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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민족역사정책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위대한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은 성경에는 없는 내용이다. 아래의 내용은 반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내용이지만 그 내용에는 그 근거가 분명하게 제시된 것이 있다. 그리고 이런 근거에 대하여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입을 다물거나 어떤 상식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을 현 기독교에서는 무슨 이유로 정당화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의 기원
오늘날 기독교인들에 알려진 절기들이 얼마나 허구적이라는 점은 크리스마스와 부활절로도 알 수가 있다.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이 하필이면 고대 중근동의 동지축제와 춘분축제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째서 예수는 기가 막히게 동지 축제에 태어나고, 춘분 축제 때 부활했는가?
(1) 크리스마스의 기원
독일의 종교개혁가였던 파울 어니스트 야블론스키(Paul Ernst Jablonski)에 따르면 12월 25일이 그리스도의 출생 일을 축하하는 일은 4세기 교회가 채택했던 기독교가 이교도화 된 많은 일들 중 하나라고 말했다. 베네딕트 수도사인 돔 쟌 하도용(Dom Jean Hardouin)도 카톨릭 교회가 이교도 축제 들을 끌어들였다고 주장했는데, 이런 주장은 종교개혁과 더불어 급 물살을 타게 된다. 종교개혁 이후 청교도 혁명을 이끌었던 비 국교도(dissenters) 들은 1664년 법령(Act of Parliament)에 따라 크리스마스 때 가게들을 열도록 했다. 1659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공식적으로 크리스마스를 금지했고, 1870년에 이르러 크리스마스에 학교를 닫지 않고 교육을 실시했다고 한다. 초창기의 개신교는 크리스마스를 거부했으나 1836년 미국 앨라바마 주에서부터 공휴일로 지정한 이후 크리스마스 반대의 물결도 점차 줄어 들었다. 그렇다면 초기의 청교도들이 크리스마스를 그토록 반대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12월 25일(크리스마스)은 예수가 태어난 날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 정확한 예수의 탄생은 알려져 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12월25일은 조로아스터교와 미트라, 로마인들의 태양신을 맞이하는 축제였다! 크리스마스(christmas)는 Christ(그리스도)와 Mas(미사,축제일)의 두 단어가 합하여 이루어진 말로, ‘메시아 제전’이라는 뜻이 된다. 이러한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탄생일이라는 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 의해 크게 왜곡되어 버린 것이다. 그날은 엄연하게 예수탄생 이전에도 동지날 축제와 수많은 메시아와 신들의 축제였기 때문이다. 12월25일은 일년 중 낮의 길이가 짧아지다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시기에 속한다. 농경 생활을 하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태양은 곧 절대자의 상징이었고 태양이 다시 그 힘을 회복하여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이날은 춘일의 도래와 함께 생명의 소생을 예고하는 날로서 고대인들이 메시아 신앙으로 미래를 소망하던 날이었다. 알렉산더 히슬롭은 그의 저서 두 개의 바빌론에서 12월 25일의 기원은 고대 바빌론 종교에서 하늘의 여왕인 이쉬타르의 아들 탐무스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종교적 축일이었으며, 이집트의 하늘의 여왕인 이시스의 아들 호루스가 태어난 날이다.[알렉산더 히슬롭/ 두 개의 바빌론 /도서출판 안티오크]. 그런 종교적 관습은 후에 등장한 조로아스터교와 미트라교에도 이어지게 된다. 12월 25일은 다시 조로아스터교의 태양신의 생일이 되었으며, 다시 미트라 숭배자들에게 태양신(미트라)의 탄생을 숭배하는 날로 이어졌다. BC 336년경부터 로마에서는 12월 중순부터 연말까지 농신제(Saturnalia)를 지키면서, 축제를 베풀고 거리에서 가면을 쓴 채 술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기독교가 헬레니즘문화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그들의 풍습을 하나 둘씩 흡수하면서 손쉽게 이방인들을 교화시킬 수가 있었다. 이것을 기독교의 토착화라고 한다.
예수가 태어난 날은 복음서에 기록이 없는데, 다만 2세기 때 이집트의 동방교회에서는 1월 6일을 성탄절로 기념했다고 한다. 그러나 353∼354년경 교황 리베리어스가 1월 6일을 신현절 혹은 세례절로, 12월 25일을 성탄절이라고 공식 발표를 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BC 45년경 시작된 로마의 율리안 달력에 따르면 12월 25일이 동지(冬至)였기 때문이다.
