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imate City
박찬민展 / PARKCHANMIN / 朴贊珉 / photography
2008_0820 ▶ 2008_0826
박찬민_Intimate City #001_디지털 프린트_60×60cm_2007
초대일시_2008_0820_수요일_05:00pm
갤러리 룩스 2008신진작가 지원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토~일요일_11:00am~07:00pm / 화요일 10:00am~12:00pm
갤러리 룩스_GALLERY LUX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82.2.720.8488
www.gallerylux.net
도시 풍경의 내밀함에 관한 관조적 시선 ● 풍경(paysage)의 개념은 너무 자명한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상 문화에 따라 확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오귀스틴 베르크는 풍경을 환경(environnement)에 대립되는 것으로 정의했다. 베르크에 의하면 “환경은 주변부의 사실적 측면, 즉 공간과 자연의 주어진 사회와의 관계로 정의되며 풍경은 이런 관계의 감각적인 측면 이상의 것을 내포한다. 인간 사회가 지각되고 정비된 섬세한 환경으로 주어진다면 반대로 풍경은 많은 문화로부터 그와 같이 동일화되지 않는다. “(오귀스틴 베르크(Augustin Berque), 「풍경의 근거: 고대 중국에서 합성의 환경까지(Les raisons du paysage: de la chine antique aux environnements de synthése)」中 에서)”. 가령, 일원론적 우주론에 기반한 중국의 풍경 개념에서 산수(山水)가 환경과 풍경의 조화로운 통일의 토대가 된다면, 서양에서의 이 개념은 자연 경관의 세계가 아닌 언어와 이성의 로고스(logos)에 의해 지배되는, 인간의 손에 의해 개척된 세계를 지칭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풍경의 현저히 문화적 면모로, 이러한 풍경의 문화는 회화와 사진의 장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풍경사진가인 앤셀 아담스, 에드워드 웨스턴, 마이너 화이트는 풍경의 신화학을 만들어내며 거대한 자연 공간의 숭고함을 그들의 사진 속에 드러내었다. 반면 유럽 문화 속에서 풍경은 자연과 문화의, 자연 환경과 도시성(urbanité)의 불안정한 결합으로 인지된다.
박찬민_Intimate City #004_디지털 프린트_60×60cm_2008
박찬민_Intimate City #006_디지털 프린트_40×40cm_2008
박찬민은 도시 풍경을 환경과 풍경이라는 두 측면으로 바라보며 도시에서의 우리의 삶의 방식에 대해 분석적인 시각을 취한다. 그는 건물에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는 정오 무렵 한 시간 정도를 채택하여 아파트, 빌딩 같은 한 사회의 가치와 구조의 기표로서의 도시의 건축물들과 그것이 위치해 있는 한국적 지형이 결합된 도시 풍경을 망원렌즈로 한 화면에 압축해 담아낸다. 망원 렌즈의 기계적 특성에 의해 사진적 화면은 평면적으로 보인다. 그가 보여주는 도시의 모습은 루이스 발츠나 안토니 헤르난데즈의 사진이 보여주고 있는 재난과 파탄을 증명해 보여주는 위협 받고 있는 도시 풍경들도, 바실리코의 존속 가능한 도시나 많은 예술가들의 시각적 참조물인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의 디스토피아적인 로스엔젤레스도 아니다. 그것은 전통 한국화에서 보이는 배산임수(背山臨水)같은 양태로 물이 흐르고 중경에서는 건물들이 후경에는 산이 감싸 안은 것으로 산업 사회의 발전적 면모를 포괄한 한국적 풍경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본연의 자연으로서의 풍경과, 그것을 해체하며 구축해낸 도시 건축물로서 이룩된 도시성을 결합한다. 거기에는 인간의 모습이 지워진 채, 삶의 공간만이 제시되고 있으며 어떤 것도 연출 되지 않았다. 국내의 여러 도시에서 촬영된 이 사진들은 한국의 도시가 우리 국토의 어디를 가나 비슷한 모양새를 띠고 있다는 것과 역설적으로 그 안에서 개개인이 구축해내는 관계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채롭고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사진 속의 스모그처럼 본질이 은폐되고 모호하게 나타남을 암묵적으로 제시한다. 샤르트르가 도시 속의 군중의 고독을 「고독의 복수성(pluralité des solitudes)」 으로 표현했듯이, 현대적 건축물로 둘러싸인 도시에 사는 우리들은 점차 그 존재가 지워지고 익명성이 배가되는 환경에 놓여있다. 사진적 대상과의 약하고 모호한 동일화는 사진적 의미의 고착화를 방해하며 친숙한 도시 풍경에서 개개인의 위치를 불안정하게 동요시킨다.
