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5일 미국의 뉴욕타임스지는 핵물리학계에 상당한 충격을 주는 소식을 보도했다. 1999년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가 발표한 원자번호 116번과 118번의 초중량 원소 발견이 이 연구소 물리학자인 빅터 니노브가 연구 결과를 조작해 나왔던 것으로 드러났다는 내용이었다. 니노브는 올 5월 이 연구소에서 해임됐다.
니노브는 왜 조작을 하면서까지 새로운 원소를 발견하려고 했을까. 왜 지금도 과학자들은 니노브처럼 새로운 원소를 만들어내려고 할까.
최초의 초우라늄 원소 넵투늄
지금까지 자연계에 발견된 원소는 수소(Z(원자번호, 양성자수)=1)에서 우라늄(Z=92)까지의 92종 중 90종이다. 테크네튬(Tc, Z=43)과 프로메튬(Pm, Z=61)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원소이기 때문이다. 1940년대부터 과학자들은 우라늄보다 원자번호가 큰 초우라늄 원소들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원소 주기율표를 확장시켜 왔다. 이들은 어떤 까닭으로 초우라늄 원소를 만들려고 할까.
최초로 발견된 초우라늄 원소는 넵투늄-239(Np, Z=93, 239는 원자량을 말함)다. 1939년 미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 맥밀란은 중성자에 의한 우라늄의 핵분열 반응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40년 그는 아벨슨과 함께 우라늄-238에 중성자를 충돌시켜 생성된 우라늄-239가 베타붕괴에 의해 우라늄보다 원자번호가 하나 많은 넵투늄-239로 변환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해 가을 맥밀란은 넵투늄-239가 베타붕괴해서 생성되는 새로운 원소를 연구하기 시작했지만 매사추세츠공대로 옮기면서 연구를 끝마치지 못했다.
같은 대학의 시보그가 맥밀란의 승낙을 얻어 이 연구를 이어갔다. 그 결과, 그의 연구팀은 지름 60인치 사이클로트론 가속기로부터 방출되는 중양성자(중수소의 원자핵)를 우라늄에 쏘아줘 플루토늄-238(Pu, Z=94)을 발견했다. 그리고 중성자를 우라늄-238에 쏘아줌으로써 생성된 우라늄-239가 23.5분의 반감기로 베타붕괴해서 넵투늄-239로 변환하는데, 시보그팀은 이것이 다시 반감기가 2.35일인 베타붕괴로 생성되는 플루토늄-239를 발견했다. 이때 플루토늄-239 0.5μg(마이크로그램, 1μg=10-6g)을 얻었다.
1941년 3월 28일 시보그 연구팀은 0.5μg의 플루토늄-239가 우라늄-235와 유사하게 느린 중성자에 의해 핵분열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더 나아가 그들은 플루토늄이 우라늄보다 1.5배나 핵분열을 더 잘하기 때문에 핵무기 원료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플루토늄을 원자로에서 대량으로 얻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당시 플루토늄-239를 대규모로 분리할 수 있는 화학적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이 원소의 화학적 성질이 조사됐다. 이 연구를 비밀로 유지하기 위해 플루토늄-239는 원자번호(Z=94)와 질량수(239)의 마지막 숫자를 조합해 ‘49’로, 그리고 이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포티나이너’(forty-niners)라고 불렸다. 1942년 8월 시카고대에 있던 전시 야금연구소에서 커닝햄과 워너는 가속기를 이용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1μg의 플루토늄-239를, 9월 2.77μg의 플루토늄-239를 얻었다. 마침내 워싱톤주 핸포드에 실험실 규모의 1백억배에 해당하는 화학분리 공장이 건설돼 이곳에서 생산된 플루토늄-239가 1945년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사용됐다.