매클린톡과 스트롱의 교회문헌 백과사전에는 크리스마스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해 놓았다.
“크리스마스 기념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도 아니며, 신약에서 기원한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일은 신약이나 여타자료에서도 확인 할 수 없다. ” [ J. 매클린톡과 J. 스트롱 공편 , 교회 문헌 백과사전 (Cyclopedia of Biblical, Theological, and Ecclesiastical Literature).뉴욕1871년판 2권 P.276]
헨리 대니얼 롭스의 예수당시의 일상생활에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 양은 …. 겨울에는 우리안에 넣는다. 이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겨울에는 전통적인 크리스마스날짜가 옳을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복음서에서는 그때 목자들이 들에 있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 [헨리 대니얼 롭스. 예수 당시의 일상생활. 뉴욕 1962년판, P.228]
이스라엘은 비록 작은 나라지만 북부와 남부의 기온 차가 커서 12월에 남부 해안에선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가 하면 북부 지방에는 스키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 하다. 북반부는 지중해성 기후이고, 요르단지구대는 여름에 찌는 듯이 더우며, 남반부는 전체가 네게브 사막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겨울철에는 식물이 자라지 않는데, 10월 말 이후에 목자들이 들판에서 자신들의 양떼들을 먹이고 지키는 것은 그들의 관습이 아닐 뿐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3월 하순이나 4월 초순경부터 양떼들을 들판에 방목하다가 10월경 첫 비가 내릴 때쯤에는 추위로 인해 양떼를 몰고 돌아와서는 우리 안에서 겨울을 나게 했다. 에스라 10장 9~13절을 보면, 에스라가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모았을 때인 아홉째 달 이십일 경(유대달력-현재달력으로 11월 중순경 이후임)에 비로 인해 추위에 떨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예수가 탄생할 때 목자들이 밤을 세워 들판에서 양을 몰았다고 한다. (참고 삼아 말하면, 팔레스타인은 여름철에도 밤과 낮의 기온 차이가 40도나 될 때가 있고, 밤은 떨릴 정도로 기온이 내려간다. 그래서 율법에서는 채권자에게 담보로 잡은 외투를 저녁에는 채무자에게 돌려주라고 권고하고 있다.)
아메리카나 백과사전은 크리스마스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 내리고 있다.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정한 이유는 좀 모호한 면이 있지만,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느 동지 즈음에 ‘ 태양의 재탄생’을 위해 지켜졌던 이교축제 기간과 일치하게끔 그 날짜(12월 25일)가 선택되었다는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로마의 농신제(농업의 신인 사투르누스와 신생되는 태양신에게 바쳐진 절기)는 또한 이시기에 지켜졌으며, 일부 크리스마스관습들은 그 고대 이교 축제에서 유래된것으로 생각된다. ” [아메리카나백과사전.1977년판,6권,P.666]
신 카톨릭백과사전에서는 크리스마스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다.
” 그리스도의 탄생일은 알려져 있지않다. 복음서에서는 그 달과 그 날짜를 알려주지 않는다….H.유시너가 제기하였으며,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이 받아들이는 가설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탄생이 동짓날 (율리우스력으로 12월 25일, 애굽인에게는 1월 6일)로 지정된 이유는 그 날, 태양이 북쪽하늘로 되돌아 오기 시작할때 이교도인 미트라 신봉자들은 무적 태양의 탄생일을 축하하였기 때문이다. 아우렐리아누스는 274년, 12월 25일에 태양신을 제국의 으뜸가는 수호신으로 선포하였으며 한 신전을 마르티우스 광장에 있는 그 신에게 바쳤다. 그 후 크리스마스는 태양숭배가 로마에서 특히 성행할 때에 시작하였다. ” [신 카톨릭백과사전.1967년판,3권 P.656]
