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에게 "아니!"라고 외친 남자-김훈 '하얼빈' 나가에 아키라의 서평 / 9/13(금) / ALL REVIEWS
◆ 이토 히로부미에게 "아니!"라고 외친 남자
한 청년이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그 남자를 죽여야 한다고. 청년이라고 해도 이제 만 30세. 3명의 아이도 있다. 처자와는 떨어져 살면서 막내의 얼굴은 아직 보지 못했다. 청년의 이름은 안중근.
그 남자는 이토 히로부미. 초대 한국통감. 그 전에는 일본의 총리대신을 4번 지냈다. 한국의 식민지 지배를 추진한 남자. 통감을 그만둔 이토는 추밀원 의장을 맡아 사적으로 만주를 여행한다고 한다.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이토를 쏘기로 한다. 자신이 이토를 죽이면 처자는 조선에서 살 수 없게 될 것이라며 그들을 하얼빈으로 불러들인다.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연지훈 역에 의한 김훈(金薫)의 글은 감정 묘사가 적고 안중근과 이토들의 행동을 담담하게 적어간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같은 문체에서 안중근의 마음과 절박한 1909년 극동의 분위기가 전해진다.
'하얼빈'이라는 제목에 생각이 든다. 하얼빈은 중국 동북부 헤이룽장성의 성도. 19세기 말 청나라 영토였던 곳에 러시아인들이 진출했고, 나중에는 러일전쟁의 무대가 된다. 청국, 러시아, 일본이 서로 부딪친다. 이윽고 만주국의 건국과 붕괴, 국공내전, 중화인민공화국의 지배하로 가는 역사를 더듬는다. 여러 권력자의 의도가 엇갈린 거리. 이 소설은 지도를 펼치면서 읽고 싶다.
이토는 도쿄에서 모지(큐우슈우)를 거쳐 다롄, 뤼순, 봉천, 창춘, 그리고 하얼빈으로 여행을 떠난다. 사적인 여행이지만 여기저기서 환영연이 벌어진다. 러시아 재무장관 코코프초프가 이토와 회담하기 위해 모스크바에서 하얼빈으로 향하고 있다. 안중근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한다. 안중근이 탄 삼등석에는 러시아인, 중국인, 일본인, 한인이 섞여 있고 모두 두툼한 중국옷을 입고 있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하얼빈까지 40시간.
하얼빈이 중국(청)과 러시아와 일본, 그리고 한국과의 역사와 관계를 상징하는 거리라면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와 관계를 상징하는 인간이었다. 통감으로 한국을 보호국화하고 외교권을 비롯한 각종 권한을 박탈했다. 이토는 자신이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뒤처진 한국에 문명을 안겨준 정도의 기분이다. 한국 다음은 만주인가.
안중근(安重根)은 개인으로서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죽이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이토를 죽이는 것으로, 혹은 죽이려 하는 것으로, 이토가 체현하는 것에 「아니!」라고 외치는 자가 있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다.
이토를 쏜 뒤 붙잡혀 다롄으로 향하는 호송열차 안에서 안중근은 생각한다.
"…이토의 나라는 다롄을 습격해 점령하고, 다롄을 발판으로 하얼빈에 진출했다. 하얼빈의 플랫폼은 내가 이토를 쏘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이토가 죽기에도 적합한 장소였다.”
교수형이 집행되기 전 감옥에 면회 온 동생에게 안중근은 "내 시체를 하얼빈에 묻어달라"고 전한다. 한국이 독립했을 때는 내 뼈를 한국으로 옮겨줘. 그때까지는 하얼빈에 있을 거라고. 유언의 영향에 겁에 질린 관리들은 시신을 유족에게 넘기지 않고 뤼순감옥 구내 묘지에 묻었다.
이토 히로부미의 초상은 일본 지폐에 사용됐다. 안중근의 초상은 한국 우표에 쓰인다.
[글쓴이] 나가에 아키라 / 프리 라이터. 1958(쇼와 33)년, 홋카이도 태생. 호세이 대학 문학부 철학과 졸업. 세이부 백화점계 서양 서점 근무 후, 「타카라지마」 「별책 보물섬」의 편집에 종사한다. 1993(헤이세이 5) 또래부터 라이터업에 전념. 철학부터 성인 비디오까지를 표방하며 칼럼, 서평, 인터뷰 등 폭넓은 분야에서 활약 중. 저서로 「그렇다, 쿄토에 살자.」 「책이 팔리지 않는다」 「다실을 갖고 싶다.」 「좋은 집은 「세부」로 정해진다」(공저) 등이 있다.
[서적정보] '하얼빈' 저자 : 김훈 / 번역 : 하스이케 카오루 / 출판사 : 신초샤 / 발매일 : 2024년 04월 25일 / ISBN : 410590194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