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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 8 - 9 상 :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4. 서머나 교회. ( 2: 8 – 11 )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대,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라. 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개략적으로 볼 때, 에베소 교회가 생명이라면 서머나 교회의 주제는 순교다.
서머나 교회를 기록한 이유가 두 가지다. 예언적으로는 순교시대를 말하지만, 복음적으로나 신앙적으로는 순교의 신앙을 말하기 위해서 서머나 교회가 기록된 것이다.
버가모 교회는 세속화에 대해서 말한다. 세속화의 대표적인 것이 정치와 결탁하는 것, 국교화되는 것이다.
두아디라 교회는 영광으로 교회가 영광을 추구하면 암흑시대가 되기 때문이다. 교회가 세상의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교회는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이지, 세상 영광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사데 교회는 개혁으로 교회는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교회가 변화되어져야 한다. 한번 은혜 받은 것으로 몇 년을 견디려고 하면 안 된다. 매일, 매주일, 매년 교회는 새로워져야 한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선교다. 교회와 성도는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이다. 전도와 선교가 중요하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타락이다. 타락할 때 입에서 토해버린다. 심판받는다. 용서하지 않겠다. 그러므로 타락할 때 빨리 회개하라는 것이다.
전세계 교회에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이 이 일곱 가지다.
계 2: 8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대, (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
주께서는 처음이시며 마지막이시다.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만 참 하나님이시며 오직 그 하나님께서만 온 세상을 주관하신다.
주께서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이시다. 그는 부활이요 생명이시다.
* 요 11: 25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우리가 그를 위해 죽는다 할지라도 그는 우리를 영광스럽게 다시 살리실 수 있고 참으로 다시 살리실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 믿는 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부활의 주께서는 고난받는 성도들에게 큰 힘과 위로와 소망이 되신다.
8-1)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1) 서머나
'서머나'는 에베소 북쪽 약 80km 지점에 있다. 당시 인구가 약 20-30만 정도로 소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도시였다.
'서머나'란 말 가운데 '머'(Myrrh)는 '유향'이란 뜻으로 이곳은 향료 수출지로도 유명하다. 이곳은 호머(Homer)의 출생지이며 학문, 특히 과학과 의술이 발달한 도시였다. 종교적으로는 이교 문화와 종교의 집합처로 황제 숭배의 중심지였다.
소아시아 도시들 가운데서 지리적으로나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그로 인해 복음이 순수하게 전달되지 못하고 황제 숭배가 성행하는 등 혼합화와 박해가 뒤따른 도시였다(Johnson, Kraft).
'서머나 교회'에 대해서는 본 서신 외에 잘 알려진 것이 없으며 다만 '폴리갑의 생애'에서 바울이 이곳에 전도하였다고 전한다(Eusebius). 사도 요한의 제자이며 서머나 교회의 초대 감독이었던 폴리갑(A.D. 155-166)이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① 의미: 몰약, 고난, 순교를 의미.
② 상징: 순교시대.
8-2) 완성자 예수 :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대,
(1) 처음이요 나중 - 완성자 되시는 예수.
'처음이요 마지막이요'는 1: 17-18의 반복된 표현이다.
이는 우주를 창조하시고 역사 전체를 지배하시며 태초에도 계셨으며 역사의 종말에도 계신 그리스도의 주권을 나타낸다.
① 처음이요(창조주 하나님) 마지막이요(재림하실 예수)
② 시작(온 우주의 시작과 기원)과 끝(완성)
③ 창조(에덴동산)와 재림(심판, 새 하늘과 새 땅)
시작(처음, 알파)과 끝(나중, 오메가)은 교회 성전시대의 끝이요 사람 성전시대의 시작이다. 어두운(무지) 밤의 시대의 끝이요 빛(깨달음)의 시대의 시작이며, 죄인, 죽음의 시대의 끝이요 의인, 영생의 시대의 시작이며, 짐승(사람)시대의 끝이요 사람(神)의 시대의 시작이며,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의 끝이요 새 하늘과 새 땅의 시작이다.
(2)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 - 부활의 주.
'죽었다가 살아나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스에게네토 네크로스 카이 에제센'(*)은 두 부정 과거 시제가 사용된 표현으로, 예수는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역사적이며 단회적으로 일어났던 사건임을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계시하신 것은 투옥과 사형의 핍박 가운데 있는 서머나 교회 교인들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함이다(Johnson, Lenski).
구속의 승리 =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예수
* 고전 15: 20. -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계 2: 9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라. (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
주께서는 서머나 교회 목사의 계명 순종과 충성의 행위와 환난과 궁핍을 아셨다.
주께서는 우리의 계명 순종과 충성을 아신다. 또 주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많은 환난과 궁핍을 경험할 것이다.
* 행 14: 22 -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9-1) 칭찬 :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1) 환난(患難) : [영] Tribulation [히] tsar, tsarah [그] thlipsis .
성경에서 말하는 환난[트립시스(thlipsis)]이란 외부상황에서 오는 고뇌, 중압감, 불행을 의미한다. 고뇌를 의미하는 파데마(pathema)와는 구별된다.
엄밀하게 양자를 구별하기는 곤란하다. 양자는 동시에 쓰여 있어 구별하기 어렵다.[롬 2: 9. 8: 35. 고후 1: 6]
성경은 모든 환난을 인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본다. 이사야서는 고난의 종이 불의한 사람들을 위해 고난당한다는(사 42: 1-4. 49: 1-6. 50: 4-9. 52: 13 – 53: 12) 사상에까지 달해 있다.
