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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 200% 즐기는 법
참고말씀: 창1:27; 5:1,2; 삿16:16,20,21; 왕상11:4; 아6:3; 마5:44,45; 25:46; 눅6:32,33,35; 요15:4; 행2:1-4; 8:3; 9:1,2,19-21,26,27; 11;25,26; 13:1,2; 고전13:11; 엡4:14,15; 딤전5:2; 히9:27; 요일5:14
읽을말씀: 렘33:3; 마5:46,47; 딤전5:2 하
주제말씀: 마5:46,47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한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첫째, 응답받고 싶은 기도제목들을 적고 지금부터 계속 기도하기!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수련회를 200% 즐기려면 무엇부터 해야 합니까? 먼저, 응답 받고 싶은 기도제목들을 간추려서 적고 기도해야 합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기도해야 합니까? 지금부터 수련회 때까지, 아니 수련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왜 이 같은 방법이 수련회를 200% 즐기는 법이 될 수 있습니까? 수련회의 백미(白眉)는 자고로 기도의 응답, 하나님의 뜻 발견 등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혹자는 평범한 주일예배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기도의 응답을 받거나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수련회와 같은 집중적인 교제의 시간을 통해서 훨씬 더 많은 응답을 주시거나 당신의 뜻을 밝히 드러내시기도 하십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1-4) /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행13:1,2)
단, 기도할 때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무엇입니까? ‘내가 받고 싶은 것’을 구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기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째서입니까? 내가 받고 싶은 것만 구하다 보면 정욕적인 기도, 곧 이기적인 기도로 치우칠 수밖에 없으나,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4:3)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그만큼 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가 될 수 있고, 또한 기도의 응답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5:14)
한편, 우리는 어떤 기도제목들을 주로 적을 수 있습니까? ① 자신의 비전이나 진로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인생의 방향만큼이나 중요한 것도 더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내가 어디로 달려가야 할지도 모르는데, 무엇을 열심히 준비할 수 있으며 또 무엇에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단 말입니까? 먼저 우리의 비전을 깨닫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② 신앙의 성장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언제까지나 마냥 어린아이 수준의 신앙에 머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
생각해보십시오. 사람이 그 키가 자라고 지혜가 자라가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점점 더 자라가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이제라도 신앙의 성장을 위해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4,15)
③ 가족의 복음화, 곧 믿지 않는 가족이 예수 믿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믿지 않고 죽으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25:46) /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리라.”(계20:15)
물론 이외에도 여러 가지 기도의 제목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잘 찾아서 적되, 중요한 점은 응답받고 싶은 기도제목들을 직접 적고 이를 위해서 계속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둘째, 평소에 안 친했던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즐기기!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한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5:46,47)
수련회를 200% 즐기려면 또 무엇을 해야 합니까? 평소에 안 친했던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즐겨야 합니다. 이를테면 안 친했던 사람들과 같은 조가 되는 것을 불평하면서 싫어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예수님께서도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자기 형제에게만 인사하는 것은 불신자들도 잘 하는 것으로써, 이렇게 해서는 절대로 하나님께 상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한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5:46,47) /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눅6:32,33)
예수님은 더 나아가 누구까지도 사랑하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까? 원수, 곧 우리를 괴롭히는 자들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어째서입니까?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으며,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마5:45 상) 또한 하늘에서 큰 상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느니라.”(눅6:35)
혹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평소에 안 친했던 사람들과 같은 조(같은 팀)가 되는 것을 기피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오히려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것을 즐기고 누리고 있습니까? 평소부터 친했던 사람들과만 계속 만나려는 생각을 버리고 이제부터는 우리의 인간관계를 계속해서 확장시켜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누가 압니까? 그중에 미래의 절친(best friends)이 있을지 모르며, 그러다가 정말로 대단한 사람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바나바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그는 사도들 중에서 누구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민 사람입니까? 사울입니다. 사울은 본래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유대교에 열심 했던 자로써 교회를 박해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 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행8:3) /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행9:1,2)
그랬던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누구를 만났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변화되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 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행9:19-21)
하지만 예루살렘에 있던 그 누구도 사울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열 두 사도들조차도 말입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행9:26)
그런데 이 때 사도들 중에서 처음으로 그에게 손을 내밀어주었습니까? 바나바입니다. 그를 믿어주었고 그를 데리고 일일이 다른 사도들에게 소개해주었습니다.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행9:27)
그리고 같은 팀에 되어서 수많은 멋진 일들을 함께 해내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서 일 년 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11;25,26)
바나바가 어찌 처음부터 알 수 있었겠습니까? 사울(바울) 같은 멋진 친구를 만날 수 있었으며, 사울(바울) 같이 위대한 사도와 함께 동역할 수 있었으리라고 말입니다.