두산세계대백과는 크리스마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크리스마스는 초기 그리스도교가 이교도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던 봄의 광명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동지(冬至)의 축일, 다시 말하면 태양숭배의 습속을 이용하여 그리스도 탄생을 기념한 것으로 보인다. 주로 농경사회의 로마에서는 ‘사투르날리아’라는 농경신 새턴의 제일(祭日)이 12월 21~31일(혹은 17~24일까지, 또는 1월 1일)까지 계속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이 신은 본래 그리스에서 왔다고 전해지는 고대 이탈리아의 신으로서, 크로노스와 동일시하는 경우도 있다. 역시 그리스에서 와서 더 오래된 야누스의 도움으로 ‘황금시대’의 즐거운 날을 보내다가 문명화하는 일을 계속하였다. 새턴은 특히 사람들에게 대지의 경작법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새턴은 재배와 포도의 채집과 관련되어 있다. 이 크로노스 신(로마에서는 사투르누스신)을 제사하는 ‘사투르날리아’ 기간에는 노예도 자유롭게 주인의 연회에 참석할 수가 있으며, 혹은 주인이 거꾸로 노예에게 봉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연령 ·성별 ·계급의 구별 없이 연회 ·경기 ·행렬 따위가 벌어졌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도 서로 선물을 교환하였다. 이 기간 중에서 12월 25일은 동지가 지난 다음으로 태양이 소생하는 날이라고 하여 특히 기념되었다. 또 ‘미트라의 축일’도 이 날이었다. 미트라는 본래 페르시아인의 신으로서 태양과 동일시된 인도 ·유럽 민족의 옛 신성(神性)이었다. 이것이 로마 사람들, 특히 군인 ·병사 사이에서 숭배되어 유럽 각지에 전파되었다. 이것은 태양신, 불패의 태양으로서 숭경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켈트 민족의 제사(祭司)계급이었던 드뤼도들도 그들의 높은 성소(聖所)에서 이 기쁜 날을 축하하고, 또한 게르만인도 이 날을 유쾌하게 축하하였다. 초대 그리스도교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농경력(農耕曆)상의 성대한 제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신을 결합시킨 것이 크리스마스이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크리스마스 Christmas 항목]
로버트 J. 마이어의 ‘축전-미국인의 축일 전집’이라는 책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축하되기 이전, 로마 세게에서의 12월 25일은 나탈리스 솔리스 인비크티, 즉 정복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이었다. 율리우스력의 동지 직후에 벌어졌던 이 축제는 태양신 미트라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 미트라 숭배의 영향 외에도, 이교의 힘이 작용하였다”
즉, 크리스마스란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이 이교도적인 관습들을 흡수한 것이다. 루터, 칼빈, 쯔빙글리 같은 개혁자들과 미국을 건설한 청교도들은 이 같은 크리스마스의 비 성경적인 배경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에, 카톨릭의 미사는 물론이고 크리스마스를 교회의 절기인 양 받아들이는 것을 엄격히 금하기도 했지만, 이미 오랜 기간 동안에 지켜져 왔던 축제일이기에 사라질 수가 없었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관습은 고대 이집트에서의 동지제(冬至祭) 때의 나뭇가지를 장식하고, 로마의 동지제 행렬에서는 촛불을 단 월계수 가지 장식을 들고 행렬을 했던 성목(聖木) 숭배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흔히 “크리스마스 트리”로 전나무를 사용하게 된 데는 8세기경 독일에 파견된 선교사 오딘에 대한 전설이 있지만, 그것은 전설일 따름이고 신브리태니커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교도들이었던 유럽인들 사이에서 성행하였던 나무숭배는 그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에도 존속하였는데, 마귀를 ?’아내기 위해 신년에 집과 헛간을 전나무로 장식하고 크리스마스 시즌에 새들을 위해 나무를 세우는 스칸디나비아의 관습들을 통해 이어져 왔다.” [The New Encyclopedia Britannica / Christmas Tree 항목]
고대 로마인들은 농사의 신 새턴(Saturn)을 위해 농신제 기간인 12월25일에 감탕나무 가지로 신전들을 장식했다고 한다. 또, 고대 켈틱 영국의 드루이드(Druids) 교도들은 겨우살이 나무 가지에 신비한 힘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 가지는 악귀와 마법과 그 밖의 재액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호신부로 사용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겨우살이 가지 밑에서 입맞춤을 하면 결혼하게 된다는 미신도 생겨나기도 했다.
또, 크리스마스 트리와 더불어 크리스마스의 또 다른 주인공인 산타클로스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미라(Myra)의 주교 성 니콜라스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성 니콜라스에 대한 상당부분은 거의 전설에 지나지 않고, 알렉산더 히슬롭의 설명에 따르면 산타클로스의 실체는 다름아닌 로마의 농신 새턴(Saturn)의 분신이라는 것이다. 가령 농신제의 풍습 중에 작은 인형을 선물로 교환하는 풍습도 변형된 것 이라고 주장한다. [알렉산더 히슬롭. 두 개의 바빌론.도서출판 안티오크]
그렇다면 이런 이교도축제일이 어떻게 예수의 탄생일이 되었는가? 신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은 이렇게 정의 내리고 있다.
