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 평가 - 부정과 재평가
오타쿠가 억울하게도 그 특유의 유해한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몇몇 오타쿠들이 자행한 흉악한 범죄들이 오타쿠라는 집단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린 첫 번째 개기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 현대사의 문화적 특수성도 간과할 수 없다. 지금까지도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오타쿠의 어두운 면은 일본 사회가 자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타쿠에 대한 무분별한 비판과 비난은 일본 사회의 자성과 함께 사그러들고, 차츰 오타쿠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그 재평가라는 것도 제대로 된 것이라 보기 어렵다.
부정적 평가의 범람 - 일본 현대사의 문화적 특수성에 비추어
몇몇 오타쿠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들에 직면한 일본 사회는 경악하였다. 이러한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이유는 범죄의 주인공이 현실 속에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고, 만화애니메이션 속에서 밤을 세우고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결과, 결국 범죄로 치달렸다는 것이 당시 사회의 평가였다. 진짜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지 않고 만화·애니메이션만 보는 와중에 생명을 죽이는 것을 마치 만화 속의 캐릭터를 죽이는 것처럼 생각한 게 아니냐는 것이 당시 일본 사회의 평이었다. 미야자키 사건으로 인하여 ‘오타쿠’라는 단어는 일본 사회 전체의 화두가 되었고, 이후 일본에서 오타쿠라고 하면 거의 욕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오타쿠의 입장에서 이런 사회 분위기는 말 그대로 부당한 것이었다. 모든 만화애니메이션 팬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는 분위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사건 이후 언론에서 소개되는 오타쿠의 이미지는 모든 만화 팬들을 ‘어두운, 사회와 단절된’ 이미지로 만들어버렸다.
오타쿠를 바라보는 일본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은 남성 오타쿠의 경우에 동정童貞의 담론에서도 나타났다. 1960년대를 거치면서 여성의 처녀성과 남성의 동정은 성숙과 함께 버려져야 할 부정적 가치로 폄훼된 이래 1990년대에 오면 동정의 함의는 ‘인기 없는もてない/성불구インポ/마더콘マザコン’ 등으로 확장되었고 이런 담론들이 축적됨에 따라 동정에게는 ‘뚱보에 오타쿠이고 불결하고 여성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라는 고정관념까지 형성되었다. 동정과 오타쿠가 어떻게 등식 관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20~30대의 동정이 늘고 있는 현상을 우선 근본적으로 이성에게 ‘거부당하고 상처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의사소통 공포증으로 설명하는 전문가의 견해는 오타쿠에게 적용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의사소통 공포증은 1980년대 만화·애니메이션 오타쿠들 사이에서 유행했다는 에로 만화라든가 이른바 로리콘 만화·애니메이션의 심리적 배경들 중의 하나일 수 있다. 그와 같은 장르의 작품들은 숱하게 만들어졌다.
물론 상대방이 이성이든 동성이든 타인으로부터 거부당하고 상처받고 싶지 않은 심리는 오타쿠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타쿠가 타인과의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대체하는 일종의 보철물로서 취미 대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의사소통이 관계의 문제인 데 비해 취미는 관계에 앞서 대개 소유의 문제이다. 오타쿠의 취미 활동에 있어서의 소유, 즉 사유화에는 보통 다음의 요소들이 필수불가결하다. 그 요소들이란 사적 공간과 복제 기술이다.
