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도 건너고 말도 건너고…누구라도 건너게 하지”
외나무다리는 무엇이고 돌다리는 무엇일까?
사실 이 둘은 둘이면서 또한 하나이다.
조주선사의 말씀을 척 알아듣는 경지라면
당신은 저 바다 밑에서 유유히 노니는
큰 바다 거북 같은 존재이다
그 누구라도 건너게 해주는 것이
돌다리의 진면목이라는 말씀이다.
대문 앞의 사자상이나 인왕상을 보면 잔뜩 힘이 들어가 있고 겁을 주는 모습이다. 그러나 자비로운 미소 머금은 불보살의 법좌에는 오를 수 없다
조주스님(趙州,778~897)은 종심(從諗)선사이시다. 10대에 출가하여 다른 절에 있다가 남전 보원(南泉普願)선사를 찾았다. 남전선사는 비스듬히 누운 상태로 어린 사미를 맞았다.
“어디서 왔느냐?”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그럼 훌륭한 상(瑞像, 부처님)은 이미 보았겠구나.”
“훌륭한 상은 모르겠으나 누워계신 부처님(누워계신 남전선사)은 뵈옵니다.”
남전선사께서 벌떡 일어나 앉으시며 다시 물었다.
“네게 스승이 있느냐?”
“아직 일기가 찬데 스승님께서 법체 강녕하시옵니까?”
이렇게 남전스님의 제자가 되었고, 남전스님께서 입적하실 때까지 40년을 모셨다. 60세부터는 여러 곳을 다니시며 운수행각을 하시다가, 80세에 측백나무(柏樹子)가 많은 조주현 관음원 즉 현재의 백림선사(柏林禪寺)에 주석하시면서 40년 동안 후학을 지도하셨다.
본칙 원문
擧 僧問趙州 久響趙州石橋 到來只見略彴 州云 汝只見略彴 且不見石橋 僧云 如何是石橋 州云 渡驢渡馬)니라
구향(久響) 오래전부터 유명함. 오래된 명성. 옛날부터 유명함.
조주석교(趙州石橋) 조주선사께서 주석하셨던 관음원(현재의 백림선사)에서 30리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함, 조주선사께서 생존할 당시에 천하의 삼석교(三石橋)라 하면 천태산(天台山)의 석교와 남악(南岳)의 석교 및 조주의 석교를 일컬었다고 함.
약작(略彴) 외나무다리.
본칙 번역
이런 얘기가 있다.
어떤 스님이 조주선사께 여쭈었다.
“오래 전부터 명성이 자자한 조주의 돌다리가, 왔더니 그저 외나무다리만 보이는군요.”
조주선사께서 말씀하셨다.
“자네가 다만 외나무다리만 봤지 또한 돌다리를 보지 못하는군.”
스님이 여쭈었다.
“어떤 것이 돌다리입니까?”
조주선사께서 말씀하셨다.“나귀도 건너고 말도 건너지.”
강설
나름 공부를 했다고 생각한 스님이 조주선사에게 공격을 가했다. “조주의 돌다리가 하도 유명하다기에 와서 봤더니 별 볼일 없는 외나무다리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자, 이 스님이 말한 조주의 돌다리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단순히 돌로 만든 다리에 관심이 있어서 이 스님이 조주현에 찾아왔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이 스님의 질문은 너무나 뻔하다. 얼핏 보면 조주영감님은 조롱을 당한 셈이다.
조주선사께서는 참으로 자비롭고 원만하시다. 전혀 윽박지르지도 않으시고 자상하게 말씀해 주신다. “자네가 제법 똑똑한 체 돌다리를 거론하며 외나무다리에 불과하다고 비아냥대지만, 자넨 돌다리를 외나무다리로만 봤지 진짜 돌다리는 보질 못하고 있네 그려.” 여기 외나무다리는 무엇이고 돌다리는 무엇일까? 사실 이 둘은 둘이면서 또한 하나이다.
하지만 제법 날카롭게 공격한 듯 보였던 이 스님은 금방 백기를 들고 말았다. 그저 허풍을 쳤던 것이다. 그래서 진짜로 궁금했던 점을 여쭈었다. “그럼 큰스님께서 말씀하신 그 돌다리는 어떤 것입니까?” 그는 돌다리의 실체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조주선사의 막힘없는 답은 누구도 따르기 어렵다. 전광석화 같은 답인데도 늘 완벽하다. “돌다리란 나귀도 건너고 말도 건너지.” 결국 그 누구라도 건너게 해주는 것이 돌다리의 진면목이라는 말씀이다. 이거야말로 자비의 극치이며 불조(佛祖)의 원력이다. 그럼 나귀는 무엇이고 말은 무엇인가?
송 원문
孤危不立道方高 入海還須釣巨鼇
堪笑同時灌溪老 解云劈箭亦徒勞
고위불립(孤危不立) 홀로 드높아 짝이 없으나 굳이 그것을 드러내지 않음. 고고한 위세를 드러내지 않음.
도방고(道方高) 드높음을 드러내지 않지만 이미 드높은 경지.
감소(堪笑) 참 우습구나.
동시(同時) 조주선사께서 활동하던 때와 같은 시대.