이 사상이 신약에서는 예수의 수난이다.'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눅 12: 50]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 45]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말씀 중 세례라든가 섬김은 그의 수난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주께서 고난을 겪으셨으므로 우리도 고난을 몸에 져야 한다. 예수님은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자기 피로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 '그런즉 우리도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 13: 12-13]
예수의 수난은 구원에 이르는죄의 대속인 동시에, 구원을 찾아내는근거요, 모범이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일지라도 받으신 고난과 순종으로 온전하게 되셨다. 따라서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다.
* 히 5: 8-10 –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셨다. [벧전 2: 21]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면 겉 사람은 부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게 된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다.
* 고후 4: 16-18 –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 3-4] 예수 그리스도의 환난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며, 참된 환희를 환난에서 찾아낼 수 있다.
바울은 육체에 가시 하나가 자기에게 주어진 것으로[고후 12: 7]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12: 9)고 말한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12: 9-10) 했다.
환난에 대한 많은 기록이 바울의 편지에 나타난다. 특히 복음의 사자로 직면했던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의 용기, 희망, 위로 등 각양의 심경을 아는 실마리가 되었다.[행 20: 23. 롬 5: 3. 8: 35. 고후 1: 4-8. 2: 4. 4: 17. 6: 4. 7: 4. 8: 2. 엡 3: 13. 빌 1: 17. 4: 14. 살전 1: 6. 3: 3,7. 살후 1: 4]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희망으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였다. [롬 5: 3] 이렇게 말하는 것은 고통을 몰라서가 아니라, 환난이 임시적임을 알기 때문이다. 또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불가결의 한 부분됨을 알기 때문이다.
* 행 14: 22 -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 계 21: 4 -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 계 22: 12 –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또한 그리스도인의 고난이나 환난은 구원의 증거이며, 그를 성장하게 하는 힘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 빌 3: 10 -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예수님 때문에 받는 환난이다.
이 교회는 예수 믿는다는 것 하나 때문에 핍박을 받고 순교를 당했다. 여러분들도 남편이 못 믿게 하는데 교회 나온다. 생활이 어려운데 예배 시간을 지킨다. 이것도 다 환난의 종류다.
예수님 때문에 겪는 외부적 고통은 다 환난이다. 바클레이는 이런 말을 했다. '이런 것은 생각도 하기 싫은 것들이지만 예수 믿기로 작정했으면 이런 것들은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
'환난'에 해당하는 헬라어 '들마신'(*)는 '무거운 물건 밑에서 눌려 부서지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신앙으로 말미암아 받는 외부적 핍박을 시사한다.
(2) 궁핍 - 경제적인 가난에 의하여 당하는 고통.
비록 서머나 교회의 목사가 환난과 궁핍 가운데 있었지만, 예수께서는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평가하셨다.
인생의 참된 부요는 물질적인 데 있지 않고 영적인 데 있다. 물질적인 가치는 일시적이지만, 영적인 가치는 영원하다. 주께서는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라고 교훈하셨다(눅 12: 21).
또 가난한 자들이 믿음이 좋은 경우가 많다. 야고보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고 말했다(약 2: 5).
세상에서 가장 부요한 자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만 소망하며 그를 위로로 삼고 하나님의 뜻만 행하며 사는 자이다.
궁핍에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 '페네스'는 상대적 가난을 말하고, '프토케이아'라는 것은 절대적 가난을 말한다.
서머나 교인들은 예수 하나, 믿음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물질의 부를 전부 날려 버렸다. 폴리갑도 그랬다. 예수 때문에 가난해야 한다. 짐이 많으면 수영을 못한다. 수영복만 입어야 한다.
예수를 믿으면 이 땅에서도 물질을 축복해 주신다. 그것은 이 땅에서 누리고, 영광 받고, 타락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큰일을 맡기기 위해 주신 것이다.
'궁핍'의 헬라어 '프토케이안'(*)은 '외적 핍박으로 생긴 물질적인 빈곤'을 나타낸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황제 숭배를 거절함으로 당한 경제적 제재나 적대 감정을 가진 유대인이나 다른 사람에게 당한 경제적 어려움을 가리킨다(Johnson, Ladd).
(3) 핍박의 이유
① 무신론자
② 흡혈귀
③ 가정 파괴자
④ 방화범
* 행 26: 11 -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 롬 5: 3-4 –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살후 1: 6-7 – 6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 고후 8: 2 -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서머나 교회는 외적으로는 환난과 궁핍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고 소유하고 있기에 어려움을 기쁨과 평안으로 대처해 나가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가 크기에 환난과 궁핍은 그들에게는 작고 보잘 것 없게 되었다. 예수의 환난과 요셉의 환난은 영적(靈的)인 신앙(信仰)의 문제로 형(兄)들에게 미움을 받고 버려짐을 당하는 고통의 환난이다.
야곱의 환난은 장자(長子)권의 문제로 형(兄) '에서'에게 미움을 받고 광야로 내어 좇기는 환난이다.
* 계 1: 9 –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 암 6: 6 -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 렘 30: 7 – 슬프다. 그 날이여!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그 날은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그러나 그가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요셉은 꿈(비전, 진리)의 문제로 형(兄)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 가는 환난이요, 예수님은 성전(聖殿)문제로 신앙의 형(제사장)들에게 미움을 받아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는 환난이요, 두 증인도 예언(豫言)의 말씀으로 인하여 바벨론에서 환난이 닥치어 죽게 된다.
* 계 11: 3-7 –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4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5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6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7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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