하지만 취미의 문제에 와서도 오타쿠는 마니아와 구별되는 것 같다.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한 유명 PD는 어느 인터뷰에서 “오타쿠는 한 가지에만 집착하고 빠져드는 반면, 마니아는 그것 이외의 다른 것들에도 관심을 갖는다”라고 말한 바 있다. 오타쿠와 마니아의 이와 같은 구별은 후기 산업 자본주의적인 신인류의 차이화 담론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다. 양자의 차이로 지적되는 ‘관심의 폭’은 무엇을 소비하고 소유하는가가 아니라 삶 자체의 양식과 관계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간 대 인간,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특권화하는 일종의 관계주의로 일본의 문화적 특수성을 설명하는 하루투니언H.D. Harootunian의 제안을 염두에 두면, 일본 사회에서 관계주의적 삶의 양식을 떠받치고 있는 하나의 실질적인 제도로서 일본인의 이름이 갖는 특수성에 주목해 볼 수 있다. 일본인의 이름은 발음과 표기에 사이에 통일된 원리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지 않아서 이름의 표기를 보아도 훈독을 해야 하는지 음독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동일한 표기라도 사람마다 그 발음이 다른 경우들이 드물지 않다. 물론 어느 정도의 관습화된 일관성이 있긴 하지만, 일본어에서 사람이나 지역 등의 이름은 언제나 수수께끼 같다. 결과적으로 이름이 실존적 가치를 지닌 인간 존재의 형식 및 인간관계의 매개체로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인적 관계망이 한층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시 1980년대 초의 만화·애니메이션의 팬들이 공유했다는 오타쿠라는 2인칭 대명사가 익명적 매개체였다는 점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익명성은 서로의 사적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인간관계의 책임에 대한 부담이 없이 소통하는 데에 효과적이다. 그런데 오늘날 인터넷이라는 미디어 공간의 대중화를 생각하면, 익명적 소통의 욕구가 단지 오타쿠에 한정된 특수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주로 서구 문화권의 국가들에서 사람들은 영화, 문학, 또는 전통을 통하여 어떤 것을 설명하고, 보수적인 학자나 지식인들은 청소년의 비행이 급증하면 TV와 록 음악의 부패한 영향을 비난한다. 일본에서는 만화·애니메이션이 그런 역할을 수행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젊은 문화의 병리적 현상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병리적 현상의 주범으로써 비난받는다. 오타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 또한 그들이 몰두하고 있는 문화의 생산물이기 이전에 그 사회가 빚어낸 자식들이다.
1980년대 초 일본 정부는 비교적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노동을 줄이고, 레저와 취미를 즐기는 데에 좀 더 시간을 쏟도록 권장한 적이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일본의 어린이들은 경제의 고도성장과 더불어 이전 세대가 경험해보지 못한 물질적 풍요와 대중매체의 세례를 받으며 성장했다. 그러나 그들을 감싸고 있는 교육적 환경은 대량 생산에 적합한 복종적인 일꾼과 이미 존재하지도 않는 중공업 지향 사회를 위한 순종적인 시민을 생산하는 시스템에서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아버지들은 일에 매달려 집에 붙어있을 틈이 없었고, 그러한 것에서 오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물질적 보상으로 대신하려 했다. 특히 남자아이들은 응석을 받아주는 어머니의 손에서 제멋대로 자라났다. 아이들은 학교에서는 자신들의 정신적 성장에는 관심조차 없는 시험지옥에서 시달렸고, 학교 밖에서는 갈 곳이 없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에서 아이들이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장소는 현실이 아닌 만화·애니메이션이 만든 환상의 세계, 꿈의 세계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꿈꾸고 즐길 수 있었다.
오타쿠에 대한 재평가 - 그러나 오타쿠를 위한 것은 아닌
그러나 오타쿠가 지금까지 비판과 비난의 대상만 되었던 것은 아니다. 오타쿠는 그들을 옹호한 몇몇 대중매체에 의해 부분적으로 구제되었는데, 일부 지식인들은 ‘오타쿠는 차별적인 용어이다’, ‘언론은 오타쿠 죽이기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오타쿠에 대해 동정적인 여론이 일어나자, 본래 그렇듯이 이번에는 TV와 라디오의 시사 해설자들이 동원되어 오타쿠에 대한 무차별한 공격과 편견의 재고를 촉구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오타쿠는 너무나 유명해지면서 그 적용 범위를 넓혀 갔다. 그리하여 1990년대 중반에 이르면 오타쿠는 사진을 찍건 우표를 모으건 간에 보통 이상의 열성을 가지고 어떤 취미에 푹 빠져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이에 더하여 오타쿠는 1960년대의 히피들이 그들을 모욕하는 이들에게 스스로를 ‘사회의 기형’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듯이, 자신들이 오타쿠라고 자청하여 밝히기 시작했다. 오타쿠는 내성적이거나 어떤 것에 도가 지나치는 경향을 짓궂게 묘사하는 ‘오타키이’라는 형용사로도 쓰이게 되었다.
