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그다지 믿음직하지 않았다. 서편제가 백 만을 돌파하고 쉬리가 그 뒤를 이어도 가슴 속에는 웬지 헛헛한,
그러다, 친구는 친구를 불러모아 대한민국 웬만한 젊은이라면 '니가 가라, 하와이!'라는 경상도 말을 앳적이 말처럼 스스럼없이 하게 되고 이어서 실미도에 태극기까지.
그 사이, 약간의 관객들이 약관의 이야기를 하는 '고양이를 부탁해'나 80년대 테이프 세대를 아우르는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말 그대로 '선전'은 했지만, '라이방'도 '꽃섬'도 어느 시니컬한 시네마메거진의 입담에 그치고 말았으니.
드디어 2005년, 각종 허다한 한국영화들이 '나도 합네'하고 들이밀었던 03년 04년이 지났다. 허구헌날 스타시스템을 동원한 로맨스요, 시장통 자본을 들이댄 블럭버스터요, 떠들었지만 잔챙이는 잔챙이의 껍질을 벗지 못했으니, 한물 간 줄만 알았던 고수들이 나타나 '쿵푸허슬'을 휘두르고 쉰 줄의 폴리스가 맹위를 떨치니, 7년을 땅에 품어 7일을 우는 매미 꼴이 한국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판국에...
비디오도 고장난지 오래, 주머니에 돈 떨어진지도 오래, 그 핑계로 영화는 내 문화수준에 비추어 하도 월등하여 근접하지 말자고 다짐하였지만 새삼 그때 그 사람들이 다시금 부활하여 콘스탄틴을 부르고 있으니 웃자니 울고 싶고 울자니 속이 뒤집혀 한 마디 아니 할 수 없다.
이야기를 하기 전 먼저 고백할 건, 나는 아직 그 영화를 보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어쩌면 그 영화의 제작사나 홍보대행사의 마케팅 전략에 놀아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먼저 밝힐 수밖에 없다. 보니까 그 영화사가 강제규 필름과 명 필름이 합작한 MJK인가 하는 것 같던데, 그렇다면 충분히 그럴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몇 마디 하려고 한다. 그러니 좀 이상해도 욕하지 말 것.
쓸데없는 말이 많았지만, 어쨋든 이번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상영제한 판결은 있을 수 없는 일임에 분명하다. 그것은 법과 예술 그리고 미학과 시대정신 모두에 걸쳐 그러하다. 물론 내가 법, 예술, 미학, 시대정신(정치)에 관한 전문가라서 그렇지는 않다. 나는 이 시대에 사는 보통의 범인으로서 우리가 이해하고 수용하는 상식적 테두리에서 그렇다는 말을 하는 것뿐이다.
먼저, 법원은 '오바'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천부인권적 권리이다. 그것은 그 다른 어떤 무엇보다도 앞선 권리라는 것을 말한다. 물론 명예훼손 역시 정당한 자기 방어의 권리이다. 그러나 명예훼손은 '명예'를 훼손한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지 가치를 판단하는데 있어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이완용을 보고 매국노라고 욕한다고 이완용이 명예훼손이라 소송 건다는 걸 상상해 보라. 웃기지도 않는 일 아닌가. 사실에 근거해 풍자와 조롱을 하는 것은 예술이나 문학의 기본문법이다. 그 해 10월 26일 음부에 모자를 덮거나 일본식 이름을 불렀다는 사실이 없다 해서 그것이 사실을 왜곡한다는 예술적 증거는 되지 못한다. 여기서 '예술적'이라는 말이 곧 '표현'이다. 표현의 자유는 사실 공표만의 자유를 뜻하지는 않는다. 창작자의 정치사회적 또는 개인적 취향이나 주의 주장을 폭력이나 강압에 의한 방법 외의 것으로 널리 알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던타임즈'나 '플래툰' 그리고 최근의 '화씨 911'을 명작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는 우리 사회 기득권 엘리트들의 오만불손함이다. 그들은 도대체가 자신들의 생각이 다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설사 '그때 그 사람들'이라는 영화가 박정희에 대해 부적절하고 사실 왜곡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영화를 보는 우리들의 몫이다. 누가 미리 그것을 제단하고 검열한단 말인가. 영화가 왜곡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것은 관객 스스로 토론하고 논의하면서 스스로 도태되기 마련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1 조'라는 영화가 기억난다. 국회의원을 능욕(?)한다고 해서 말이 많았지만 그 영화는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누구도 그 영화를 좋은 영화, 혹은 사회적인 영화라고 말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핵심원리는 '민'에 대한 신뢰에 있다. 국민이 무지하다고 여긴다면 민주주의는 성립하지 않는다. 자신의 판단만이 옳다고 우겨버리면 차라리 국민에 대한 의무교육을 그만 두라. 우리는 한글을 알고 우리말로 된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판단할 수 있다. 나의 판단의 몫을 당신이 대체하지 말라.
