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주막酒幕 이야기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도 주막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시설이 있었는데
기록상 남아 있는 것은 없고
조선 임진왜란 때 의병장 정경운이 쓴 고대일록에
주막이란 이름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의 주막은 원이나 역이란 이름으로 주로 관리들의 숙박시설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신라시대나 고려시대 역이나 원의 관리 주체가 정부였다면
주막은 민간이 담당했다는 점이 다릅니다.
민간인들이 다른 지방에 갈 때 주막에 들려 숙식을 하고
가는데 당시에 전국 주막수가 537개였다고 합니다.
특히 지역 특산물을 쌀로 대신 내게 하는 대동법이 시행되면서 무거운 쌀을 짐어지고 특산물과 바꾸러
다니던 사람들이 화폐가 발행되면서 장날이 되면 주막에서 숙박을 하며 일을 보게됩니다.
그래서 이 때부터 전국에 숙박시설인 주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되었다는 군요.
당시의 주막은 잠을 자는 일보다는 술이나 음식을 먹기위해 모이는 장소였는데
일정금액의 음식값을 내면 잠은 공짜로 재워주는 형식이었다고 합니다.
주막의 주 음식 매뉴는 국밥이었는데 이는 공부를 하러 다니는 유생들이나
물건을 사고팔러 다니는 보부상들의 속도감에 맞추기 위한 주막들의 상술이었다고 하네요.
주막은 우체국 기능도 하고 무거운 주전을 일시 보관해 주는 은행 기능도 했다고 합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주막은 경북 예천의 삼강주막으로 요즘은 경상북도가 복원해
옛주막의 정취도 살리고 관광지로써의 기능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경북 예천의 삼강주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