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둘람 공동체 (삼상22:1-2)
(요약)
아둘람이란 다윗의 피난시절에 기거하던 동굴 이름으로 ‘피난처’라는 뜻이며 교회의 예표이다. 아둘람이 보여주는 교회의 모습은 1. 가장 낮은 모습이다. 주님이 낮게 오셨듯 교회 역시 섬기는 곳에 위치해야 한다. 2. 교회의 모습은 여러 계층이 모인 것이다. 서로 간에 용납되지 않는 곳이라면 교회의 모습이 아니다. 3. 교회는 환난 당한 자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사랑해야 하며 위로하는 것이어야 한다. 4.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일군을 길러내는 곳이다. 그러므로 비전과 강한 훈련이 필요하다.
(설교)
이 시간에 “아둘람 공동체”라는 제목입니다. 여러분, 교회란 과연 모습일까요? 이것을 알아야 가장 바람직한 교회상을 이루기 위하여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참 교회의 모습을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하는 다윗시대 다윗과 함께 모여살던 아둘람 공동체를 통해서 봅니다.
아둘람이란 유대 중앙산지 아래 기슭에 있었던 유다지파의 성읍입니다. 그곳이 유명한 것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다니던 피난시절에 그곳에 있는 굴에서 그를 찾아온 수백 명이 공동체를 형성하여 장차 나타날 다윗 왕국 미래의 초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곳 이름 아둘람이란 “피난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아둘람 공동체에서 교회의 모습을 봅니다.
그러면 아둘람이 보여주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1. 가장 낮고 천한 모습입니다.
미1:15에 “마레사 거민아 내가 장차 너를 얻을 자로 네게 임하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둘람까지 이를 것이라” 한 말씀대로 가장 낮고 천한 곳입니다. 이곳에 도망치면 찾기 힘들만큼 낮고 험한 곳입니다. 교회의 모습이 왜 그래야 합니까? 낮게 오신 예수님 따라 십자가 지고 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위대하신 분이 가장 낮게 오셨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가장 영광스러운 존재이지만 주님 본받아 가장 낮게 처해야 바른 모습입니다.
예수님 보세요. 세상에 오실 때 가장 낮고 천한 베들레헴 말구유에 나시고 이방의 갈릴리여(마4:15) 할 만큼 이방인 취급 받았던 무시 받는 곳에 오셔서 일하시고 죽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교회는 이 주님과 함께 낮은 자리에 처함이 바른 모습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섬기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 구성원에 따라 고상한 교회일수도 있고 서민풍의 교회일수도 있지만 그 기본은 언제나 섬기는 자세여야 합니다.
사41:14에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그랬습니다. 지렁이처럼 약한 것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지렁이처럼 유익한 것이 또 어디 있습니까? 지렁이를 이용하면 기계가 필요 없을 만큼 지렁이가 농사 다 지어주고 지렁이를 이용하면 공해까지도 다 처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렁이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든든한 일군입니다. 이렇게 지렁이는 낮은 곳에 처하여 섬기기 때문에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교회가 섬기지 않고 섬겨주길 바란다면 그건 참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진정 섬기려면 전주안디옥교회처럼 ‘불편하게 살자’가 우리 표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벨탑만을 쌓는 교회가 아니라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섬기려 하면 하나님께서 복 주셔서 더 크게 해주십니다.
2. 여러 계층이 모인 모습입니다.
1절에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가족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그랬습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을 보면 다윗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기 위해 찾아온 그의 가족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여러 종류의 사람들도 함께 모였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를 이루지만 그들만 모여 있는 곳이 아닙니다. 아직 거듭나지 못한 육에 속한 자녀 아닌 사람들도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도 잡족들이 있었고 그들이 모든 불평과 불신의 원조였습니다. 심지어는 가룟 유다와 같이 마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교회는 누구든지 다 오라 하셨기에 인종과 언어와 나라와 지역과 빈부와 남녀노소와 그 무엇을 초월하여 하나 된 하나님이 부르신 공동체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은 구성원이 되고 어떤 사람은 안 된다고 하면 그곳은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가령 백인만 모이는 교회, 고학력자만 모이는 교회, 부자만 모이는 교회,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들어갈 수 없는 교회라면 이미 교회가 아니라는 말이죠. 이렇게 아둘람은 참교회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 잘 보여줍니다.
3. 상처 받고 환난 당한 자들의 모임입니다.
2절에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했습니다. 다윗 때문에 당시 정권에 의하여 요주의 인물이 되고, 박해의 대상이 되고, 억울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상처 받아 어디다 호소할 데가 없는 사회의 소외계층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을 다 사랑으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러므로 각양각색의 상처 받은 사람들이기에 이 아둘람 공동체는 큰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많은 사람들은 조그만 일에도 상처 받고 또 남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저도 뚝방촌 사람들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데 상처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정상적인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상처를 통해서 교회에 나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면 세상에서 상처 받고 하나님이 아니고는 살 수 없어 위로 받기 위해서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아둘람 공동체 사람들을 인내로서 교육하고 훈련시켰습니다. 신앙의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했습니다. 이렇게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붙들어 주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위로 받기 위해서 모여드는 곳이 정상입니다. 환난 당한 사람들이 아둘람 굴의 다윗을 찾아갑니다. 예수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환난 당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역시 사람들이 찾아오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복지선교입니다. 복지선교의 장점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지요? 초청해도 오지 않는 교회가 아니라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가까이 하다가 모두 신앙인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앞으로 성인병과 노인문제가 사회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할 곳으로 몰려들게 될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어디입니까? 지금은 찜질방이나 병원 한의원이나 농촌 같으면 노인정에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이 사람들 다 교회로 모여야 합니다. 옛날에도 베데스다 못가에서 병 고치려고 모였지 않습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모여야 무슨 일이 되든지 말든지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주님을 영접할 기회가 옵니다. 복지를 통해 사람들이 교회에 모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좋은 목에다 예배당을 짓는 것도 좋지만 어떤 일을 하는 교회가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둘람 굴에서 보여주는 교훈은 상처 받은 자들의 모여드는 곳이 되어야 참 교회라는 것입니다.
4. 하나님 나라의 일군을 길러내는 곳입니다.
2절에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했습니다. 아둘람 굴에서 다윗을 따라 군사 된 사람이 400명이었습니다. 생사를 함께 할 다윗의 군사들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감당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상처를 위해 왔지만 다윗을 보필하는 왕국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쓸모없는 죄인 모아 하나님의 일군 만드는 곳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다윗처럼 일군을 훈련시켜 길러내야 합니다. 훈련 없이 세우기만 해서는 큰일입니다. 조금 늦더라도 성경대로 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빠른 것입니다. 성경은 함부로 안수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은 함부로 직분 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스위스의 제네바에 가면 칼빈이 목회하던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 교회 벽에 돌에 새겨진 그림이 있는데 가운데 예수님이 계시고 왼쪽에 선지자들, 그리고 오른쪽에 사도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모두 그 얼굴을 중앙에 계신 예수님을 향하여 바라보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교회란 예수께서 주가 되신 것으로 주로 고백할 뿐 아니라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곳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둘람의 공동체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이름 그대로 교회가 피난처가 되길 원합니다. 미약하고 상처 받은 여러 계층이 모여 공존하기 어렵지만 아버지의 사랑으로 위로 하고 위로 받고 예수의 복음과 성령으로 훈련 받아 귀한 일군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은혜 받고 신앙훈련 받아 다윗의 군대와 같이 새 시대를 여는 귀한 일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