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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 (갈라디아서 6장 1-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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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설교의 제목이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입니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나눔의 미학을 아는 정이 많은 민족성을 가졌다는 것일 알 수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무엇이든지 나누고 베풀면 똘똘 뭉치는 힘이 됩니다. 교회 공동체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옆의 분 한 번 바라보십시오. 오랫동안 함께 해 와서 이제는 가족과 같은 친근한 얼굴들일 겁니다. 눈빛만 봐도 즐겁고 평안하시죠? 내가 가진 모든 좋은 것을 옆에 분에게 다 나누어 드리고 싶으시죠? 맞습니까? 설교의 제목과 같이 저와 여러분들이 지금껏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해오면서 칭찬 받을 정도로 잘해 오셨지만, 앞으로 더욱 더 마음을 열고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누어 가기를 원합니다. 근심도, 상처도, 불안도, 두려움도, 기분 상하는 일도 함께 나누시고, 사랑도, 은혜도, 웃을 일도, 기도 제목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설교 제목에 맞추어 그냥 통상적으로 나누어야 된다고 생각되는 이것저것들을 주욱 나열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하나님께서 앞으로 00교회가, 그리고 모든 성도 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하게 받은 모든 좋은 것들을 함께 나누고 베풀며 살아가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하게 원하고 계심을 느꼈습니다. 반드시 그런 모습의 교회로 성장하리라 확신합니다. 말씀 준비하면서 제가 받은 감동, 제가 받은 마음이 성령으로 인해서 여러분에게도 그대로 전달되기 원합니다. 오늘 선포되는 말씀이 00교회와 모든 성도 분들, 그리고 가르치는 역할이 주어진 저에게도 잘 새겨져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잘하고 있구나, 더 사이좋게 지내라” 칭찬 받으며 건강하게 성장해 나가는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갈라디아서 말씀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기 위해서, 내 자신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무엇을 솔선수범해야 하는지,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마음 자세를 취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제시해 줍니다. 가르침의 교훈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성도와 성도들 간에, 둘째, 교역자와 성도들 간에, 셋째, 공동체 내에서 각 개인의 마음 자세와 행동에 대한 가르침의 교훈입니다. 한 가지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가르침의 교훈은, 성도와 성도들 간에 서로 일으켜 세워주고 짐을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이 교훈은 1-5절에서 다루고 있는데, 교회 공동체 내에서 ‘범죄 한 일’이 발생하였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의 교훈입니다. ‘범죄’를 문자적으로만 해석한다면 바로 곁에서 넘어지거나, 발을 헛디뎌서 실족하는 것을 뜻합니다. 좀 더 구체적인 의미로는, 어떤 것의 옆에서 계속 떨어져 나가는 상황이나, 어떤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점점 넓어지는 현상입니다. 어떤 것의 중심은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곁을 자꾸 떠나가려고 하거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점점 흐려지는 현상이 나타난다면 틀림없이 범죄와 연결이 됩니다. 특히 신약성경에서는 음행, 음란, 성적인 문란과 같은 윤리적인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이 ‘범죄’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언급하는 ‘범죄’는 사기나, 절도, 폭행 등 일반적인 범죄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선 5장 25절에서,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하라”는 말과 연결이 됩니다. 곧 교회 공동체 내에서 성도가 ‘범죄’ 한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육체의 일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자제하고 절제하는 모습이 아니라 충동적이고 자극적인 모습으로 좌충우돌 살아가는 모습이 ‘범죄’ 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준을 적용 한다면 어느 누구도 ‘범죄’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내가 무심코 던지는 말이나 행동이 범죄 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령으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의 언행은 경박스럽고 안정되지 못한 경향이 많습니다. 육체의 일은 자랑하는 것에 관심이 있지만, 성령의 일은 열매 맺어가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공동체 내에서 범죄 하는 행동이라고 한다면, 세상 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사고에 찌들어 있어서 말 한마디 한 마디, 행동 하나 하나에 거룩과 겸손이 사라진 상태를 뜻합니다. 나의 온통 관심사가 돈, 먹는 것, 즐기는 것(여행, 취미), 보는 것(드라마, 방송), 유명 인사(연예인, 정치인, 스포츠인), 휴대전화기(검색, 게임)에 집중해 있다면 나는 잠재적으로 육체적인 범죄자인 셈입니다. 