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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병풍산 가는 길
山如蕉葉卷 산의 형세 파초 잎사귀 말려서 올라간 듯
一掩復一重 한 번 덮고 또 한 겹 묵중하게 덮었는데
巃嵸簇群木 능선 위에까지 밀집한 각종 수목
崔崒聯危峯 산봉우리 삐죽삐죽 연이어 솟아 있네
霜凋氣候凛 조락(凋落)의 계절 으스스 떨려 오는데
風起林壑洶 골짜기에 부는 흉흉한 바람
旭日翳不吐 아침 해도 가려진 채 보이지 않고
宿霧霾仍封 짙은 안개 속 흙비까지 내리는구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6
―― 계곡 장유(谿谷 張維, 1587~1638), 「산행의 소감을 적다(山行記見)」에서
▶ 산행일시 : 2021년 12월 11일(토), 흐림, 안개
▶ 산행인원 : 4명(자연, 하운, 메아리, 악수)
▶ 산행시간 : 9시간 50분
▶ 산행거리 : 도상 14.7km(길을 잘못 들어 뒤돌아온 거리 포함)
▶ 갈 때 : 상봉역에서 전철 타고 춘천역으로 가서, 춘천역 앞 버스승강장에서 시외버스 타고 화천에 가서,
희망버스 타고 간동면 유촌리로 감
▶ 올 때 : 추곡리 버스승강장에서 양구에서 춘천 가는 시외버스 타고, 춘천터미널에 와서 저녁 먹고,
남춘천역에서 전철 타고 상봉역으로 옴
▶ 구간별 시간
05 : 30 - 상봉역, 춘천 가는 전철 출발
06 : 54 - 춘천역(07 : 06 춘천역 앞 버스승강장에서 화천 가는 시외버스 탐)
07 : 46 - 화천버스터미널(08 : 05 간동면 유촌리 가는 희망버스 탐)
08 : 23 ~ 08 : 30 - 간동면 유촌리 버스승강장, 산행준비, 산행시작
09 : 23 - 농로 끝나고 산속 진입
11 : 00 - 750m봉, ┳자 능선 갈림길
11 : 32 ~ 12 : 25 - 병풍산(屛楓山, △796.2m), 점심
13 : 04 - 임도(군사도로)
13 : 37 - 에네미고개
15 : 50 - 656.8m봉, 죽엽산 해돋이 전망대
15 : 07 - 653.5m봉
16 : 20 - 죽엽산(竹葉山, △859.3m)
17 : 12 - 582m봉, 오른쪽 지능선으로 탈출
17 : 44 - 상추곡
18 : 20 - 추곡리 버스승강장, 산행종료(18 : 38 춘천 가는 시외버스 탐)
19 : 15 ~ 20 : 45 - 춘천, 저녁
22 : 00 - 상봉역
2-1. 산행지도(병풍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양구 1/25,000)
2-2. 산행지도(죽엽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양구 1/25,000)
2-3. 산행지도(죽엽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양구 1/25,000)
▶ 병풍산(屛楓山, △796.2m)
서로 가야할 길이 달랐다. 상봉역에서 춘천 가는 첫 전철을 같이 탔는데 킬문 님은 춘천에서 사창리 쪽으로 간
다 하고, 우리는 유촌리로 간다. 새벽부터 안개가 자욱하여 날이 더디 샌다. 희뿌연 아침과 함께 화천에 도착한
다. 간동면 유촌리 가는 희망버스가 아담하면서도 다부져 보인다. 15인승 승합차다. 승객은 그곳 주민 한 사람
과 우리 넷이다. 우리가 대절한 거나 다름이 없다. 도중의 버스승강장을 수시로 안내하지만 타고 내리는 손님이
없어 논스톱으로 달린다.
유촌리가 대처로 간동면소재지다. 유촌리 버스승강장에서 내린다. 이른 아침이라 오가는 행인도 없다. 간동중
고등학교 앞을 지나고 파로호를 다리로 건너는데 안개가 워낙 자욱하여 호수를 알아볼 수 없다. 사방이 그저
광활한 들판으로 보인다. 도송골 고샅길에 들고 곳곳에 색이 바랜 슬레이트 지붕의 집들이 보인다. 60년대 새
마을운동의 산물이다. 농로 따라 오른다. 멀리서 산불감시원 차량의 확성기는 산불조심을 반복하여 외친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니 우리를 쫓아오는 것만 같다. 부지런한 걸음 하여 산속으로 들어가서야 안심한다.
