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채우는 것처럼 좋은 일은 확실히 드뭅니다. 뱅쿠버에 살고 있는 벗께서 예쁜 따님과 함께 저를 방문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만난 것은 '와인'이 계기가 되었는데, 아무튼 지난번에 잠깐 만나뵈었으나, 제대로 와인 한 잔 '거하게' 마실 시간이 없는 것을 아쉬워하던 중, 제 주중 휴일에 맞춰 채원이의 봄방학 여행 겸 해서 이곳까지 내려와 주셨습니다. 아무튼, 거하게 마시고, 덕분에 저도 시애틀 관광 가이드 해드릴겸 해서 모처럼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으로 함께 나섰습니다. 사실, 시애틀에 살면서도 이곳의 관광 명소인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을 이번처럼 속속들이 뒤져본 적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서울에 산다고 남산 타워 매일 올라가는 게 아니라는 말처럼, 저도 별로 이곳에 '제대로' 발걸음을 해 본적이 별로 없는 듯 한데, 이번에 새로 발견해 낸 이곳의 구석구석과 골목골목의 예쁜 상점들은 아마 앞으로 저를 종종 이곳으로 이끌 듯 합니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엔 사실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습니다. 시애틀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곳으로 불리우는 이곳. 일반적으로 그냥 '퍼블릭 마켓'이라고 불리우는 이곳은 1907년에 생긴 오래된 시장입니다. 솔직히 수퍼마켓의 가격보다 좀 비싸긴 해도, 항상 신선한 야채와 어패류 등이 풍부하고 각종 민예품, 장신구 등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직판장이라 할 수 있을 터입니다. 시장 입구에는 청동으로 만든 돼지 저금통이 있는데 그저 조각상이 아니라 저금통입니다. 레이첼이라는 이름도 있다고 하는데 기부 된 돈은 모두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쓰입니다.
이곳은 애초에 시애틀 인근의 농부들이 이곳에 모여 서로 물물교환하던 장터 형식으로 시장을 열다가, 결국 이것을 상설화 시킨 것입니다. 당시에도 이 마켓이 들어가 있는 자리의 땅값은 금싸라기 값이었기 때문에, 농부들은 이곳을 거의 '무단 점거투쟁'하다시피 해서 결국 시로부터 이 자리에 시장이 설 수 있도록 허가를 얻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건물들도 백년이 넘은 게 허다하고, 시장 구석구석에는 옛것과 지금의 모습이 적절하게 혼재되어 있습니다. 그런 모습 때문에 이곳은 시애틀의 어느 곳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찾으며, 과거 시애틀의 정취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그리움'을 채워주고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이곳에서 골목골목에 숨어 있는 찻집들과 와인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리움의 빈 잔도 넘치도록 채울 수 있었습니다.
문득, 우리나라 피맛골 생각이 납니다. 서울에 있을 적, 툭하면 친구들과 찾아가 막걸리며 약주에 파전이나 다른 간단한 안주류를 시켜놓고, 신나게 마시고 취하던 곳. 가면 늘 친구들이 있던 그곳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 마음 속에 들은 감정은 슬픔이었고, 아쉬움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에 가도 예전에 내가 즐겁게 찾았던 곳들은 하나하나씩 없어지는 모양입니다. 인사동도 과거의 모습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젊음의 군상들이 막걸리에 자신을 맡기며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라오케 같은 것 없이 생음악(?)으로 큰 소리로 노래도 함께 부르고 했던 그곳의 정취가 사라졌다는 데 대해서, 슬픔은 다시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역사가 짧은 미국이야 원래 조금이라도 오래된 것이면 소중하게 간직하고 그 모습을 그대로 지켜내면서도, 낡은 것들은 보수해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우리처럼 낡은 것을 그냥 들어 내어 버리지는 않습니다. 왜 한국은 그 소중한 과거의 모습들을 그대로 둘 수 없는 것인지. 개발이 능사는 아니지 않습니까? 만일 그들이 말한대로 '너무 낡다'면, '보수'를 할 것이지, 뜯어낼 것은 아닙니다. 이들의 개발 삽질 만능주의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가슴으로부터 들어 내어 버리는 행위입니다. 솔직히 이 개발을 주도하는 이들이, '안전'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서 이를 강행할까요? 분명 아닐 터입니다. 그들은 '개발이 주는 이익', 즉 '돈'에 우선 가치를 두고 있을 터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대책없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서의 한 단면을 이렇게 쉽게 없애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중에 우리나라에 가게 되면, 저는 무엇을 바라보며 우리나라를 기억해야 할까요. 아마 내가 지내던 시절의 우리나라는 그때로부터 많이 단절되었겠지요.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정취의 단절을 확인하며, 저는 적잖게 당황하리라는 것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과거의 유산이란 그저 갈아치워야 하는 낡은 것에 불과한 것일까요? 과거 박정희 정권의 구태를 답습하는 이명박 정권의 모습에서 저는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들'에 대한 기준이 정신적인 것에서 물질적으로 바뀌었으며, 그것은 우리에게 미국보다도 더 지독한 물신주의의 뿌리가 되고 있음을 재확인하게 됩니다.
시애틀에서....
무지개 빛깔의 꽃, 그리고 푸른 장미... 이곳의 인기 아이템 중 하나.
포스트 앨리라는 곳에서 바라본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은 조금 틀린 모습을 보여주네요.
워싱턴 주 와인의 전설, '레오네티'를 만났네요....
언제나 사람으로 붐비는 스타벅스 커피의 제 1호점. 관광객들, 특히 한국과 일본의 관광객들이 늘 북적북적합니다. 여기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
출처: Seattle Story 원문보기 글쓴이: 권종상
첫댓글 와~ 무지개 빛 장미 처음 봅니다... 어떻게 저런 장미가 나올 수 있을까...? 대단하네요...
초록 물고기는 또 뭐래??? 세상 살다 저런 고기는 처음 봅니다. 동남아나 호주의 산호초 바다에서 가끔 희한하게 생긴 고기를 잡아 봤는데, 저런 색은 아직 못 봤거든요. 참, 만새기는 잡아 올리면 시시각각 오색 영롱하게 변하더군요.
리마에서 스타벅스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봤는데... 커피 맛이 제 입에는 안 맞데요. 양도 졸라 많고 값도 오살나게 비싸더만... 그 돈이면 소 갈비 두 근 떠다가 싫컨 먹겠더라... 뻬루 촌넘한테는 양촌리 단 커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