교회 밖에서 이런 관심사들이 주된 화제가 되는 것이야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그렇다고 해도, 교회 내에서 만이라도 자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교회 밖이냐, 교회 안이냐, 장소만 다를 뿐이지 생각하고 말하는 주제에 전혀 차이가 없다면 성령을 근심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범죄’는 숨겨지지 않습니다.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1절에서도 “범죄 한 일이 드러난다”고 합니다. 드러난다는 말의 의미는 어떤 일이 드러날 것을 예상 하지 못한 상황에서 미리 드러나 버려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에서 떠들썩한 범죄가 일어나는 상황을 보십시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게 모범적이고 선량하게만 살아가던 사람이고, 이웃에게 다 칭찬 받고 살아가던 사람이 갑자기 범죄자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 그런 척 위장하고 살아왔지만 어느 한계에 이르다 보면 터질 것은 터지고야 맙니다.
마가복음 4장 22절에, “숨겨 둔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 둔 것은 나타나기 마련이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자신도 미처 대처하지 못할 상황에서 갑자기 드러나는 것이 범죄이기 때문에 아무리 감춘다고 하여도 어둡고 추악한 실체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밝은 빛 가운데서는 어둠에 감추어졌던 범죄도 드러나지만,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아름다움도 함께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숨기면 범죄요, 드러내면 아름다움으로 바뀔 수가 있는 것이 우리가 지닌 내면의 양면성이라는 진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 내에서 이렇게 성령으로 행동하지 않고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범죄의 행동이 드러나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런 경우에 1절에서 세 가지를 하라고 합니다.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범죄 한 사람)를 바로잡으라!, 너 자신을 살펴보아라!,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범죄 한 사람을 바로 잡아주라는 말씀은 누구를 정죄하고 판단하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성령으로 인하여 같은 말을 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함께 행동할 수 있도록 하나의 마음으로 뭉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범죄 한 사람의 행동을 내 자신이 반면교사로 삼아서, 나도 그러한 동일한 범죄 행동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경계해 나가야 합니다.
범죄 한 행동이 발생했을 때 각자가 대처해야할 행동이 2절에 나옵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여기서 “짐을 서로 지라”는 말은, 공동체 내에서 무슨 일어나든지 부화뇌동하지 말고 각자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고통을 분담하라는 뜻이고,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것은 성도답게 성령으로 살아가는 자세를 조금도 흐트러트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건강하고 굳건한 공동체인가, 아니면 허약하고 부실한 공동체인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있는 기준은, 교회 공동체가 평안할 때 보다 범죄 한 일이 발생 했을 때 과연 평소와 같이 하나 됨이 잘 유지 되느냐 깨지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3절과 같이, 개인의 이기심으로 인해, “다른 사람은 범죄 할지 몰라도 나는 이미 다 된 사람이야, 나는 누구보다도 잘 생활 하고 있어”라고 생각한다면 그 공동체는 금이 가기 시작하고 얼마 못가 허물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4, 5절과 같이 자기의 일을 살피고, 자랑하지 않고, 자기의 짐을 묵묵히 지고 가면서, 공동체의 뜻과 행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면 그 공동체는 반석위에 지은 집과 같이 든든하게 설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공동체 내에서는 연약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마음을 닫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공동체의 유익에 큰 장애요인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교회 공동체는 누구를 제외하고, 누구를 무시하는 곳이 아니라 끝까지 사랑하고, 하나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곳입니다. 교회 내에서 돈 자랑, 신분자랑, 학력 자랑, 직분 자랑 하는 것은 통하지도 않을뿐더러 가장 어리석은 행동들입니다. 반대로 무조건 거부하고 담을 쌓고 나 혼자 생활하겠다고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도 옳지 못합니다. 공동체 안에는 내가 져야할 무게만큼 내가 감당할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내가 그 짐을 감당하지 않으면 그 무게는 옆 사람에게 큰 부담이 됩니다. 성도와 성도들 간에는 존중과 배려 그리고 열심히 필요합니다. 온전치 못한 말과 행동을 비판하거나 판단하는 일은 일체 금물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세워주고, 격려해주고,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어서 맞잡아야 합니다. 내 자신이 성령의 사람이 되어서 공동체의 한 축을 거뜬히 짊어질 수 있도록, 내게 맡겨진 짐을 충분히 감당해 낼 수 있는 힘을 길러가야 합니다.