박찬민_Intimate City #013_디지털 프린트_60×60cm_2008
박찬민_Intimate City #014_디지털 프린트_40×40cm_2008
이전 작업에서 박찬민이 자연 풍경 속의 인공 구조물들을 감각적으로 포착해내었다면 현재의 작업에서 그는 디지털적 도구들을 체계적으로 사용하며 현실과의 닮음으로서의 코드화(codification)에 기대어 도시풍경을 구축해 낸다. 그는 도시의 아파트나 빌딩의 구체적인 명칭은 지워내고 최소한의 표식들만, 가령, 숫자 같은 극도로 단순한 것만을 남겨두거나 파노라마 포멧의 경우에는 개별적으로 촬영된 것을 덧붙여 정확하고 현실적인 사진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사진의 일상적인 재현 코드의 수정에 의한 리얼리즘의 상실은 관객에 제공되는 정보의 양, 다시 말해, 세부의 거대한 축적과 디테일의 풍부함과 선명함에 의해 상쇄된다. 그 결과 나타나는 도시 풍경은 매우 건축적이며 그래픽적 코드를 사진에 각인한다. 이런 특성은 디지털한 조작의 근거이며 동시에 이유이다. 이 사진들에 나타난 표현주의적 관심과 별도로, 현실에서 박탈된 가상 세계를 꿈꾸게 하는 보드리야르적 공상 과학 속에 빠져들지 않고도 우리는 사진의 재현적 기능의 동요를 절충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 그의 작업의 독창성은 정확하고 주의 깊은 시선의 선택에 의한 적절한 거리감과 멜랑콜리한 섬세한 감성으로 표출된다.
박찬민_Intimate City #P006_디지털 프린트_35×100cm_2008
박찬민_Intimate City #P009_디지털 프린트_35×100cm_2008
브루스 나우먼이 네온으로 된 자신의 조각작품에 대해 “진정한 예술가들은 초자연적인 진실들을 벗겨내기 위해 세계를 이용한다” 라고 언급했듯이, 박찬민은 한국의 도시 풍경을 도시에서의 삶과 환경 구축이라는 복합적 층위에서, 자연과 문명, 과거와 미래, 그림과 사진, 결국 허구와 현실과 같은 분명히 모순적이면서도 모호하고 긴장된 관계를 통해 드러냄과 동시에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여 거대함과 미세함 사이의 매혹적인 변증법 속에서 풀어내며 비평적인 논쟁을 가속화한다. 도시적 환경의 측면과 한국적 풍경이라는 측면이 혼재된 박찬민의 도시 풍경은, 도시라는 우리의 삶의 공간을 객관화시켜 바라보며 깨닫게 되는, 일상적인 삶의 공간 속에 감춰진 면모 혹은 진실들을 사유하게 한다. ■ 손영실
Intimate City ● 도시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살고 있으며 그 안의 도회적 건물들도 각기 다른 것 같지만 비슷한 모습으로 숲을 이루고 어우러져 있다. 도시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확실한 모습을 띠고 있지만 희뿌연 연무 속에 각자의 확실한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도시인의 모습 또한 이와 같이 각각의 다른 개인 들이 자신의 개성대로 살고 있지만 그러한 모습들의 전체는 다수 속에 감추어져 그 정체성이 흐려진다. 환경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영향을 끼치고 그 안의 사람들 역시 환경에 변화를 가하며 살아간다. 그 속에서 도시의 환경이나 도시의 사람들은 결국 서로를 닮아가고 애증과도 같은, 즉 자신의 환경을 비판하고 혐오하면서도 늘 함께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역설적인 관계에 놓여있다. 도시와 그 속의 인간의 모습은 그렇게 친밀하고 반면 모호하다. 도시 속의 우리의 삶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친밀하여 간과 할 수 있는 그 내면의 모습에 대하여 다시 한번 성찰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환경과 우리 주변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 아니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대다수의 인간이 모여 사는 도시 속에서 그리고 도시를 관조함으로써, 도시와 도시, 인간과 인간, 도시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 박찬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