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문인 길재에겐 정말 대단한 시조 한 편이 있다.
국민 학교 때 암송했던 시조,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불가의 공 사상을 절묘하게 시조로 읊었다. 젊을 때는 청운의 꿈을 품고 질주하다시피 하지 않았던가, 지금 70의 나이에 올라서고 보니 정말 꿈이었다는 것 알겠다. 청운의 꿈도 꿈이잖는가.
점점 정답고 친한 사람들은 곁에서 멀어져 간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고 있으니 마음이 미어진다.
몇 년 전에는 수필가 박종철 선생과 박유석 선생을 잃었고 작년엔 김진광 선생을 잃었다. 금년 들어서는 박광남 친구가 우리 곁을 떠나가고 한국아동문단의 거목이신 이영호 동화작가께서도 금년 초 소천하신 것을 뒤늦게 알고 놀라움과 슬픔을 금할 수 없었다.
멀리 있어 뵙지는 못해도 대한민국의 하늘아래에서 같이 숨쉬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했던 지나날의 기쁨이 크나 큰 슬픔으로 다가오고 있다. 어찌 눈물 없이 보낼 수 있으랴. 엊그제엔 이근구 원로 시조시인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90에 가까운 나이라서 몸도 좋지 않아 농막에서 떠나 병원을 드나드신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문득 문득 그리운 얼굴들이다.
길재의 오백년 도읍지는 개성이겠지만 내 마음의 도읍지는 다정했던 문우들과 가족들이다. 길재는 갈곳이 있었지만 나는 단기 필마를 타고 갈 곳도 없다.
태가 묻힌 고향에 가도 그곳은 이미 내가 살던 소박하고 아름다웠던 꽃피는 산골이 아니다.. 그저 부지런히 작품 속에다 나의 고향과 그리운 사람들을 돌에 새기듯 그리운 정을 새길 일만 남은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강원문학관 건립도 작은 의미가 있다. 많은 문인들의 작품속의 고향이 되는 곳, 강원문학관은 강원문인들 마음의 고향의 집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어쩌다가 강원문학관 이야기가 나왔지만,.......
며칠 전에는 30년 지기 벗이 사는 곳을 찾았지만 사람은 온데 간데 없고 집은 온갖 쓰레기로 넘치는데 창문은 깨어진 채 방치되었다. 그는 아마도 굶주린 끝에, 그가 자주 말하던 옛고향 별나라로 떠나갔을 터였다.
어찌 되었든,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라고 한 그 말이
이제야 실감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