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빌딩을 시작한 팀에 트레이드로 영입된 1명의 신인선수가 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H.O.F가 될것이고 그도(트레이드된 선수)도 H.O.F가 될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 팀은 내가 아는한 아직 네이스미스 기념관에 선수로써 이름이 올려진
이는 없습니다.
그 신인 선수의 자신감은 대단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군요.
"먼저 너의 구단에서 영구 결번이 될 수 있는 선수가 되라!"
이 팀에 뛴 선수중에 영구 결번을 받지 못한 53번 선수만큼 된다면
나는 이 루키가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이 팀의 영구 결번은 다음과 같습니다.
4번, 10번, 그리고 23번
아래는 불스의 전스타들에 대해 정리한 것입니다.
제가 아는 것이 없어 특별한 내용을 쓰지 못했습니다.
[ 다들 저보다 많이 아시는 분들이니 부족한 내용을 보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내가 잘 알지 못하던 시절의(특히 70년대) 스타와 플레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른 NBA역사와 선수들에 대한 글을 볼 수 있다면 더욱 좋겠구요.]
23번 : 이 번호를 달고 뛴 선수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
4번 Jerry Sloan :
조던이 이끌기 전 시카고의 성적이 가장 좋았던 시기는 제리슬로얀과 Norm Van Lier가 백코트를 이루며 강력한 수비력을 과시했던 70년대 초반이다.
1983년 드래프트 3번을 잡았을 때 제리 크라우스는 타르 힐의 3학년 학생이 그보다 나은 선수가 되리라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90년대의 시카고는 1970년대 초반 강력한 수비를 위주로 한 팀이었고 그팀의 백코트를 Van과 함께 이끌었다. 무릅부상으로 은퇴하였으며 은퇴 후 구단일을 하다 감독직을 수행하였으며 감독 선임 직후 팀 최고 선수의 부상으로 고난에 처하며 3년을 채우지 못하고 해임된다. .
이후 JAZZ감독직을 수행하면서 리그의 가장 오래된 3인조를 구성하고 있다. 96/97시즌 자신이 영구 결번된 팀과 결승을 치르는 첫 경기에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NBA역사에서 가장 뛰어났던 수비수중 하나로
평가된다. (심지어 2번 포지션에서 그보다 나은 수비수는 없다고 하는 이
도있다.)
그는 Bulls에서 11년간 696경기를 뛰었고 평균 14.7점을 기록했다.
10번 Bob Love :
감동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밖에 없는 선수
미국의 흑인 운동선수들의 가정은 대부분 어려운 편이다.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 뛰고 NBA에 진출한 선수들은 그런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Bob Love는 가난한 환경에서 먹고 살기위해 농구를 시작했고 태어나서부터 말더듬증이 있던 그에게는 농구만이 살길이었고 그는 NBA에서 이를 성취했다.
그는 23번선수가 자신의 기록을 꺠기 전까지 팀 통산 득점 1위 기록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큰 성취를 NBA에서 이루었다
그러나 그는 등부상을 당해 농구를 그만 둘 수 밖에 없었고 그의 아내는 말더듬이 장애자와 살 수 없다고 하며 그의 모든 재산을 가지고 그를 떠나 버렸다
그는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돈도 그를 NBA스타로 만든 육체도 없었다.
그는 시애틀의 식당 접시닦이로 생계를 이어갔다. 전직 NBA슈퍼스타였던 그를 알아보는 이는 많았지만 그들은 그를 돕지 않앗고 그를 모멸했다.
“저 접시닦이는 시카고의 농구스타 Bob Love야, 부끄럽게도 접시닦이나 하고 있군”
그 때 그가 느꼈을 모멸감은 말로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리라. 그렇게 10여년을 살아가다 식당주인의 소개로 말더듬이 치료를 받게 되고 그는 다시 인생의 행운을 다시 쥘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말더듬증이 치료되었다는 얘기에 시카고 불스의 운영진이 그를 찾아왔고 그는 다시 불스를 위해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NBA에 그마다 극적인 인생을 산 이는 많지 않으리라 본다.
53번 (비결번) :
NCAA역사에 Bill Russell보다 나은 리바운더였고. 두개의 프로 농구리그에서 통산 야투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Dr. J가 신인이었던 시절에 신인왕이었고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포지션에서 670경기 와 212경기 연속 출장기록을 가지고있다.
그리고 ABA/NBA를 통틀어 17시즌을 뛰었고 그중 11번 올스타에선정되었다.
그리고 그는 NBA에서 4번의 야투율 1위를 기록했고 그중 한번은 67%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의 통산 야투율은 59.9%이다.
그러나 그의 라이벌들이었던 빌월튼도 카림 압둘 자바도 데이브 코웬스도 Dr. J도 HOF로 갔지만 그는 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심지어 그가 뛰던 팀에서도 영구 결번을 받지 못했다.
만일 그가 ABA dispersal 드래프트에서 보스턴에 갔다면 명예의 전당에 가지 못했으리라고 생각들진 않지만...
만일 챈들러나 브랜드가 HOF가 되려면 그보다 나은 성적을 올려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있을까?(NBA우승을 못한다면)
그외 선수들
Norm Van Lier , No. 33, Orlando Woolridge, Chet Wal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