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방어산
암봉 하나하나 오를 때마다 색다른 풍경 '아, 가을맛 나!'
국제신문 기사 입력일 : 2016-10-12
이경식 기자
- 관음사~정상~출발지 5.5㎞ 코스
- 목장승 익살 표정 산행 재미
- 병풍·마당·두꺼비 바위 보고
- 정상 서면 지리산 천왕봉이 성큼
- 산이름 유래 산성은 흔적만 남아
'옹골차다'. 알차다, 실속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의 임자를 만났다. 지난 6일 산행하러 간 경남 진주시 지수면 방어산(防禦山·530m)에서다. 해발고도가 그리 높지 않고 덩치도 작은 편이지만, 산세는 견고하기 이를 데 없다. 병풍바위 가마바위 마당바위 기둥바위 두꺼비바위 등등. 깎아지른 암봉들이 능선 곳곳에 돌출해 있는 산은 천연 요새나 다름없다. 이름에서 보듯 이들 암봉은 모두 형상이 기이해 경치 또한 수려하다.
압권은 높이가 다른 이들 암봉을 하나하나 오를 때마다 넓어지는 전망이다. 풍경은 삼색삼층을 이루고 있다. 맨 아래층은 황금빛 들판이다. 그 위에 녹색 산들이 굴곡진 몸을 포개고 있다. 지리산 천왕봉, 합천 황매산, 의령 자굴산, 광양 백운산 등 명산들이다. 비단 망사 같은 안개를 두르고 좌우로 뻗어나간 산주름은 부드럽고 아름답다. 산들은 호수처럼 푸른 가을 하늘을 이고 있다. 넉넉한 남도의 들녘과 명산들에다 씻은 듯 맑은 하늘까지 시야에 넣었으니 방어산만큼 '옹골찬' 산이 있을까.
방어산의 실속은 이뿐만이 아니다. 8부 능선에는 마애불(보물 제159호)도 있어, 자연·역사·종교를 아우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마애불은 높이 5m가량의 수직 절벽에 선각으로 새긴 삼존불이다. 가운데는 약합을 손에 든 높이 2.85m가량의 약사여래불, 그 좌우에는 월광보살과 일광보살이 서 있다. 마애불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다. 월광보살의 팔꿈치 부분에 새겨진 명문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미도내미(彌刀乃未)가 정원(貞元) 17년 신사년(辛巳年) 3월 16일, 큰바위에 부처님을 조성하고 그 사실을 기록한다." 정원은 중국 당나라 덕종(德宗)의 세 번째 연호로, 불상 제작연도는 801년(애장왕 2)이다. 이처럼 제작자와 제작연도를 밝힌 불상은 매우 드물다.
산행은 관음사 입구에서 시작해 정상에 오른 뒤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총길이는 5.5㎞로 2시간30분가량 걸린다. 관음사 입구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10분쯤 가면 관음사가 나온다. 사찰 내 산신각 왼쪽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10분쯤 자드락길을 오르면 매봉들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 세워진 목장승의 표정이 익살맞다. 눈과 입이 오른쪽으로 삐죽 치켜져 올라간 게 바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는 서늘한 냉기가 감돌았고, 빛바랜 낙엽 위에 또 잎이 지고 있었다. 30분가량 능선을 타면 가마바위(가마봉)에 이른다. 바위는 산을 떠메고 갈 듯이 우람하고, 바위 아래 선 목장승은 가마꾼이라도 되는 양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10분쯤 후 삼거리에서 길은 정상 방향과 가덕마을로 갈린다. 정상까지 거리는 400m 남짓. 정상 아래에는 면적이 약 1000㎡에 달하는 반석이 있다. 마당바위다. 바위 위에 서면 괘방산이 보인다.