“가장 가능성 있는 이유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그 날짜를 무적 태양의 탄신일을 알리는 표가 되는 이교 로마 축제일과 일치시키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The New Encyclopedia Britannica / Christmas 항목]
(2) 부활절의 기원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부활절 역시 이방종교의 영향에 의한 것이다. 부활절은 영어로 이스터(Easter)라고 하는데 그 단어는 본래적 의미에 있어서 기독교, 혹은 유대교적인 표현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 말은 이교 여신 즉, 낮과 봄의 떠오르는 빛의 여신 이름으로부터 온 말로, 지중해에서 지냈던 춘분축제(봄의 여신축제)가 기독교식으로 토착화 된 것을 의미한다. 튜튼족 여신 에아스트레(Eastre)의 날이 토착화 되어 영어 이스터(Easter)가 된 것이다. 부활절을 뜻하는 명칭인 이스터(Easter)에서 알 수 있듯이, 그 기원은 춘분(春分)때 봄의 여신 축제의 변형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부활절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해마다 바뀌는 것도 그것이 춘분의 영향이다. 이스터(Easter)는 에오스트레(Eostre), 오스테라(Ostera), 아스타르테(Astarte), 이쉬타르(Ishtar)의 현대적 표현이며, 히스롭(Hislop)에 따르면 이 중 마지막 것인 아쉬타르(Ishtar)가 오늘날 우리가 발음하고 있는 Easter(부활절)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미국인의 연례 기념일 편람’은 여신 오스테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전설에 의하면, 오스테라는 발할라 신전의 문을 열어 발데르를 맞이하는 여신이다. 발데르는 그의 순수함때문에 백색의 신이라 불리며, 그의 이마로 인류에게 빛을 비춰주기 때문에 태양신이라 불린다.” [Stephen G. Christianson, Jane M. Hatch / The American Book of Days]
웹스터의 신 국제 사전에서는 이스터(부활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고대 이교도들의 봄 축제, 2.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축제일로서 3월 21일 춘분이 지난 뒤에 오는 만월을 기준으로 해서 그 다음에 오는 일요일에 거행된다. 부활절은 춘분과 음력이 연결된 일자이기 때문에, 그 날짜는 매해 달라진다. [Webster’s 3r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 Easter 항목]
‘성서대백과’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이스터라는 명칭의 어원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비드(Bede)에 의하면, 이 명칭은 고대 튜우튼 족이 4월에 희생제물을 바쳤던 봄의 여신 ‘이스터'(Eastre)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크리스천 의식은 아마도 이 이교도 축제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정인찬 / 성서대백과 /기독지혜사 ]
중세의 성일과 축일이라는 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성일의 명칭이 새벽과 봄의 여신인 오스테르라는 이교의 신에게서 따온 것이다.”[Medieval Holidays and Festivals / Piatkus]
이 부활절(Easter)이란 말에서와 같이, 이 부활절 기간에 행하는 많은 관습들 역시 이방종교의 풍습에서 시작 되었던 것이다. 3세기경, 교회에서 지킨 부활 축일은 오늘날 ‘파스카’ 즉 ‘유월절’로 불렸고, 이 날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이 ‘파스카’를 ‘이스터’라 불러 ‘춘분 뒤에 오는 만월(滿月) 직후의 일요일’에 축일로 지키기 시작한 것은 로마 카톨릭 교회였다. AD 325년 그리스 동방 정교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교회가 니케아 공회에서 춘분 축 에 맞춰 부활절을 정한 것이다. [카톨릭 백과사전, P.505]
부활절에 나누어 주는 달걀의 유래는 십자군 전쟁에서 어느 군인의 아내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이 있으나, 그것보다 훨씬 전에 이집트와 중근동의 춘분 축제 때 달걀을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달걀은 생명이 싹트는 봄의 생명의 부활과 다산을 상징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유프라데스강으로 떨어진 거대한 달걀로부터 여신 아스타르테(Astarte-Easter)가 부화 되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인들과 그리스인들은 종교의식에서 알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비밀스런 목적을 위해 사원에 알의 형상을 만들어 바치기도 했다. 영국의 고대 드루이드교도(Druids)들은 자기들 단체의 거룩한 상징으로 지니고 다녔으며, 로마의 풍작의 여신 케레스(Ceres) 행렬에서는 달걀이 앞서 갔다. 아테네에서는 박카스 제전이나 디오니시아카의 제전 때 달걀을 성별하여 바치는 종교행사가 거행되었다. 인도의 힌두교도들은 금빛을 띤 창조의 알을 숭배했다. 고대인들에게 달걀이 상징하는 의미는 두 가지였다. 즉,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의 달걀과 티폰(Typhon)의 달걀이 그것이다. 이집트인들에게는 달걀이 태양, 즉 황금달걀과 관련되어 있었으며, 염색한 달걀을 거룩한 제물들로 사용하였다.
