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복숭아 두 알 ●지은이_황미경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5. 8. 31
●전체페이지_128쪽 ●ISBN 979-11-91914-91-7 03810/ ●신국판변형(127×206)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13,000원
여성은 서사나 서정의 중심만이 아니라 존재의 중심!
황미경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복숭아 두 알』이 시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이 시집은 ‘봄 · 여름 · 가을 · 겨울’ 사계절의 구성 속에 여성의 삶, 자연의 생명성, 시간의 흐름, 상처와 치유, 그리고 행복을 위한 비움의 미학을 정교하게 그려낸다.
『복숭아 두 알』에서 여성은 고통과 억압의 피해자가 아니라, 감각과 기억, 몸의 언어를 통해 삶을 재서술하는 주체로 등장한다. 이 밖에도 꿈꾸고 사랑하며 소망하는 존재의 생명력을 계절의 리듬 속에 길어 올린 시들이 가득하다.
눈을 뜨면 언제나
어제 거기
나는 이생만 기억하는 것인가
이생만을 기억하는 것이 나인가
―「어제 거기」 전문
나라는 존재가 어쩌다가 지금 이 시간, 이 공간에서 이 삶을 이어 나가고 있는 것일까? 나의 동일한 자아는 나의 기억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것일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또 다른 세상은 없는 것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너머 또 다른 우주는 없을까? 터무니없는 상상일 수도 있지만 사실 지구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확신하던 시절도 그리 먼 옛날의 일은 아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우주의 모습을 찾아내며 우주의 신비를 풀려 애쓰고 있고, 새로운 이론들은 현재의 세계관을 부정하고 수정하며 계속해서 정립되어 나간다.
그곳은
내가 너이고
네가 나여서
그곳은
내가 어디에나 있고
네가 어디에나 있어서
너와 나는 동시에 존재하고
거리와 상관없이
한 몸으로 얽혀 있는
그곳은
누군가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동시에 아무 데나 존재하는
나의 일부이면서 내가 아닌
그곳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
―「또 다른 세상」 전문
나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 나를 둘러싼 세계의 모든 것들을 쪼개고 쪼개어 들여다보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거시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중첩되고 얽혀 있고 동시에 파동 함수로 존재하고 있다가 관측과 동시에 붕괴 되는 세상. 그곳은 명확한 경계가 없고 이분법적 구분도 통하지 않는다. 나와 너의 구분조차 모호해지는 세계, 이 양자적 시선으로 바라보면 우리의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파동일지 모른다.
나는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날마다 죽는다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별하려고
날마다 거울을 보지만
나의 눈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구분하지 못한다
경계 안에서 살아남은 것들은
나인 척하고
당신도 여전히 나로 알고 있다
―「우리 몸은 1초에 380만 개의 세포를 교체한다」 부분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어제와 완전히 같지 않은 모습이지만 여전히 나로 살아가기 위해 일어난다. 나의 몸을 이루는 세포들과 내 몸 안에 존재하는 수십조 개의 미생물들, 그들의 공생 관계가 이어질 때까지 나는 나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내 몸의 질서를 잡아가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그 공생 관계가 끝나고 나면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흩어져 또 무언가가 되겠지. 자연의 방식에 따를 일이다.
생명이란 엔트로피를 거스르는 노력, 무질서로 흩어지고 붕괴 되는 것들을 되돌려 질서를 유지하는 일이다.
황미경 시인은 섬세하고 밀도 높은 사유와 감각으로, 세계의 균열을 언어로 봉합하려는 윤리적 감각을 보여준다. 이번 시집 『복숭아 두 알』은 여성적 삶의 상처와 기쁨, 고요와 환희를 아우르는 서정 시집이자, 사계절의 보편성 속에서 빚어진 시적 · 철학적 사유가 밀도 있게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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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시인의 말·05
제1부
어제 거기·13
봄날 오후·14
먼 산을 보며 걸레질하는 여자·16
꽃구경·17
봄은 왔건만·18
두고 간 목련·19
춘설·20
봄날의 의자·21
보리수나무 아래 색에 물들다·22
나는 자꾸만 과거의 나에게로 가서·24
작약과 파랑새·27
여자의 아랫배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28
떡집 여자·30
소나무와 철쭉·33
당신이 조금만 꾀를 부렸더라면·34
5월에·35
제2부
칸나·39
어제 먹은 복숭아 두 알·40
참나리·42
능소화·43
감자가 세상에 나온 날·44
행주를 꼭 짜지 않아 죽을 뻔한 여자 이야기·46
덩굴식물·49
시스투스·50
미모사·52
백일홍·53
잠도 오지 않는 밤에·54
당신은 추하고 난 악랄해졌어·56
깃발을 든 여자·58
달콤한 사랑·60
장마·62
8월에·63
제3부
가을밤·67
목성·68
밤 개구리·70
우리 몸은 1초에 380만 개의 세포를 교체한다·71
호접지몽·72
