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은 2014. 8. 1.부터 서울역과 백마고지역을 왕복하는 경원선 D. M. Z. - train을 가동한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휴전선 민간인 통제구역을 운행하는 관광전용열차인 경인선은 도라산행
D. M. Z - train 은 2014. 5.월부터 시작했고 철원안보관광을 겸하는 백마고지역까지 운행하는
경원선을 추가로 운행한다 경원선은 백마고지역까지 관광전용열차를 이용하고 그후로는
안보관광이나 시티투어 연계관광버스를 이용하면된다
경원선D. M. Z.- train은 서울역을 09.;27 출발. 청량리역. 의정부. 동두천. 한탄강. 연천. 신탄리.
백마곶역에 11 ; 44 도착한다 귀가편은 백마고지역에서 16 ; 06. 출발하여 18 ; 35.서울도착한다
안보관광코스는 노동당사. 별공OP체혐. 두루미체험관. 월정리역 관광. 금강산행 전기철도 교량관람.
백마고지 전적빌르 구경할 수 있어 지나간 전쟁의 상흔을생생하게 느끼고 안보체혐이 가능하다
2014. 9. 17. 매봉조기회원 4 명은 강원 철원 안보관광을 다녀왔다
가을의 맑은공기를 마시며 도시의 상념을 잊고 철원의 황금벌판을
바라보며 옛추억을 더듬고 젊은 과거를 회상하며 6. 25. 전쟁의
상흔이 많이 남은 옛걱전지와 열차는 달리고 싶다라는 간판옆에
반세기를 기다리며 다 낡아서 사그러진 흔적을 바라보며 옛 삶의
쓰라림을 되새겨보았다
철원
개요 ¶
鐵原. 대한민국 강원도의 군(郡) 중 하나.
최전방 지대에 위치해 있으며, 군의 북부로 휴전선이 지나간다. 경원선 월정리역의 녹슨 철도와 기차
(철마는 달리고 싶다)가 보여주듯 남북분단의 아픔을 뼈아프게 간직하고 있는 군이며, 노동당사,
제2땅굴 등의 안보 관광지로 손꼽히는 곳 중 하나다.
궁예가 후고구려(태봉)를 세우고 수도로 삼은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鐵原을 우리말로 풀면
'쇠벌'이 되는데, 서울 항목에서 알 수 있듯이 '수도'를 의미하는 '서울'이란 말의 유래 중 하나가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edit]2. 국방 ¶
북한군의 전차가 밀고 내려올 가능성이 확실한 3개 축선중 하나가 위치한 곳이라 군부대가 엄청나게
산재해 있으며(무려 2개 군단, 4개 사단이 주둔중이다 그것도 메이커 사단들이 대거...) 그걸로
모자란다고 생각한 건지 거대한 대전차 방벽이 설치되어 있는데 평야지대를 전부 막고 있다.
안보 관광을 위해 월정리역을 가다가 보면 끝도 없이 이어진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낮은 지역도 5미터
이상 되어 보인다. 북한군도 이를 잘 알고 있어서 제2땅굴을 팠다. 물론 들켰지만.
당연한 얘기지만 휴전선이 있어서 근무하는 군인들이 많으며 양구군, 인제군, 원통 등과 함께 최악의
근무지로 꼽히고 있다. 이곳에서 군생활을 하다 나온 사람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는데,
"내가 다시는 ~~에 가나 봐라."다[3]동송, 갈말권은 강원도 지역 중 유일하게 제3야전군사령부 관할
지역이다.
[edit]3. 자연환경 ¶
평야지대라고 하지만, 사실상 내륙분지지역이라 민간인에게도 여름에 덥고 겨울에 끔찍하게 춥다. 여름의
햇살은 뜨겁다 못해 따갑기까지 하다. 2001년 1월에 영하 29.2도를 기록했고, 비공식적이긴 한데 2010년
1월에 한때 겨울 최저온도가 영하 30.5도에 달했다.