오타쿠를 향한 세간의 시선은 시간이 지나고 환경도 변하면서 조금씩 긍정적인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특히 만화·애니메이션과 게임 분야의 대중성이 1990년대에 서구 사회에서 큰 각관을 받게 되자 오타쿠도 사회적으로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재인식 작업은 오타쿠 자신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신세기 에반게리온>(TVA/1995)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가이낙스ガイナックス/Gainax의 창립 멤버이기도 한 오카다 도시오太田出版는, 1990년대 중반 이래로 <오타쿠학 입문>(太田出版, 1996)이라는 저술 등을 통해 오타쿠에게서 동시대 문화를 선도해 갈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가능성을 탐색하여 제시하려 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오타쿠 문화 및 오카다 도시오의 담론에 대해 문화 연구자 우에노 도시야上野俊哉는 그 자신 역시 일본 애니메이션의 팬이면서도 하위문화를 토양으로 하는 새로운 민족주의를 우려하며 다음과 같이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극히 기본적인 반성이 없는 지점에, ‘일본 문화’로서의 오타쿠를 무비판적으로 긍정하는 식의 담론을 꾸며대는 오카다 도시오와 같은 자가 나타난다. 전체를 이루고 있다고는 못 해도 오카다의 담론은 의사擬似적인 사회학을 가장하고 있다. …… 오카다처럼 오타쿠를 무조건적으로 찬양하고 그것을 국가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문화로 치켜세우려는 담론은 한층 악질적이다 ……. 확실히 할리우드 영화와 일본 아니메 사이의 상호 인용과 서로 베끼기는 고찰할 값어치가 있다. …… 그러나 그 의미의 분석도 문맥도 결여한 채 이 문화적인 상징 교환을 소비하고, 뿐만 아니라 거기에 ‘일본 문화’가 실체로서 치켜세워지는 것은 위험한 증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이러한 담론 안에 일본은 원래부터 ‘고전의 모방本歌取り’을 비롯해서 ‘인용의 왕국’이며, 오타쿠와 '야오이やおい'의 문화는 일본의 문화적 전통에 근거하고 있다는 소박한, 그러나 위험한 자본주의와 문화적 민족주의가 증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카다는 오타쿠 문화(가령 코믹마켓)를 세계에 수출하자고까지 여러 곳에서 발언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파리에든 런던에든 어느 도시에나 바보스럽고 사회성 없는 오타쿠는 반드시 있으므로, 이러한 어리석은 제안은 어느 정도 실현 가능성을 갖는다. 오카다의 진의가 어디에 있든지 자각 없는 오타쿠 문화 수출을 긍정하는 논리를 나는 오늘날의 ‘일본 이데올로기’로서 비판하지 않을 수 없으며 …….
오카다 도시오와 같은 세대의 오타쿠이자 동료이지만, 오츠카 에이지도 최근 오타쿠 문화를 ‘일본 문화’라는 틀에 넣어 찬미하는 입장에 위화감을 피력하면서 오히려 그러한 찬미를 통해 지워 버리려고 하는 1980년대 오타쿠의 어두운 기억, 특히 엽기적 살인 사건의 주인공인 미야자키 츠토무에 대한 기억을 다시 소환한다.
여기에서 오타쿠가 산업이라는 이름 아래 민족주의적으로 회수당하는 구조에 직면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그 구조로부터의 감성적 반발이야말로 오타쿠의 실존적 출발점이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의식하지 못한 채 역으로 오타쿠의 실존적 출발점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오타쿠에 대해서 오시이 마모루押井守 감독은 대단히 이색적인 논리를 전개한 바 있다. 2002년에 <오타쿠 산업이 일본을 구한다?オタク産業が日本お求ろ?>라는 글에서 그는, “최근에 출산율 저하 문제로 결혼을 장려하는 움직임도 있지만, 오타쿠에 한해 말하면 그것은 큰 잘못이다. 오타쿠가 갖는 소비 능력은 결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금전을 취미의 세계에 투입할 수 있다. 결혼해서 아이를 갖고 일반적인 가정을 만들어 버리면 그 소비 능력은 완전히 저하된다. 오타쿠는 결혼 따위 안 해도 된다.”라고 제안하였다. 진지한 농담일 수도 있고 순진무구한 낙관론일 수도 있는 이 주장에서 상당한 냉소가 느껴진다. 즉, 민족주의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주장이지만 사실 역설적이게도 그 정반대이다. 결혼, 출산, 가정에 대한 부정은 그 위에 결정적으로 기초하는 ‘국가=국민’의 재생산을 붕괴시키기 때문이다.