옆에 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옆의 분이 내가 세워 드려야 하고, 섬겨 드려야 하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아야 할 분입니다. 옆의 분이 내 가족이고, 내 형제자매입니다. 옆의 분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내가 대신 지고 가지는 못할지라도 내 짐을 옆의 분에게 떠 맡겨서 힘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00교회 모든 성도 분들이 성령으로 하나 된 가운데, “잘 하고 계시네요. 멋지시네요. 응원 합니다” 침이 마르도록 격려와 칭찬으로 서로가 서로를 잘 세워 드리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제가 하겠습니다!, 더 할 것 없나요? 다음에도 또 기쁨으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자원하고 참여하는 마음이 일어나서 각자에게 주어진 짐을 넉넉히 감당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00교회가 어떤 범죄 한 일이 드러난다 하여도 당황하거나 놀라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서 같은 말, 같은 마음이 되어 하나로 똘똘 뭉치고, 각자에게 맡겨진 짐을 지고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나아가는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가르침의 교훈은, 가르치는 듣는 자가 좋은 관계를 맺으며 생활하는 것입니다.
이 교훈은 6절의 말씀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교회 내에서 가르치는 자는 대표적으로 말씀 선포자를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신앙의 경륜이 오래 되신 분, 신앙적으로 성숙함에 이르러 존경을 받을 만 한 분, 직분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는 분들이 모두 가르치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도 조직이고 목사라는 직책의 대표자와 당회를 중심으로 운영이 되기 때문에, 가르치는 자인 목사와 듣는 자리에 있는 성도들 간의 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목사와 성도의 관계는, 밀어 주고 끌어주는 관계, 멘토와 멘티와의 관계, 상담하고 함께 고민하는 관계, 궂은일이나 기쁨의 자리에 함께하는 동고동락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바울과 디모데가 바로 가르치는 자와 듣는 자의 좋은 모범 사례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이라는 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고 그를 영적인 아버지처럼 따랐습니다. 바울도 디모데를 극진한 사랑으로 보살펴서 복음전파의 사명을 넉넉히 감당해 내는 훌륭한 제자로 양육하였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바울과 디모데와 같은 관계를 이루며 함께 동행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로 우뚝 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했는데 “모든 좋은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여기서 좋은 것은 영적으로 좋고 선한 것들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지만, 물질적인 것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목사와 성도들 간에는 분명하게 영적인 교류,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가 성령이 주시는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가 된다면 어떤 악의 세력도 침투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영적인 교류가 가르침과 선포 가운데, 그리고 듣고 마음에 새기는 가운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여야 합니다. 영적으로 맞지 않으면 내 몸에 착용된 옷과 신발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이 불편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인 것을 함께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물질적인 것도 함께 해야 합니다. 교회는 돈이 모이고 돈을 집행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들어오고 나가는 돈의 쓰임새를 공정하게 하고, 그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기본이며 상식입니다. 어떤 교회들은 성도들이 낸 헌금을 어디에다 쓰고 있는지 성도들이 공개하라고 요구하면 비밀이라고 해서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건 논쟁의 여지도 없이 100% 공개해야 합니다. 당연한 것을 가지고 소모적인 논쟁을 하지 않는 것이 물질적인 좋은 것을 함께 하는 일입니다. 또 재정운용에 있어서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집행이 아니라 논의와 검증의 과정을 거쳐 운영해야 합니다, 가르치는 자와 듣는 자들이 재정 사용에 있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 집행해야 합니다. 물질, 재정 때문에 분쟁이 생기고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면 인간의 기본심리가 돈에 집착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돈이 민감한 문제이긴 하지만, 돈 보다는 주님이 세우신 예배당이 우선이고, 주님이 귀하게 여기신 한 사람의 생명이 우선입니다. 