인적은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고 우리는 굳이 능선을 붙잡는다. 오늘 산행의 가장 험로인 하이라이트가 때 이
르게 시작된다. 가시덤불과 칡넝쿨이 잔뜩 우거졌다. 한여름이라면 감히 뚫으려고 덤빌 엄두조차 내지 못할 덤
불이다. 전에 종종 그랬듯이 조금만 뚫고 나아가면 풀리려니 하고 덤빈다. 판단착오였다. 한바탕 땀을 쏟고 나
서 주변을 살피니 뒤로 물러서기도 어렵다. 허우적거린다. 라오콘 군상보다 더 사지를 비튼다.
어렵사리 덤불숲을 뚫었지만 이번에는 사방 어지러이 쓰러진 고사목과 울창한 잡목 숲에 시달린다. 예전에 이
곳에 산불이 크게 났었다. 산불의 최대 피해는 소나무가 당한다. 예외 없이 불에 타서 쓰러졌다. 언제의 일인지
찾아보았다. 2015년 3월 22일 오후 2시에 발생한 산불이 20시간 동안 지속하여 67만㎡의 산림을 잿더미로 만
들었다고 한다. 그 잔해가 아직도 처참하다. 낮은 포복하여 쓰러진 나무들을 뚫고 또 뚫는다.
때로는 안개가 부조도 한다. 고지의 공제선이 바로 저기라 내쳐 가보면 금방 발에 닿을 만큼 뒤로 물러나 있다.
그러면 또 가고. 마치 ‘나 잡아 봐라’ 하듯이 또 물러난다. 공제선이 더 물러날 곳이 없는 750m봉이다. ┳자 능
선 갈림길이 분명하다. 이제 사납던 길이 풀린다. 큰일을 치른 듯 휴식하여 가쁜 숨 추스른다. 비로소 병풍산(국
토지리정보원 지형도의 ‘屛楓山’은 ‘屛風山’의 오기가 아닌가 한다.)이 병풍의 모습으로 보인다. 능선에 무수히
도열한 나무들이 서로 담합하여 자라는지 똑같은 키다.
오른쪽(동쪽)으로 직각 방향 튼다. 부드러운 내리막이다. 그 여세를 몰아 긴 한 피치 오르면 병풍산 정상이다.
처음에는 정상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 좌우로 높이가 비슷하고 정상 표지석이 보이지 않아서다. 데크전망대 옆
에 삼각점이 있다. 2등이다. 양구 25, 2003 복구. 데크전망대에서 아무리 발돋움하여도 전망은 그다지 트이지
않는다. 주변의 키 큰 나무들이 가렸고, 안개 속에 일산만이 아련한 고도로 뿐이다.
강원일보의 2011년 1월 18일자 신 강원기행 ‘화천군 간동면 도송리 병풍마을’의 기사가 무색하다.
“인적 없는 이른 겨울 아침, 파로호(破虜湖)를 가득 메운 새하얀 물안개를 본 적이 있는가. 살을 에는 강바람이
골과 골을 넘고, 물길이 굽이굽이 돌아 모인 파로호에서 한숨 쉬듯 물안개를 피워내는 몽환의 모습을 말이다.
온통 새하얀 물안개로 뒤덮인 호수는 구름 한 점 없는 짙푸른 새벽하늘 아래에서 제 빛을 찬란히 토해내며 화
려함을 뽐낸다.”
3. 병풍산 가는 길, 파로호 근처다
4. 병풍산 가는 길
5. 병풍산 가는 농로 주변
6. 병풍산
7. 병풍산 정상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산(해산)
8-1. 산불은 병풍산 근처까지 번졌다
8-2. 어느 해 봄날 병풍산으로 봄나들이 왔었다. 그리운 얼굴들이다.
▶ 죽엽산(竹葉山, △859.3m)
병풍산 정상 데크전망대에서 점심밥 먹는다. 이 시간에라도 안개가 걷히기를 바랐으나 오히려 일산마저 삼켜버
리고 만다. 오늘도 점심은 걸다. 산상성찬이다. 어묵에 떡살 넣어 먼저 끓여 먹고 그 국물에 라면 끓인다. 날계
란도 두 개 가져왔다. 한층 맛이 더 난다. 식후 마가목주를 듬뿍 넣은 커피로 입가심한다. 그리고 배 먹고 이빨
닦는다.