오타쿠가 일찍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산업적 성장, 미적 심화, 사회적 평가에 얼마간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하다. 이는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말까지의 애니메이션 붐을 놓고 볼 때 특히 그렇다. 하지만 또한 그러한 붐 현상에서 무시할 수 없는 것은 1980년대의 거품경제였다. 따라서 그 거품이 붕괴하는 우울한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일본 애니메이션과 오타쿠도 전반적으로 이전 세대와 다른 경향을 띠게 되었다.
이런 변화에 대해 가장 과격한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서 반응한 사람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이하 에반게리온)의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庵野秀明였다고 할 수 있다. 1996년 7월의 인터뷰에서 그는, 애니메이션이 TVA로부터 멀어져 불특정 다수의 관객과 만나는 가능성을 잃어가는 한편, 한층 사적인 OVA에 의존하게 되면서 특정의 인기 성우나 인기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폐쇄적 격리구역만을 양산한다고 비판하였고 동시에 오타쿠 산업도 비관적으로 전망하였다. 오타쿠 사이에서조차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에반게리온>에 관해서도 그는, 자신의 작품으로 인한 대규모의 격리구역을 옴진리교에 비유하면서 현실 도피처를 향한 출구 없는 질주라는 부정적인 사회 현상으로 해석한 바 있다.
하나의 애니메이션 작품이 신념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일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오타쿠 문화 속에서는 별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에반게리온>에도 큰 영향을 끼친 바 있는 [건담 시리즈]의 경우,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그 열혈 팬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스스로를 ‘건담주의자’ 혹은 ‘건담교도’라고 자처한 바 있다. 이런 현상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것의 신념적 진위성과는 상관없이 수용자가 스스로의 이미지를 다름이 아닌 신념이라는 거울에 비춰 냈다는 점이다. 가끔씩 화제가 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정 작품 혹은 거기에 등장하는 특정 캐릭터 또는 특정 성우 등을 향한 팬들의 공공연한 애정 고백은 신념을 뛰어넘어 거의 신앙적 간증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여정 속에서 대개 오타쿠가 귀의하고 마는 세계는 결국 후기 산업 자본주의 특히 정보 자본주의 시대의 마케팅 시스템에 의해 통제, 관리되는 상품의 유토피아이다. 오늘날 애니메이션은 상품의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중요한 목록에 되었다. 게다가 이제는 그 모두가 ‘정보’로 다루어진다. 무수한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디지털 파일로 변환되어 기억 장치에 저장, 공유되고 ‘자료’라고 분류된다. 작품의 제목은 ‘파일 명’이라고 대체되었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식으로 표현하면, 애니메이션은 디지털 시대의 도구gadget이 되어버렸다. 도구를 ‘혼’을 잃은 장난감으로 규정하는 보드리야르의 해석에 비춰 본다면, ‘혼’을 잃은 애니메이션은 매우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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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D. 하루투니언, "보이는 담론/보이지 않는 이데올로기", H. D. 하루투니언/미요시 마사오 엮음, <포스트모더니즘과 일본>, 곽동훈 외 옮김, 시각과 언어, 1996,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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押井守, <これが僕の回答である 1995~2004>, インフォバ―ン, 2004, p.252.
五十嵐太郞, "いかに庵野秀明は語つたか2", 五十嵐太郞 編, <エヴァンゲリオン快樂原則>, 第三書館, 1997, p.43.
五十嵐太郞, "いかに庵野秀明は語つたか7", 五十嵐太郞 編, <エヴァンゲリオン快樂原則>, 第三書館, 1997, p.203.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이상률 옮김, 문예출판사, 2000, pp.159~163.
첫댓글 음...근데 안노 본인도 중증 건덕 아니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