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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돌, 연하남, 그 녀석
09
“왜 그래?”
“뭘?”
“학교에서 무슨 기분 안 좋은 일 있었어?”
“그런 일 없었어. 왜?”
“표정이 별로 안 좋으니까 그러지.”
“안 좋긴 뭐가 안 좋아. 얼른 밥이나 먹어.”
이번 주말은 쉬는 기간이라며 좋아하던 정태웅이 밥을 사주겠다며 학교 근처까지 나를 데리러 왔다.
사람들 눈이 있는지라 밖에서 둘이 밥 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인데, 이 녀석은 밥을 사주겠다고 하면
사람들 눈이 훤히 보이는 레스토랑에 와서 이렇게 밥을 먹는다. 하지만 그런 나를 나름대로 배려하려는 뜻일까
매번 제일 구석지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미리 예약을 해 놓는다. 그래서 나는 별 잔소리 없이 정태웅의 뜻에 따른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렇게 밥을 먹고 있는데, 이 녀석은 밥은 먹지 않고 내 얼굴만 계속 쳐다본다.
눈치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 나는 그러지 말라고 말을 꺼낸 것인데, 생각보다 툭툭거리는 내 말투에
오히려 이 녀석이 더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뭐 내가 잘못했어?”
“너 뭐 잘못했어? 찔리는 거 있어?”
“아니, 전혀 없지!
아, 이은호 표정 왜 그래. 오랜만에 얼굴 보면서.“
“내 표정이 어떻길래 아까부터 안 좋다고 그래.”
“화장실가서 거울 봐봐라. 그 표정이 지금 남자친구랑 데이트하는 여자 얼굴 표정이냐?”
은아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굉장히 예민해졌다.
그 날 인터넷에 들어가 그동안 챙겨보지 않았던 태웅이가 방송 프로그램에 나오는 모습들을 이것저것 보았다.
보다보니 소위 요즘 잘 나간다는 여자 연예인과 애정 표현은 물론 가벼운 스킨십 까지도 서슴지 않는 것들을 보고 나서는
그냥 기분이 좋지 않아졌다. 한 번도 그런 것에 신경을 써 본 적이 없던 터라 그냥 더 신경이 쓰이는 듯싶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태웅이의 연락에도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했으며, 그게 마음에 걸렸던 태웅이가 제안한 데이트에서도
생각과는 다르게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하고 있다. 어린 애처럼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냥 피곤해서 그래.”
“많이 피곤해? 그럼 그냥 집에 가자고 하지.”
“너가 물어보지도 않고 여기 왔으면서. 괜찮으니까 밥 많이 먹어.”
내 말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분위기를 눈치보고 나를 한 번씩 쳐다보는 녀석의 행동 때문에
나는 결국 화장실에 가서 내 표정을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거울에 비춰지는 내 모습을 보니,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일주일동안 학교를 나가면서 쌓인 피곤도 그 원인이겠지만,
지금 내 표정은 내가 봐도 매우 우울해 보인다. 나는 입 꼬리를 올리면서 어색하게라도 웃는 표정을 지어보고는 다시 태웅이가 앉아있는 그 자리로 향했다.
“그 날 촬영은 잘 했어?”
“그 날?”
“목요일날 나한테 전화해서 촬영 간다고 했잖아.”
“아... 그거? 그냥 뭐, 맨날 똑같지.”
“무슨 촬영이었는데?”
“왜 남자연예인이랑 여자연예인이랑 커플되서 게임하고 그러는 거 있잖아.
너는 TV 잘 안보니까 모를 수도 있겠지만.“
“대충 어떤 건지는 나도 알아. 재밌었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했더니 재미 하나도 없었어.”
그 날 정말 재미가 없었던지 나에게 투정을 부리며 말하는 태웅이의 표정은 정말 지루했다고 나타내고 있었다.
“넌 누구랑 커플이었는데?”