[edit]4. 관광 ¶
한탄강유원지, 도피안사, 철원노동당사, 제2땅굴 등의 관광지가 있다.철원군 동송읍의 고석정과 그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귀뚜라미 보일러에서 운영하는 온천도 고석정 바로 근처에 있으니 1박2일정도 여행으로
다녀올만 하다. 물론 군생활을 철원에서 한 사람은 괴로운 기억이 떠오를 수 있으니 주의! 사실 안보관광 이외에는
그다지 볼거리는 많지 않다. 자연관광은 하다가 잘못걸리면 마인밭 피하기 실사판이 될 터(...)
[edit]5. 연혁 ¶
과거 후삼국 시대에는 궁예가 태봉의 수도로 삼았다. 다만 관련 유적지들은 현재 비무장 지대 내에서 흑역사로
숨죽이고 있다. 철원성 유적은 하필 또 재수없게 휴전선이 정확하게 관통한다.(…) 정확한 위치는 경원선 최북단인
월정리역 정면이 유적터이다. 안보 관광으로 갈 수 있는 월정리 전망대에서 보이나 60년간 자란 무성한 숲이
가려 못 본다. 군에서 철원유적에 직접 들어가 찍은 화보집도 있으며 주요 도서관이나 군부대에 있으나
생각보다 찾기가 어렵다.
강원도에선 몇 안되는 평야 지대다. 수십만년 전에 용암이 나와 지금의 철원, 포천 지대를 메웠고 그것이 철원
평야라고 한다. 그래서 현재도 강원도 최대의 쌀 생산지로 이름 높다. 궁예가 철원을 태봉의 수도로 삼은 까닭도
이러한 입지 기반 덕분이다.
그러나 철원은 웅거하기는 좋은 땅이었지만 수도로서는 한계점이 많았다. 철원 평야와 평강 고원의 쌀
생산량으로 수도의 인구와 군사를 먹여살리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으며, 외부에서 물류를 공급할 육로,
특히 수로가 없었다. 당시 철원에서는 가는 포 1필로 쌀을 5되밖에 살 수 없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무열왕 때 경주에서는 포목 1필로 쌀 450~650되를 살 수 있었고물론 이 수치는 엄청난 과장으로
취급받긴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20~40되를 살 수 있었던걸 보면, 조선 시대의 쌀 생산량 증가를 고려하더라도
당시 철원의 물가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철원군 동송읍에서 임꺽정이 활동해 고석정 맞은편 강에 석성을 쌓고 관군과 대적하였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원래의 지역특성에다가 경원선과 금강산선이 분기되는 교통의 요지라 엄청나게
발전했지만[7], 남북이 분단하면서 북한이 남침을 준비하는 지역인 철의 삼각지대에 속했다. 북한강원도의
도청소재지로 발전도 했으나,
1948년 원산으로 도청이 옮겨가며 몰락하기 시작했다. 끝내 한국전쟁이 터지면서부터 폭격을 받기 시작했고,
전쟁이 중반을 넘어가자 북한군과 국군은 철원을 포함한 철원평야를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전투를 벌였다.
이로 인해 철원역과 당시의 시가지는 흔적만 남기고 모두 파괴되었으며, 지금은 무인지대다.
참고로 철원에서 엄청난 격전이 벌어진 또다른 이유는 당시만 해도 쌀은 나라의 근간이었기 때문에
곡창지대를 잃으면 큰 손실이었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철원을 점령하기 위해 직접 지휘했다고 전해지는
김일성고지가 북한이 점령한 철원에 있는데, 북한군이 전투에서 져 결국 철원 점령에 실패하자 3일간 거기서
울고 두고두고 아쉬워 했다고 한다[8]
[edit]6. 행정구역 문제 ¶
강원도지만 도청소재지인 춘천시, 강원도에서 가장 큰 도시인 원주시보다 경기도
연천군, 포천시 쪽에서의 접근이 훨씬 쉬우며 법원, 검찰, 세무 업무는 모두 의정부지법,
의정부지청, 의정부세무서 관할일 정도로 실생활권이 경기도이기 때문에 경기도로
편입하자는 떡밥이 돌기도 한다.
