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理 哲學 (성리철학)의 傳來 (전래)
12 세기에 남송의 주희(朱熹)가 집대성한 유교다,
4~6세기에 수용된 불교, 고려초기에 수용되어
정치 질서를 크게 변화 시킨 과거제도와
고려말에 수용된 성리학
성리학 전래는 고려 사회에 개혁의 길을 열었고
왕조를 붕괴 시키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를
건국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성리학은 당시 원나라로 수용되었다.
원나라와 교류가 이루어 지면서, 고려의 학자나 문인들은 선진문물의 중심인 원나라로 유학갔다.
원나라 수도에는 성리학이 발달한 남송 출신 성리학자들이 관리나 학자들로 많이 머물고 있었고,
이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성리학을 接(접)합니다.
충선왕은 고려의 왕위를 아들인 충숙왕에게 물려준 이듬해인 1314년 원나라 수도에 머물면서
학문기관인 만권당을 설치하고, 조맹부. 장양호. 원명선. 우집 같은 남송출신의 성리학자와 이제현과 같은 고려의 유학자들을 불러 들여 학문적 교류로.
고려 지식인들이 성리학을 공부 했다.
충선왕은 원의 황제에게 건의를 하여 1313년 부터
원나라에 과거제가 시행됩니다. 과거시험의 주요한 과목은 송나라 주희가 주석을 단 ,논어.맹자. 중용. 대학등 4책입니다.
이를 사서집주라고 합니다.
과거를 응시하기 위해서는 주희 주석서를 읽어야 했고, 고려의 지식인들은 출세를 위해 고려 보다 원나라에서 시행하는 과거에 응시를 했고,
이렇게 성리학은 고려에 수용되었다.
성리학을 완성시킨 주희는 중국 남송의 유학자로,
주자, 주부자, 주문공 송태사휘국문공이라는
존칭이나 봉호로도 불린다.
자는 원회, 중회이다.
호는 회암, 회옹, 운곡노인, 창주병수, 둔옹등
시호는 문, 휘국공이다. 송나라 복건성 우계에서 출생했으며 19세에 진사가 된 후 여러 관직을 지내면서 공자, 맹자 등의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주돈이, 정호, 정이등의 유학 사상을 이어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