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송공원으로 올라
봄방학에 든 이월 중순 목요일이다. 젊은 날 밀양지역 근무했던 동료 예닐곱 명이 얼굴을 한번 보기로 약속이 잡혔다. 그들 가운데 진주 근교 전원주택을 지어 은퇴이후를 대비하려는 이가 있다. 그림 같은 그 이의 집을 방문해 하룻밤 머물다 나오기로 한 날인데 동행이 어려웠다. 나는 며칠 전부터 감기가 들어 목이 심하게 부어 동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처방전 따라 약을 탔다.
동네 병원을 둘러 나오던 길에 반송시장 골목을 지나쳤다. 노점에는 내가 이미 들녘이나 산기슭으로 나가 채집한 바 있는 봄나물이 보였다. 비닐하우스에서 키워낸 오이나 딸기나 토마토는 예외로 하자. 누군가 손길에 캐 온 냉이와 달래와 쑥들이었다. 우리 집에서 이미 그런 자급자족 채소들로 봄 향기를 맡은 바 있다. 재래시장 골목에까지 봄의 첨병들은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다 반송시장에서 우리 아파트단지로 건너갔다. 아파트 인접한 반송공원으로 오를 셈이었다. 지하주차장이 없는 아파트단지 내 좁은 주차난을 해소하려고 공원 산기슭에도 공영주차장을 마련해두었다. 그 주차장을 지나 공원으로 올라갔다. 공원 들머리 운동기구엔 몇몇 사람들이 몸을 단련하고 있었다. 평일 오후임에도 산책객들 더러 눈에 띄었다. 날씨가 무척 포근했다.
내가 그간 어디 멀리 떠나지 않았지만 동네 뒷산을 오른 지는 꽤 오래 된 듯했다. 창원에서는 어디를 가도 숲이 우거지고 도심 속 산책을 할 만한 공원이 많다.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밤에는 가로등을 밝혀주어 저녁 늦게거나 새벽녘 산책을 나서도 불편이 없다. 나는 산허리로 가로지른 산책길에서 비탈길을 따라 정상으로 올라갔다. 산꼭대기 체육공원에서도 몸을 푸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쉼터 의자에 잠시 명상에 잠겼다.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 아까 감기 기운으로 병원을 다녀옴도 잊고 제법 머물렀다.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이었다. 해는 중천을 지나 아직 저녁놀이 비치기 전이었다. 명곡과 도계동 일대 단독주택과 아파트가 시야에 들어왔다. 내가 이전 근무했던 학교가 있는 사림동 주택가도 훤히 드러났다. 동쪽으로는 도청과 창원대학 캠퍼스가 눈에 들어왔다.
쉼터 앞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띄었다. 정상에서 불과 몇 미터 아래였다. 그 소나무는 지상부 둥치가 곧게 자라다가 어른 키 높이보다 조금 더 위에서 ㄱ자로 휘어진 채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자랐다. 나무가 어렸더라면 분에다 키울 분재묘목으로도 어울릴 듯했다. 꺾어진 곳에 옹이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무슨 사연으로 심한 외부 충격에 상처는 입지 않고 휘어져 자랐다.
앉아 쉬던 자리에서 오솔길을 따라 북사면으로 내려섰다. 예전엔 그곳으로는 등산로가 없었는데 근래 새로 생겨난 길이었다. 반송공원 식생은 남쪽은 소나무가 많고 북쪽은 오리나무가 많다. 그 사이사이에 아카시나무가 섞여 자란다. 북사면 일부지역엔 편백나무 조림지가 있어 최근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나목으로 겨울을 난 오리나무 가지에선 파릇한 새움이 뾰족뾰족 돋아났다.
단감나무과수원과 인접한 비탈길을 따라 한참 내려가니 평탄한 곳이 나타났다. 그곳은 졸참나무가 섞여 자라 가랑잎이 오솔길에 쌓여 있었다. 젖은 땅에 가랑잎이 덮여 있으니 먼지가 일지 않아 좋았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 익숙한 도심에서 낙엽이 쌓인 흙바닥을 걸어보는 여유에 감사했다. 숲을 빠져나가니 창원천변 수변길 산책로였다. 지난해까지 내가 출퇴근 때 걸었던 길이었다.
산책로에는 몇몇 사람들이 오갔다. 가장자리 심겨진 산수유나무 가지에선 꽃망울이 몽글몽글 부풀어갔다.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뜨릴 듯 노란 기운이 감돌았다. 산책길이 끝난 지점 자투리 공원엔 운동기구가 놓여 있고 정자가 세워져 있었다. 전에 없던 우체통 같은 쌈지도서관이 생겨났다. 스무 권 남짓한 책 가운데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눈에 뛰어 한 시간여 동안 독서삼매에 빠졌다. 17.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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