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25 전쟁 72주년 아침에•••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 난지 72주년 아침이다. 나는 당시 국민학교에 입학한지 겨우 4개월 째였다. 1953년 휴전을 맞기까지 비행기 소리만 들리면 비상종이 요란하게 울리고, 전교생이 책보자기를 뒤집어쓰고 학교 뒷산 솔밭으로 도망가서 숨곤 했었다.
휴전 후 12년이 되던 65년 입대, 서부전선 최전방 25사단에서 복무했다. 수색대에서는 밤에 보초를 서다 졸면 (북한군이) 목을 베어가거나, M1 소총을 빼앗아 가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부대 구호가 "졸면 죽는다."였다.
배가 고파서 연병장에 떨어진 건빵을 주워 먹고, 부식창고에서 양배추도 훔쳐 먹었다. 그러다가 67년 자랑스러운 육군병장으로 제대를 했다. 그때 병장의 자부심은, 대장 위의 병장이었다. 전방은 병장 정원도 적었고, 또 사단에서 실시하는 총검술에 합격해야 병장을 딸 수 있었다. [M1에 대검을 꽂고 거꾸로 메면, 칼끝이 땅에 끌리던 작고 가녀린 약골이, 감악산 유격훈련도 잘 견뎌냈다.]
이른 새벽 일어나서 달력을 보노라니 만감이 스친다. 빛바랜 앨범을 뒤적여 보았다. 이 사진은 그 중의 한 장이다. 당시 병장 계급장은 (지금처럼 작대기 네 개가 아니라) 갈매기 하나였다. 두 개는 하사, 세 개는 중사 이렇게••• 나는 (80이 된) 지금도 논산훈련소에서 만나, 같은 부대에서 동고동락하다가 제대한 전우들과 연락을 하며 지낸다. 참 길고도 질긴 인연이다.[사진; (1967. 2. 26), 앞줄 맨 왼쪽이 필자]
첫댓글
6.25 전쟁 제72주년 아침에 쓰신 만감에 절대 동감합니다.
그 때는 6.25 동란 또는 사변이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6.25 전쟁' 'The Korean War'라고 변경되었습니다.
김일성 괴수가 일으킨 전쟁으로 참화의 비극은 끝이 없고 현재도 계속됩니다.
저는 1950년에 대전사범부속국민학교 제2학년생이었습니다.
6.25가 발발하여 대전재판소(현재 지방법원)에 근무하신 36세 선친께서 공무원으로 피살되셨습니다.
대전시 삼성동에서 고향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현재 세종특별자치시 반곡동)으로 이사하여 조부모님과 편모 슬하에 자랐습니다.
학창 시절과 군대 생활에서 눈물로 보낸 세월을 잊을 수 없습니다.
6.25를 겪은 세대가 죽음으로 조국을 지켰으니, 전후 세대는 공산주의 사탕발림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 우크라이나의 전쟁 피습 뉴스를 보면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Mikhail Sergeevich Gorbachev)를 존경하고,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Vladimir Vladimirovich Putin)을 저주합니다.
절절한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