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光福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담배 가게 아가씨와는 거리가 먼 얘기지만 시방 나는 마음씨가 착한 순댓국집으로 국밥 사먹으려고 간다. 그 집에 농담 잘 받아 주시는 아주머니가 알 듯 모를 듯 웃음을 지으며 슬그머니 순대 몇 점 더 넣어 주시거든. 내일도 가야지. 모레 또 가야지.
그러나 꽃은 아무 때고 피지 않는다. 날이 궂거나 화창하거나 바람이 일거나 적당히 때가 되면 피고 또 진다. 오늘 딱 걸렸다. 화창하지도 않은데 바람난 나무가 미소를 짓는 꼴이다. 아내가 대문 밖에서 나를 먼저 쳐다보고 뿔이 났던지 들어서자마자 소낙비처럼 한마디 쏴 붙인다.
‘점심에 뭘 자시고 이빨을 쩝쩝 쑤시면서 와요?’
‘으응, 어금니 사이에 뭐가 깊이 끼어서 신경을 쫌 건드네.’
‘아이쿠 못살아! 음식을 깨끗이 먹을 일이지 왜 질질 흘리고 먹어요?’
‘그렇구나. 청양고추 먹다가 재채기하는 바람에 고추장이 튀었나 보네!’
늘 그런 것은 아닌데 이렇게 불안한 날이 있다. 아침에 흰옷 입고 나갔으나 벌겋게 고추장을 묻혀서 왔으니 화도 낼만 하지. 하지만 어디서 실컷 뒹굴다 옷이 요 모양으로 구겨졌냐고 따질 때는 나도 억울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래서 숨을 곳을 은밀히 찾는다. 가령, 어려서 이웃집에 살던 순이 꼬셔내어 손목이나 한번 잡아볼까(?)
소나기 피하고 나면 햇볕이 기승을 부린다. 그것이 남자의 속성이다. 정력이 좋아진다고 하니 풍천장어가 단박에 동이 나고, 불로동(不老洞) 맛집마다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하기는, 우리 사회가 가슴에 털이 무성해졌다 할까. 확실히 섹시해졌다고 봐야한다. 백세사회 백발을 휘날리며 틈만 생기면 마누라 AAA(중점관리)망을 빠져나올 궁리만 하니 말이다.
인사동이나 안국동에 가면 노랑봉투 든 중년과 노년을 심심찮게 본다. 틀림없이 시인이거나 수필가다. 간혹 소설가도 있고 동화작가들도 있을 수 있다. 그들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들을 귀신같이 알아낸다. 아내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허기진 몸으로 그 길을 걸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엊그제 친구와 이상과 현실의 견해 차이 때문에 막말을 했다. 서로 말끝마다 토를 달아 싸움의 정도가 노인답지 않았으니 친구야, 내가 너의 자존심을 흔들었다면 망언을 용서하라.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서로의 어깨가 되어줄 거 같아서 묻어둔 속내를 뒤집어 보인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나이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기도 하지만 자괴감에 시달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너를 보면, 솔직히 두렵기도 하고 유쾌하지 않을 때가 있거든. 아직은 가장으로서 의무감, 남편으로서 책임감, 믿음직한 아버지로서 자상함, 그리고 나아가서는 영원한 ‘궁민(國民)아저씨’가 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의 꿈이기에 ...
친구야, 오늘이 광복 70년 되는 날이다. 해방은 됐으나 일본이 저지른 만행의 트라우마 때문에 언제나 편치 않았다. 그리고 ‘우리의 소원은 반공/통일’이라고 외치면서 늘 긴장 속에 살아온 우리다. 정말 우리 생전에 만세를 부를 날이 올지, 더는 사상과 이념에 휘감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친구야, 한가한 노년을 위해서 이 막바지 고비를 잘 참고 견디자. 철모르고 까불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마는 잃어버린 청춘을 탓하지 마라. 우리 가슴에 풀이 무성하게 돋았으면 좋겠다. 먼 밖의 친구를 불러들인다는 그 고상한 천리향 같은 풀꽃 말이다. 힘들더라도 부드럽고 아름다운 노인, 인자한 할아버지가 되자.
첫댓글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베어 나옵니다. 이 무더위에 선생님 건안 하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