정상도 평평한 바위다. 마당바위와 정상이 2층 구조의 반석으로 이뤄진 셈이다. 정상에는 방어산 전설을 소개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방어산에는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골짜기를 날아다니며 300근짜리 활을 쏘는 묵신우(墨神祐)라는 장군이 살았다. 장군은 전란이 일어나자 방어산에 성을 쌓고 적을 방어했다고 한다. 산 이름의 유래다. 실제 1379년(고려 우왕 5) 둘레 약 700m 규모의 성을 쌓았는데, 지금은 대부분 허물어지고 그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
정상에서 마애불 쪽으로 하산한다. 마애불까지 거리는 약 1.8㎞. 그 구간에 두 곳의 삼거리와 한 곳의 갈림길이 있다. 모두 마애불 쪽으로 나아간다. 마애불 앞 공간은 제법 넓다. 불상을 모신 법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애불 왼쪽으로 난 숲길을 따라 내려간다. 숲이 우거져 길을 잃을 염려가 있으니 본지 리본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30분쯤 걸으면 사거리에 이른다. 여기서 관음사 쪽으로 길을 잡아 1.6㎞가량 하산하면 출발지가 나온다.
# 주변 가볼만한 곳
◇ 산행지 인근 고려 유신 이오 은둔지
- 고려동 내 장원 만들어 자급자족
고려동. 고려 유민들의 은거지다.
"여기는 고려 땅!" 황해도 개풍군 광덕산 골짜기에 있었다는 두문동(杜門洞)은 조선 왕조 출사를 거부한 고려의 유신들이 모여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런 곳이 경남에도 있다.
산행지에서 30㎞가량 떨어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고려동(高麗洞)'이다. 고려 말 성균관 진사였던 이오(李午)가 두문동에서 나와 식구들과 함께 은둔했던 곳이다.
이오는 고려의 유민임을 알리기 위해 은거지 주위에 담을 쌓은 뒤 논밭을 일구고 우물을 파 자급자족할 수 있는 장원을 만들었다. 장원 안에는 고려동학(高麗洞壑)이라는 비석을 세웠다. 면적은 8800여 ㎡. 지금도 그 비석과 담장, 종택과 자미정 등 기와집, 논밭이 보존돼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에도 '고려교'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오는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았다. 아들에게도 새 왕조에 벼슬하지 말고, 자신이 죽은 후 위패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했다.
자손들은 19대, 600여 년 동안 선조의 유산을 가꾸면서 살고 있다. 자녀의 교육에 전념해 학덕과 절의가 높은 인물을 많이 배출했다.
# 교통편
- 부전역서 열차로 반성역 하차
- 지수행 3·4번 버스 갈아타야
부산 부산진구 부전역에서 오전 6시20분발 무궁화호 열차를 탄다. 반성역에서 내려 지수행 3, 4번 버스를 갈아탄다. 청담삼거리 정류소에서 산행 출발지인 관음사 입구까지 거리는 1㎞가량이다.
문의=생활레저부 (051)500-5147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
이경식 기자 yisg@kookje.co.kr
병란과 왜구 무찌른 옛자취 진주 방어산
경남도민신문 기사 승인일 : 2016.03.03.
장금성기자
기암괴석 병풍처럼 둘러 싸여서 절경 이뤄
진주시 지수면과 함안군 군북면의 경계에 위치한 방어산(防禦山)은 해발 530m의 산으로 높지는 않지만 기암괴석으로 병풍처럼 둘러 싸여서 절경을 이뤄 가족산행지로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방어산은 괘방산(451m)과 능선으로 연결돼 있어 두산을 함께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능선의 굴곡이 심한데다 군데군데 암반을 올라야 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소나무터널과 철쭉, 진달래, 자생란, 참나무, 단풍나무 등의 식물군과 노루, 멧돼지, 다람쥐, 산토끼 등 야생동물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방어산 정상은 성채마냥 큰 바위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장군대라 한다. 정상에서 200m 아래 흔들바위가 있고 남쪽으로는 상여바위가 있다. 흔들바위는 서쪽 진양 사람과 동쪽 함안 사람들이 서로 자기 쪽으로 바위를 기울게 해 놓는데, 기우러진 쪽으로 부자가 난다는 전설 때문이다. 동네에서는 끄덕바위라 부른다. 괘방산은 우너북역에서 새집골로 오르면 좋다. 동쪽 어식재에서 능선을 타고 서쪽으로 한시간이 못돼 정상에 이를 수 있다. 정상에 서면 지리산이 아득히 보이고, 동남쪽에는 여항산이 보인다.