우리에게 (길을 잘못 드는) 알바는 없다. 다만, 다른 의미 있는 행동에 선행하는 예비동작이 있을 뿐이다. 에네
미고개로 간다는 것을 무심코 북동진하였다. 물론 잘난 길이다. 예전에 방천리 수달연구소 쪽에서 이 길로 병풍
산을 왔었다. 300m 남짓 진행했다. 버너 등의 짐을 정리하다 출발이 늦어진 메아리 님이 뒤에서 방향이 틀리다
며 뒤돌아오라고 한다. 온 길을 곱게 돌아갈 우리가 아니다. 사면을 질러간다.
맨 앞장선 메아리 님이 덕순이 집성촌을 찾았다. 겉으로 드러난 촌장의 위용은 참으로 장대했다. 그러나 약간
과장하면 반경 1m를 살폈으나 촌장을 찾을 수가 없었다. 미역줄나무를 비롯한 여러 잡목들이 서로 자기가 촌
장이라며 고개 쳐들어대니 가려내기가 어려웠다. 그만 포기하고 철수하려는 중에 내가 그 현장을 들렀다. 배낭
벗어놓고 목에 건 카메라도 벗어놓는 등 작정하고 정밀 확인에 들어갔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촌장은 애꿎은
이웃에게 미안했는지 나에게 살며시 손을 내밀었다. 진한 분내를 증표로 보이면서.
병풍산 정상에서 남진한다. 잠시 평탄하게 진행하다가 가파른 내리막을 무릎까지 차는 수북한 낙엽을 지치며
한 차례 떨어지면 전차 주차장이 나오고 임도(군사도로)가 이어진다. 임도는 능선을 왼쪽으로 벗어나 사면을 구
불구불 돌아내린다. 이번에는 능선을 고집하지 않는다. 아까 병풍산 오를 때 잡목과 덤불숲에 혼쭐났던 터라 얌
전히 임도를 간다. 포장도로가 지나는 에네미고개는 양쪽이 깊은 절개지다.
임도가 에네미고개 고갯마루를 너무 벗어나서 사면을 내리기에 내가 척후하여 잡목 숲을 뚫고 곧바로 내렸는
데 낙석방지용 철조망 옆으로 돼지열병 확산방지 철조망에 막힌다. 철조망 안쪽의 덤불숲을 헤치고 출입문 쪽
으로 간다. 병풍산 오를 때 보았던 영금을 또 본다. 에네미고개.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 화천문화원 홈페이지의
이 고장 지명유래에는, “갓골고개〔어남현(於南峴), 에네미고개 〕【고개】갓골 뒤에 있는 고개로 오음리로 넘어가
는 고개이다. 이 고개를 오음리 사람들은 방천(芳川)고개라 부르기도 한다.”라 한다. 이 근방은 6.25때 격전지였
다. 적이라는 뜻의 영어인 enemy를 에네미로 적고 이를 다시 한자로 옮겨 於南이 되지 않았을까?
죽엽산을 향한다. 에네미고개 고갯마루의 낙석방지용 철조망을 벗어난 오른쪽 생사면을 오른다. 이정표도 인적
도 수적도 보이지 않는다. 거의 수직의 가파른 오르막이다. 엎드려 열 손가락을 피켈 삼아 찍어 오른다. 낙석(落
石) 아닌 비석(飛石)할라 앞사람과 어긋나게 오른다. 얼마쯤 올라왔을까 고개 들어 위를 쳐다 보거나 뒤돌아 아
래를 내려다볼 자신이 없다. 납작 엎드린 자세가 흐트러져 스텝이 엉킬까봐서다.
10. 더덕 건화
11. 자작나무 숲
12. 죽엽산 해돋이 전망대에서 바라본 죽엽산
13. 죽엽산 오르면서 바라본 사명산
가쁜 숨도 애써 참으며 능선에 올라선다. 얼떨떨한 정신 수습하여 주변을 찬찬히 살피니 반대편의 잣나무 숲
사면이 완만하여 오르기 수월할 것 같다. 이제 웬만한 오르막은 싱겁다. 막 간다. 656.8m봉. 풀숲이 키 넘게 우
거진 공터다. ‘죽엽산 해돋이 전망대’라는 표지석이 있고 그 옆에 소원을 비는 제단이 있다. 기도발이 시원찮아
서일까 인적이 끊긴 지 오래다. 해는 죽엽산 왼쪽 어깨 너머로 뜰 것 같다.
