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역대 개최지 조사
5번 김도현
▶1930년 제 1회 월드컵 [우루과이]
‘새가 돌아오는 강’ 이라는 뜻의 우루과이에서 개최된 제 1회 월드컵은 대회의 상징인 줄리메컵과 함께 세계축구대회의 우승국을 가리기 위해 여러 국가에서 참가를 했지만, 축구의 종주국이라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강호들을 끌어들이지 못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세계대회로는 발전하지 못했다.
▶1934년 제 2회 월드컵 [이탈리아]
제 2회 월드컵은 세계 12개 지역에서 33개국이 출전하여 지역예선을 하였으며 본선진출을 위한 16개국의 선발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로마의 토리노 경기장에서 이탈리아와 미국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치루어진 이태리 월드컵에서는 아직도 영국의 외면을 당한 채 열핀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1938년 제3회 월드컵 [프랑스]
개최국 프랑스와 전 대회 우승국 이탈리아는 예선이 면제됐는데 이것이 그후 월드컵대회의 선례가 되었다. 지금까지 그런적은 없었지만 만에 하나 개최국이 예선에서 탈락해 개최국 국민들이 월드컵에 흥미를 잃는다면, 대부분의 경기가 관중들도 엇는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 열릴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한편, 영국은 이 대회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축구의 원조’라는 명예와 불패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까 두려워 ‘영광의 고립’을 택한 것이다.
▶1950년 제 4회 월드컵 [브라질]
제 4회 대회는 12년 후에 열렸다. 2차 세계대전 때문이었다. 참가 신청국은 39개국이였으나 기권이 속출해 실제 참가국은 13개국에 그쳐 곤혹스럽게 하였다.
▶1954년 제5회 월드컵 [스위스]
프랑스 대회 이후 16년만에 유럽으로 되돌아온 스위스 대회는 규모면에서 그전까지의 대회와는 달랐다. 오늘날 축구 강국이라 부를 수 있는 대부분의 나라가 참가해 처음으로 축제다운 축제를 벌였다.
▶1958년 제6회 월드컵 [스웨덴]
이번 대회에서는 축구 황제 펠레가 나왔다. 그리고 웨일스전에서 데뷔골을 봅으며 골 맛의 달콤함을 맛본 펠레는 이 경기에서도 단숨에 3골을 폭발시켜 강적 프랑스를 5대2의 점수로 이겼다. 한편, 아나운서들은 펠레의 본명인 ‘에드손 도 나시멘토’라는 이름을 부르느라 곤욕을 치러야 했다.
▶1962년 제7회 월드컵 [칠레]
이 대회는 다른 어느 대회때 보다 폭력으로 얼룩졌다. 대회 개막 후 4일 만에 생긴 부상자는 무려 50명이나 되었다.
▶1966년 제8회 월드컵 [잉글랜드]
잉글랜드 대회는 월드컵을 명실공히 ‘세계 규모의 볼거리’로 성장시켰다. 위성 중계가 이루어짐으로써 축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들뜨게 만든 것이다.
▶1970년 제 9회 월드컵 [멕시코]
이 때의 축구 대결은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 국가간에 자존심 대결로 발전하였다.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경기 직후 온두라스에 전쟁을 선포하였고, 전쟁이 나고 말았다.
▶1974년 제10회 월드컵 [서독]
이번 대회에서 가장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은 4반세기에 걸쳐 대립해온 동독과 서독의 대결이었다. 본선 조 편성 추첨에서 동, 서독이 같은 1그륩에 들어갔을 때, 상황을 중계하고 있던 동, 서독의 아나운서들은 순간 말문이 막혔고, 추첨장은 놀란 사람들로 웅성거렸다고 한다.
▶1978년 제11회 월드컵 [아르헨티나]
▶1982년 제 12회 월드컵 [스페인]
스페인 월드컵은 이런 비정상적인 반쪽 올림픽의 틈새에서 개최하였다. 109개국이 참가를 신청, 진짜 세계인의 축제는 올림픽이 아닌 월드컵임을 보여 줬다. 그 동안 월드컵에서 소외됐던 지역의 불만을 수용해 북중미의 본선 티켓도 한 장씩 늘어났다.
▶1986년 제 13회 월드컵 [멕시코]
▶1990년 제14회 월드컵 [이탈리아]
1990월드컵은 56년 만에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대회는 167개국에 텔레비전으로 중계되었고, 시청자는 연 251억 명에 달했다. 4년전에 비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시청자는 두 배와 여섯배로 격증했으며, 결승전은 15억, 제계인구 세명중 한 명이 생중계를 지켜보았다.
▶1994년 제15회 월드컵 [미국]
FIFA는 세계 최대의 시장을 흡수하기 위한 장기적인 포석으로 과감히 ‘미국’을 선택했다. 그리고 FIFA의 도박은 성공했다. 미국은 가장 염려했던 흥행 부문에서 각종 신기록을 수립했다. 4년전 축구의 나라에서 열린 이탈리아 대회 때보다 100만명이 더 많은 356만명이라는 사상 최다 관중을 동원했고, 총수입 역시 사상 최고액인 3조2천억 원을 기록했다.
▶1998년 제 16회 월드컵 [프랑스]
이번 대회는 그동안의 ‘압박축구’로 불리는 수비위주의 세계축구의 흐름을 ‘공격축구’로 유도하기위해 새로운 규칙이 많이 적용됐다. 연장전에서 골을 먼저 넣는 팀이 이기는 ‘골든볼’제와 빽태클을 금지시키는 새로운 롤을 적용하였는데, 심판들의 미숙한 운영으로 인한 문제점도 노출시켰다. 심판의 판정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2002년 제 17회 월드컵 [한국,일본]
축구전문가들은 우승예상국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들은 4강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로 탈락하였다. 그 외로 월드컵에서 단 1승도 못한 한국, 48년만에 월드컵에 진출한 터키, 평가전에서 잉글랜드에게 대패하며 녹쓴전차라고 불려왔던 독일, 조별예전에서 부진을 거듭하며 위기에 처했던 브라질이 4강에 진출했다. 축구 변방국가들의 돌풍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