“너 말해도 연예인 잘 모르잖아?”
“그래도 너 때문에 은근히 연예인 많이 알아.”
“거짓말은. 그럼, 유하늘 알아?”
“유하늘?”
“거봐, 모르면서- 유하늘이랑 커플이었어.”
“예뻐?”
“그럼 예쁘지- 내가 말했잖아, 몸매도 쭉쭉 빵빵한 연예인들이랑 촬영한다고-”
눈치 없는 정태웅. 내 앞에서 다른 여자가 예쁘다고 말하고 싶으냐.
“몸매 진짜 죽이더라. 요즘에 한창 뜨던데, 이유가 있었어.”
“정태웅 또 침 질질 흘렸겠네.”
“내가 무슨 변태냐? 침 흘리게.”
“너 변태 맞잖아-”
변태 맞다는 내 말에 쭉 찢어진 눈으로 나를 흘겨보는 정태웅.
니가 아무리 나를 흘겨봐도 너가 변태인 사실은 변함이 없단다.
“넌 니 남자친구가 변태였음 좋겠냐?”
“싫은데, 이미 변태인 걸 어쩌냐.”
“이은호 그렇게 말할 때 진짜 얄미운 거 알아?”
라며 다시 나를 흘겨보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어이없단 듯이 웃고 말았다.
그러자 나를 보고 따라 웃는 정태웅. 오늘따라 그런 그 녀석의 모습이 더 멋있어 보이고 괜찮아 보인다.
-
“자, 이번에 교생 실습 담당하신 이은호 선생님이라고 해요.
앞으로 이 선생님이 교생 실습 일정을 총괄하실테니까, 친하게 지내도록 하세요.
이 선생님, 이번에 교생 실습오신 학생 분들이야. 한 달 동안 잘 부탁해-“
며칠 동안 준비했던 일이 이제 시작됐다. 8명의 교생들을 한 달 동안 관리하고 총괄해야 한다니, 막막하기만 하다.
매 년 다른 선생님들이 하는 것만 봐 왔으니... 최 선생님과 한 선생님이 도와주신다고는 했지만 막막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잘 부탁드립니다. 지리 수업을 맡고 있는 이은호라고 해요.
한 달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교감선생님의 소개로 인사를 나눈 우리는 자리를 옮겨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 이야기 하도록 하였다.
“강서영씨?”
“네.”
“2학년 문학 수업 들어가실 거구요, 이건 담당 선생님 성함이랑 시간표에요.
한 달 동안 어려운 일 생기시면 저한테 바로 오시구요, 잘 지내봐요-”
“아, 잘 부탁드립니다.”
얼굴을 익히고 통성명을 하는 의미에서 개인 시간표와 담당 선생님을 알려주기 위해 명단과 서류를 보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마주대했다.
사람을 외우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이기 때문에 나는 혹시라도 실수하거나 잊어버리지 않게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오랫동안 마주치며 이야기 하였다.
“서도훈씨랑 홍세영씨”
“네.”
“1학년 일반사회랑 2학년 지리수업 들어가실 거구, 담당 선생님은... 아, 저에요.
자, 시간표는 여기 있구요, 한 달 동안 저랑 지겹게 보겠네요. 잘 지내봐요-“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사회과 교생 2명 모두가 지리교육과 출신이라 나와 함께하게 되었다. 교생들을 챙기는 게 귀찮은 일은 아니지만,
피곤한 일이 하나 더 늘은 데다가 2명을 한꺼번에 떠맡게 된 듯한 상황이 되어 앞으로가 더욱 걱정이 된다.
“진짜 이 선생님은 좋겠다.”
“좋긴 뭐가 좋아요- 일이 더 늘어난 건데.”
“일이 늘어났어도 그런 일이면 나는 백번 환영이다.
어떻게 사회과 2명이 다 지리교육과일 수 있지?“
“두 사람이 같은 학교 다니는 동기래요. 이번에 같이 지원했다네요.”
