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바다 연결하는 ‘해협’…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길목이에요
육지사이에 끼여있는 좁고 긴 바다
원유수송 등 무역의 핵심 통로 역할
‘호르무즈 해협’ 통해 원유 수출
봉쇄 시 세계적 경제 위기로 직결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공급의 ‘길목’역할을 한다. 이 해협이 막히거나 분쟁에 휘말리면 원유 수송이 차질을 빚게 된다. 세계 경제도 휘청이기 때문에 전략적 요충지로 꼽힌다.
이달 12일은 간호사의 사회 공헌을 기념하기 위한 ‘간호사의 날’이었습니다. 간호사의 대명사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1820∼1910)의 생일이 바로 5월 12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19세기 크림전쟁에서 활약했습니다. 크림전쟁은 흑해의 크림반도를 배경으로 벌어진 전쟁입니다. 당시 러시아는 대양으로 진출하기 위해 크림반도로 남하했고 이를 막기 위해 영국, 프랑스, 오스만 제국 등의 연합군이 러시아와 맞붙었습니다.
전쟁은 러시아의 패배로 끝났지만, 배경이 된 흑해 연안은 지중해로 연결되는 지정학적 요충지로서 오늘날에도 러시아가 호시탐탐 노리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이 흑해는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을 통해 지중해로 연결됩니다. 이 두 곳의 해협이 흑해의 지정학적 가치를 높여주는 핵심 요소입니다.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양과 연결되는 것은 국력을 확장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었습니다. 그리고 해협은 대양으로 진출하는 데 길목이었습니다. 오늘의 세계 지리 이야기는 지정학적 길목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온 해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누구든 자유롭게 지나갈 수 있는 해협
해협은 육지 사이에 끼어 있는 좁고 긴 바다입니다. 해협을 기준으로 양쪽에 바다가 자리 잡고 있어서 바다와 바다를 연결해 주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해협은 어느 국가의 바다일까요? 일반적으로 해협은 인접한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영해입니다. 이 영해는 원칙적으로는 타국의 선박이 마음대로 지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국제협약을 통해 타국의 영해라도 그 나라에 피해를 주지 않는 조건으로 자유롭게 지나갈 수 있는 ‘무해통항권’이라는 권리가 존재합니다. 다만, 무해통항권이 있더라도 상황에 따라 자국의 영해를 지나는 타국 선박의 운항을 중지시킬 수 있습니다.
국제 해협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국제 해협은 통로로서 기능이 분명하기에 국제법상 타국 선박의 해협 통과를 허용해야 하며 강제로 운항을 중지시킬 수도 없습니다. 즉, 국제 해협에서는 무해통항권보다 한 차원 높은 통항의 권리가 보장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길목으로서 해협의 역할은 국제법상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 아시아 무역의 핵심 통로 믈라카 해협
믈라카 해협은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사이에 있는 길이 900km 해협입니다.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20%가 통과하는 무역의 중심 길목입니다. 믈라카 해협을 통과하지 않고 우회하면 운반 기간이 3일 더 길어지며 운송 비용도 증가하게 되기에 매우 중요한 해협입니다. 무역대국인 우리나라 역시 물동량의 30%를 믈라카 해협을 통해 운송합니다.
믈라카 해협의 문제점이 있는데 바로 얕은 수심입니다. 믈라카 해협은 수심이 25m 정도로 얕은 구간이 많아 대형 화물선이 운항하기에 까다로운 해협에 속합니다. 게다가 이곳에 출몰하는 해적 역시 선박들의 훼방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해적 피해를 막기 위해 2000년대 초반 해양경찰 경비함이 이곳에서 작전 활동을 수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연안국들의 경비 활동이 강화되며 해적 활동이 급감했습니다.
● 원유 수송의 전략적 요충지, 호르무즈 해협
세계에서 원유 수출이 가장 많은 지역은 아라비아반도의 페르시아만 연안입니다. 이곳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등의 주요 산유국들이 밀집한 곳으로 페르시아만에서 생산된 원유는 아라비아반도 끝자락의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전 세계로 수출됩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송되는 원유와 천연가스는 전 세계 수송량의 30%에 달하며 이들의 주요 행선지는 한국, 일본, 중국, 인도 등의 아시아 국가들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해협 양쪽에 위치한 국가인 이란과 오만의 영해에 속해 있는데 이란의 경우 국제사회에서 정치·군사적 갈등을 겪는 국가입니다. 이에 따라 이란은 종종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고 있으며, 만약 이란에 의해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다면 이곳을 통해 원유와 천연가스를 공급받고 있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주요 국가들은 산업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이들 아시아 국가는 전 세계 산업과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국가들로서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는 전 세계적 경제 위기로 직결될 수 있습니다.
● 해협만큼 중요한 파나마 운하
중앙아메리카의 파나마를 관통하는 파나마 운하는 정확히는 해협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곳은 해협의 반대 개념인 ‘지협’에 해당합니다. 지협은 바다 사이의 좁은 육지를 의미합니다. 파나마 운하가 건설된 이곳은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에 위치한 지협입니다. 20세기 초반 세계를 향해 팽창하던 미국은 태평양과 대서양 간의 해군력을 신속하게 이동하기 위해 지협인 이곳을 뚫어 파나마 운하를 건설했습니다. 파나마 운하가 건설된 덕분에 미국 동부의 뉴욕에서 서부의 샌프란시스코까지 남극으로 빙 둘러 2만 km에 해당하던 거리가 800km로 단축되는 효과를 보게 되었습니다.
파나마 운하를 건설한 미국은 1999년까지 파나마 운하를 소유하다가 현재 파나마로 운하의 소유권을 넘긴 상태인데요. 미국은 자신들에게 지정학적 요충지인 파나마 운하가 위치한 파나마를 절대적으로 보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파나마를 침공하는 국가는 세계 최강 군사 대국인 미국을 상대해야 하는 지정학적 구조이며 덕분에 파나마는 군대가 불필요하게 되어 1994년 군대를 해체함으로써 국방비 지출을 아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파나마 운하는 아메리카 무역의 중심 거점으로서 운하 통행료와 운하로 인한 자유무역지대 및 금융센터 운영 등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파나마 국내총생산(GDP)의 80%에 달합니다. 해협은 아니지만 해협만큼 중요한 운하 덕에 국가 전체가 엄청난 이득을 보는 셈입니다.
안민호 마포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