카톨릭 백과사전의 다음 인용구는 의미심장하다.
“사순절 동안 달걀 사용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부활절 즐거움을 상징키 위해 붉게 물들인 달걀들을 부활(절)날 상위에다 갔다 둔다. 이 관습은 그 기원을 이교주의에 둘 수도 있다. 이는 봄이 다시 오는 것을 경축하는 대단히 많은 이교 관습들이 부활절에 끌리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유럽에서 인기 있는 관습들의 사례였다. 부활절 불은 산꼭대기에서 마찰을 일으켜 붙인 새 불로부터 얻은 것이었다. 이것은 이교도에서 기원한 관습으로 겨울에 대해 봄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주교들은 이 신성 모독적인 부활절 불들을 금하는 엄한 칙령을 발하였으나 각지에서 이 관습을 폐지시키지 못하였다.” [카톨릭백과사전 /제5권/ P.227]
대중 관습의 진기한 특징의 윌리엄 역시 카톨릭백과사전과 같은 견해를 보였다.
“초기 교회들이 확고 부동한 방침은, 근절하기가 불가능하였던 이 이교 의식들에 그리스도교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부활절의 경우에는, 변환시키기가 특히 쉬웠다. 자연의 태양이 떠오르고 자연이 겨울의 죽음으로부터 깨어날 때의 기쁨은, 의의 태양이 떠오를 때, 즉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실 때의 기쁨으로 바뀌었다. 또한 5월 1일 경에 있었던 일부 이교 의식들은 부활절 축하에 대응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WALSH, WILLIAM S. / CURIOSITIES OF POPULAR CUSTOMS / Illus Lippincott Phila]
달걀과 더불어 부활절 토끼에 관하여 한가지 더 인용키로 한다. 토끼는 이교도의 상징이고 항상 다산의 상징이 되어 왔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그림으로 보는 세계 문화 상징 사전’은 부활절 달걀과 마찬가지로 부활절 토끼도 고대의 관습으로부터 기독교에 흡수된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부활절 달걀과 마찬가지로, 부활절 토끼도 고대 이교로부터 기독교화 된 것이다. 토끼는 고대 이집트의 전설에서나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 달과 관련되어 있다. 토끼에 해당되는 이집트 말 ‘um’이 ‘열린'(open)이란 의미와 ‘기간'(period)을 의미하고 있으므로, 이 토끼는 어떤 주기성 사상과 관련을 갖게 되었다. 즉 달과 인간에게, 그리고 젊은 청춘 남녀에게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으로 다산과 새로운 삶의 상징이 되었다. 이와 같이 토끼는 부활절…달걀과 관련되어 있다.” [Encyclopaedia Britanica]
“기독교가 생기기 이전에, 부활절 달걀 혹은 토끼는 춘분에 즈음하여 생명의 새로운 탄생과 갱생을 가져다주는 상징이었다. 야생토끼나 집토끼는 게르만의 여신 오스타라(중세 영국의 에오스트레)를 나타내는 것이다. 아마도 이 여신의 이름이 이스터의 어원일 것이다.” [진쿠퍼 / 그림으로 보는 세계 문화 상징 사전 / 이윤기 옮김 / 까치]
고대 이집트인과 다른 백성들이 지닌 전설들에는 이 토끼가 달과 관련되어 있다. 토끼라는 이집트인들의 말 um이 역시 열려 있는(open)것과 기간(period)을 뜻하고 있는 사실을 통하여 이 토끼는 달과 사람 쌍방에는 주기성 사상으로 또 청년 남녀에게는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관계되어 있어 다산의 상징과 새로운 삶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것과 같이 토끼는 부활절의 달걀들과 관련되기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부활절 토끼와 부활절 달걀을 둘 다 성적(性的) 의미의 상징들이 되고 다산의 상징들이 되었다.