이처럼 가공할 핵에너지원인 초우라늄 원소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초우라늄 원소를 만드는 연구가 계속된다면 이와 유사한 핵에너지원을 얻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플루토늄과 같은 새로운 에너지원이 될 수 있는 초우라늄 원소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초우라늄 원소의 발견으로 맥밀란과 시보그는 1951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110번부터는 임시 이름표 가져 최초의 초우라늄 원소인 넵투늄을 시작으로 1961년 로렌슘-256이 발견됨으로써 주기율표의 악티니드 계열(원자번호 90-103번)이 완성됐다. 그리고 이후 1984년까지 원자번호 104-109번에 이르는 원소들이 발견됐다. 하지만 그후 10년간 초우라늄 원소의 연구는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1994년이 돼서야 원자번호 110번과 111번, 1996년 112번, 1999년 114번, 그리고 2000년에는 116번이 발견됐다.
여기서 잠시 원소 주기율표를 살펴보자. 원자번호 109번까지는 저마다 독특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110번부터는 이름들이 상당히 비슷하다. 110번은 Uun, 111번은 Uuu, 112번은 Uub, 114번은 Uuq, 그리고 116번은 Uuh이다. 이 이름들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원소는 발견자의 뜻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다. 그러나 처음 발견된 원소라 하더라도 다른 연구팀에 의한 검증 절차와 그 원소의 화학적 성질의 규명이 이뤄져야 비로소 이름을 갖게 된다. 즉 109번까지는 이 과정을 거친 것이다.
그러나 화학적 성질을 검증받지 못한 원자번호 110번부터는 IUPAC(국제순수응용화학연합, International Union of Pure and Applied Chemisty)의 규칙에 따라 임시 이름표가 붙여진다. 이 규칙은 0은 nil, 1은 un, 2는 bi, 3은 tri, 4는 quad, 5는 pent, 6은 hex, 7은 sept, 8은 oct, 9는 enn으로 하고, 이렇게 만든 이름이 자음으로 끝나면 ium을, 모음으로 끝나면 um을 마지막에 붙이도록 했다. 따라서 110번 원소는 운운닐륨(ununnilium)으로 112번 원소는 운운븀(ununbium)으로 불린다.
현재 초미의 관심사는 원소 114번 이후의 원소들이다. 오랫동안 핵과학자들은 원소 114번이 수명이 긴 초중원소로 생각해 이를 발견하려 노력했다. 이 원소는 러시아의 두브나 그룹과 미국 로렌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의 공동연구로 플루토늄-244와 칼슘-48 이온의 반응으로 생성됐다(질량수 289). 이 원소는 30초 정도로 비교적 긴 반감기를 갖는 알파붕괴를 하고 질량수 285인 원소 112가 된다. 따라서 이 원소는 반감기가 길기 때문에 화학적 성질을 측정하기에 적합하다. 하지만 생성된 원소 수가 너무 적은 탓에 아직 그 성질이 밝혀지지 않았다.
1999년 6월 부정사건으로 유명해진 니노브와 켄 그레고리치가 이끄는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의 연구팀은 납-208과 크립톤-86의 반응으로 새로운 원소 116과 118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실험결과는 전세계의 과학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독일, 일본과 프랑스에서 실시된 실험에서 버클리 결과를 재현할 수 없게 되자 버클리 그룹은 2001년 4월 1999년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실행했지만 발표했던 결과를 재현할 수 없었다. 결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는 2001년 11월 니노브를 정직시키고 실험 결과와 니노브의 행위에 대한 평가에 들어갔다. 그 결과, 발표된 알파붕괴 내용이 실험데이터 원본에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연구소는 니노브가 조작한 것으로 판단하고 그를 해고했다. 니노브는 데이터를 조작하지 않았으며 연구소 정책의 희생양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가 분석에 참여한 또다른 연구결과에서도 오류가 드러나면서 그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니노브는 1997년 버클리 그룹에 합류하기 이전 독일 중이온연구소 GSI의 호프만 그룹에서 일해 왔는데, 당시 원소 111번과 112번의 발견에도 참여했다.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의 연구결과가 조작된 것으로 밝혀지자 GSI의 호프만은 니노브가 분석했던 결과를 재분석했다. 그 결과, 1996년에 발표된 원소 112의 첫번째 알파붕괴가 잘못된 것이지만 두 원소의 발견은 확실한 것으로 밝혀졌다. 니노브의 발견이 취소됨에 따라 원소 116의 발견 공로는 2000년 두브나의 오가네시안 그룹과
로렌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의 무디 그룹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큐륨-248과 칼슘-48 이온과의 반응으로 질량수 292인 원소 116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결과도 다른 연구소의 실험을 통한 검증과정을 통과해야만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안정한 섬’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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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에 스이는 네온은 불활성 원소로 주기율표 18족에 속한다. | 그렇다면 초우라늄 원소의 발견은 과연 어디까지 가능할까. 핵과학자들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모든 원소들은 원소 주기율표에서의 위치에 따라 예상되는 화학적 성질을 갖는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과연 이러한 경향이 초우라늄 원소들에서도 관찰되는지, 그리고 어느 원소까지 유지될 것인지를 알기 원한다.
