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야기 11부- 나를 파괴하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2017년 제작된 노르웨이 영화 중에 The 12th Man라는 영화가 있다. 노르웨이 나치 레지스탕스였던 얀 볼스루의 탈출기를 다룬 것으로, 그는 지금도 노르웨이에서는 얀 볼스루 탈출 경로 순례 행사를 열 정도로 국가 영웅 취급 받고 있는 인물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니체가 말했던 '나를 파괴하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What does not destroy me, makes me stronger).'라는 구절이 저절로 떠오른다.
영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40년 4월 9일, 독일은 노르웨이를 점령한 후 요새를 구축한다. 이후 나치가 노르웨이 북단에 배치한 독일군을 동원해 연합군 수송대를 공격하는 등 지속적인 타격을 가하자 영국이 곤경에 처한다. 1943년 3월24일, 스코틀랜드에서 영국군에게 훈련받은 노르웨이 레지스탕스 12명은 노르웨이의 독일 항공기지를 파괴하라는 마틴 레드 작전에 투입되어 노르웨이로 향한다.
그런데 상륙도중 독일 전함에게 발각되고 이들이 타고 있던 보트는 포격을 당해 침몰한다. 이들 모두는 해안가에 있던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처형을 당하지만, 단 한 사람 "얀 볼스루"만이 발에 총상을 입은 채로 차가운 바닷물속으로 잠수해 영하의 피오르드를 4km넘게 헤엄쳐 탈출에 성공한다.
독일군은 이 강추위속에서 절대로 살아 남았을리가 없다고 단정하고 상부에 12명 모두 죽었다고 보고를 한다. 하지만 나치 친위대를 이끄는 쿠르트 슈타케는 그가 살아있다고 확신한다. 그는 극한의 추위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생존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잡아온 포로를 얼음물 속에 쳐넣고 얼마나 버티는지 실험을 하지만, 대부분의 포로들이 얼마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 버린다. 만일 얀이 탈출에 성공하여 스웨덴으로 탈출한다면 쿠르트 슈타케가 상부에 올린 잘못된 보고서에 대한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에 그는 얀이 살아있다고 간주하고 그를 뒤쫓는다.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얀은 노르웨이 주민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하지만 혼자서는 다시 독일군 기지로 돌아가 봤자 할수 있는게 없음을 깨닫고 중립국인 스웨덴으로 탈출하여 그의 임무를 완수하기로 한다. 얀은 산사태에 휘말려 부상을 당하기도 하고, 눈 덮인 산 속에서 굶주리며 며칠을 버텨낸다. 얀은 사람으로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에 극한 환경속에서 죽음의 위험에 직면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그 고통을 이겨낸다. 그 와중에서도 쿠르트 슈타케의 추격은 계속된다.
죽음의 위기를 벗어나는 순간 얀에게 도움의 손길이 찾아 든다. 전 노르웨이 국민들이 그를 도와준다. 나치 친위대는 노르웨이의 온 국토를 뒤져 그를 도와준 현지인들을 색출해 잔인한 고문을 하지만, 노르웨이 국민들은 끝내 얀의 행적을 밝히지 않고 그를 지켜준다.
노르웨이의 희망이 된 얀을 살리기 위해 조건 없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이들의 희망을 져버리지 않기 위해, 얀은 여러가지 위기와 악조건 속에서도 다시 힘을 내어 스웨덴으로 향한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이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다. 스웨덴으로 향하는 그의 행로가 도저히 보통의 인간으로서는 견디지 못할 처절한 사투였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은 전쟁 영화이지만, 한 영혼의 치열한 생존과 그에 대한 삶의 의미를 조명하고 있었다.
노르웨이 설원에서 상처입은 채 걷던 중 그는 또 다른 자신을 만난다. 그는 “한 번 달려보지 않겠냐”고 자신에게 말을 걸며 멈추지 말 것을 종용한다. 또 숨어 지내던 창고에서 총을 맞은 발의 상처가 깊어졌을 때, 얀은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자신의 모습을 마치 꿈처럼 상상해 낸다.
막다른 길에 도달했을 때에도 자신을 숨겨준 집에서 만난 한 소녀가 해 준 "나치가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갔지만, 인생의 방향을 알려 주는 북극성은 빼앗지 못했다"라는 한마디 말을 기억해 낸다. 얀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의지를 확인하고 자신의 영혼을 불태우는 사투를 계속한다. 그리고 마지막 관문인 스웨덴 국경을 눈앞에 두고 포기하려는 주인공에게 마리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당신을 돕는 이유는 우리 모두에게 기적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그는 결국 노르웨이부터 스웨덴까지 124km의 거리를 무려 63일동안 행군하여 탈출에 성공하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웠음에도 불구하고 얀을 도와준 것은 나치의 점령하에 있던 암울한 상황에서 얀은 모든 노르웨이인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 남자를 불굴의 의지를 지닌 투사로 만들었을까? 이 영화속에서 내가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다음 대목이었다. 극중에 주인공이 이젠 그만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그 순간 한 목소리가 들여왔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어요.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도 이유가 있는 거예요"
그래,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우리는 단지 이 세상에 그저 우연히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내가 지금 큰 고통을 겪고 있다면 반드시 그 곳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다. 이유없는 고통, 이유없는 고난은 없다. 그 원인이 과거 어느 한 순간의 나의 실수로 인해 시작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격동에 사건에 휘말리게 한 운명의 장난이 나를 거친 파도속에 내던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고통은 과거의 원인으로 인한 후회가 아니라, 앞으로 내가 짊어지고 나가야 할 원동력이 되어야만 한다.
얀은 끝까지 살아남아 노르웨이의 영웅이 되었고, 1988년에 Manndalen에 묻혔다.
얀 볼스루
모든 사람들마다 저마다의 어두운 터널이 있다. 그때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두가지뿐이다. 과거의 실수를 원망하며, 나를 이렇게 만든 환경과 상황을 원망하며 쓰디쓴 회환속에 묻혀 희망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과 나를 이렇게 만든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성장시킬 원동력으로 생각하고 불굴의 투지를 가지고 묵묵히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지금 당신의 인생이 어둡고 암울하기만 하는가? 빛은 보이지 않고 끝없고 어두운 터널만 계속되는가? 이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당신이 이 모든 고난을 헤치고 얀처럼 영웅이 될 이유말이다.
이제 다시 니체로 돌아와 보자. 니체는 평생동안 자신을 괴롭히는 고통과 싸우면서도 절대로 굴복 하지 않은 초인이었다. 니체가 그러한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힘을 발휘해야만 했다. 니체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마음의 어떠한 아픔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위대성이 있다고 믿었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얀과 같이 좌절하지 않고 고통을 참고 인내했다.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가지만 있으면 된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끝내 이겨내려고 하는 의지이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고통이 지금의 내가 있음을 실존케 한다. 오히려 그것을 달게 받아들여 앞으로 전진할 수만 있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강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니체는 인간이 겪는 고통이 인간의 삶을 위대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니체는 그런 인간 의지를 위대성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오늘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 니체를 만든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고통이었다. 그러한 그의 고통이 니체의 위대한 사상을 이끌어 내었다. 만약 니체가 편안히 안락하게 세상을 살다갔더라면 그의 육신은 편했을지 모르나 그의 위대한 정신은 후세에 남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날 고통받는 후학들에게 전혀 위로를 주지 못했을 것이다.
고통은 우리 삶의 일부분일 뿐이다. 고통없이 인간은 결코 기쁨과 행복에 이를 수 없다. 지금 내가 헤어나올 수 없는 커다란 고통속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니체의 이 말을 기억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