또 다른 세상·74
수건·75
날파리를 잡다·76
다인 병실 하모니·78
한 여자가 누워서·80
달밤에 소쩍·82
간판·84
철이 있는 것과 철이 없는 것·85
어느 날 밤 나는·86
치통·88
새벽달·90
철없는 철쭉·91
제4부
첫사랑·95
파묘·96
에이아이(AI)·98
폭설주의보·99
당신이 오시는 길·100
극강 시대·101
겨울날·102
너와 나·104
눈 온 아침·105
당신은 여우같이·106
가난한 여자·108
눈이 비가 되면 일어나는 일들·110
거울 보는 여자·112
흔적을 지우다 사라진 여자·114
순한 마음들이 모여·116
시인의 산문·119
■ 시집 속의 시 몇 편
슬픔으로 단단해진 것들이
빛날 때
반질반질해진
맨바닥의 투명함 속에서
손을 뻗어
너를 만지면
추울수록 명징한 것들
요요한 버들가지 끝
낭창한 마음
햇살이 온다면
곧 피어날 마음들
부산스러움 속에서
눈을 좀 흘겨도 좋겠다
―「먼 산을 보며 걸레질하는 여자」 전문
탐스럽던 복숭아 두 알
크고 노랗고
우아한 복숭아
쉽게 무르지만
쉽게 마음을 주지는 않아
한입 깨물면
주르르 단물이 흐르고
여름은 시작되지
너는 내 안으로 파고들어 와
명랑하게 톡톡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흩어지는 나의 원자들에게
질서를 부여해
엔트로피를 거스르는
크고 노랗고 달콤한
복숭아 두 알
애벌레 한 마리 사각거려도
무너지지 않아
단단하게 빛나던 시절
시시함보다는 고통을 택하려
해를 피하지 않던
한 시절이 있었네
―「어제 먹은 복숭아 두 알」 전문
채널을 돌리다 옛 드라마에서
여자의 외침을 듣는다
추해진 남자 때문에 악랄해진 여자는
내내 복수를 하며 예쁜 얼굴을 찡그렸고
드라마는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너는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니
밀화부리 투명하게 우는 아침
순정을 간직한 이들의
우직한 낭만의 휘파람
질서와 무질서의 경계에서
흔들리며 우는 것들
무너지는 것들에 대해
저항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니
마음이 돌아오는 시간
다 먹은 옥수수자루를
가볍게 던지며
여자는 다시 예쁜 얼굴로
새로운 행복을 찾아 나선다
―「당신은 추하고 난 악랄해졌어」 전문
낡은 간판
글자가 떨어져 나간 간판
오래되어 지워진
남은 글자로 종잡을 수 없는 간판
뒷골목에서 무심한 간판
기를 쓰지 않는 간판
한때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고 싶지 않은 간판
반짝이는 간판 옆에서 기죽은
이제는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진 간판
그 아래 빈 병처럼 드러누운 사내 하나
어쩌다
눈길 한번
주고 마는 간판
―「간판」 전문
■ 시인의 말
가만히 들여다본다.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
둥둥 떠오르도록 기다리는 일
마주하는 일
겁내지 말아야겠다.
나는 나를 다정하게 어루만진다.
2025년 가을
황미경
■ 표4(약평)
황미경 시인의 시집 『복숭아 두 알』은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사계절의 구성 안에 여성의 삶, 자연의 생명성, 시간의 흐름 그리고 상처의 치유와 행복을 위한 비움의 미학을 정교하게 배치한 서정 시집이다. 시인은 자연의 리듬을 따라 인간 존재를 비추고, 특히 여성의 감각과 기억, 몸의 언어를 통해 우주의 운행과 내면의 고요한 진실을 함께 포착한다. 시집 제1부에서는 봄의 생명력과 그 안에서도 피어나는 삶의 상처를 보여주고, 제2부에서는 여름의 충만함과 욕망 그리고 생의 본능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제3부에서는 가을이라는 계절이 떠올려 주는 성찰과 비움의 미학을 제4부는 겨울 이미지가 주는 소멸의 투명함과 생명의 유한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시집은 단지 계절을 다룬 시적 묘사에 머물지 않고, 여성의 존재론적 자각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삶의 통찰을 사계절의 흐름 속에 녹여낸 점에서 두드러진다. 여성이라는 존재가 감당해야 했던 삶의 무게, 슬픔 그리고 억압을 계절의 리듬 속에 섬세하게 배열하며, 그 속에서도 여전히 꿈꾸고 사랑하고 소망하는 여성적 존재의 생명력을 기어이 길어 올리는 시들이 이 시집에는 가득하다. 이 시집에서 여성은 피해자나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안고 있으면서도 감각과 윤리, 사랑과 생명, 비움과 자각을 통해 자기 삶을 재서술하는 주체로 나타난다.
자연은 이 시에서 풍경이 아니라 언어이며, 여성은 서사나 서정의 중심만이 아니라 존재의 중심이다. 시인은 자연의 리듬을 통해 인간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언어로 세계의 균열을 봉합하려는 윤리적 감각을 보여준다. 『복숭아 두 알』은 여성적 삶의 상처와 기쁨, 고요와 환희를 사계절이라는 보편적 틀 안에 담아낸 시집으로, 섬세하고 밀도 높은 사유와 감각의 결정체다._황정산(시인·문학평론가)
■ 황미경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2021년 시집 『배롱나무 아래서』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납작 가슴에 팔뚝이 굵은 여자』가 있다.
첫댓글 황미경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복숭아 두 알』이 시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습니다.독자 독자 여러분의 큰 관심과 사랑(지금 교보문고, 알라딘 등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황미경 시인님 세 번째 시집 『복숭아 두 알』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달달한 복숭아 향이 페이지를 넘길 것 같습니다. 기대됩니다.
한 행 한 행이 깊은 심연에서 다듬어낸 느낌이라 아름답지만 아린 여운이 남는, 여러 번 반복해서 읽게 만드는 시편들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