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쓰기)전에*****
매일 육군28사단 관련 이야기로 메스콤이 떠들썩 합니다!
너무도 기막힌 이야기죠!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되던 군대내의 폭력과
가혹한 기합에 많은 젊은이 들이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보다 많이 죽거나
다치고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니.... 이젠 없애야 합니다!
다시는 군대내의 사고가 없기를 기원하면서 내가 경험했던 '해군' 시절을
추억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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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함대 예비대'란 함정에 근무하는 군인(병장이하) 들이 휴가,외박,외출을
다녀 왔을때, 갑자기 소속 함정이 출동(항해)을 나갔거나 돌아오지 않았을때
잠깐 대기(숙식)하던 장소로 육군으로 치면 TMO라고 할까 그런곳으로
많은 수병들이 우글거리는 곳이었습니다!
어느곳이나 그렇듯 그곳엔 항상 저승사자(?)한둘이 꼭 있게 마련이었죠!
내가 발령 받은 DD-91함은 예정대로라면 이미 귀항했어야 했지만
1.21사태로 현지(서해5도)에서 해상경비를 연장하고 있었기에
기약없이 우리 동기생 30여명은 매일 얻어 맞으며 '통제부(해군기지)'
안의 구석구석을 청소하며 '저승사자'들의 노리개 노릇을
하고 우리의 배가 오기만을 학수고대 했습니다!
(저승사자:군대생활을 성실히 하지 못하고 사고를 쳤거나 탈영을 했다가
잡혀와 영창생활을 하고난뒤 제때 전역을 못하고 강등되어 영창생활 한만큼 제대
일자가 연기된 병사로 이들이 고참이랍시고 터를 잡고 앉아 낮에는 대기병들의
작업감독을 하고 밤에는 매 타작을 일삼는다!)
1968년 2월3일 드디어 우리 DD-91(충무)함이 들어왔고
우리는 '저승사자'에게 불려 갔습니다!
"야! 임마들아! 너희 배 들어 왔다고 좋아하지마라! 91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배이고 그만큼 군기도 쎈곳이야! 하하하 어쩌면 이곳이 그리울때가 있을거다!
힘들면 이곳으로 가끔 들러라! 알겠지? 이런 c8놈들이 대답이 없어 빠져가지고...?"
"네! 알겠습니다!" 일제히 대답은 했지만 우리는 속으로,
(알긴 뭘알아! 이 개새끼야 ! 이젠 네깐놈하고 마주칠일 없어
좋기만 하다! 설마 이곳보다 더할까? 나중에 제대해서 만나면
이곳에서 당한것 보다 몇십배로 더 갚아주마!) 했었죠!
DD-91함은 3,600톤급 철선으로 주 무장은 5인치포 다섯문이 장착되어 있는
'항공모함의 호위구축함' 이었습니다! 어뢰(물속을 가르고 날아가는 작은 미사일)와
폭뢰(잠수함을 폭파시키는 큰 수류탄 )가 탑재되어있고 승무원은 400여명 이었으며
1940년대에 건조되어 2차대전때 미국해군 제7함대에서 여러 전투에 참전하다가
1965년 전역되어, 고철로 팔리려던것을 우리해군 이 고쳐서
쓰겠다고 2년간 고치고 다듬어 인수하여온 당시로선 우리해군 주력함정
이었으며 4척의 '무장간첩선'을 잡았던 유명한 함정이었습니다!
최고 항속은 시속 30놋트(50km)로써 모항인 '진해'에서 '백령도'까지 약 17시간
정도 걸렸지만 고장이 자주 났었고 당시 북한해군은 우리의 91함을 무척
두려워 했답니다! 아뭏든 '진해항 제2부두'에 정박해 있는 우리의 91함
은 그 위용이 대단했습니다!
싸움하여 이기고 돌아온 '황소'가 내뿜는 콧김처럼 2개의 큰연통(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왔으며 말로만 듣던 '5인치 포'는 아직도
화약냄새를 풍기는듯 했었고 "충무함"이란 현판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답니다!
