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단산(檀山)
경북일보 지면게재일 : 2021년 10월 15일
김유복 경북산악연맹 前 회장
문경새재 사이 품은 백두대간 큰 줄기 웅잠함 한눈에
사흘 연휴가 연속으로 이어지는 날이지만 날씨가 종잡을 수 없어 나들이하기에 불안하기만 하다. 청명한 가을 하늘을 벗 삼아 또 다른 트레킹 대상지를 찾아 나서려고 한 주를 고민한 끝에 고른 곳이 백두대간의 중심인 문경(聞慶)이다. 전국 등산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문경의 산들이 주흘산(1,106m)을 비롯해 여럿 있지만 이번에 간 곳은 백두대간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백두대간의 큰 줄기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문경의 진면목을 내려다볼 수 있는 운달지맥(雲達地脈)에 있는 단산(檀山·956m)을 지난 10일 다녀왔다.
포항에서 문경까지는 대략 2시간 반이 소요되는 다소 먼 거리라 일찍 집을 나선다. 함께하기로 한 경북산악연맹 김규영 회장과 전동재 부회장을 만나 고속도로를 타고 문경으로 향했다. 10시 30분에 ‘문경단산모노레일’ 주차장에서 안내를 맡아주기로 한 문경산악인 배길근 회장과 오석윤 자문위원 두 분과 합류하여 단산으로 향한다.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패러글라이딩활공장이 있는 이곳을 필자도 처음 와본다. 당초 9일로 약속했는데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에 하루를 늦춘 관계로 모노레일탑승 예약이 안 되어 탈 수가 없다. 여기서 단산을 오르려면 모노레일을 타야 되는데 난감했다. 활공장을 관리하는 곳에 양해를 구하고 자동차로 활공장까지 올랐다.
단산 트레킹은 활공장에서 단산 정상까지 갔다 되돌아오는 ‘단산건강올레길’이라고 이름 붙여진 왕복 3.8km 구간의 능선길 산행을 말한다. 운달산(1,067m) 북쪽 여우목고개(해발 620m)에서 운달산을 거쳐 단산(956m)과 배넘이산(813m), 운부령, 오정산(804m) 넘어 진남교반까지 이어지는 26.0km 구간의 운달지맥에 해당하는 활공장(해발 866.9m)과 단산 정상까지의 트레킹 코스 전 구간을 데크로 깔아놓아 국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코스가 이곳 ‘단산건강올레길’이다.
‘문경단산 관광모노레일’은 문경의 중심인 단산 일대를 관광지로 개발하여 문경을 전국적 관광명소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문경관광진흥공단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노선 길이가 3.6km로 국내 최장을 자랑하고 있으며 최대 경사각도가 42도나 되어 탑승객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한국의 스위스’라고 불릴 만큼 울창한 숲속을 뚫고 오르내리는 빨간 열차의 아름다운 모습이 인상적이며 왕복 소요시간이 60분(상행 35분, 하행 25분)이나 되어 열차 안에서 보는 풍광이 이색적이고 운치가 있다.
상·하 승강장의 고저차가 582m나 되어 내려다보이는 문경 일대가 스위스의 산악도시와 흡사하여 겨울철 설경이 알프스를 연상할 수 있게 만든다고 한다. 휴일이나 주말에는 사전 예약이 필수라는데 필자 일행들도 예약을 못해 ‘한국의 스위스’를 맛보지 못해 매우 아쉬웠다.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는 ‘문경활공랜드’에는 활공장을 조망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전망휴게소가 있고 가족들과 캠핑을 즐길 수 있는 유료캠핑장과 레일설매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으며 활공랜드 주변에는 소원을 빌며 걷는 ‘별별소원길’ 등 각종 조형물로 재미나는 볼거리가 조성되어 있어 관광객들에게 흥미를 더한다. 또한 활공장에서는 패러글라이딩 마니아뿐만 아니라 사전 교육을 받은 관광객이 패러글라이딩으로 하늘을 나는 체험도 할 수 있어 더욱 다채로운 관광지로 명성을 얻고 있다.
파란 하늘을 거침없이 날아 오르는 형형색색의 패러슈트(낙하산)가 수놓는 장관을 바로 가까이서 볼 수 있어 멋진 관광을 겸하는 호사를 부리기도 한다. 드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패러글라이더들의 모습에 어렵고 팍팍한 요즈음의 삶을 훌훌 털어버리며 청명한 가을 하늘과 함께 날아가 보고 싶어진다.
