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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 화이트의 수필 "호수로 다시 한번(Once More to the Lake)"은 1941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작가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갔던 메인주의 호수에 자신의 아들을 데려가며 느끼는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핵심 요약
작가는 호수가 예전 모습 그대로인 것을 보며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그는 과거의 자신(아들)과 현재의 자신(아버지)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는 '이중적 존재감'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결국 세월의 흐름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숙명을 깨달으며 글이 마무리됩니다.
주요 내용 및 주제
향수와 이중성: 호수의 변하지 않은 모습은 작가를 과거로 데려갑니다. 아들이 낚시하는 모습을 보며 작가는 자신이 아들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자신의 아버지가 된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을 받습니다.
변화와 시간의 흐름: 모든 것이 그대로인 듯하지만, 기술의 발전(예: 조용한 보트 엔진이 시끄러운 모터로 바뀜)을 통해 세월이 흘렀음을 암시합니다.
삶의 순환과 죽음: 작가는 대자연은 영원하지만 인간은 늙고 사라지는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아들이 차가운 수영복을 입을 때 느끼는 '죽음의 한기'는 세대교체와 필연적인 죽음을 상징합니다.
감각적 묘사: 소나무 향기, 호수의 물결, 끈적이는 설탕 등 아주 세밀한 시각적·청각적 묘사를 통해 독자가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결론적으로 이 글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과거를 그리워하면서도 결국 다가올 자신의 죽음과 세대 간의 교체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장면은 에세이의 마지막 부분인 '천둥 번개와 수영복' 장면입니다. 화이트의 천재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부분들을 소개해 드릴게요.
1. "내 고환에 닿는 죽음의 한기" (마지막 문장)
폭풍우가 지나간 후, 아들이 차갑고 젖은 수영복을 입기 위해 몸을 움츠리는 모습을 보며 화이트는 이렇게 씁니다.
"내 손이 무의식적으로 내 사타구니로 향했다. 그곳에서 죽음의 한기가 느껴졌다."
의미: 아들이 자라 자신이 했던 행동을 그대로 하는 것을 보며, 화이트는 이제 자신이 '아버지의 자리'(죽음과 더 가까운 자리)로 완전히 옮겨갔음을 직감합니다. 세대교체와 필연적인 죽음을 신체적인 감각으로 표현한 전율 돋는 결말입니다.
2. "이중적 존재감" (Dual Existence)
낚시를 하러 배를 타고 나갔을 때, 화이트는 자신이 낚싯대를 쥐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옆에 앉아 있는 아들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느낍니다.
"나는 마치 환상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나의 아버지인 것 같기도 하고, 내 옆에 앉아 있는 아이가 바로 나 자신인 것 같기도 했다."
의미: 시간이 멈춘 듯한 호수의 풍경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묘묘한 심리 상태를 아주 정밀하게 묘사했습니다.
3. 모터 소리의 변화 (세월의 흔적)
화이트는 호수의 모든 것이 그대로라고 믿고 싶어 하지만, 유독 '소리'에서 세월을 느낍니다.
과거: "푸드득, 푸드득" 하는 낮고 부드러운 내장형 모터 소리.
현재: "위잉~" 하며 날카롭게 짖어대는 현대식 선외기 모터 소리.
의미: 이 소음은 평화로웠던 과거의 환상을 깨뜨리는 장치이자,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상징합니다.
4. 사탕 가게와 끈적이는 설탕
마을 상점에서 아이들이 사탕을 고르는 장면에서, 화이트는 예전과 똑같은 사탕 배치와 끈적거리는 유리창을 묘사합니다.
의미: 독자들에게 냄새와 촉각을 전달함으로써, 기억이란 단순히 머릿속 생각이 아니라 '감각'임을 일깨워줍니다.
S.J. 펄먼의 1944년 작 "Insert Flap 'A' and Throw Away"는 복잡한 조립식 장난감을 만들다 신경 쇠약에 걸리는 화자를 통해 상업 제품 설명서를 재치 있게 풍자한 수필입니다. 펄먼 특유의 과장된 문체와 화려한 어휘로 현대인의 기계적 좌절감을 코믹하게 그려냈습니다.
"A번 덮개를 끼우고 버리세요"는 SJ 페럴먼이 남성은 손재주가 좋아야 하고 여성은 그 반대여야 한다는 성 역할 고정관념을 유머러스하게 풍자한 에세이입니다. 페럴먼은 아내에게 "간단한" 장난감 배달 트럭 조립을 부탁받은 남편의 이야기를 통해 이를 보여줍니다. 남편은 설명서를 수없이 다시 읽고 실패를 거듭하다가 결국 좌절감에 미쳐버릴 지경에 이릅니다.
페렐만이 장난감 트럭 하나 조립도 못하는 자의식 과잉 남자에 대한 목적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글에는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으며, 흔치 않고 사회적 통념에 반하는 더욱 복잡한 메시지가 숨겨져 있습니다. 풍자적인 어조 때문에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페렐만은 남성성에 대한 사회의 편향된 시각과 남성에게 부여된 '암시적인' 성 역할에 대해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는 특히 에세이의 마지막 부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페렐만의 남성성 부족(혹은 작가의 시각에서는 정신 이상)을 치료하기 위해 고용된 의사가 그에게 "4시간마다 흰 알약 15알"을 처방하고, 그의 아내에게 "추리 소설을 읽어주거나, 아니면 손으로 할 수 있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그림 퍼즐을 해 주라"고 말하는 대목입니다.