우리 동기생 30명은 줄을지어 배위현관(사다리를 타고 처음 오르는곳)에 오르며
'훈련소'에서 배운대로 후(後)갑판에 휘날리는 태극기와 전(前)갑판에 휘날리는 '해군기'에
각각 경례하고 들어가니, 정복을 입은 당직사관(소위)과 당직하사,당직병
이 반겨 맞으며,
"우리 수병들 어서와라! 반갑다! 우리 충무함에 온것을 환영한다!
당직하사가 안내 하는대로 소속부서로 이동 하도록! 나는 통신관 이**소위다!"
우리 모두를 유심히 지켜보던 당직하사는,
"어서들 와라! 나는 갑판하사 김**다 ! 지금부터 호명하는 사람은 당직병을
따라가라!우리는 바다에서 40일만에 돌아왔고 외출도 못나간채 근무를 하고있다!
그래서 화가 많이난 상태다! 두번 호명하지 않는다! 알았나?"
"예,알겠습니다!당직하사님!"
우리는 큰소리로 대답했었답니다!
15명은 갑판부로 당직병을 따라갔고 15명은 기관부로 당직하사가 안내했는데
나는 '기관부'배속되었다!
(휴! 드디어 소원을 풀었구나! 원하던 해군이 되었고 최고의 함정에
배속되었으며 '기관부'에 배치되었으니 기술도 배울수 있겠고...)

(지금도 나는 '해군전우회' '에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해군출신'임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간다!)
***신병 훈련소에서 경험한 구타 가혹행위***
선착순 : 연병장을 한바퀴 뛰어라! 하고 먼저 도착한 사람2-30명은
쉬게하고 31번 부터는 한바퀴더 돌게한다!(많게는 열바퀴를 더 돈다!)
빳따: 야구 방망이로 엎드려 뻗거나 선 상태에서 맞는것.(뼈가 부러진 동기생도 있었다!)
아구창맞기: 조교들이 훈련병에게 가하는 뺨 때리기 훈련병은 귀를잡고
얼굴을 들이밀며 맞고나면 차렷자세를 취한다! 어금니 물고....
쥐잡기: 내무반 침상밑에 억지로 들어가게 해놓고 답답해서 나오면
구둣발로 머리를 짓밟는다.
매미잡기: 나뭇 가지가 없는 나무에 올라가게 해놓고 미끄러져 내려오면
몽둥이질 한다! (겨울엔 맨손으로 올라가는데 손이시려 고통스럽다!)
원산폭격: 머리를 맨바닥에 꼽고 양손을 뒤로잡아(열중쉬어자세) 넘으지면
얻어 맞는다! 체중이 머리에 실려 10분을 참기 힘든다!
한강철교:양쪽으로 줄을세워 서로 팔을짚고 어깨에 다리를 걸치고 조교는 몸위를 걸어간다!
쓰러지면 발길질하며 악을 쓴다!
오리걸음:양손을 허리뒤로 감아쥐고 앉아서 오리소리(꿱꿱)를 내며 멀리걷는다(선착순)
차라리 빳따 몇대 맞는게 낫다!
알몸구보:발가벗고 구호를 외치며 연병장을 뛰어돈다!
(추워서 오줌을 싸고 심한경우 동상이 걸린다!)
욕설:차마 입에 담을수 없는 악담을 퍼 붓는다! 18새끼는 기본....
어디 이것 뿐이랴!
첫댓글 저는 81년 7월에 입대 하였습니다.
당시 박대통령 서거 후 급변하는 국내정치를 전대통령이 광주계엄 등으로 군바리가 경찰업무를 대신하는 상황이 많아서 인지 괜시리 대학 다니다 온 저를 힘들게 하더군요.
당시 고참하사 한명 왈
내가 군대 아니면 대학 나온놈들 어떻게 부려 먹겠노 하면서 고생 많이 시켰지만 성적 혐오감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지나고 나니 전부 용서 되더군요.
오히려 보고 싶더군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