활공장을 뒤로하고 단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기분 좋게 걸어본다. 울창한 숲속으로 반듯하게 깔아놓은 데크 위에 폐타이어를 잘라 만든 매트가 폭신한 촉감을 주어 걸음을 가볍게 한다. 굴참나무, 신갈나무, 물푸레나무 등 활엽수로 빼곡히 이뤄진 능선 숲길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길손을 반기고 산들거리는 바람마저 상쾌하게 마음을 흔든다. 오르막에는 데크 계단이 놓여 그리 힘들이지 않고 오른다.
가벼운 발걸음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능선 아래 떠도는 패러슈트의 화려한 날개가 창공에서 퍼덕인다. 평화로운 자연이 하늘과 산속에서 즐거운 하모니로 노래하듯 즐거움이 끝이 없다.
1km 남짓 걸어서 만나는 원두막을 연상시키는 쉼터가 쉬어가라 손짓한다.
탁 트인 주변을 조망하며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눈 아래 보이는 산등성이가 올망졸망 겹겹이 쌓여있다. 산 넘머 산이 있고 또 산이 있다. 그 산속에 우리가 있음에 오늘도 산을 간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여 산속을 헤집어 나간다. 모처럼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을 보니 즐거움이 배(倍)가 되고 머리는 맑아진다. 하얀 구름 속에 파란 산이 있고 또 그 너머 산이 나온다. 하늘에도 땅에도 온통 산이 있어 좋다.
가벼운 발걸음에 속도가 붙을 즈음에 정상에 닿았다. 너른 데크 마루가 큰 무대인 양 하늘 아래 있다. 산 정상에 이런 넓은 마루를 만들어 놓은 곳도 본 적이 없다. 트레커들이나 백패킹(야영장비를 갖추고 떠나는 여행 형태)을 즐기는 마니아들에게는 다시없는 휴식 공간이 되고 있어 문경인들의 산 같은 풍성한 인심에 감사드리고 싶다. 단산(檀山·956m), 이름 그대로 평평한 산세가 푸른 하늘에 제단을 펼쳐 놓은 형상이라 신선들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은 거대한 하늘 제단 같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는 설명대로 하늘과 맞닿아 있다. 크고 작은 두 개의 정상석이 나란히 서 있고 50명도 너끈히 앉을 수 있는 평탄한 정상마루에 동그마니 둘러앉아 과일과 간식거리로 허기를 달래며 따사로운 가을볕에 몸을 맡긴다. 이렇게 편하게 걸을 수 있고 널찍한 산마루에서 자연과 함께하니 신선이 따로 없다. 수많은 트레킹 코스를 다녀 봐도 이만한 곳은 없을 것 같다.
사방을 둘러본다. 백두대간 중추를 간직한 문경 시가지가 한눈에 보이고 문경새재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주흘산과 조령산의 우람한 능선들이 지척이며 경북 8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진남교반의 오정산 뾰족한 봉우리가 콧날을 오뚝 세운 모습도 볼 수 있고 고개를 돌려 성주봉과 천주산 마루금도 손으로 그려본다. 백두대간의 중심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단산이야말로 문경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문경(聞慶)’, 경사스런 소리를 듣는 곳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영남대로를 넘어 한양으로 과거보러 갔던 영남의 인재들이 꽃가마를 타고 새재를 넘어오는 듯 문경의 뜰 한가운데로 환한 가을볕이 든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자유로운 몸짓으로 하늘을 나는 한 마리 새가 되어 백두대간과 운달지맥을 넘나드는 기분으로 단산의 정상마루에 누워 삼라만상의 온갖 번뇌를 털어내는 무상무념의 힐링 공간 속에 푹 빠져들고 싶어진다. 높은 가을 하늘을 향해 큰 호흡으로 푸르름을 한 아름 가슴에 담아 아름다운 자연 속으로 가져가는 단산 정상에서의 꿀맛 같은 시간을 뒤로 한 채 아쉬운 하산을 한다.
되돌아가는 길이 이리 가벼울 수가 언제였든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날아갈 듯 가뿐한 몸으로 다시 퍽퍽한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정말 싫어진다. 3시간 남짓의 산속에서의 유희(遊戱)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단산건강올레길’ 산행의 마무리를 하며 ‘산악의 고장 문경’이 내내 그리워 질 것 같다.
‘힐릴 앤 트레킹’ 서른아홉 번째 ‘걸어서 자연 속으로’ 문경 단산 이야기를 끝내며 이번 트레킹에 함께해준 산악동지 배길근 문경시산악연맹 전 회장과 오석윤 자문위원의 노고와 하산을 기다려 문경의 맛을 기꺼이 보여주신 탁대형 문경시연맹 회장의 큰 배려에 감사드린다.
문경 단산(檀山) 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