이 에세이 전반에 걸쳐 페렐만은 냉소적인 어조를 사용하여 전체적인 주제와 목적을 발전시키고 강화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배달 트럭 조립 방법을 무심하게 보여주면서 "아빠가 항상 곁에서 도와줄 순 없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빠가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쉽게 속지 않고, "그럼 아빠는 어디 계실 건데?" 라고 교묘하게 되받아칩니다.
"플랩 A를 넣고 버리세요"의 풍자적인 성격과 다소 기이한 문체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제목 : 미래는 지금이다
저자 : 캐서린 앤 포터
어느 날 아침, 신문 기사 하나가 우리 강연자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만약 당신 근처에서 원자폭탄이 터진다면, 가장 바람직한 행동은 무엇일까요? 결국, 폭발 지점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것, 어쩌면 테이블 밑으로 숨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답이었습니다. 강연자는 쾌활하고 태평하게 웃었습니다. "왜 '깊은 대피소'나 '방폭 지하실' 같은 건 없냐고요?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죠."
사소한 것들. 소소한 기쁨들. 홀로 삶을 바라보며. 젊음, 연인들, 열정적인 사람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세상을 흠뻑 적시는 것. 그녀는 한 젊은이가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원목 테이블을 정성스럽게 사포질하고 광택을 내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문득 그가 혹시 원자폭탄 투하를 대비해 테이블을 사포질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아름답게 만드는 걸까? "그냥 낡은 판자면 될 텐데."
만약 내일 우리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당신은 여전히 사과나무를 심으시겠습니까?
한 번에 다 읽을 수 있는 이 책은 부조리주의와 파스칼을 당혹하게 했던 모순과 별들 사이의 침묵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회의적이거나 절망적인 태도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논리적으로 촘촘하게 짜인 주장을 펼치지도 않습니다. 카뮈처럼 삶의 목적을 무작위성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선언하지도 않습니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미래는 바로 지금이라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미래는 없다는 것이죠. 폭탄, 홍수, 기근, 수류탄으로 미래를 빼앗긴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만약 죽음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 모든 죽음의 방식은 결국 똑같지 않을까요?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해서 사는 것도 아니고, 살기 위해 싸우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삶 그 자체가 소소하고 특별한 삶의 순간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당신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미래는 바로 지금입니다. 어떤 순간을 기다리지 마세요. 월급 인상, 합격, 승진, 은퇴, 새 정장, 체중 감량 목표 달성, 아니면 (설마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전염병의 완전한 박멸 같은 순간을 기다리지 마세요. 삶을 시작하기 위해 기다리지 마세요 .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미래는 바로 지금 입니다 . 미래는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은 바로 이 순간, 이 초, 있어야 할 곳에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다른 어떤 물질적인 소유물이나 타인의 인정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메리 매카시(Mary McCarthy)의 '제복 입은 예술가들(Artists in Uniform)'은 1953년 *하퍼스 매거진(Harper's Magazine)*에 발표된 수필 형식의 단편 소설입니다.
이 작품의 핵심 내용과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배경 및 줄거리: 작가 본인이 기차 여행 중 우연히 한 육군 대령과 합석하며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대령은 전형적인 권위주의자이자 반유대주의적 성향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며, 매카시는 그와의 대화를 통해 지식인의 도덕적 딜레마와 사회적 편견을 날카롭게 파헤칩니다.
주요 주제: 냉전 시대 초기 미국의 매카시즘 광풍 속에서 벌어지는 권력과 편견, 사회적 동조의 문제를 다룹니다. 특히 겉으로는 세련된 지식인이 무례하고 강압적인 인물 앞에서 어떻게 무기력해지거나 타협하게 되는지를 심리적으로 묘사합니다.
문학적 논쟁: 발표 당시 많은 독자가 이 글을 허구(소설)로 오해했습니다. 이에 매카시는 후속 에세이인 '대령의 요리 만들기(Settling the Colonel's Hash)'를 통해 이 사건이 실제 경험담임을 밝히며, 문학에서 상징과 사실의 관계를 설명하는 유명한 비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문체: 매카시 특유의 냉소적이면서도 지적인 분석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20세기 미국 문학에서 '지식인의 양심'을 다룬 중요한 텍스트로 평가받습니다.
로렌 아이슬리의 단편 소설 「갈색 말벌들」은 인간과 동물이 몇 가지 유사한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이슬리는 인간과 동물이 익숙한 것에 강하게 집착한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기도 합니다. 인간과 동물은 나이가 들면서 친숙한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이슬리는 인간과 동물이 중요하거나 좋아하는 장소에 집착하거나 그것을 재현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예로는 노인, 갈색 말벌, 쥐, 비둘기, 맹인, 그리고 심지어 아이슬리 자신까지 등장합니다.