주기율표 18족에 속하는 헬륨(Z=2), 네온(Z=10), 아르곤(Z=18), 크립톤(Z=36) 등은 불활성 원소들로 주로 다른 원소들과 결합하지 않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 이들 원소는 원자가껍질이 전자로 다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와 비슷하게 원소의 원자핵도 이를 구성하는 양성자나 중성자가 각각의 궤도에 모두 다 채워질 때 안정된 핵을 이룬다. 껍질모형(shell model)에 따르면 안정된 핵을 형성하는 수는 2, 8, 20, 28, 50, 82, 126, 184이다. 이 수를 만족하는 원자핵이 안정하기 때문에 이를 ‘마법수’(magic number)라 한다. 양성자수(Z)와 중성자수(N)가 둘다 이 마법수(이중 마법수)를 이루는 원소들이 자연계에 안정한 상태로 존재한다. 예를 들어 헬륨-4(Z=2, N=2), 산소-16(Z=8, N=8), 칼슘-40(Z=20, N=20), 칼슘-48(Z=20, N=28), 그리고 납-208(Z=82, N=126)이 바로 이중 마법수를 갖는 원소들이다.
만약 인공적으로 이중 마법수를 갖는 원소를 만든다면, 이 원소는 안정하기 때문에 원소의 화학적 성질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또한 이중 마법수를 갖는 원소에 근접한 동위원소들은 대개 안정된 상태로 존재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다음으로 이중마법수를 갖는 원소(Z=126, N=184)를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 원소에 이르기는 무척 어려워 보인다. 원자번호가 작은 두 원소의 핵반응으로 생성되는 초중량 원소는 핵분열과 알파붕괴의 두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원소를 규명하려면 원소가 핵분열보다 알파붕괴를 해야 한다. 초중량 원소의 핵이 알파붕괴해 생성된 핵을 딸핵이라 하는데, 가령 이 딸핵이 이미 알려진 원소이고 그 원소도 알파붕괴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에너지가 서로 다른 알파입자들 사이에는 초중량 원소 핵의 반감기와 딸핵의 반감기로 인한 시간적인 상관관계를 갖게 돼 알파붕괴사슬을 이룬다. 때문에 생성된 초중량 원소가 어떤 것인지를 밝혀줄 수 있다.
반면 핵분열을 하면 초중량 원소의 원자핵이 순식간에 분해되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이론적으로는 원자번호가 125번 이상인 인공원소는 순간적으로 핵분열하기 때문에 만들기 어렵다고 예측되고 있다.
이와 함께 초중량 원소를 만드는데 쓰이는 두 원소의 핵반응 단면적이 1피코바안(pb=10-36cm2) 이상이어야 새로운 원소가 생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원자번호가 증가함에 따라 반응 단면적은 크게 감소하고 측정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원소 114번은 칼슘-48 이온을 플루토늄-242에 쏘아줘 만들어졌는데, 이들 원자핵의 반응 단면적은 2.5pb이었다. 이 경우 원소 114번 한개를 만드는데 2.3일이 걸렸다. 같은 조건에서 단면적이 1pb인 경우에는 6일 정도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단면적이 0.1pb으로 줄어들면 새로운 원소 한개를 만드는데 무려 두달이 필요하다. 이 정도면 초중량 원소의 생성유무를 밝히기가 어렵다.