봉봉을 오르내리면서 고도를 점차 높인다. 오를 때는 가파르고 길지만 내릴 때는 잠깐이다. 그러기를 예닐곱 번
은 거쳐야 죽엽산 정상이다. 그중 780m봉은 특히 가팔라 잡목 숲의 부축을 받아 오른다. 도솔지맥 840m봉에
오르면 가파름은 한결 수그러든다. 고개 뒤로 돌려 수렴 사이로 낙조를 들여다보며 조금 더 가면 죽엽산 정상
이다. 정상 표지석은 없고 도솔지맥 종주꾼들의 표지판이 나무에 달려 있다. 삼각점은 ╋자 방위표시만 보인다.
조망은 사방 키 큰 나무숲에 가렸다.
배낭 벗어놓고 휴식한다. 아무래도 하산은 헤드램프를 켜야 할 것 같다. 일단 목표는 운수현이다. 운수현에서
남릉을 내리면 북산면 치안센터로 추곡리 버스승강장이 가깝다. 죽엽산 정상에서도 내리는 방향을 착각한다.
동진해야 할 것을 북진한다. 100m쯤 가다 나침반을 들여다보고 깨닫는다. 얼른 뒤돌아 동진한다. 도솔지맥 길
이지만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새로이 길을 낸다. 한 차례 급박하게 떨어지고 암릉 왼쪽 사면을 지쳐 내린다.
이 암릉이 가리산, 청량산(오봉산), 부용산, 종류산, 용화산 등 첩첩 산을 바라볼 수 있는 죽엽산의 유일한(?) 조
망처인데 오늘은 짙은 안개와 미세먼지로 캄캄하다. 날은 사정없이 어두워진다. 잔광으로 낙엽을 지친다. 멀리
보이는 운수현 가기 전의 651.1m봉이 대단한 첨봉이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아버렸다. 미리 주눅 든다. 암만
해도 거기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탈출을 도모한다. 우선 육안으로 보고 지도와 대조하여 동네에 가장 가
깝고 완만한 지능선을 고른다.
약 150m만 가파르게 내리면 그 다음은 완만하고 농로까지는 1km가 조금 못 되는 지능선을 골랐다. 적막한 산
중에 우리들의 낙엽 헤집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너무 자주 미끄러지다보니 능선을 고집하기보다는 바
람이 낙엽을 쓸어 맨땅이 드러난 사면으로 비켜서 내린다. 멀리 동네 가로등은 진작 불 밝혔다. 등대다. 산기슭
풀숲을 헤치다 개울 건너 산자락 돌아내리는 임도를 잡는다. 임도는 농로 이어지고 곧 상추곡 외곽도로와 만난다.
양구에서 춘천 가는 막차가 18시 20분에 출발한다. 양구에서 추곡리 버스승강장까지는 15분쯤 걸릴 것. 시간이
빠듯하다. 잰걸음 한다. 46번 국도에 다다르고 많은 차량들이 겁나게 달린다. 다행이 갓길이 넓다. 그래도 메아
리 님이 앞장서서 손전등 불 밝히고 그 뒤를 따른다. 산모퉁이 돌 무렵 북산면 삼거리 직전에 추곡리 버스승강
장이 있다. 물병 꺼내 마른 목부터 축이고, 땀에 전 속옷 갈아입고, 오늘도 무사산행을 자축하는 하이파이브 나
누고 나니 춘천 가는 버스가 달려온다.
14. 죽엽산의 낙조
15. 죽엽산 정상에서
16. 오른쪽 멀리는 부용산
17. 날이 어두워지자 낙엽 지치는 소리는 날카롭게 들린다
18. 종류산
19. 산행을 마치려면 아직 멀었다
첫댓글 이번 산행기는 고즈넉한 분위기가 느껴지네요. 파로호의 짙은 안개를 상상해 봅니다. 반가운 얼굴들 너무 좋습니다.
안개와 미세먼지가 짙어 뵈는 게 없었습니다.^^
당일 산행을 10시간 가까이했으니...전에 사명산에서 보았던 멋있게 죽엽산을,, 이번에는 죽엽산에서 사명산을 제대로 보지 못했네요...낙엽도 더해져 등로가 의외로 험하더라구요..수고많으셨습니다^^
그러게요.
저에게 쉬운 산은 없습니다.^^
하루 알찬 산행 하셨네요. 죽엽산 낙조가 제일 멋집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병풍산을 오르느라 시간과 기력을 소진했습니다.
종류산까지 가려고 했었는데....
역시 고생을 사서 하셨네요
건화가 멋지니 손맛도 짭짤하셨겠어요
산에 캐이 님이 안 보이니 무척 심심합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