아이슬리는 네브래스카에 있는 어린 시절 집을 떠올립니다. 기차역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주던 모습도 기억합니다. 그는 매일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나무를 키웠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마치 그 나무가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60년이 지난 지금, 그는 평생 상상해 왔던 그 나무가 첫해에 죽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세상과 동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변한 것은 세상이지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 나무를 잃고 싶지 않았고, 그 나무는 그에게 너무나 소중했기에 마음속으로 다시 만들어내려 애썼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키운 나무였기에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기차역에 있는 노인들은 더 이상 출근하지 않지만 비를 피하기 위해 그곳에서 잠을 잔다. 그들은 기차역이 철거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곳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잠자리를 지키려 애쓰고 있다. 그들은 결코 그곳을 놓아주지 않으려 한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워너메이커 교외 매장 건설로 인해 쥐들은 들판에 있는 집을 떠나야만 합니다. 하지만 많은 쥐들이 그곳에 남아 결국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아이슬리는 '갈색 말벌'과 '기차역의 노인들'을 통해, 생명체가 죽음이나 소멸 직전에도 자신의 존재가 증명되었던 장소를 떠나지 못하는 본능을 날카롭게 포착했습니다.
이 비유에서 주목할 핵심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온기'에 대한 환상과 집착
갈색 말벌: 추운 가을날, 얼어 죽어가는 말벌들이 이미 비어버린 옛 벌집 주위로 모여듭니다. 벌집에는 더 이상 온기가 없지만, 그들은 과거의 따뜻했던 기억과 본능에 의지해 그곳에 달라붙어 죽음을 맞이합니다.
기차역 노인들: 폐쇄된 역이나 낡은 대합실 벤치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노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날 목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사람들이 북적이고 활발했던 그 장소의 '사회적 온기'를 잊지 못해 그곳을 떠나지 못합니다.
2. '중심(Center)'을 잃지 않으려는 투쟁
아이슬리는 이 행동들을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에 저항하는 행위로 봅니다.
말벌에게 벌집은 우주의 중심이었고, 노인들에게 기차역은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였습니다.
환경이 변해 그 장소의 기능이 상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체는 "내가 한때 이곳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받기 위해 그 물리적 지점을 끝까지 고수합니다.
3. '본능적 정박'의 슬픔
아이슬리는 이 장면들을 관찰하며 차가운 비판이 아닌 깊은 연민을 보냅니다.
말벌이 굳어가는 다리로 벌집을 붙잡듯, 노인들도 지팡이를 짚고 낡은 벤치를 붙잡습니다.
이는 인간이 고도의 지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는 자연 속의 작은 곤충과 다를 바 없이 익숙한 공간에 정서적으로 정박(Anchoring)해야만 안도감을 느끼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 비유는 "장소는 사라져도 그곳에 깃든 기억의 뿌리는 생명이 다할 때까지 뽑히지 않는다"는 아이슬리 철학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유도라 웰티(Eudora Welty)의 수필 **"달콤한 탐닉(A Sweet Devouring)"**은 작가가 어린 시절 가졌던 독서에 대한 열정적인 애착과 그 과정에서 깨달은 문학적 가치를 다룬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www.betweenthecovers.com
주요 내용 및 요약
이 작품은 웰티의 비평 및 산문집인 《소설의 눈(The Eye of the Story)》 (1978)에 수록되었으며, 독서를 음식 섭취에 비유하여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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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즐거움: 웰티는 어린 시절의 독서 경험을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먹는 것과 같은 "달콤한 탐닉"으로 묘사하며, 책 속의 모험을 갈구했던 끝없는 식욕을 회상합니다.
시리즈물의 함정: 어린 웰티는 '캠프파이어 걸스(Camp Fire Girls)'와 같은 시리즈 소설들을 탐독했지만, 곧 이러한 반복적인 시리즈물이 실제로는 아무런 진전도 사건도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거대한 방해물"임을 깨닫고 실망감을 느낍니다.
진정한 문학적 가치 발견: 작가는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작품들을 접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훌륭한" 진짜 문학의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소비되는 '싸구려' 글들 아래 숨겨진 진실과 깊이를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교훈: 작가는 마리아 에지워스(Maria Edgeworth)의 이야기를 인용하며, 화려한 겉모습에 현혹되어 내실 없는 것을 선택했던 자신의 '욕심'을 성찰합니다.
주제 의식
정체성 형성과 독서: 독서가 아이의 내면세계와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보여줍니다.
질적 가치의 중요성: 양적인 탐독에서 벗어나 작품의 진정한 질적 가치를 구별해내는 성장을 다룹니다.
일상과 예술의 연결: 평범한 일상의 경험(독서)이 어떻게 한 작가의 예술적 비전으로 발전하는지를 탐구합니다.
이 수필은 웰티의 또 다른 유명한 자서전적 저서인 《한 작가의 시작(One Writer's Beginnings)》과 함께 그녀의 문학적 뿌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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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라 웰티가 이 수필에서 가장 중요하게 언급한 핵심 대목과 그녀의 문학적 뿌리를 더 깊이 보여주는 다른 작품을 정리해 드릴게요.