이와 같은 여러가지 난관에도 불구하고 30년 동안 핵과학자들은 이론적으로 예측된 초중량 원소들의 ‘안정한 섬’(island of stability)인 Z=126, N=184를 확인하고자 노력해 왔다.
현재의 상황은 꽤 고무적이다. 두브나 그룹과 로렌스리버모어 그룹에 의해 발견된 질량수 289(N=175)인 114번 원소의 알파붕괴 반감기가 30.4초이며, 질량수 287(N=173)인 114번 원소의 경우는 1.32초다. N=184에 접근할수록 반감기가 길어지는 사실은 ‘안정한 섬’의 존재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또한 Z=116인 원소의 발견은 또다른 ‘안정한 섬’에 이룰 수 있는 징검다리를 놓기에 핵과학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원소 118의 발견을 조작할 정도로 항상 커다란 유혹이 생기는 것이다.
‘코리움’을 기다리며 지금까지 초우라늄 원소의 발견의 성과는 미국 로렌스버클리 그룹, 로렌스리버모어 그룹, 독일 GSI 그룹, 러시아의 두브나 그룹에 의해 이뤄졌다. 그리고 몇년 전부터는 일본도 중원소 그룹을 결성해 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이곳에는 공통적으로 중이온 입자가속기가 설비돼 있다.
중이온 입자가속기는 양성자나 헬륨보다 원자번호가 큰 원소에서 전자를 떼어내 양이온 상태로 만들어 가속하는 장치다. 예를 들어 118번 원소는 캘리포르늄-248와 칼슘-48를 반응시킴으로써 원자질량수가 297인 복합핵이 만들어진다. 이때 순간적으로 만들어진 복합핵은 가해진 에너지에 따라 1-3개의 중성자를 방출하게 된다.
이 반응을 수행하려면 캘리포르늄 양성자 98개와 칼슘 양성자 20개 사이의 양전하 간의 쿨롱 장벽이라는 정전기적 반발력을 초과하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에너지는 중이온 가속기를 통해 전자 하나를 떼어낸 칼슘-48 이온을 가속시켜 얻을 수 있다.
1980년대 말 국내 핵물리학자도 중이온 입자가속기 도입을 시도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따라서 국내에서는 초우라늄 원소 연구가 불가능한 상태다. 현재 필자만이 버클리 그룹에 참여할 예정이며 가장 적합한 핵반응을 찾기 위한 이론적인 계산에 주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의 바람은 국내에 중이온 가속기를 보유하게 돼 우리나라의 이름을 주기율표에 채우는 것이다. 실제로 원소에는 여러나라의 국가명과 지명이 숨어있다. 게르마늄(Ge, Z=32)은 독일(Germany)의 라틴어인 게르마니아(Germania)에서, 프랜슘(Fr, Z=87)은 프랑스(France)에서 그리고 갈륨(Ga, Z=31)은 프랑스의 라틴어인 갈리아(Gallia)에서, 폴로늄(Po, Z=84)은 폴란드, 루테늄(Ru, Z=44)은 러시아의 라틴어인 루테니아(Ruthenia)에서, 하프늄(Hf, Z=72)은 덴마크 코펜하겐의 라틴어인 하프니아(Hafnia)에서, 홀뮴(Ho, Z=67)은 스웨덴 스톡홀름의 라틴어인 홀미아(Holmia)에서, 스트론튬(Sr, Z=38)은 영국 스코틀랜드의 도시인 스트론티안에서, 아메리슘(Am, Z=95)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따온 것이다. 이들은 발견자의 의도에 따라 주기율표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국내에서도 중이온 가속기의 도입과 초중량 원소에 대한 연구 성과가 나타난다면 우리나라 이름을 딴 원소명 ‘코리움’(koryium)이 주기율표의 한자리를 차지할 날이 도래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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