이래도 평소에 안 친했던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기피하겠습니까? 이래도 인간관계를 확장해나가는 것을 주저하고 망설이겠습니까?
명심하십시오. 몇몇 친했던 사람들과만 계속 교제하려는 것은 스스로를 좁은 틀 안에 가두려는 것이요 스스로 하늘의 큰 상을 밀어내는 행위이지만, 이제라도 마음의 문을 열고 다른 이들과 함께 하기 시작하면 이번 기회에 새로운 절친들도 생기고 위대한 인물과 함께 멋진 동역도 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말입니다.
셋째, 무분별한 이성교제를 피하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딤전5:2 하)
수련회를 200% 즐기려면 무엇을 경계해야 합니까? 무분별한 이성교제를 하는 행위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이는 우리의 공동체를 깨뜨리거나 망가뜨릴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앙성장을 저해하고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딤전5:2 하)
왜 무분별한 이성교제(異性交際)가 우리의 공동체를 망가뜨립니까? 믿음의 선배들이 후배들을 신앙적으로 잘 이끌어주어야 하는데, 믿음의 형제자매로 보지 않고 ‘이성’(異姓)’으로 느끼고 바라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신앙적 리더십이 제대로 된 작동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해집니다.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본격적인 이성교제에 들어가면, 특성상 서로를 독점(獨占, 독차지)하려고 하는데, 그러다보면 누가 소외감을 느끼고 떨어져나갈 수밖에 없습니까?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함께 있다가도 둘만 있으려고 하고, 둘만 사라지고, 둘만 시간을 보내려다보니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설령 ‘공간적으로’ 함께 있다고 해도, 연인들은 자기 두 사람에게만 집중하려는 성향이 강해서 공동체 속으로 좀처럼 들어오지를 못합니다.
최악의 경우는 무엇입니까? 이성교제의 파트너가 자주 바뀌거나 삼각관계, 사각관계로 얽히는 경우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이성친구가 자주 바뀌다보면, 둘 중 한 명은 반드시 교회를 떠나거나 공동체로부터 멀어지는 등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하게 되고, 삼각관계나 사각관계로 얽히는 경우도 서로에 대한 감정의 골이 깊어져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들을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왜 무분별한 이성교제(異性交際)가 우리의 신앙성장을 방해합니까? 신앙생활 자체가 하나님과의 일대일의 관계로써, 이 같은 일대일(一對一)의 관계를 통해서만 신앙성장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데,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15:4 상) /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아6:3 상)
무분별한 이성교제는 하나님과의 일대일이 아니라, 이성친구와의 일대일로 치우치게 하므로, 당연히 그 사람의 신앙성장도 방해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섣부른 이성교제는 우리의 믿음이 자라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하게 만들고 우리의 리더십을 든든하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추락하게 만듭니다.
사사 삼손이 왜 추락하고 말았습니까? 지혜의 왕 솔로몬이 왜 말년에 타락하고 말았습니까? 모두 잘못된 이성교제 때문입니다.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삿16:16) /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삿16:20,21) /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왕상11:4)
그러므로 무분별한 이성교제를 삼가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합니까? 이성친구가 아닌 ‘교회 오빠’(교회 누나)가 되려는 노력입니다. 그러려면 나이 어린 자매나 형제를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친 동생처럼’ 여겨야 합니다.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딤전5:2 하) 마찬가지로 나이 어린 자매들도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형제들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친 오빠, 곧 교회 오빠로 대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7) /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창5:1,2) 이성에 대해 호감(好感)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한다고 다 사귀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별히 여러 사람이 함께 합숙하며 훈련받는 수련회 기간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즉 평소보다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호감도도 높아지고 관심이 생길 수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온전히 깨끗한 마음으로 자매에게(또는 형제에게) 하듯 해야 합니다.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딤전5:2 하)
한편, 건전한 이성교제를 지금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합니까? 미래의 배우자를 놓고 지금부터 기도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적절한 때에 나에게 꼭 맞는 여자친구(남자친구)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되, 나 역시 그 친구에게 걸 맞는 이성친구로 준비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들이 준비되어야 합니까? 신체적, 정신적, 신앙적으로 성장하고, 인생의 목표가 분명하며, 경제적으로도 자립하는 것입니다. 특히 미래의 배우자에게 미안해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성적(性的) 순결 유지에도 힘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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