1. "달콤한 탐닉" 속 결정적 장면: '가짜'를 깨닫는 순간
웰티는 어린 시절 '캠프파이어 걸스' 시리즈를 수십 권씩 읽어 치우며 그 속도에 취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녀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 책들은 아무리 읽어도 주인공들이 실제로는 아무 데도 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저 계속해서 반복될 뿐이었다."
웰티는 이를 '달콤한 함정'에 비유합니다. 겉은 화려하지만 영양가는 없는 사탕처럼, 시리즈 소설들이 독자의 시간을 앗아가는 방식을 예리하게 비판하죠. 이후 그녀는 마크 트웨인의 작품을 읽으며, 진짜 문학은 "단순히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무언가 진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임을 배웁니다.
2. 함께 읽으면 좋은 웰티의 자전적 작품
웰티의 어린 시절과 작가 정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아래 두 작품이 완벽한 짝이 됩니다.
《한 작가의 시작 (One Writer's Beginnings)》: 웰티의 가장 유명한 자서전입니다. "듣기(Listening)", "보기(Seeing)", "목소리 찾기(Finding a Voice)"라는 세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어떻게 소리가 이야기가 되고 풍경이 소설이 되는지 아름답게 서술합니다.
〈낙관주의자의 딸 (The Optimist's Daughter)〉: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자전적인 요소가 강하게 투영된 소설입니다. 가족의 역사와 기억을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기억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는가'를 다룹니다.
3. 문학적 연결고리
웰티는 이 수필에서 마리아 에지워스(Maria Edgeworth)의 동화 속 '보라색 병' 이야기를 인용합니다. 예쁜 병을 갖고 싶어 신발 살 돈을 써버린 소녀가, 정작 병 안의 보라색 액체를 쏟아내자 남은 것은 평범한 유리병뿐이었다는 이야기죠. 웰티는 이를 통해 "자극적인 재미(보라색 액체) 뒤에 남는 진실한 내용물"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십만 개의 곧게 펴진 손톱
미국 작가 도널드 홀은 『십만 개의 곧게 뻗은 못』에서 워싱턴 우드워드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 홀은 자신이 "워싱턴을 잘 알고 있었지만, 워싱턴에 대한 자신의 이미지는 자신이 관찰한 것과 할아버지에게 들은 것이 뒤섞인 것이었다"고 씁니다(253). 그의 솔직한 진술은 이야기가 전적으로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에토스가 완전히 신뢰할 만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는 에세이의 핵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에세이의 목적은 이야기의 사실 여부보다는 이야기 자체에 더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에세이는 낭비에 대해 논하며, 아이러니하게도 평생 아무것도 낭비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결국 스스로 고립되어 삶을 망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워싱턴이 세상을 떠난 후, 홀은 그가 지은 오두막이 "무너지고, 곧게 뻗은 못들은 래기드 산의 흙 속에 녹슬어 버렸지만, 돌들은 그가 옮겨 놓은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아무도 그것들이 어떻게 거기에 있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묘사합니다(262). 워싱턴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이 결국 헛되이 사라졌다. 저자는 워싱턴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에세이를 통해 우리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썩어가는 것들만 남기고 허무하게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인생을 낭비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쓰인 「십만 개의 곧게 펴진 못」은 아이러니를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홀은 워싱턴이 "좋은 재료를 낭비하는 것은 죄악이었기에 못을 모아 두었다"고 쓴다(257). 하지만 그 못들은 워싱턴 사후 아무도 돌보지 않아 결국 녹슬어 버렸다. 홀이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또 다른 수사적 장치는 서술이다. 이 에세이의 대부분은 서술로 이루어져 있다. 서술은 흥미로우면서도 마지막에 교훈을 전달함으로써 저자의 목적을 훌륭하게 달성한다. 워싱턴의 삶을 예로 들어, 사람이 어떻게 의도치 않게 인생을 낭비할 수 있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저자는 자신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고 생각한다.
톰 울프(Tom Wolfe)의 에세이 **"Putting Daddy On"**은 그의 1968년 수필집 『펌프 하우스 갱』(The Pump House Gang)에 수록된 작품으로, 1960년대 미국 청년 문화의 복잡한 세대 갈등과 심리적 역학을 날카롭게 파헤친 수작입니다.
이 에세이의 핵심 내용과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Putting On'의 의미: 제목의 'Putting On'은 상대방을 속이거나, 조롱하거나, 혹은 진심을 숨긴 채 연기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여기서는 자녀 세대가 부모(Daddy)를 상대로 감정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해 사용하는 심리적 기제를 의미합니다.
복잡한 부자 관계: 울프는 단순히 반항하는 자녀의 모습을 넘어, 부모를 당혹스럽게 만들거나 죄책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상황을 통제하려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 울프 특유의 관점인 '지위 경쟁(Status competition)'이 이 짧은 이야기 속에도 녹아 있습니다. 그는 인물들의 대화와 행동, 그리고 세세한 문체를 통해 당시 급변하던 사회적 규범 속에서 개인이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확보하려 하는지 보여줍니다.
뉴 저널리즘 기법: 이 에세이는 소설 같은 문체, 내면 심리 묘사, 생생한 대화 등 울프가 주도한 **'뉴 저널리즘(New Journalism)'**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어 학술적으로도 자주 인용됩니다.