“왜 역사교육과 출신들은 하나도 없는 거야.”
“다음 학기에는 오겠죠-”
역사교육을 전공하는 교생이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이 가득인 최 선생님은 내가 교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내 옆에 앉아
불만과 부러움을 동시에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 생각엔 그리 부러워할 일만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아, 그 교생 중에 한 명 굉장히 잘 생긴 사람 있다며?”
“잘 생겨요? 글쎄요, 잘 모르겠던데.”
“이 선생님은 정말 눈썰미 없어-
아까 3반 담임선생님이 복도에서 봤는데, 굉장히 잘 생기고 키도 컸다고 하던데.“
“흠...”
“뭐야,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 3반 선생님이 잘못본 건가...”
나는 사람 얼굴을 한 번에 보고 기억하는 편이 아니니까, 아무리 머릿속을 되집어 봐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아까 처음에 다들 봤을 때도 와- 소리만큼 잘 생겼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으니까...
아무 대답 없는 내 모습에 시시하다는 말을 남기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수업 준비를 하는 최 선생님이다.
- 이은호, 오늘 뭐 잘못 먹었어?
“아니, 왜?”
- 아님 뭐 기분 좋은 일 있어?
갑자기 안 하던 전화를 하고 그래? 사람 아침부터 심장 떨리게.
“또 오버한다. 그냥 오랜만에 걸고 싶어서 했어.”
3교시 수업이 없는 시간에 잠시 교무실 뒤편에 있는 야외 정원으로 나와 의자에 앉아 태웅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날 데이트할 때 더 다정히 대해주지 못한 게 미안했던 나는 아직 일어났다는 문자를 보내지 않은 걸 보니 깨지 않았을 것이
확실한 정태웅을 위해 모닝콜을 해주었다.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부스스한 목소리를 내는 걸 보니 모닝콜을 해준 건 맞는 것 같다.
오랜만에 내가 먼저 건 전화라 그런지 정태웅은 반가운 티를 팍팍 내면서 전화를 받는다.
- 이은호 맨날 내숭떨더니, 사실은 내가 그렇게도 좋았던 거구나?
“그만하고 얼른 일어나. 오늘은 일찍 안 일어나도 돼?”
- 응, 있다 점심 먹고 연습실 가면 돼.
“어제 늦게까지 연습했어?”
- 별로, 2시 좀 넘어서 집에 들어왔어.
요즘 다음 달에 있을 콘서트 연습을 한다는 정태웅은 매일 새벽까지 연습실에서 연습한다고 한다.
콘서트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줘서 확 반하게 만들어 버리겠다며 큰소리를 떵떵 치던 녀석은 정말 요즘 하루 종일 연습실에서 사는 것 같다.
“피곤하면 더 자.”
- 오랜만에 이은호가 먼저 전화했는데, 빨리 끊으면 섭섭해 할 거면서.
“별 게 다 섭섭하겠다.”
- 그렇게 말하면서 끊으면 울 거지?
“애 같은 소리 하기는. 안 피곤해?”
- 조금. 전화 끊고 더 잘 거야.
“그럼 얼른 끊고 자-”
- 싫어, 이은호 목소리 더 들을 거야.
투정부리는 이 녀석. 내 목소리를 더 들어야 한다며 혼잣말이라도 마구 하라고 우기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혼자 수다를 떠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목소리 자체도 매우 지쳐있는 게 느껴지는 걸 보니 태웅이가 얼마나 피곤해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던
나는 그 녀석의 요구 조건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이 선생님.”
“어? 도훈씨.”
- 도훈씨? 뭐야?
갑자기 내가 하던 이야기가 끊기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자 기분이 상했는지 정태웅은 갑자기 딱딱한 목소리를 낸다.
