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목) 예레미야 21:11-22:9 찬송 183장
11. 유다 왕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다윗의 집이여 너는 아침마다 정의롭게 판결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악행 때문에 내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능히 끌 자가 없으리라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골짜기와 평원 바위의 주민아 보라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누가 우리의 거처에 들어오리요 하거니와 나는 네 대적이라
14. 내가 너희 행위대로 너희를 벌할 것이요 내가 또 수풀에 불을 놓아 그 모든 주위를 사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2: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유다 왕의 집에 내려가서 거기에서 이 말을 선언하여
2. 이르기를 다윗의 왕위에 앉은 유다 왕이여 너와 네 신하와 이 문들로 들어오는 네 백성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 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4. 너희가 참으로 이 말을 준행하면 다윗의 왕위에 앉을 왕들과 신하들과 백성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집 문으로 들어오게 되리라
5. 그러나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노니 이 집이 황폐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6. 여호와께서 유다 왕의 집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가 네게 길르앗 같고
레바논의 머리이나 내가 반드시 너로 광야와 주민이 없는 성읍을 만들 것이라
7. 내가 너를 파멸할 자를 준비하리니 그들이 각기 손에 무기를 가지고 네 아름다운 백향목을
찍어 불에 던지리라
8. 여러 민족들이 이 성읍으로 지나가며 서로 말하기를 여호와가 이 큰 성읍에 이같이 행함은
어찌 됨인고 하겠고’
9. 그들이 대답하기는 이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까닭이라 하셨다 할지니라 (개역 개정)
- 유다 왕가를 향한 경고 -
오늘 말씀은 주로 유다 왕들과 관련하여 예언하는 예레미야의
아홉 번째 설교(21:1-23:8)의 연속 부분으로,
유다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에 대한 예언을 보도한 어제 말씀(21:1-10)에 이어
예레미야가 유다 왕가 전체를 향하여 준 일반적인 권고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즉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을 권하고(21:11-12; 22:1-4)
만일 듣지 않을 경우 하나님께서 유다 왕가와 예루살렘을
멸하실 것임을 경고한 사실(21:13-14; 22:5-9)을 기록하고 있다.
특별히 예레미야는 본문에서 ‘그리하지 아니하면’(21:12), ‘준행하면’(22:4)
‘듣지 아니하면’(22:5) 이라는 가언적(假言的) 용법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권고를 들을 때와 듣지 아니할 때의 결과를 극명하게 대조함으로써
하나님의 권고에 순종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은 21:1-10의 내용에 비해 그 내용의 심각성이 덜한 것으로 보아
시기적으로 21:1-10보다 앞서 주어진 듯하다.
한편 여기서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의 원인이
유다 왕들의 불의에 있는 것으로 묘사하면서도
예루살렘의 멸망의 원인을 묻고 대답하는 이방인들의 말을 빌어서는
그 원인이 우상 숭배에 있는 것처럼 묘사함으로써(8-9절)
서로 모순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 유다 왕들의 불의의 원인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데 기인함을 보여준다.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우상 숭배는
필연적으로 불의를 행하는 악한 생활을 열매로 맺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본문은 중요한 사실 두 가지를 보여준다.
먼저 지도자된 자의 마땅히 행할 책무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따라 공의를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이며
소극적으로는 권리를 남용하지 않음으로써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책무를 소홀히 할 때 지도자된 자는
그의 특권에 따른 심판을 면치 못하게 된다.(마11:22; 약3:1)
그러므로 지도자된 자는 자신의 책무와
자기 위에는 자기보다 더 높은 권위자이신 하나님이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다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정립되지 않을 때
인간 사이의 관계도 바로 정립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그 결과 그들은 죄로 오염된 악한 본성에 따라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정립없이 사회적 불의를 해소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요원한 꿈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를 원한다면
범국가적인 회개 운동을 전개하고 먼저 지도자된 자들이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회개해야 한다.
22:1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유다 왕의 집에
내려가서 거기에서 이 말을 선언하여」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다른 곳이 아닌 ‘유다 왕의 집’
즉 예루살렘 왕궁으로 보내신다.
그에게 말씀을 전할 사명을 주시고 그 사명의 장소를 다름 아닌
유다의 심장부인 예루살렘 왕궁으로 지정하셨다.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당시 ‘유다 왕의 집’ 곧 유다 왕궁에는 어떠한 자들이 거하였는가?
예레미야가 사역할 당시 그곳에는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가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불경하며 사악한 일들을 저지르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왕궁에 머무는 자들도
이와 동일한 삶을 살고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의인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 사람들에게 환영받았을 리 만무하다.
다시 말해 그는 초대받지 못한 사람이다.
이처럼 초대받지 못한 예레미야가 불의를 자행하는 권력자들에게 나아가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의 죄악을 지적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예레미야의 예언 가운데는
바벨론에 투항할 것을 요구하는 말씀이 있는데
이는 당시 친애굽 정책, 반바벨론 정책을 고집한 기득권자들에게 반역자 내지는
바벨론에 사주받은 매국노로 모함을 당할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처럼 초대받지도 못한 예레미야가 불의한 자들의 죄를 지적하고
그들이 원치 않는 메시지를 증거하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천만한 것이며 그야말로 핍박을 자초하는 일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렇다 해도 꺼리지 않고 머뭇거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곳을 향해 나아갔고,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명하신 말씀을 그대로 증거하였다.
물론 그에게도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원치 않는 걸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었기에,
그곳에 갔으며 거기 서서 하나님께서 증거하라 하신 말씀을 전하였다.
이러한 예레미야의 태도는 우리들이 마땅히 거해야 할 삶의 처소,
우리가 서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규정해준다.
그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가라 하신 곳이며 서라 하신 곳이다.
그곳이 아골 골짜기이든 빈들이든,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곳이든,.
영광과 환영이 있는 곳이든 멸시와 천대가 있는 곳이든,
내 생각에 맞는 곳이든 내 생각이나 계획과 다른 곳이든 상관없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 가라하신 곳이라면 반드시 가야하며 거기 서야 한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금하신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이든 가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커다란 이익이 따른다 해도 그리로 향하지 말며 마음조차 두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가라 하신 곳에 가며 그곳에 서 있었던 예레미야의 모습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공통된 삶의 모습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창12:1-5),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출4-5장),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선교한 사도 바울 등등.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은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지극히 높고 영화로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셨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성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목적,
곧 인류 구원을 위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매달리는 자리에까지 나아가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우리)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과연 나(우리)는 합당한 곳에 서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충성되이 여겨
우리가 가야 할 곳, 서야 할 곳, 지켜야 할 곳을 가르쳐 주신다.
우리가 어디에 서서 무엇을 해야 할지 사명을 주시고
보다 구체적인 장소에 보내셨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세상 욕심을 따라
가지 말아야 할 곳, 서지 말아야 할 곳에 서 있는가?
마치 불의의 삯을 사랑하여 발락이 주는 유혹에 이끌려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길임을 알지만 그릇된 길로 나아가다
나귀의 꾸짖음을 들은 발람처럼(민22:28-30; 벧후2:15-16),
믿음을 저버리고 지켜야 할 곳을 떠난 데마처럼(딤후4:10) 행치는 않는가?
내(우리)가 가야 할 곳, 서 있어야 할 곳은
하나님께서 가라 하신 곳이며 하나님께서 서 있으라 한 곳이다.
우리가 그곳을 향해 나아갈 때, 그 자리에 굳게 설 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
우리를 통해 우리가 선 그곳을 복되게 세우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진하지 아니하였으며」 (민9: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