이 작품은 60년대의 시대적 배경을 담고 있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영원한 테마인 소통의 단절과 권력 다툼을 다루고 있어 오늘날에도 흥미로운 분석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Bartleby.com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1964년 에세이 **《"캠프"에 관한 메모(Notes on "Camp")》**는 현대 문화 비평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캠프(Camp)'라는 난해한 미적 감수성을 지적으로 정의하며 그녀를 세계적인 비평가의 반열에 올렸습니다.
Wikipedia
손택이 정의한 캠프의 핵심 개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주요 정의 및 특징
인위성과 양식화: 캠프는 사물을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라 **인위(artifice)**와 **양식화(stylization)**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내용보다 스타일: 캠프는 내용(content)보다 **스타일(style)**을 우선시하며, 미학이 도덕을 압도하는 '일관된 미적 경험'을 의미합니다.
따옴표로 보는 세상: 손택은 "캠프는 모든 것을 따옴표 속에서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전등'이 아니라 '전등인 척하는 사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실패한 진지함: 캠프의 가장 순수한 형태는 '진지함'이 너무 과해서 실패했을 때 발생합니다. 진지하게 시도했으나 결과가 터무니없이 과장되어 즐거움을 주는 경우입니다.
"나빠서 좋다": 캠프의 궁극적인 진술은 "너무 끔찍해서 오히려 좋다(It’s good because it’s awful)"는 것입니다.
Monoskop
2. 주요 사례 (손택의 리스트)
손택은 에세이에서 캠프의 전형적인 사례들을 나열했습니다:
Wikipedia
티파니 램프 (Tiffany lamps)
백조의 호수 (Swan Lake)
벨리니의 오페라들
1920년대 여성 패션 (깃털 보아 등)
킹콩 (1933년작)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의 장식물들
3. 사회적 맥락과 유산
퀴어 문화와의 연결: 캠프는 특히 성별의 경계를 흐리는 양성구유(Androgyny) 이미지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퀴어 공동체가 주류 문화의 도덕적 비난을 중화시키기 위해 사용해 온 감수성으로 분석됩니다.
대중문화로의 확산: 이 에세이는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의 경계를 허무는 데 기여했으며, 이후 2019년 메트 갈라(Met Gala)의 주제인 **"Camp: Notes on Fashion"**의 직접적인 영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Wikipedia
이 에세이는 손택의 첫 에세이집인 《해석에 반대한다(Against Interpretation)》(1966)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Wikipedia
현대적인 맥락에서 캠프(Camp)는 손택의 정의보다 훨씬 더 대담하고 의도적인 방식으로 소비됩니다. 손택이 말한 '실패한 진지함'이 아닌, '작정하고 보여주는 과잉'이 주를 이룹니다.
가장 대표적인 현대적 사례 3가지를 꼽아보았습니다.
1. 2019 메트 갈라(Met Gala) - "Camp: Notes on Fashion"
손택의 에세이를 공식 테마로 잡았던 이 행사는 캠프의 현대적 정점을 보여주었습니다.
레이디 가가: 레드카펫 위에서 4번이나 옷을 갈아입는 퍼포먼스 (과잉과 연극성).
빌리 포터: 황금 날개를 달고 가마에 실려 등장 (사치스러움과 퀴어 미학).
자레드 레토: 자신의 복제 머리를 들고 등장 (인위성의 극치).
2. 드랙 퀸(Drag Queen) 문화와 '루폴의 드랙 레이스'
현대 캠프 미학의 가장 큰 저장소입니다. 여성성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여성성의 요소를 극단적으로 과장(큰 가발, 두꺼운 메이크업, 화려한 의상)하여 성별이라는 개념 자체를 '따옴표' 안에 가둡니다. 이는 손택이 언급한 양성구유(Androgyny)의 현대적 진화형입니다.
3. 'B급' 감성의 주류화 (밈 문화와 발렌시아가)
밈(Meme): 조악한 편집, 과장된 감정 표현, 맥락 없는 유머는 "너무 구려서 오히려 좋다"는 캠프적 감수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패션 브랜드 '발렌시아가': 이케아 장바구니를 닮은 가죽 가방이나 거대한 플랫폼 크록스 등은 "이게 패션이라고?"라는 질문을 던지며, 실용성보다는 '스타일의 승리'라는 캠프적 태도를 취합니다.
"나보코프의 완벽한 과거(The Perfect Past)"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1950년 4월 15일 The New Yorker에 발표한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The New Yorker
이 글은 이후 그의 유명한 회고록인 **『말하라, 기억이여(Speak, Memory)』**의 제1장으로 수록되었습니다.
Wikipedia
주요 내용 및 특징
기억의 시공간: 이 장은 "요람은 심연 위에서 흔들리고(The cradle rocks above an abyss)"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며, 탄생 이전과 죽음 이후의 영원한 어둠 사이에 놓인 인간 존재의 짧은 빛을 탐구합니다.
의식의 깨어남: 어린 시절 자신의 존재와 시간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 순간을 묘사합니다. 특히 부모님의 나이를 알게 되면서 자신이 역사적 시간 속에 놓여 있음을 깨닫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패턴의 발견: 나보코프는 자서전의 진정한 목적이 연대기적 기록이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적 디자인(thematic designs)' 혹은 '패턴'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주요 상징:
성냥 테마: 어린 시절 본 쿠로파트킨 장군의 성냥 마술이 15년 후 피난길에서 성냥을 빌리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주제적 연결'을 보여줍니다.
