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
평택에 외국 군대가 들어 온 것은 ‘청일 전쟁’ 때부터다. 1894년부터 1895년까지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을 서로 지배하기 위해 벌인 이 전쟁은 일본이나 청나라가 아니라, 조선에서 벌인 전쟁이다.
이 때 청나라와 일본은 성환에서 큰 전투를 벌여 일본군이 대승을 거두었다. 이들이 얼마나 심하게 싸웠던지, 지금까지도 “아산이 무너지나, 평택이 깨지나 해 보자”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일본은 1904년부터 1905년까지 러시아와 ‘러일 전쟁’이라는 전쟁을 치렀는데, 이 전쟁도 일본이나 러시아가 아니라 조선에서 치렀다. 이 때도 평택은 외국군 기지 노릇을 했다.
② 팽성 안정리, 대추리 일대 일본군 기지 건설
두 전쟁에서 이겨 조선 지배의 발판을 마련한 일본은 1941년 ‘2차세계대전’을 시작하면서 팽성 안정리 일대에 군사 기지를 설치했다. 당시 평택에서는 보국대로 끌려가 죽을 고비 넘겨가며 일본군 기지 건설에 동원된 사람이 많다. 연장은 삽과 곡괭이 정도였고, 사람 힘으로 논밭과 야산을 허물어 활주로와 격납고를 건설했다. ‘열 길에서 열댓 길’씩 곡괭이로 파고 들어가다 산이 무너져 죽은 사람도 많다.
식민지 초기와는 달리 전쟁을 치르면서부터는 일본인들이 악랄해졌다. 공출로 곡식과 가축까지도 모조리 일본으로 가져갔고, 노력 동원에 나가는 조선인들에는 콩이나 보리 같은 것을 삶아 주었다. 이렇게 만든 일본군 기지는 30~40만 평 정도 됐다. 이 때 땅을 빼앗기고 쫓겨난 사람들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③ 해방과 함께 들어온 미군
해방이 되자, 안정리 일본군 기지에는 미군이 들어와 남아 있던 일본군과 함께 지냈다. 기세 등등하던 일본군은 부대 안에서 물건을 지키거나 잡일을 했다.
미군들은 부대를 넓히기 시작했는데, 주변 마을 사람들은 ‘하우스 보이’로 미군 부대에 취직하기도 하고, 부대 공사판에서 막일도 했다. 미군들은 15~16세쯤 되는 아이들에게는 청소나 잔심부름을 시켰다.
미군들은 불도저로 공사를 했기 때문에 야산과 논밭이 순식간에 활주로로 바꾸었다. 이 때도 대추리, 안정리, 서경재, 뗏장거리, 두정리, 함정리, 내리, 동창리 사람들은 아무 말 못하고 땅을 빼앗긴 채 쫓겨났다.
미군들은 한국전쟁 때는 물론, 휴전한 뒤로도 계속 기지를 넓혀, 2005년 현재 안정리 기지는 150만 평이나 된다.
(2) 송탄 미 공군 기지 발생사
송탄 미군 기지는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2월 야리, 적봉리, 신야리, 가마굴 같은 마을 사람들을 이틀 만에 내쫓고 만들었다. 주민들은 개인 사정에 따라 용인이나 평택, 안성, 서울 같은 곳으로 떠나기도 했지만,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은 진위천 둔치로 모여들었다.
미군 부대에서 나눠준 천막과 긴 막대기 몇 개, 양쌀이나 양밀가루 두어 포씩을 가지고 끔찍한 겨울을 보낸 주민들은, 이듬해 봄이 되면서 오두막도 짓고 살다가 홍수로 모든 것을 잃은 채, 황구지나 금각리, 구장터, 회화리 같은 마을로 피눈물 나는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다.
미군은 휴전 뒤에도 송탄 기지를 계속 넓혔고, 철거민은 계속 늘어 갔다. 1960년대 중반 국방부에서 보상해 준다는 소문이 나돌았으나, 국방부 관재과 업무 담당 공무원까지 포함된 브로커들한테 다 빼앗기고 말았다. 물론 “비행장 철거 주민 촉진회"라는 것을 결성하여 몇 년을 싸운 끝에 감정가대로 보상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송탄 미군 기지는 13번이나 넓어져 2005년 현재 2백만 평도 넘는다.