가르치는 자와 듣는 자가 재정적인 것을 함께 하되 기본과 상식에 입각하여 처리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영적인 것, 물질 적인 것을 함께 하라는 내용은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말씀인데, 제가 가르치는 자로서 듣는 여러분들에게 진짜로 말하고 싶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는 제 진심은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향한 마음을 좀 더 열어 주시기를 원하고, 저를 통해 00교회를 향해 주시는 주님의 뜻을 이해하시고 받아들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평안의 줄을 제시하면 그 줄을 여러분들이 한 분도 놓치지 마시고 잡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향한 제 마음의 진심이 통하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한 걸음씩 나아가려 합니다. 선포되는 말씀이 여러분들의 영의 양식이 되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품질이 떨어지는 쌀로 설익고 뜸 안 들여진 부실한 밥을 해서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성경 말씀과 씨름하면서 선포되는 단 한글자도 성령의 감동을 구하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진 역량 안에서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강력한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단지 여러분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려는 열정과 의지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역사는 오직 성령이 하실 것이고, 여러분들이 가르치는 자의 말씀을 집중해서 듣고 취하신다면, 저와 여러분이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는 영적인 교통교제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도 마찬 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다 형편을 압니다. 넉넉하지 못한 재정으로 살아가는 소시민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자족하며 감사하는 일체의 비결을 알게 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계십니다. 돈이 부족한 것이 생활의 불편과 장애를 가져 오기는 하지만, 인생을 비참하게 만드는 낙심과 좌절을 불러 오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랑, 은혜, 용서, 구원, 천국... 이 세상이 주지 못하는 진리의 보배가 몸과 영혼에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진 돈은 없지만 있는 한도 내에서 여러분들에게 돈 쓸 일 있으면 팍팍 쓰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진짜로 돈을 쓸 줄 아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실제로 섬기고 식사도 대접하고 차도 마시고 대화도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저는 언제든지 그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오을 당장 저와 식사를 하고 싶으신 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00구에서 가장 맛있는 집에서 식사를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부탁도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위해 아낌없이 쓰십시오. 저도 부담스러워 하지 않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령이 주시는 감동대로 나누고 베풀고 함께하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교제의 뜻일 것입니다. 언제나 저를 이용하셔서 상담하시고 기도제목도 주셔서 가르치는 자와 듣는 자로서 아름다운 동행을 해 나가기를 원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친구와 같이, 가족과 같이, 스승과 제자와 같이, 영적인 모든 좋은 것과, 물질적인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는 영원한 사랑의 동반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가르침의 교훈은, 공동체 내에서 각 개인의 마음자세와 행동에 대한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7-11절의 말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각 개인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취해야 하는 자세와 행동은, ① 선을 행하라 ② 낙심하지 마라 ③ 포기하지 마라 ③ 때가 이르면 거두리라 는 것입니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희망적이고 격려를 담은 메시지들입니다. 이 네 가지 자세와 행동의 기본은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이 적용됩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심었는지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니 속이지 말라고도 합니다. 그러면서 육체로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합니다. 우리 각 개인이 공동체 내에서 해야 할 것들은 온통 성령과 관련이 있습니다. 내가 교회 내에서 어떤 마음, 어떤 자세로 있어야 하는가? 의 정답은 ‘성령’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성령과 함께 하는 사람은 나보다 우리, 곧 공동체를 지향하도록 인도 받습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지식과 능력으로는 어떤 것을 심고, 얼마만큼 거두었다고 평가 받든지 하나님의 시선에서는 다 썩어져 버릴 것들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성과라도 성령으로 인하여 심겨진 것은 영생의 길로 나아가는데 큰 칭찬과 상급으로 평가 받을 것입니다.