관계로(灌溪老) 관계 지한화상. 임제선사의 법제자인 관계 지한(灌溪志閑, ?~895)화상은 조주선사보다 2년 앞서 입적하신 스님이시다. 위 게송의 제4구로 보아 <전등록> 제12권의 내용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떤 스님이 관계화상 처소에 와서 말했다.
“오랫동안 관계(灌溪, 큰 계곡)의 소문을 들었는데, 와서 보니 웅덩이만 있군요.”
“그대는 웅덩이만 보고 큰 계곡(관계)은 보지 못하는군.”
“어떤 것이 큰 계곡입니까?”
“화살처럼 빠르게 흐르지.”
송 번역
홀로 드높음 내세우진 않으나 도 이제 높으니,
바다에 들어가면 도리어 꼭 큰 거북을 낚았네.
참으로 우습구나 같은 시대의 관계 노인이여,
살처럼 빠르다 할 줄 알았으나 헛된 수고였네.
강설
설두선사는 송의 제1구와 제2구에서 “홀로 드높음 내세우진 않으나 도 이제 높으니, 바다에 들어가면 도리어 꼭 큰 거북을 낚았네”라고 하여 노숙한 조주선사의 면목을 보여주려 하였다.
조주선사의 선문답은 대개 80세 이후에 주석하셨던 조주 관음원 즉 현재의 정주 백림선사(柏林禪寺)에서 있었던 일이다. 120세까지 사셨으니, 백세가 넘어서 있었던 일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참 부드럽다. 어깨나 목에 힘주는 법이 없다.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상대가 아무리 억세게 밀고 들어와도 그저 지나가는 말처럼 농담처럼 던지셨다. 그래서 작은 물고기나 새우 따위는 조주선사의 그 깊은 울림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친다. 누구에게나 “차 한 잔 하시게!(喫茶去)”라는 말씀으로 점검했으나 답한 이가 드물었고, 달마대사께서 중국에 오신 뜻을 묻는 선객에게는 “뜰 앞의 측백나무지(庭前柏樹子)”라며 바로 눈앞에 즐비한 측백나무를 가리켜 보였으나 메아리도 없었던 것이다. 늘 이런 식으로 답을 하셨으니, 너무 깊고 커서 오히려 놓치고 마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주선사의 말씀을 척 알아듣는 경지라면, 그는 이미 저 바다 밑에서 유유히 노니는 큰 바다거북 같은 존재이다.
설두노인네는 송의 제3구와 제4구에서 “참으로 우습구나 같은 시대의 관계 노인이여, 살처럼 빠르다 할 줄 알았으나 헛된 수고였네”라고 하여 명성이 자자했던 동시대의 선지식과 비교해 보여주었다.
설두 노인네는 조주선사가 얼마나 노련한지를 설명하기 위해 같은 시대에 사셨던 관계 지한화상(灌溪志閑和尙)을 예로 들었다. 마지막 구절의 ‘화살처럼 빠르다(劈箭)’고 한 말은 관계화상의 답에서 가져온 말이다.
관계선사는 임제선서의 법제자로 명성이 드높았던 인물이다. 어느 날 관계선사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선객이 관계선사에게 시비를 걸었다.
“세상에서는 관계의 명성이 자자하더니만, 와서 보니 그저 평범한 웅덩이에 불과하구만.”
이는 관계(灌溪)라는 법호의 뜻 즉 ‘큰 계곡’이라는 것을 가지고 ‘웅덩이’로 표현함으로써, 관계화상의 대응을 보려고 한 것이었다. 그러자 관계화상이 선객을 나무랐다.
“자네는 웅덩이만 보는 안목이로군. 그래서야 어찌 ‘큰 계곡(관계)’을 보겠는가.”
그러자 선객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스님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무엇이 큰 계곡입니까?)”
그러자 관계화상이 답했다.
“힘껏 당겨서 쏜 화살이 날아가는 것처럼 빠르다네.”
관계화상에게 덤빈 선객은 그래도 공부라는 것을 하고 있는 기개는 보인다. 요즘 화두타파도 해 보지 않은 이들이 어찌 그리도 화두공부를 왜곡하고 폄훼(貶毁)하는지. 자신이 무슨 잘못을 범하는지 알 턱이 있나. 석가모니께서 마지막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으실 때 어떤 화두(큰 의문)를 타파했는지를 꿈에도 모르니 어쩔 수 없긴 하지.
관계화상의 답은 참 멋지다. 이렇게 답하기가 어디 쉬운가. 과연 명성이 자자할 만하지 않은가. 그런데 어째 힘이 들어간 느낌이 들까? 이렇게 힘준다고 모두를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다고 도가 높아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 다시 조주선사의 모습을 보자.
“무엇이 조주의 진면목입니까?”
“나귀도 건너가고 말도 건너간다네.”
이 영감님의 깊고 높으나 한없이 자비롭고 부드럽기만 한 답을 보라. 아, 그래서 더욱 사람들로 하여금 아득하게 만들고 있다. 잔머리 굴려서는 안 된다. 스스로 조주의 돌다리가 되지 않으면 알 수 있는 답이 아니다. 조주선사의 말 아래 깨닫는다면, 그 이후로는 천하 사람들이 그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