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상하이의 한 병원에 일본인 소녀가 큰병을 앓아 입원하게 되었는데 그때 소녀는 같은 병동의 한 청년을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그 청년 역시 병을 앓아 상하이 병원에 입원하였고 갑부집의 딸인 본인과 달리 청년은 가난하기 그지 없는 학생이었는데 요양을 하기위해 상하이에 왔다고 했다.
소녀가 반한 청년은 소녀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그 소녀는 같은 병동의 청년을 너무나 좋아해 늘 그 청년이 뭘하는지 일기에 적곤했다.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청년은 순수했으며 누구보다 문학을 좋아했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런 점이 소녀가 청년을 좋아하게 된 이유중 하나였다.
마침내 소녀는 청년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지만 청년은 소녀의 마음을 매몰차게 거절했는데 이유는 자신에게는 이미 정인이 있기에 소녀의 고백을 받아줄 수 없다는 대답을 소녀에게 한다.
소녀는 자신은 기다릴 수 있으니 제발 거절을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지만 청년은 정인에게 미안해 소녀의 고백을 받아줄 수 없으며 자신보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나라며 소녀의 고백을 매몰차게 거절한다.
1929년 상하이에서 일본인 소녀의 마음을 두근두근 하게한 청년의 정체는 바로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백정기 의사로 실제로 1929년 상하이에서 일본인 갑부집 딸이 백정기 의사에게 절절한 고백을 했지만 백정기 의사는 그녀의 고백을 거절했다.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는데 친구인 정현섭이 백정기 의사에게 왜 소녀의 고백을 거절했냐고 묻자 백정기 의사는 "사랑하는 여자도 조국 앞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야."라는 말을 친구에게 말했다.
즉 백정기 의사가 소녀에게 말한 정인의 정체는 독립된 조국을 말하는것이었으며 이 이야기는 백정기 의사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순수함을 엿볼 수 있는 일화로 유명하다.
그후 1933년 백정기 의사는 중국 주재 일본공사인 아리요시 아키라를 처단하려다 발각되어 이사히야 감옥에 수감되었으며 무기징역을 언도받고 그해 감옥에서 순국했다.
1946년 백범 김구선생이 윤봉길, 이봉창 의사의 유해를 본국으로 송환하는 과정에서 백정기 의사의 유해 역시 송환되어 이봉창, 윤봉길 의사와 같이 효창공원 4의사 묘역에 안장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