공중 부양: 아버지가 마을 사람들에 의해 헹가래 쳐지는 장면을 창밖에서 목격하며, 이를 성스러운 종교적 이미지와 연결해 묘사합니다.
Cram
이 글은 나보코프 특유의 정교하고 감각적인 산문 스타일이 잘 드러나 있으며, 단순한 과거 회상을 넘어 기억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그의 철학을 보여주는 핵심적인 텍스트로 평가받습니다.
Academia.edu
나보코프의 '완벽한 과거(The Perfect Past)'는 단순한 추억 팔이가 아니라, '인간의 의식이 어떻게 탄생하고 시간을 정복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탐구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다음과 같은 핵심 포인트들이 있습니다.
1. 두 영원 사이의 빛 (The Bright Crack)
그는 인생을 '두 암흑(태어나기 전과 죽은 후) 사이에 끼어 있는 가느다란 빛의 틈새'라고 정의하며 글을 시작합니다.
나보코프는 이 '어둠'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기억을 통해 과거를 재구성함으로써 시간의 지배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그에게 과거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예술로 고정된 '완벽한 상태'입니다.
2. 의식의 깨어남 (The Awakening of Consciousness)
그는 자신이 '나'라는 존재를 처음 깨달은 순간을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날'로 묘사합니다.
네 살 무렵, 부모님의 나이를 계산해 보며 자신과 부모님이 같은 시간대(타임라인)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 "공유된 시간"의 발견이 바로 자아 성찰의 시작이었습니다.
3. 주제적 디자인 (Thematic Designs)
나보코프는 인생을 선형적인 시간 순서로 보지 않고, 숨은 그림 찾기처럼 봅니다.
성냥 마술 사례: 어린 시절 쿠로파트킨 장군이 성냥으로 보여준 마술적 순간이, 수십 년 후 혁명을 피해 도망치던 중 길에서 만난 노인에게 성냥을 빌리는 순간과 겹칩니다.
그는 이런 우연한 반복을 '운명의 장난'이자 '예술적 패턴'이라 믿었습니다. 이런 패턴을 찾아내는 것이 인생의 진정한 의미라고 보았습니다.
4. 아버지가 공중에 뜬 이미지
이 에세이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는 아버지가 농민들에 의해 헹가래 쳐지는 모습입니다.
어린 나보코프는 창밖으로 아버지가 하늘로 던져졌다가 내려오는 것을 봅니다. 그는 이를 마치 아버지가 중력을 거스르고 영원 속에 정지해 있는 성스러운 이미지로 기억합니다. 현실의 물리 법칙을 기억의 마법으로 바꾼 사례입니다.
5. 언어적 미학
그는 러시아어와 영어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이용해 과거를 묘사합니다. 'The Perfect Past'라는 제목 자체가 문법 용어인 '완료 시제'를 연상시키는데, 이는 과거가 끝난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완성되어 보존된 상태'임을 암시하는 중의적인 표현입니다.
결국 이 글은 "우리는 기억을 통해 시간이라는 독재자로부터 승리할 수 있다"는 나보코프식 승전보와 같습니다.
John McPhee의 에세이 "The Search for Marvin Gardens"(1972)는 보드게임 **모노폴리(Monopoly)**와 실제 **애틀랜틱 시티(Atlantic City)**의 황폐해진 현실을 정교하게 교차시킨 논픽션 작품입니다.
The New Yorker
이 작품의 주요 특징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실험적 구조
에세이는 두 가지 서사를 나란히 배치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집니다.
게임 세계: McPhee가 익명의 상대와 벌이는 치열한 모노폴리 토너먼트 과정을 묘사합니다.
현실 세계: 게임 보드 위 지점들에 해당하는 1970년대 애틀랜틱 시티의 실제 거리들을 탐방하며, 그곳의 가난, 부패, 도시 쇠퇴의 현장을 보여줍니다.
The New Yorker
2. 주요 주제 및 상징
자본주의의 허상: 부유했던 과거의 영광을 잃고 빈민가로 전락한 애틀랜틱 시티를 통해, 모노폴리가 상징하는 자본주의의 승리 이면에 숨겨진 사회적 불평등과 파괴를 비판합니다.
마빈 가든스(Marvin Gardens)의 의미: 보드게임에서 노란색 칸으로 등장하는 이곳은 실제로는 애틀랜틱 시티가 아닌 인근 마게이트(Margate)에 위치한 부유한 주거 단지입니다. McPhee는 이를 **"찾기 힘든 행복"**이나 **"중산층의 안식처"**에 대한 은유로 사용하며, 많은 이들이 이를 갈망하지만 결국 쇠락한 애틀랜틱 시티(현실)에 머물게 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Assay: A Journal of Nonfiction Studies
3. 문학적 가치
문예 논픽션의 정수: 사실적인 보고와 개인적인 서사, 문학적 비유를 결합하여 "subject가 무엇이든 위대한 작가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평을 받습니다.
