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술/ 권순진
은하수 추천 0 조회 167 17.12.23 23:5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술/ 권순진

 

세상에서 가장 맛 나는 술은

로얄살루트 50년산 위스키도

샤또 페트리우스 특등급 와인도

그렇다고 무조건 하산 길 막걸리 한 사발이나

갸우뚱하다보면 나오게 되어 있는 입술

배시시 웃음 짓는 유두주

치사한 공술 따위는 더더욱 아닌

좋은 술친구와 함께 마시는 술

청탁 안주 장소 불문 진실로 맛 좋은 술

 

좋은 술친구란

이야기 안주의 경계와 문턱이 없는

마른명태처럼 쫙쫙 찢어지는

정치판 육담 넘나들다

가족사에 짐짓 진지한 척 귀기울이다말고

문학 동네와 예술판을 휘저어 다니다가

데카르트와 앨빈 토플러를 넘보아도

도무지 어색하지 않은

아무 말이나 섞어 지껄여도

격이 떨어지지 않는

 

이를테면 광화문 뒷골목 대폿집에서

양반 탈 웃음을 달고 다니는

허홍구 시인과 마시는 참이슬 같은 술

.................................................

 

 시라기 보다는 한 인물에 대한 촌평을 곁들인 술 이야기다. 세상에서 가장 맛 나는 술은 좋은 술친구와 마시는 술이고, 내가 알고 있는 술친구 가운데 허홍구 선배만한 사람도 없다는 생각에서 단숨에 주룩 내갈긴 글이다. 허홍구 선배는 대구 출신의 시인이자 수필가이며, 현재 우리말 살리는 겨레 모임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행복하게 어울리는 모임<광화문 사랑방>을 이끌고 있다.

 

 허홍구 시인의 빛나는이력 가운데는 과거 대한음식업중앙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뚝배기> 편집장을 3년여 맡았던 경력이 있다. 기간 동안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잡지를 수억 원의 흑자를 내는 잡지로 탈바꿈시키며 반석 위에 올린 성과가 돋보인다. 언젠가 매일신문의 정인열 논설위원이 문재인 정부에 블라인드 인물심사를 기대하면서 좋은 사례로 허홍구 시인을 언급한 뒤 당시 요식업협회의 편집국장 공모 때의 일화를 소개한 바 있다.

 

 허 시인이 면접을 볼 때 내세울 간판도 없고 드리울 깃발도 마땅찮지만 열심히 할 자신은 있다고 힘주어 말했던 그 진정성이 면접자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발탁된 허홍구 시인이 적자에 허덕이는 잡지를 흑자로 전환시킨 역량에는 나뿐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좋은 술친구였으리란 추측이 충분히 가능한 남다른 친화력이 작용했을 것이다. 좋은 술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주량이 소주 한 병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일 수 있어야 하며 주사가 없어야 한다. 이 가운데 사적인 술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여는 일이다. 밀실의 빗장이 풀려야 화제의 경계와 문턱이 없는 이야기들이 술술 나오는 법이다. 대화의 예의는 차려야겠지만 눈치를 봐야할 필요는 없다. 허홍구 시인과의 술자리가 그러하며 그것은 내게만 해당하는 사항은 아닌 것이다. 그가 만나고 술자리를 갖는 거의 모든 이에게 그렇게 한결같다.

 

 누구를 만나도 함부로 대하는 법이 없고, 선한 웃음과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과의 인연을 맺고 그 연을 소중히 이어간다. 그런 분이기에 마음으로 만난 사람들’ <시로 그린 인물화>란 인물시집도 묶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얼추 삼백 명 가까이 되는 이 시집의 등장인물은 우리 사회 각계각층 인물군상들로서 거대한 인물벽화를 보는 듯하다. 노무현과 김근태가 있고 배철수와 이장희도 있다.

 

 망해서 문을 닫은 식당주인이 있는가 하면 환경미화원이 있고, 스님도 있고 목사도 있다. 계면쩍게도 여러 문인들 이름 틈바구니에 내 이름 석 자도 섞여있는데, 지난 해 연말부터 피차 한잔하자, 한잔 해야지 그러면서 종로 광장시장 그의 단골집으로 가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술을 나눠 마실 기회를 갖지 못했다. 오늘 참으로 면목 없이 결간을 거듭하다가 여러 곡절 끝에 <시와시와> 겨울호 인쇄를 넘기면서 맛있는 술 한 잔과 허홍구 시인이 문득 생각났다.



권순진


 

Under The Blue Sky - Diane Arkenstone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