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2:20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속임이 있고 화평을 의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 (개역개정판)
이사야 12:3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개역한글판, 개역개정판)
믿지 않는 어느 사장님 방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때마침 먼저 자리를 비우셨는데
부적과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이 보였다.
그거 치울 정신도 없으실 정도로 바쁘셨던 것 같고
뭐 남이 봐도 상관 없다는 마음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
얼마나 마음이 불안하셨을까?
믿지 않는 분들이 가끔 존경(?)스러워 보일 때가 있는데
이 험한 세상을 주님 없이 어떻게 살아오셨는가... 에 대한
정말 슬픔을 가득 담은 존경심이 들 때가 아주 가끔은 있다.
대체로 다들 경험하겠지만,
기쁨은 기본값이 아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울고
마지막 순간에는 울 힘조차 없어 남들이 울어준다.
죄악과 어리석음으로 가득한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뭐 썩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 와중에 범죄의 경력은 쌓여가고
어리석음의 강도도 깊어간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도 생기는 거 아닐까?
이사야 12:1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개역한글판)
죄에는 대가가 따르고,
그 대가를 통과하는 시간은 가볍지도, 짧지도 않다.
그런데 이사야는
유다 민족이 겪게될 고난이 오기도 전에 이미 이 찬송을 가르쳐 주었다.
고난의 한복판에서 부를 노래를, 고난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손에 쥐여 준 셈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꽉 잡아!”라는 말은
당신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믿고 함께 위험을 극복하자는 깊은 함의가 담겨 있다.
결과는 천차만별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사실 최악의 결말이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은 기본값이 아니고
고난이 기본값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고난이 없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면 좋겠지만 그건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은 죄인이고,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은 죄악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사야 12장의 이 감미로운 찬송은
고난을 면제해 주는 달콤한 약속이 아니라
고난을 쓰라림을 견딜 수 있게하는 이유가 되는 약속이다.
지금 겪는 진노가
앞으로 겪을 진노가 끝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그 진노 뒤에 위로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면,
고난 앞에서도, 고난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다.
이사야 12: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개역한글판)
그래...
이거였다.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다.
왜냐면
주 여호와는 나의 힘...
이시기 때문이다.
수천 번, 수만 번 되뇌였던 바
그래도 마음이 불안했지만
다시금 믿고 의뢰하고 신뢰하는 바 그 이름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다.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대로 이끌어가지도 않으시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대로 이끌어가지 않으시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의지할 유일한 분
결국에는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 그 분
그래서
화평을 의논하게 하시고 (잠 12:20)
악을 꾀하지 않게 하시는 분
그 분 안에서만
기쁨이 있다.
세상의 기쁨은
별로 경험해본 적도 없지만
거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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