대조적 묘사: 화려한 카지노와 호텔 뒤편에 존재하는 감옥, 마약, 노숙자의 모습을 모노폴리 게임의 '감옥행'이나 '세금 납부' 같은 요소와 연결해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The New Yorker
이 에세이는 단순한 게임 분석을 넘어, 미국 사회의 계급 구조와 경제적 쇠퇴를 예리하게 통찰한 현대 수필의 고전으로 꼽힙니다.
이 에세이의 결말은 차가운 현실을 보여주며 여운을 남깁니다.
1. 게임의 결말: 패배와 허무
McPhee는 모노폴리 게임에서 결국 상대에게 패배합니다. 게임 속에서 그는 모든 자산을 잃고 파산하며, 보드 위에서 화려하게 구축했던 '부의 제국'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이는 게임이 단순한 오락일 뿐, 실제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허무함을 강조합니다.
2. 현실의 결말: 마빈 가든스(Marvin Gardens) 발견
McPhee는 마침내 실제 장소인 마빈 가든스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그곳은 애틀랜틱 시티의 빈민가와 대조되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폐쇄적이고 부유한 중산층 거주지였습니다.
그는 그곳의 고요하고 깔끔한 풍경을 묘사하면서도, 그 평화가 주변의 비참한 현실(애틀랜틱 시티의 슬럼가)과 철저히 단절되어 있다는 점을 부각합니다.
3. 최종 메시지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다시 애틀랜틱 시티의 황폐한 거리로 돌아오거나 그 비참함을 상기시킵니다.
게임에서는 누구나 부자가 될 꿈을 꾸지만, 현실의 애틀랜틱 시티는 무너져가는 건물과 가난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결국 마빈 가든스는 도달하기 힘든 중산층의 환상일 뿐이며, 게임이 끝난 후 남는 것은 차가운 길바닥이라는 씁쓸한 대조를 이루며 끝을 맺습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자본주의 게임의 비정함과 도시의 쇠퇴라는 씁쓸한 진실을 독자에게 던집니다.
윌리엄 H. 가스, 『침몰하는 운명』을 고려하며
이번 주 에는 특히 훌륭한 에세이나 짧은 논픽션 작품 하나를 집중 조명하는 ' 고려하기 '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연락 주세요!
조이스 캐럴 오츠가 편집한 『세기의 최고 미국 에세이』 (맙소사! 그녀가 트위터를 하네!) 를 집어 드는 건 일종의 모험입니다. 적어도 한 시간은 책장을 넘기며 첫 줄이나 마지막 줄이 제 마음을 사로잡기를 기다리곤 하죠. 좋은 에세이는 네다섯 번씩 다시 읽는데, 마지막 줄을 읽자마자 바로 첫 페이지로 돌아가곤 합니다. 좋은 에세이는 반전이 있는 마술과 같습니다.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어지죠. 마술은 일단 방법을 알아내면 재미가 없어지지만, 정말 좋은 에세이는 반전이 있습니다. 방법을 알아낸 순간, 더욱 더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거죠.
윌리엄 H. 가스의 『침몰하는 자들』 은 이 장르의 걸작이다. 가스는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할 만한 언급으로 시작한다. 마치 그는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듯하다.
"크레인은 마치 도약대처럼 갑자기 돌진했습니다. 걸프만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수수께끼 같은 첫 장면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는 곧바로 어머니가 매우 품위 없는 자세로 오줌을 지리는 모습을 떠올린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의 어머니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요양원과 정신병원을 드나들며 "긴 죽음을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인종차별주의자이자 폭력적인 사람이었다.
이 에세이에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500단어 가까이 읽어야 자살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그마저도 어머니가 주장했던 죽음, 즉 "자신의 죽음을 그 죽음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죽음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만 제시된다.
하지만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 에세이에서 가스는 자살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살이 실제로 무엇인지, 만약 자살이 어떤 의미를 지닌다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있고 면밀하게 살펴보려 합니다.
그는 "자살을 자기 자신에 대한 일련의 작은 행위들의 마지막 단계로 봐야 할까?"라고 질문하며, 알코올 중독도 그 정의에 포함될 수 있을지 궁금해한다. 마치 본네거트가 흡연을 유일하게 명예롭고 품격 있는 자살 방법으로 묘사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갑자기 모든 게 시작됩니다. 가스는 마법 지팡이를 휘두르듯 자살 목록, 묘사, 언급들을 쏟아내는데, 어떤 건 잘 알려지지 않았고 어떤 건 악명 높습니다. "플래스는 알약으로, 크레인이나 울프는 물로, 플래스는 다시 가스로, 베리먼은 다리에서 . "
가스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정확히 어떤 행위를 포괄하는지에 대한 의문(손목을 긋는 행위는 물론이고, 단식 투쟁이나 운전 중 졸음운전은 어떨까?)에서 출발해, 사회가 자살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자살하려는 사람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자살에 관한 기존 문헌들을 간략하게 검토한다. 그는 다양한 유형의 자살을 살펴보고 사회 계층과 연극적인 요소가 자살에 미치는 영향을 지적한다.
그는 자살하려는 사람이 남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살을 자살로 인식하기를 바란다면, 자신의 의도를 매우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결론짓습니다.