부활절 시즌에 그리스도인 들은 보통 일출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해가 막 떠오르는 부활절 일요일 아침에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기 때문에 그런 종교행사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복음서속의 예수의 부활은 사실상 해 돋을 때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 무덤이 이미 비어있는 것을 알았을 때는 아직도 어두웠을 때였다. 정확히 따진다면, 이 일출 예배 모형은 고대 태양 숭배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에스겔서 8장 16절에서 볼 수 있듯이 에스겔 시대에도 유대교의 추종자들조차도 태양경배에 빠졌고 이것을 자기들의 예배의 부분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보니 여호와의 전 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이십 오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낮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더라.” [에스겔 8장16절]
엘리야 시대에 바알 선지자들이 바라 보았던 곳도 역시 동쪽이었다. 바알은 태양신도 되고 번개와 천둥, 불의 신도 되었다. 엘리야가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라고 하며 바알 선지자들에게 도전했을 때, 그는 바알 경배의 바탕과 맞서고 있었던 것이다. 이 바알 선지자들이 바알을 부르기 시작한 때가 하루 중 어느 때였는가? 그것은 바알 즉 태양이 그 첫 모습을 동쪽 지평선 위로 나타낼 때였다. 그 시간은 아침[왕상18:26] 즉, 동틀 때였다. 한가지 형태로나 혹은 다른 형태로 통틀 때의 태양과 연관된 의식들은 많은 고대 국가들 사이에서 알려져 왔다.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동쪽을 바라보도록 그 위치가 정해졌다. 로마의 미트라 교도들도 태양신을 숭배키 위해 동틀 때 함께 만났다고 한다.
이스터(Easter)란 말이 나온 이름인 봄의 여신은 East-er(동쪽-자) 말에서조차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동쪽(east)에서 태양이 솟아 오르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동쪽에서 태양이 돋는 것과, 이스터(Easter)라는 부활절 이름과, 봄 계절과는 모두 관련이 되는 것이다.
부활절과 함께 사순절역시 이교도의 것이다. 옛 전설들에 따르면 탐무즈(Tammuz)는 죽임을 당한 후 이승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이쉬타르(Ishtar)가 애곡함으로 인하여 그는 봄에 신비하게 소생하였다. 농작물의 성공과 사람들의 다산을 보증하기 위하여 이쉬타르의 슬픔을 통한 탐무즈의 부활을 매해 극적으로 나타났었다. 매년 바빌론의 사람들은 이쉬타르와 함께 탐무스의 죽음을 슬퍼해야 하고 그녀의 은총과 은전(恩典)을 새롭게 얻기 위해 신의 이 귀환을 축하하여야 했다. 새로운 식물이 싹트고 나올 때 고대인들은 자기들의 구세주가 이승에서 나와 겨울을 끝 마치게 하고 봄을 시작하였다고 믿었다. [우르딘/축제와 성일과 성인의 날들]. 이스라엘인들 조차도 이교도의 축제의 가르침과 의식들을 받아 들였다. 에스겔서에서도 여인들이 앉아 탐무즈를 위하여 애곡했다는 일화도 있다.[에스겔 8장14절]
전승에 의하면 탐무즈가 40세 때에 멧돼지에게 받혀 죽었다고 한다. 바빌론의 풍습에 따르면 탐무즈가 부활하기 전 40일간의 금식기간이 있었다. 고대에는 이 40일 동안 신의 은총을 새로이 얻고자 즉, 신이 지하 세계에서 나와 봄을 시작하도록 자기에게 매질하는 것으로 지켰던 것이다. 이러한 관습은 바벨론인 뿐만 아니라 페니키아인, 이집트인, 이스라엘인, 그리고, 미트라교에도 흡수 되어졌다. 미트라교에도 미트라가 부활하기 전 40일간의 고난주간이 있었다. 알렉산더 히슬롭은 이교도들 가운데서 이 사순절이 탐무즈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연례 대축제의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 되어진 것처럼 보였다고 말하고 있다[알렉산더 히슬롭 / 두 개의 바빌론 / 도서출판 안티오크]. 이집트에서도 오시리스를 위해 40일간의 금식을 행했는데, 이집트학으로 정평이 나있는 윌킨슨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봄축제와 관련된 이교도들의 여러 가지 관습이 이미 카톨릭 교회 안에 유입된 고로, 이 축제에 앞서 행해지던 이교도의 “금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단계로의 발전일 뿐이었다.「카톨릭백과사전」은 아주 솔직하게 이렇게 말한다. 4세기의 저술가들은 확실히 그렇다고 여길만한 주장이 없는 이 사도적 제도에 관하여 많은 관행들(예를 들면 사순절의 40일간의 금식)을 기술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Richard Wilkinson / The Complete Temples of Ancient Egypt]
“사람들이 고기와 다른 몇 가지 음식들을 삼가는 동안을 거룩한 금식이라고 부르면서 교황이 사순절 준수를 공식적으로 명령한 것은 6세기에 가서였다. 카톨릭 학자들은 교회 안에 이교주의에서 빌려온 관습들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고 있다.” [카톨릭 백과사전, 제11권, ‘이교주의’ 항목 P.390]
그리고 많은 카톨릭 교인들이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기념키 위하여 매 금요일마다 고기를(물고기로 대체하였지만)먹지 않는다.
