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생태연수원에서 배움의 공동체 연수가 있다.
유명강사를 찾아 외국이나 서울까지 가지 못하더라도 구례까지 왔으니,
참여해 보려하지만, 한편으로 내가 수업에 대해 뭘 공부할까 싶기도 하다.
소위 연구학교를 추진하거나 지역청의 장학사를 할 때 수업을 보고 아는 척을 할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도라 해도 참 오만한 일이었다.
그래도 가고자 하는 건 지리산이 더 가까워서다.
조금 일찍 나서 사도리의 효헌사 부조묘를 보고, 당몰샘에서 물을 채운다.
연수는 얼굴만 내밀고 나와 부지런히 성삼재 구빗길을 올라간다.
가을 28도의 더운 날씨에 에어컨 고장 난 차는 등짝에 땀이 배게 하는데
성삼재에 닿으니 서늘하게 19도까지 내려간다.
3시 반이 다 되어간다. 아마 4시부터는 노고단 입구를 못 가게 할 것이다.
공사중인 너른 길은 내려오는 이들이 많지만 오르는 이들도 있다.
난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는 이들을 앞지른다.
대부분 산책객들이지만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남녀도 보인다.
대피소에 도착하니 53분이다. 잘 올라왔다. 물도 안마시고 바로 노고단 고개에 닿으니
4시가 막 지난다. 공단 직원이 제지를 않는다.
노고단은 구름에 쌓여 있다.
구절초 등은 시들었다. 끝물인 물매화를 보고 아직 피지 않은 용담을 본다.
섬진강 조망처에 서서 구름 사이로 잠깐 드러나는 섬진강 화엄사쪽을 본다.
화엄사 골짜기 몇 산줄기는 햇빛을 보인다.
한 뗴의 젊은이들이 지나간 노고단에서 땀을 식히며 논다.
구례군번영회에서 세운 노고단 돌의 글씨는 학정 이돈흥이 썼다.
이선생의 글씨는 너무 많다.
돌아 내려와 고개로 내려오니 막 고개를 올라오는 남녀들이 완주의 기념사진을 찍으며
시끌벅적하다. 종주팀인가 보다. 5시가 다 되어가는데 어디서 시작한 것일까?
경상도 전라도 말씨가 섞인 걸 보니 서울에서 왔을까?
노고단 대피소를 지나 돌길을 내려오는데 왼쪽에 검은 구조물이 보여 들어간다.
돌과 시멘트로 쌓은 무너진 담벼락이다. 무너진 선교사 별장과 비슷한 재료다.
여기에도 별장이 있었나 보다.
무넹기에서 화엄사쪽으로 편한 길을 잡는다.
조망대 안내판을 보고 차 한대가 서 있는 종석대 입구 앞에서 눈치를 보며
열쇠가 잠긴 목책을 돌아 넘는다.
입산금지 안내판은 보이지 않는다. 감시 카메라를 피해 돌아가는데 아무래도 등산로가 예초질을 해 놓은 걸 보니
통제가 풀린 모양이다. 태풍후의 이파리가 떨어진 길 가엔 풀들이 없다.
나무숲이 끝나고 풀밭이 나타날 무렵 길은 이어지는데 종석대로 오르는 길은 옛흔적 그대로다.
정리된 길로 가지 않고 풀밭사이 능선으로 오른다.
노고단은 여전히 구름에 가려있고 반야봉은 보이지 않는다. 섬진강 구비는 모습을 드러낸다.
미역줄나무 줄기와 잎떨어진 싸리가 몸을 할킨다.
종석대 봉우리에 올라 풀밭의 능선을 따라 간다.
(차일봉인 줄 알았더니 하산해서 지도에서 본 차일봉은 화엄사골의 동쪽에 있다.)
억새는 타풍에 꽃을 잃고 이파리만 석양에 반짝인다.
구례벌판과 섬진강은 또렷하지 않지만 구례 곡성 너머의 산줄기는 색깔을 달리해 보인다.
왕시루봉 주변의 산줄기와 만복대 뒤로의 산줄기도 또렷치 않지만 능선이 유장하다.
먹을 게 없다. 능선 끝 봉우리에서 물 한모금 마시고 어지러운 숲속으로 들어선다.
숲은 여름의 무성함을 잃고 이파리를 잃거나 말라 있고, 더러 꺾이고 쓰러진 나무도 많다.
아직 푸른 낙엽이 덮여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얼마쯤 걸으니 아랫쪽 길에서 사람으 소리가 들린다.
능선을 벗어나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몇번 다녀 본 나만의 길이 아니다.
길이 없으나 거친 넝쿨들이 시들해지고 가시나무도 없어 이끼낀 산속을 걸을 만하다.
10여분 길없는 산을 내려오니 공사중인 길 위쪽이다.
제길을 따라가면 탐방안내소 뒷쪽이 나오는데 미리 겁먹고 길을 놓쳤다.
차에 오니 6시다. 주차비를 4,400원 주고 나온다.
읍에 들러 국밥에 소주 한잔 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지만 참고,
다시 당몰샘에 들러 작은 물병 세개를 채우고 숙소로 돌아간다.
연태고량주는 한번만 적시고 소주로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