세번째는 정치적 불손함이다. 그들은 말한다. 이 영화가 박근혜 죽이기고 한나라당 죽이기라고 말한다. 개가 웃을 일이다. 아니, 개가 울 일이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당신들이 모든 것을 정략적으로 보니 이런 영화 한 편에도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강제규 감독과 명 필름이 그리고 임상수 감독이 열린우리당의 전위라도 된다는 말인가. 우리나라 영화가 허구헌날 사랑 타령이나 하고 섹스 이야기만 해야 한단 말인가. 지겹고 지겹다. 제발 당신들의 불손함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말길 바란다.
네번째는 흥행전략이라는 아주 시니컬한 네티즌들의 태도다. 앞서서도 말했듯이 어쩌면 이런 글을 쓰는 나도 그 일환이 되어버렸느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신이 아닌 이상 제작자들이 이런 파국을 예상하고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으리라 본다. 특히나 임상수 감독의 전작 '바람난 가족', '눈물' 등을 보면 미리 이런 각본을 연출할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든다. 물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말이 많았지만 어쨌거나 영화는 영화로 보아야 한다. 드라마를 보고 주인공을 욕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듯이 영화를 보고 정치적 야욕을 읽는 어리석음도 버려야 한다. 그런 일은 70년대 80년대 혹은 90년대로 끝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그 과거를 깨끗이 씻지 못하고 있다. '즐거운 사라'는 여전히 '어두운 사라'이고 장정일의 어떤 책은 여전히 시립도서관에는 없다.
우리는 지나간 시대를 닦아내기에도 힘이 든다. 그런데 백주대낮에 이게 웬 일인가. 부산국제영화제가 세계 5 대 영화제라고 큰소리 치고 있는 마당에 죽은 박정희가 살아나서 펄떡거리는 한국영화를 난도질 하고 있다.
그러나 역심은 생겼다. 콘스탄틴을 볼까 하고 내심 마음 먹었던 나는 되려 '말아톤'을 볼 것이고 '파송송계란탁'을 볼 것이다. 설 연휴 줄기차게 이어지는 텔레비전 명화극장도 한국영화에 채녈을 맞출 것이다. 그러나 '그때 그 사람들' 만큼은 완전한 필름으로 보고야 말 것이다. 무지화면에 뻥 뚫린 스크린을 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80년대 먹지로 칠해져 나온 '타임'지를 보는 것처럼 오늘을 회상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그 사람들'은 그렇게 무지했노라고 내 자식 내 손자에게 말할 것이다.
역사는 역사로 보존되어야 하고 창작은 창작으로 그 길을 지켜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쉬운 명제이다. 나의 짧은 소견으로는 임상수감독이 그 쉬운 진리를 혼동하고 있는 것같다. 100분토론에서 나타난 그의 우매한 발언은 영화가 가지는 가치를 반감시켰고, 블랙코메디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을
훼손시키고 있는 것같다. 바판은 마땅히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비평을 하는 방식에서 너무도 많은 헛점을 노출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역사적인 사실을 고증하려면 그것에 충실하던지 아니면 확실히 비평을 위한 블랙코메디를 연출하려면 그것에 충실하던지 어중간하게 양다리를 걸친 것이 이런 사태를 만든 것같다.
첫댓글 난 오버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역사를 창작이다라고 명제지우는 임감독이 좀 모자라는 것같은디
역사는 역사로 보존되어야 하고 창작은 창작으로 그 길을 지켜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쉬운 명제이다. 나의 짧은 소견으로는 임상수감독이 그 쉬운 진리를 혼동하고 있는 것같다. 100분토론에서 나타난 그의 우매한 발언은 영화가 가지는 가치를 반감시켰고, 블랙코메디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을
훼손시키고 있는 것같다. 바판은 마땅히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비평을 하는 방식에서 너무도 많은 헛점을 노출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역사적인 사실을 고증하려면 그것에 충실하던지 아니면 확실히 비평을 위한 블랙코메디를 연출하려면 그것에 충실하던지 어중간하게 양다리를 걸친 것이 이런 사태를 만든 것같다.
즉 역사는 창작물이 아니고 사실에 근거한 비판이 따라야 할 것이며, 창작물로서 제 역할을 다하려면 역사적인 니앙스만을 가진체 작가의 생각을 옮겨담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