으로 씹으면 맛이 달콤하다. 시골 바닷가 어린이들의 군것질 감이 된 때도 있었다. 근경은 전분이 풍부하여 춘궁기를 이겨내는 구휼식이다. 봄철 근경을 캐면 잘 갈아서 그 물을 가라앉힌다. 충분히 우려낸 뒤 앙금을 말리면 흰 가루를 얻을 수 있는데 이것을 갖고 국수나 떡 같은 갖가지 요리를 한다.
한방에서는 근경을 노근(蘆根)이라 하여 이뇨, 해열, 소염, 갈증 치료에 쓴다. 특히 당뇨병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최근 중국 의학계에서는 이 분야의 연구가 활발하다.
《명의별록(名醫別錄)》에는, "갈대는 습지에서 자라는데 잎과 줄기가 대나무와 같다. 다른 말로 봉농이라 하고 까락을 적화(荻花)라 한다. 2월과 8월에 뿌리를 캐 볕에 말려 약으로 쓴다."고 했다. 한자로는 위경(葦莖), 위가(葦가), 노죽(蘆竹), 포위(蒲葦), 화잡죽(禾雜竹), 수로죽(水蘆竹)이라 한다. 갈대의 키가 크고 줄기가 곧아 대나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갈대는 수생 생태계를 이루는 모태라 할 수 있다. 전국의 강가나 간척지, 강 하구에서 잘 자라며 민물게, 새우 같은 갑각류의 서식처가 되고, 미꾸라지, 뱀장어, 메기 같은 민물고기의 보금자리가 된다. 그리고 이들 물고기를 먹기 위해 각종 수서 조류가 깃들이게 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