그러나 군민들 여론은 경기도 편입을 바라고 있지만 경기도에서 반응이 시큰둥한데다 강원도는
철원군을 그렇게 홀대하고도 철원이 경기도로 가는건 필사적으로 막고... 철원군민들 사이에서도
김화권 주민들은 경기도 편입을 반대해서 철원 & 동송 & 갈말권 주민들과 싸우기도 한다.
현재는 김화 지역에서도 편입 여론이 높아져 있다.
D. M. Z. - train 열차 (서울 백마고지역간 운행하는 관광열차)
2호차내에 매점과 방송실이 있다
관광열차 운행하는 역이름
달리는열차안에서 촬영한 도봉산 전경
역에 싸여진 돌탑
황금색의 철원 평야
철원백마고지역 전경
철원 안보 관광 버스
안보관광버스요금 지불
관광출발을 준비하고
백마고지역 간판
백마고지역 유래비
철원 군민이 마련한 토종 식사
두루미평화관은 2003년 건립된 건물로 관전리에 있는 노동당사의 건물구조와 같은 방식으로
건축하였으며 처음에는 농산물직판장 및 식당 숙박시설로 운영할 계획 이었으며,
현재 전통 테마마을 선정으로 마을 운영의 숙박 및 음식점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두루미평화마을의 두루미평화관은 건평 160평으로 대지면적이 1천여평의 건물로 두루미평화마을에서
각종행사 및 식당, 숙박시설로 활용하고 있으며 추후 증축하여 현재 지상 2층의 건물을 4층의 건물로
확장할 예정이다.
영화상영및 세미나등의 행사장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
관광객을 환영하는 현수막
호 상허(尙虛)·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 강원도 철원(鐵原)에서 출생하였다. 휘문고보를 나와
일본 조치[上智]대학에 수학하였으며, 《시대일보(時代日報)》에 《오몽녀(五夢女)》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구인회(九人會)에 가담하였고, 이후 이화여전 강사,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 학예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1930년대부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가마귀》 《달밤》 《복덕방》 등의 단편소설은 인물과 성격의 차분한
내관적(內觀的) 묘사로 토착적인 생활을 부각시켜, 완결된 구성법과 함께 한국현대 소설의
기법적인 바탕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작중 인물들은 회의적·감상적·패배적 성격으로 부각되어 작품 전체가 허무와 서정에 깊이
침윤되었지만, 때로는 그 속에서 현실과 밀착된 시대정신에의 추구를 지향하기도 했다.
《문장(文章)》지를 주관하다가 8·15광복 직전 철원에서 칩거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포섭되어 활약하다가 월북하였다. 그의 단편 《해방전후(解放前後)》
(1946)에서 이러한 문학적 변모를 확인할 수 있다. 작품에는 앞에 든 것 외에 소설집
《구원(久遠)의 여상(女像)》 《딸 삼형제》 《사상(思想)》 《해방전후》 등이 있으며,
문장론《문장강화(文章講話)》가 있다.
이태준 선생은 우리나라 작가중 가장 많은 연구대상이며 이태준을 연구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사람이 가장많은 작가입니다. 또한 거의 유일하게 그의 호를 딴 상허학회라는 교수들
중심의 모임이 운영되고있을만큼 우리 문학사에 토대가 되는 사람입니다.
백마고지 전적비
백마고지전승비
백마고지 전승탑
백마고지 전투는 한국전쟁 기간(1950.6.25~1953.7.27)중 1952.10.6부터 10.15까지 10일간
한국보병 제9사단과 중공군 제38군3개 사단이 전력을 기울여 12차의 백마산(해발395m)고지
쟁탈 공방전을 벌인끝에 국군제9사단의 승리로 조국을 지킨 세계 전사상 유래가 없는
치열한 전투가 이곳 백마고지에서 있었습니다.