그래서 나는 휴대폰을 잠시 막고 갑자기 나타난 서도훈씨에게 ‘잠시만요-’라고 말하고는 뒤를 돌아 태웅이에게 이따 전화하겠다고
하고는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통화 중이신데 방해해서 죄송해요.”
“아, 괜찮아요. 무슨 일이세요?”
미안한 표정을 짓는 서도훈씨의 모습에 나는 괜찮다며 웃어보였다. 그러자 서도훈씨도 나를 따라 웃어버린다.
“5교시에 수업 있는 거 같은데, 저한테 준 시간표에는 반이 표시가 안 되어 있어서요.”
“아... 제가 실수했나 보네요. 이따 다시 뽑아 드릴게요.
5교시에 1학년 9반 수업이에요- 오후 수업이니까 식사하시고 천천히 올라오시면 되요.“
“아, 감사합니다.”
“감사하긴요, 뭘- 시간표는 제가 이따 수업 때 드릴게요.”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번거롭긴요, 금방 할 수 있는 일인데요.
아, 교생 실습해보니까 어때요? 생각보단 할 만 하죠?“
“아직 이틀 밖에 안 지나서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처음보단 긴장 덜 되고 그러죠?
전 처음에 너무 긴장해서 막 목소리도 떨고 그랬어요-
도훈씨는 보니까 안 떨고 잘 하던데.“
“원래 잘 안 떠는데 그 땐 사실 긴장 조금 했어요-”
나는 옆에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도훈씨에 내밀었다. 곧 있으면 점심을 하겠지만 그냥 더 긴 대화를 나누게 될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선생님이라는 꿈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긴장되는 게 당연한 걸 거에요-
그 자리 서 보는 게 소원이니까. 아, 선생님이 꿈 맞죠?“
“그러니까 교생 실습을 하겠죠?”
“아, 언뜻 봐서는 선생님보단 사업에 더 어울릴 거 같아서요-”
“남들은 그렇게도 말하던데, 전 어려서부터 선생님만 생각해서 잘 모르겠어요.”
“어쩌다 선생님이 하고 싶어진 건지 물어봐도 되요?”
“부모님이 두 분 다 선생님이셨어요.
어머니는 그만 두셨고, 아버지는 아직 교단에 있으세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요.
어려서부터 봐 와서 그런지 선생님이란 직업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서 저도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왔거든요.“
아직 학생이면 나보다 어리고 정태웅과는 비슷한 또래일 텐데, 생각하는 거나 말하는 말투가 어른스럽다.
아무래도 군대를 다녀온 사람과 아직 다녀오지 않은 사람의 차이일까? 나보다 어리다는 느낌이 많이 들지 않는다.
“꼭 선생님 되세요. 도훈씨는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이은호 선생님 같은 훌륭한 선생님한테 그런 소리 들으니까 좋은데요?”
“훌륭이요? 제가요? 아니에요- 저도 아직 배울 게 많고 어설픈 선생님이에요.”
“선생님 반 아이들이 선생님 참 자랑 많이 하던데-
어제 청소 시간에 저랑 세영이 앞에서 얼마나 선생님 자랑을 하던지.“
“제가 하도 세뇌 교육을 시켜놔서 그래요-
그리고 우리 반 애들이 착해서 제 욕을 못하거든요.“
내 말에 뭐가 그리 웃긴지 미소를 듬뿍 지어가며 웃는 서도훈씨가 굉장히 괜찮은 사람처럼 보였다면, 내가 이상한 것일까?
첫댓글 111111111111
재밋는것ㄱㅏ타욬ㅋ도훈이가..ㅋㅋ
너무 재밌어요!!!!!!!!!!!!!!!!!!!!!11
우와-새로운 인물 등장!
노노노 안되, 너는 널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잖아! 노노노 절대 네버 잉,ㅠㅠ
꺄꺄 도훈이도훈이!!!! 안돼 재미있어요 그래도 태웅이에요~
잘보았습니당, 헤헷, 담편도 기다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