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민박집 방에 엎드려-
지난 여름 한달여에 걸친 남편의 전시회가 끝나고 그들은 지친
마음을 어디 깊은 산 풀잎사귀에라도 내려놓을 양으로 빗길을 재촉해
강원도로 떠났다.
세끼 밥이 졸았다 넘쳤다 하는 일상에서 멀리 벗어나 산간마을 민박집
문간방 여닫으며 한 며칠 피접살림이라도 차릴 요량이었다.
낡은 승용차가 백복령 산비탈 절개지를 감아나갈 때는 차장에 부딪는
세찬 빗줄기들이 헤헤 풀린 국수가닥처럼 마구 뒤엉키며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었다.
"분노를 다스리는 지혜에 있어서는 에스키모들을 따라갈 사람들이 없대
그 사람들은 있지, 화가 나면 눈 앞의 풍경을 향해 끝도 없이 성큼성큼
걷는다는 거야. 그것도 직선으로만!
그러면 자기 몸에 분노를 일으켰던 그 모든 감정들이 죄다 몸 밖으로
빠져나간대 "
조수석에 앉은 아내는 안전벨트를 단단히 거머쥐며 운전석을 향해
선문답하듯 날래게 되받는다.
"해발 칠발백 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이 고지에서 몸이 직선으로 달리
면 마음은 그러면 어디로 굴러떨어지는 거지?"
시속 몇 킬로미터로 달려야 마음이 굴러떨어지는 곳보다 몸이 먼저 마음
내리는 곳에 당도하겠는가.
지금 한창 허공 중에 구르고 있는 상(傷)한 마음을 되받겠는가.
밤을 새워 글을 쓰고 나무를 쪼개고 노래를 빚는 일이 저기 저 하염없이
굴러떨어지고 있는 마음들을 한번 온전히 받아보자꾸나 하는 안타까운
몸짓 아니었던가.
남편의 동공에 한순간 모닥불이 훨훨 타오른다.
차창에도 시트에도 불티들이 난다.
손을 뻗쳐 잡았는가 하니 그냥 그대로 흘러내린다. 구름 그림자다.
눈자위에 어룽거리는 이런 비현실!
그래, 때로는 비현실적인 풍경들이 현실의 참혹한 풍경들을 먹여 살린다
보이는 것들은 몽땅 안 보이는 것들에게 끌려가는 것이다.
아내는 제 손아귀가 여태 거머쥐고 있는 것이 승용차의 안전벨트란 것이
우스워졌다.
이곳은 아직도 이런 곳이 있을까 싶게 적요한 두메마을 민박집이다.
빗발이 서서히 잦아들고 옥수수 댓잎들이 허공을 한바탕 비질하는데,
쓸려나가는 그 소리 너무도 청명하다.
강원도 여량의 귓바퀴 속에서 개암사 풍경소리 뎅그렁뎅그렁 되살아난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개암사 뒤뜰엔 장독간처럼 나란한 부도탑 옆으로
허물어져가는 집 한 채가 있었다.
경허선사가 머물렀다는 오두막이다.
댓돌위엔 빛바랜 고무신 한 켤레가 놓였었는데 , 빗물이라도 고이면
그 속에서 떡두꺼비 한 마리 냉큼 뛰쳐나오겠다 싶게 커다란 고무신이
었다.
그후 다시 들렀을 때는 고무신도 오두막도 사라지고 새로 지은 승방
옆으로 가을 가랑잎들만 스산히 휘날리고 있었다.
책 두어권 올려놓기 빠듯할 벽감 아래 , 사람 한 몸 뉘면 머리맡에
물그릇 하나 둘 데 없이 작은 방!
하염없이 작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그 집과 그 방과 그 커다란 고무신을
떠올리면 아내는 지금도 괜스레 코끝이 시큰해진다.
세상을 향해 고개 빳빳이 쳐들었던 호기로움이 있었다면 그것들도 마저
수그러뜨리리라.
곰팡내 물씬하긴 해도 그 방의 세 곱절은 크다 싶게 널찍한 민박집
방바닥에 엎드려 있자니, 생의 호사란게 제 마음먹기에 따라 순식간에
우주만큼 커졌다 이슬처럼 꺼졌다 한다는 걸 알겠다.
에스키모들은 화가 풀린 지점을 지팡이로 표시해둔다고 했던가.
아내의 종종대는 모습은 옥수수 댓잎사귀에 가려 보이지 않고 물 잔뜩
머금은 매지구름은 기어코 산등성이를 들쳐 업었다.
그들이 한 사나흘 묵고 갈 민박집 뜰에는 늦여름꽃들이 야단스레 붉고
닭들이 구구거리고 암캐는 고물거리는 새끼에게 젖을 물린다.
-시인 김명리-
*문득... 산골 민박집을 찾아 나서고 싶은 마음이....
가라앉질 않습니다. **
카페 게시글
연꽃들의 만남
산골 민박집 방에 엎드려~~
청운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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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1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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