백마고지 전사자 위령비
백마고지 전투에 대해 설명하는 군 요원
백마고지전투 전적비
강원 철원군 철원읍 북서쪽 약 12km 지점인 휴전선 북쪽
건립취지 :
해발 359m에 불과한 능선 이지만 백마고지 전투는 6.25전쟁중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고지 쟁탈전이었다.
1952년 10월 6일 중공군의 대공세로 10일동안에 걸쳐 대혈전이 계속되었고, 백마고지 전투는 쌍방의
포탄 낙하가 30만발이나 작렬했고, 고지의 주인이 24번이 바뀌었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은 1만 4천여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국군 9사단은 백마고지의 대승을 계기로 백마사단이라
명명되었다. 쌍방간의 포격으로 산이 본래 모습을 잃고 마치 백마가 누워 있는 형상과 같다하여 백마고지로
불리게 되었다.
당시 이 백마고지 사수를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 산화된 육군 제9사당 장병등의 넋을 추모하기 위하여
철원군 철원읍 산명리에 전적비를 건립하였다
전투개요
1952년 10월 6일 저녁 장융후이[江擁輝]가 지휘한 중국 인민지원군은 제38군단의 6개 연대에 지원부대병력을
합하여 총병력 4만 4,056명을 이끌고 철원 서북방 395고지를 공격했다. 국군은 김종오 소장이 지휘하는 제9사단
예하의 제28·29·30연대 병력 2만 명에 국군 제51·52·53포병 대대, 국군 제53전차중대, 미군 제214자주포병대대,
미군 제955중포병대대, 미군 제73전차대대 등의 지원을 받아 중국 인민지원군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9일 동안 12번의 공방전 끝에 중국군은 1만여 명, 국군은 약 3,500명의 사상자를 냈고 10월 15일 오전에
국군의 승리로 끝났다. 백마고지는 광활한 철원평야 일대와 서울로 통하는 국군의 주요보급로로
군사지정학상 요충지였다.
이 때문에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는데 심한 포격으로 고지의 모습이 백마(白馬)같다 하여
백마고지로 불리게 되었다. 국군을 승리로 이끈 요인은 우수한 정보활동과 보병과 포병 사이의 적절한 협동,
공군의 항공근접지원, 전투부대의 적절한 임무교대 등이다.
배마고지 전투에서 사망한 군인에 대한 묵념
전투당시 사단장 김 종오 장군 흉상
당시전투사항 설명
전적비
기념관 위쪽에 백마고지를 바라볼수있는 전망대가있다 이곳에 평화를 기리는
누각인 상승각이 평화의 종과 함게 세워져있으며 상승각 넘어 넓게 펼처진
철원평야와 백마고지가 있는데 철책과 멀지않은곳에 북한 땅도 바라보이는
이곳은 군 보안상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전망대에 건립한 종각 (1년에 두번 타종한다고함)
백마고지 전경 (백마고지는 군사분계선 안에위치함)
백마고지 모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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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9월 16일이면 최근이네
철원이 강원도인건 처음 알았시유 철원을 쥐뿔나게 갔었지만 경기도인줄 알았지베
노친네들 운전하기 싫은데 자~알 되었구먼요.
철원평야를 뺏기지 않으려고 많은 피를 흘리면서 사수한 백마고지.
꼭 가볼만 하더라구요. 특히 젊은이들이.
아...이런 열차가 있었군요.
언제 한번 짬나면 꼭 가봐야겠습니다.
철원군민들이 마련한 맛있는 음식도 먹을겸...~~~ 먹순이는 어쩔 수 없나봐요....ㅎ
감사합니다. 좋은정보 주신 도계오빠님...~~ 매일매일이 행복하세요.
오!!!! 백마고지 백마고지 용샤들아 !!!!! 백마고지 전투 참여 중대장 구본원 님과
선산 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며 전투 체험담을 듣고 또 들었는데 ......
서울서 열차로 갈수 있는 소식을 전해 주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