방어산은 이름 그대로 병란(兵亂)과 왜구를 무찌르고 방어했다는 산으로 정상에는 옛 성의 자취가 있으며 서쪽에는 장군당, 그 아래는 마제현(馬蹄峴 말발굽 고개), 북쪽에는 장군철상(將軍鐵像), 동쪽에는 옛 절터가 있었다. 절의 이름은 망일암(望日庵)이라고 했으며, 장군의 이름은 묵신우(默神佑)로서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깎아지른 듯한 골짜기 절학(絶壑)을 날아다니면서 3백근짜리 활을 잡아 벌리는 힘을 지녔다고 한다.
때마침 변성(邊城)에 큰 병란이 일어나자 장군은 3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혜성(慧聖) 스님의 도움을 얻어 산봉우리에 성을 쌓고 적을 방어했다. 적은 방어산 맞은 봉우리에 진을 치고 도전해왔으나 장군은 성문을 굳게 닫은 채 한 달을 버티다가 비로소 영을 내려 화전(火箭)을 빗발처럼 퍼부으니 화전에 맞아 타죽은 적이 부지기수였다. 적은 장군의 지략을 보고 이것을 필경 신병(神兵)의 병술(兵術)이라 하여 버텨보다가 도주했다. 사람들은 그러한 장군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장군과 중 혜성의 철상과 철마를 세웠다고 전하며 정군의 군마(軍馬)가 전쟁 때 흘린 핏자국이 아직도 바위에 선연하다고 한다.
산 이름을 방어(防禦), 봉우리를 산성(山城), 마을이름을 승어(昇禦 지금의 승산)라 일컬음은 방어산의 전설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지금의 승산리는 일제가 방어산의 지기(地氣)를 차단하기 위해 지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승어산리를 병합해 승내리라 했지만 광복 50주년을 맞이해 우리의 고유 지명을 찾고 지기를 되찾는다는 취지에서 1995년 11월 1일 시조례 제149호에 의해 승내리는 승산리로 개칭됐다.
실제 방어산의 기록은 고려 우왕(禑王) 5년(1379) 5월에 왜구가 반성을 거쳐 이 산에 올라 목책을 세우고 진을 쳤다. 이때 상원수(上元帥) 우인열(禹仁烈)은 박경수(朴憬修), 오언(吳彦)과 더불어 왜구를 포위, 공격해 산을 탈환, 왜구를 방어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방어산 정상 근처의 거대한 바위 면에는 통일신라시대 애장왕(哀壯王) 2년(801년)에 선각된 마애삼존불이 있다.
본존은 왼손에 커다란 약단지를 받치고 있어 약사불(藥師佛)임을 알 수 있으며 양쪽의 협시보살은 왼쪽은 일광보살, 오른쪽은 월광보살이라 한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글귀가 새겨져 있어 통일신라 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작품으로 정식명칭은 함안 방어산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咸安 防禦山 磨崖藥師如來三尊立像)으로 지난 1963년에 보물 제159호로 지정됐다.
산행은 진주와 함안 양 방향 어디서든 정상에 오를 수 있으며 방어산만 오르는 코스와 괘방산과 함께 오르는 코스가 있다.
방어산만 오르려면 진주 방향에서 지수면 청담리 약련암에서 출발해 매봉~벼랑바위~정상~헬기장~마애보삼거리~희망이고개~임도삼거리~임도~약련암으로 오는 순환코스가 있으며 2시간40분정도가 걸린다.
함안 방향에서는 하림리 낙동마을 뒤쪽에서 시작해 마애사, 방어산 마애불을 거쳐 정상에 오른 후 군북면 박곡리 구 남강휴게소로 하산하면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다른 코스는 하림마을에서 마당바위를 거쳐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는데, 정상에서 괘방산까지 산행하려면 방어산고개와 전망대, 괘방산을 거쳐 어석재로 하산하면 5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진주 방어산 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