하지만 가스는 다시 한번 손수건으로 덮인 중절모를 지팡이로 톡톡 두드리며 자살을 하나의 집단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그 단어는 여러 요인에 허구적인 통일성을 부여할 뿐이며, 자살이라는 행위의 본질적인 아이러니는 그것이 완전히 공허한 행위라는 점이다."
자신의 마지막 행위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살자는 유감스럽게도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가스는 내가 읽어본 자살에 대한 생각 중 가장 날카롭고 냉철한 생각을 쏟아낸다. "물론 행위는 언어가 아니며, 자살 자체에는 시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 단지 자살에 대한 몇몇 기록에서만 시적인 면모가 드러날 뿐이다... 죽음은 공허한 삶을 채워주지 못하며, 시 한 줄에서 고작 다섯 글자만을 차지할 뿐이다." 혹은 삶이 너무 공허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선택했다 하더라도, 그 죽음은 당신의 삶을 그다지 의미 있게 만들지 못할 것이다. 자살을 묘사하고 분석하는 말들이야말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자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살의 의미를 결정할 수 있다.
그는 마치 발레리나처럼 우아한 동작으로 예술과 시, 글쓰기의 가치와 목적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것들은 오직 읽어봐야만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정말 놀랍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마치 마법 같다.
이 에세이 전반에 걸쳐 가스는 잔혹하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차가운 사고방식과 가슴 아픈 개인적인 이야기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유지합니다. 어쩌면 그가 그토록 가혹한 것은 스스로를 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것은 고통스럽습니다.
침몰하는 그들, 운명에 처한 자들
"내 입술은 높은 평가를 받고, 내 손가락은 찬사를 받으며, 내 혀도 마찬가지로 재미있지만,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그 매력이 달라집니다."
--오멘세터의 행운
이 라임은 윌리엄 가스의 작품 속에서 고난에 시달리지만 억누를 수 없는, 심지어는 수다쟁이에 가까운 화자 중 한 명인 제스로 퍼버가 읊는 시입니다. 다른 화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행동이 조심스럽거나 아예 하지 않지만, 무하마드 알리처럼 멈추지 않고 창의적인 말솜씨를 뽐냅니다. 이 시는 성적인 암시와 언어적 풍요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실, 라임은 대개 외설적이고 장난스러우며 다소 유치하기도 한데, 이는 작가의 언어유희에 대한 즐거움을 드러냅니다. 라임은 가스의 작품, 특히 《오멘세터의 행운》과 《터널》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특히 이 시는 입과 혀(구강)와 손가락(문자)을 강조하고, 그것들이 욕망의 자극과 연결되는 것을 보여주는데, (퍼버가 이 시를 쓰는 광란적인 맥락에서 벗어나) 가스의 작품 세계를 집대성한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스의 작품 세계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는 '연주'이다. 퍼버, 《터널》의 콜러, 《곤충의 질서》의 화자이자 주부 같은 강박적인 인물들의 독백이든, 혹은 《푸른 것에 대하여》의 현란한 기교나 《그리고》에서 드러나는 그 결합의 찬미처럼 가스 자신의 목소리로 펼쳐지는 즉흥적인 표현이든, 그의 작품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화려하고 기교적인 문장이다. 간결하든 장황하든, 그의 문장은 언제나 건축학적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시와 산문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운율적이고 두운을 맞춘 언어는 그 효과를 더욱 증폭시킨다. 또한, 추상적이고 건조한 철학적 담론을 구체화하고 생생하게 만드는 수사적 표현들도 그의 작품에 녹아 있다. 가스의 문장에는 주제가 성적인 것이든 더 숭고한 것이든 상관없이 목소리의 에너지가 전달됩니다 (두 주제 모두 대개 풍부하게 창조된 동일한 공간에 녹아들어 풍성함과 무게감을 더합니다).
무엇보다도, 여기서 가스는 롤랑 바르트가 그의 에세이 제목 중 하나인 "쓰기: 자동사"에서 그 단어에 부여한 의미의 작가이다. 그가 선택한 주제만큼 중요한 것은 가스가 그 주제에 대해, 그리고 언제나 탁월한 솜씨로 글을 써왔다는 점이다. 미학적 가치관을 상당 부분 공유하는 작가 스탠리 엘킨과 함께 진행한 인터뷰에서 가스는 "작가로서 나에게는 오직 하나의 책임만 있다. 그것은 내가 사용하는 언어와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에 대한 책임이다"라고 말한다(던컨 53에서 인용). 인터뷰에서 가스는 이러한 자신의 관심사를 더욱 강조하며 "나는 항상 글쓰기 그 자체에 관심이 있었다. 다양한 형식에 대한 나의 관심은 스타일 그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라고 말한다(64).
바르트처럼 경쾌하고 확신에 찬 어조로 격언들이 전달됩니다. "우리는 영혼이란 철학자의 발명품이며, 예를 들어 마담 보바리처럼 흥미진진한 창조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소설 5) 은유는 과장된 표현("... 나는 우편 광고처럼 왔다."(터널 12))부터 터무니없는 표현(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 대해 가스는 "그들은 마치 연기처럼 스무 명씩 무리를 지어...)까지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