성령으로 심는 다는 것이 영생과 관련 되어 있다는 것은,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말해줍니다. 성령으로 심는 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적용해 보겠습니다. 10절에,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여기서 가정은 우리 각 가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공동체, 즉 교회 공동체를 말합니다. 믿음의 가정들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령 안에서 하나 된 형제자매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심는다는 것이 무엇을 해야 하는 일인지 어렴풋이 짐작이 되실 것입니다. 성령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마음중심과 행동이 교회 공동체를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하나 된 형제자매들, 바로 여러분들의 옆에, 앞에, 뒤에 앉아 계신 분들과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늘 생각하고, 기도해 주는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평소의 마음과 행동은 어디에 우선이 되어 있습니까? 00교회 입니까? 아니면 직장입니까? 내 가족 입니까? 아니면 주님 안에서 형제자매 된 교회 가족들 입니까? 교회를 향한 성령의 마음이 여러분 마음 안에서 끊임없는 열정으로 솟아나길 바라고, 행동으로 까지 옮겨지기를 원합니다. 부탁드리는 것은 교회를 자주 오십시오. 교회는 사람이 자주 모이고 들썩들썩 해야 살아 있는 모습이 됩니다. 성령이 크게 역사하신 초대교회의 부흥도 자주 모이기에 힘쓰면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공적인 예배(수요, 금요, 주일+새벽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성령이 이끄시는 가장 중요하고도 선한 일입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장소인 교회에 나아와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기도 하는 행동은 낙심하고 포기하려는 마음을 다시 붙잡아 줍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축복하고 기도해 주는 일은 영생의 나라에 함께 들어가려는 한 가족임을 분명하게 하는 행동입니다. 교회 중심의 삶, 교회를 향한 발걸음, 교회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청소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마음들은 다 성령의 감동으로 할 수 있는 행동들입니다.
성령으로 심는다는 것이 곧 교회 중심, 성도 중심의 마음과 행동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앞으로 수요 예배, 금요예배, 새벽 예배, 토요 환경미화, 각종 모임과 행사 등, 많은 자리에서 마다 여러분들이 다 함께 참석하고 성령이 주시는 씨앗들을 함께 심어가기를 원합니다. 함께 심고, 함께 모든 좋은 것을 나누다 보면 반드시 성령의 열매들을 많이 맺는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리라 믿습니다.
오늘 세 가지 가르침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드립니다.
첫째, 성도들 간에 육체의 범죄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으로만 살아가도록 서로가 서로를 세워 주고, 각자에게 맡겨진 짐을 지도록 행동하여야 합니다.
둘째, 가르치는 자와 듣는 자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해 나가야 합니다.
셋째, 우리 각자의 마음 자세와 행동이 항상 교회 중심, 성도 중심의 삶을 살아가면서, 선을 행하고,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심는 대로 거둔 다는 확신 속에 살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마음 안에는 확실하게 성령 하나님이 와 계십니다. 이를 부정하시는 분은 한 분도 안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성령을 근심시키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주님의 가르치심대로 성령 안에서 늘 사랑으로 교제하기를 원합니다. 00교회는 성령의 인도함으로 선한 것들을 심어가는 교회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 분들은 성령으로 하나 되어 한 마음 한 뜻을 지닌 영원한 하나의 가족 구성원입니다.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져서 가정과 교회 공동체 내에서 성령의 열매들이 풍성하게 가득 가득 맺어지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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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말씀 하셨사오니, 00교회 모든 지체가 더 사랑하고, 더 참여하고, 더 심어가는 아름답고 건강한 교회가 되도록 성령 하나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기를 원하시고, 항상 모든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