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사랑방야화
* 개차반 건달
쌍둥이 딸 둘만 두고 있는 정대감 내외는 혼기가 찬 딸들 중 우선 맏딸의 혼처를 백방으로 구했다.
뼈대 있는 집안이라 딸 둘은 어려서부터 예절을 배우고 훈장을 집으로 불러 별당에서 글을 익혀 사서에 이어 삼경에 진입했다.
이뿐 아니라 아담한 키에 이목구비가 반듯해 양반집 자제들이 줄을 이어 구혼을 했다.
정대감 내외는 고르고 고른 끝에 이대감 맏아들을 찍었다. 이대감으로 말하자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세가에, 이대감 논둑을 밟지 않고서는 동네를 다닐 수 없다는 드넓은 땅을 가진 만석꾼 부자다.
사주단자와 함이 오고 떠들썩하게 혼례를 올렸다. 혼례를 치른 새신랑은 신부측 마을 젊은이들과 어울려 부어라 마셔라 하더니 급기야 저잣거리 기생집으로 몰려갔다.
밤은 깊어 삼경인데 신부가 신방에 앉아서 신랑을 기다리는 걸 보다 못한 정대감 안방마님은 자고 있는 행랑아범을 깨워 새신랑을 찾아오도록 했다. 행랑아범은 마당쇠를 데리고 저잣거리로 갔다.
고주망태가 되어 명월관 담벼락에 쓰러진 새신랑을 마당쇠가 업고 행랑아범이 밀면서 집으로 돌아와 신방에 넣었다.
신부는 부끄러워 불을 켜지 못했다.
수정과를 벌컥벌컥 마신 새신랑은 신부 옷고름을 풀었다. 요란하게 방사를 치르자 하얀 요 위에 선홍색 처녀도장이 찍혔다. 동창이 밝기 전에 신랑은 또 한번 신부 위에 올라갔다.
날이 밝자 옷매무새를 갖춘 신부가 아직도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신랑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부는 어머니를 불렀다. 신방을 찾은 정대감 안방마님은 자고 있는 신랑을 보고 까무러쳤다.
지난밤 행랑아범과 마당쇠가 업고 온 녀석은 새신랑이 아니라 저잣거리의 건달이었다.
번듯한 허우대에 세모시 두루마기를 입고서 과부나 기생을 등쳐먹고 놀음판이나 기웃거리는 별 볼일 없는 녀석이다. 건달 녀석을 포박해 광에 가두자, 신부는 별당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눈물만 쏟았다.
날이 훤해져서야 신랑은 동네 청년들의 부축을 받으며 돌아와 신방으로 들어갔다. 신부는 금침 위에 앉은 채 꼬박 밤을 새워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날이 밝았으나 신랑은 신부의 옷을 벗기고 첫날밤 행사를 치렀다. 신부는 애초 신부의 쌍둥이 동생으로 대체됐지만 신랑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날 밤, 남의 눈을 피해 건달과 맏딸은 밤비 속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러고는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정대감의 사돈이 되는 이대감의 권세도 아침 햇살에 서리 녹듯이 사라지고 정대감의 사위는 초시에도 합격 못하고 주색잡기에 빠져 그 많던 재산을 다 날렸다.
뿐만 아니라 처가를 보증 세워 정대감 댁도 폭삭 망해, 정대감 내외는 문중 재실에 들어가 살고 있었다.
그 무렵 10년 전 밤비 속에 사라졌던 맏딸과 건달이 달덩이 같은 2남1녀의 손을 잡고 정대감 앞에 나타났다.
맏딸 부부는 정대감이 준 돈과 안방마님이 챙겨준 패물로 개성에 가서 인삼장수를 해 거상이 되었다.
정대감은 보증 섰다 날아간 집과 논밭을 맏딸 덕에 모두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