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유치환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錦繡)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長白)의 멧부리 방울 뛰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창망(滄茫)한 물굽이에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레 떠 있기에
동해 쪽빛 바람에
항시 사념(思念)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지나 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풍랑 따라
밀리어 오는 듯고 하건만
멀리 조국의 사직(社稷)의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 올 적마다
어린 마음 미칠 수 없음이
아아, 이렇게도 간절함이여!
동쪽 먼 심해선 따위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시집 『울릉도』, 1948)
[어휘풀이]
-금수 : 수를 놓은 비단, 또는 아름답고 화려한 옷이나 직물
-장백 : 장백산맥
-창망 : 넓고 멀어사 아득함.
-사직 : 고대 중국에서 새로 나르를 세울 때 천지나 제사를 지내던 토지신과 곡식신,
나라 또는 조정을 이르는 말로 사용됨.
[작품해설]
이 시는 청마의 시에서흔히 보게 되는 어떤 사상성이나 인생의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 울릉도라는 하나의 섬을 통하여 국토와 조국에 대한 그의 강렬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민족 공동체를 이루는 한 구성원으로서의 시인은 국토의 일부분인 울릉도에 감정이입하여, 섬의 외로움과 본토(本土)에 대한 그리움을 탁월한 상상력으로 그려내고 있다.
‘장백의 멧부리’인 ‘백두산’으로부터 시작된 조국 강토가 ‘울릉도’라는 막내로 마무리되었다는 울릉도의 형성 과정을 말한 1·2연에 3·4연에서는 ‘창망한 물굽이’로 인해 근심스레 떠 있는 울릉도의 가냘픈 모습과, 항상 ‘사념의 머리를 곱게 씻고’ 있는 울릉도의 가냘픔과 경건함을 보여 준다. 5·6연에서는 본토에 대한 그리움이 마침내 조국애로 승화되어 좌·우 이념의 대립으로 혼란하기만 했던 해방 직후의 어지러운 정국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한다.
울릉도를 소재로 하여 애국심을 고양시키고자 한 것이 시인의 의도라 하더라도, 이 시는 관념적인 차원에 머물고 만 느낌을 준다. 그것은 청마 시의 특성에서도 기인되겠지만, 직접적인 울릉도 체험 없이 다만 지도책만 펴놓고 시를 쓴 데 그 가장 큰 원인이 있을 것이다.
[작가소개]
유치환(柳致環)
청마(靑馬)
1908년 경상남도 통영 출생
1927년 연희전문학교 문과 입학
1931년 『문예월간』에 시 「정적」을 발표하여 등단
1937년 문예 동인지 『생리』 발행
1946년 조선청년문학가협회 회장 역임
1947년 제1회 조선청년문학가협회 시인상 수상
1957년 한국시인협회 초대 회장
1967년 사망
시집 : 『청마시초』(1939), 『생명의 서』(1947), 『울릉도』(1948), 『청령일기(蜻蛉日記)』(1949),
『보병과 더불어』(1951), 『예루살렘의 닭』(1953), 『청마시집』(1954), 『제9시집』(1957),
『유치환 시초』(1953), 『동방의 느티』(1959),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1960),
『미루나무와 남풍』(1964),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1965), 『청마시선』(1974),
『깃발』(1975), 『유치환-한국현대시문학대계 15』(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