미국에 있는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교인들에게 사순절 기간 외에는 금요일 날 고기를 먹지 말라고 이전과 같이 요청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은 아직도 금요일 날 물고기 관습을 따르고 있다. 성경에 따르면 금요일과 물고기가 관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금요일(Friday)이란 말은 프레야(freya)란 이름으로부터 왔다는 설도 있는데, 이 프레야는 평화, 기쁨 및 다산의 여신 즉, 다산의 상징인 물고기로 알려졌다. 옛날부터 물고기는 중국인, 앗시리아인, 페니키아인, 바벨론인 및 그 밖의 사람들에게 다산의 상징이었다. ‘물고기'(fish)란 말은 번식 혹은 다산을 암시하는 다그(dag)에서 유래되었고, 이는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한 마리의 대구가 매년 9,000,000개 이상, 넙치류는 1,000,000개 이상, 철갑상어는 700,000개 이상, 농어류는 400,000개 이상, 고등어는 500,000개 이상, 청어는 10,000개 이상… 등등의 산란을 하고 있다.
비너스(Venus)는 로마인들 중 성적 다산의 여신으로 불리어졌다. 성병(veneral disease)이란 이 말에서와 같이 veneral이란 말은 이 비너스(Venus)여신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금성 (planet venus)이 금요일의 첫 시간을 다스린다고 신봉하여 비너스의 날(dies Veneris)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금요일을 비너스의 거룩한 날로 보게 된 것이다. 이 의미를 완전하게 말한다면, 비너스에게는 물고기가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다. 고대 이교도와 현대 그리스도인 상징주의(Ancient pagan and Modern Christian Symbolism)란 책에서 볼 수 있는 삽화는 여신 비너스가 자기의 상징인 물고기와 같이 있는 것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교 여신으로 경배하였던 아스다롯(Ashtoreth)에게 이 물고기는 거룩한 것으로서 여겨졌다. 고대 이집트에서 이시스(Isis)는 때때로 머리에 물고기가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금요일이 성적 다산의 여신을 따라 이름이 지어졌고, 금요일이 이시스의 거룩한 날인 것과, 물고기가 그녀의 상징이 되는 것을 고려하면, 카톨릭 교인들에게 금요일에 고기를 먹지 않고 물고기를 먹게 하는 날로 가르치는 것이 우연한 일치 이상인 것으로 보인다.
모든 학자들이 수긍하고 있듯이 이스터(Easter)라고 번역된 말은 유월절 이란 헬라어 말인 파스카(pascha)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첫댓글 그러게 말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 생일 파티를 한번이라도 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그리고 부활절은 절기와 비교해서 하게 된 것이죠.. 그 날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의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카톨릭은 이방민족들을 선교하려는 명목으로 그들이 섬기던 우상숭배의 방식들도 가져오는 것에 더욱 열을 올렸기 때문에 우상숭배의 잔재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거의 카톨릭은 이방종교라 봐야죠..
님의 댓글에 동감입니다. 절기의 의미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한가지 부정을 하려면 교회 양식과 예배 형식등 성경에 나오지 않는 것들 모두가 부정될수 밖에 없지요. 절기와 교회 양식을 통해 성경말씀의 의미를 깨닫는데 중점을 둔다면 모두가 성경적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보지 않은 것이죠.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계신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탄생이 없습니다.
잠시 이 땅에 오셨다 가신 것이죠
부처는 탄생일이 있어도 예수님은 탄생일이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