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만 한 아우 없다죠!
제불여형(弟不如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형만 한 아우 없다라는 속담을 한자로 표기할 때 사용하는 말이라 합니다.
근래에 본 교회에서 2키로 정도 떨어진 관내 마을인 구암리에 일이 있어서 갔다가
주택 안에 웬 비석이 있기에 자세히 살펴 보았습니다.
육군병장 조돈선 순직비였습니다.
호기심이 많은 기질이어서 낯선 비석을 발견하고서 사연이 궁금해졌습니다.
마을을 탐문하던 중 연세가 있으신 어르신께 비석에 대한 사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연인즉, 동생이 군 복무중 사고로 순직하였고 동생을 기리기 위해 형님이 세운 비석으로 알고 있노라 답하셨습니다.
주일 오후(2월 2일), 좀 더 구체적인 사연을 알고자 비석을 세운 가정을 찾았습니다.
마침 대문이 열려있기에 주인을 만났습니다.
비석 주인공의 큰 형님이신 분에게서 비석을 세운 내막과 순직하게 된 사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2년 전인 1983년도에 일어난 가슴 아픈 기억입니다.
당시 수도 경비사령부 헌병대원으로 군 복무중이었던 고인은 제대를 45일(한달 반)앞두고 보직이었던 운전병의 직임을 감당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한 차량을 피하다 사고가 났다고 합니다.
서울 장충동에서 일어난 이 사고로 당시 23세살의 꽃다운 나이로 순직했다 합니다.
흔히 군인들이 하는 말 가운데 전역을 앞둔 말년 병장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라 말합니다.
그런데 고인은 투철한 군인 정신으로 본인이 맡은 보직을 감당하려고 운전대를 잡았고 결국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40년전의 까마득한 옛 이야기임에도 비석 주인공의 사연을 공개하고 싶다는 목사의 제안을 들으시더니, 금새 눈시울이 촉촉해 지시며 울먹거리시는 음성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격언을 실감나게 합니다.
형님께서 비석을 세우게 된 경위는 이렇습니다.
하루 아침에 막내 아들을 떠나보낸 양친께서는 그날 이후로 그 무렵이 되면 사시는 동안 가슴앓이를 하셨다 합니다.
옛 어르신들의 표현처럼, “부모가 돌아가시면 산에 묻지만 자식을 앞세우면 가슴에 묻는다죠“
황망하게 떠난 동생을 생각하며 눈물로 지새우는 부모님들을 뵈어야 하는 남은 형제들이 부모님을 위하여 동생의 흔적이라도 가까이 두게 하고픈 마음을 비문에 담아 세운 비석이라 합니다.
동생 분이 비록 23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았음에도 군 생활을 얼마나 충실하게 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흔적이 수경사에 입대한 직후인 1981년 한강에 빠진 사람을 구출한 공로로 사령관 표창을 받았습니다.
또한 1982년에는 참모총장 표창을 받았다 하니 얼마나 모범적인 군인이었는가를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당신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자유롭게 삽니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알링턴 국립묘지에 새겨진 글귀라 합니다.
미국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국가를 위하여 일하다가 산화하신 분들을 국가 차원에서 기억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반면에 우리 사회는 그런 점이 취약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희생하신 분들은 영웅시하면서도 국가 안보를 위하여 일하다가 순직하신 분들은 금새 잊어버리는 사회적 분위기는 바꾸어야 합니다.
공공의 유익과 공적 업무를 수행하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신 분들이나 희생하신 분들을 국가 차원에서 고인의 업적과 명예를 기리는 일을 행할 때
그분들의 희생은 값진 죽음으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비석 이면에 담긴 눈물겨운 사연을 보면서, 40년 전의 희생을 의미있게 만드는 일은 남은 자들의 몫이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됩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