▶ 평택 미군 기지 현황 |
현재 평택미군기지 현황
평택에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미군기지가 두 개밖에 없는 줄 알고 있다. 신장동과 서정동 고덕면, 서탄면, 진위면 일대에 경계를 맞대고 있는 2백만 평 규모의 미7공군 사령부(일명 K-55)와 팽성읍에 있는 1백50만 평 규모의 캠프 험프리(일명 K-6)가 그것이다. 그러나 팽성읍 송화리에 미군 사격장도 있고, CPX훈련장도 있으며, 고덕면에는 탄약고도 있다. 이렇게 다섯 개의 미군 공여지를 모두 합쳐서 현재 454만 9,037평이나 된다.
그 면적을 구체적으로 보면, 캠프 험프리 통신소가 23,256평, 캠프 험프리가 1,506,744평, CPX 훈련장이 134,640평이며, 송탄 미공군기지가 2,175,048평, 송탄 미공군기지 부속 탄약고가 738,072평이다.
이밖에도 평택에 있는 미군들은 건물을 보유하고 있거나 임대하고 있는데, 송탄 미공군기지 안에 보유하고 있는 건물이 656동이며, 그 보유건물의 전체 면적이 151,836,455평이나 되고, 임대 건물도 27동이 있으며, 그 임대건물의 전체 면적은 15,618,744평이나 된다. 캠프 험프리에도 보유 건물이 697동이 있고,, 그 보유 건물의 전체 면적은 95,389,476평이나 되며, CPX 훈련장에도 미군 보유 건물이 9동 있으며, 그 보유 건물의 전체 면적은 270,418평이나 된다.
미군은 또 모든 기지를 이전하거나 반환할 때를 미리 상정해 놓고, 그 기지를 대체할 비용을 계산해 놓았는데, 그들이 계산해 놓은 비용을 보면, 캠프 험프리 통신소 대체 비용이 2730만 달러, 캠프 험프리 대체 비용 74130만 달러, CPX 훈련장의 대체비용은 890만 달러, 송탄 미공군 기지 대체 비용이 189250만 달러, 송탄 부속 탄약고 대체비용 2200만 달러이다. 현재 평택에 있는 미군 기지 전체를 대체하는 비용은 2,692,000,000달러이다.
▶ 평택 미군기지 강제수용예정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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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2005년 9월 8일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 이전 예정부지 가운데 협의매수가 이뤄지지 않은 땅 120만여평에 대한 강제수용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이날 “평택 팽성과 오산 공군비행장 일대 예정부지 349만여평 가운데 229만평은 협의매수가 완료됐다”며 “건설교통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 나머지 120여만평의 수용을 위한 재결 절차를 9일 건의할 예정이며, 11월께 재결이 나고 12월부터 수용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수용 대상 부지에는 협의매수가 안된 200여 가구의 땅 68만여평(팽성 지역 65만평, 오산 비행장 지역 3만여평)과 세종대학교 학교법인 소유 20만평, 등기상 소유주가 불확실하고 미등재된 토지 20만8천평을 비롯한 종중명의 토지, 상속절차 미협의 토지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11월 말로 예상되는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재결 전까지 소유자가 협의매수를 요청해 오면 협의해 임한다는 방침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토지 수용에 따른 보상가와 협의매수했을 때의 보상가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말부터 이전 예정 총부지 349만평에 대한 협의매수 결과 오산비행장 지역은 96%가, 팽성지역은 60%가 소유주와 협의를 거쳐 매수됐다. 국방부는 기지 이전 예정지인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에 있는 대추분교 7필지 4334평과 건물 3동 284평은 평택시 교육청과 매매계약을 체결해 소유권이 이전됐으며, 앞으로 미군기지이전 시설공사를 위한 공사관련 시설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 |
첫댓글 시대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글 올려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